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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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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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이야기

 

박 동수(천리교 산격교회)

 

터전에서 공부를 마치고 해외부 번역과 에서 5년간 신님의 일에 임했다.

학생시절에는 교조탄생200주년 기념제, 4대 진주 계승봉고제, 번역과 때는 교조120년제 등 이 길에 있어서 중요한 시순에 히노끼싱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귀참한 많은 분들과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통역자는 대부분 나 혼자였고, 귀참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수였으므로 모두의 얼굴,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어느 때, 초석자 통역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석장으로 갔다. 생후 6개월 정도의 갓난아이와 엄마,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동원된 상태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육감적으로 엄마와 떨어진다는 것을 안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보기 안쓰럽기도 하고 별석장인지라 내가 안절부절 못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나름대로는 걱정하는 척(?)을 하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이 부분을 기억에 남겨두지 못했다. 하지만 평소 하던 식으로 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라 믿는다.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내 행동을 진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 인연이라는 매듭을 단단히 묶으셨나 보다.

훗날, 그 할아버지는 교회 설립 및 교회장 취임봉고제를 1년 앞두고 근행의 충실을 기한다는 취지에서 매월 여자악기 강습회를 개최했고 내 여동생이 강사로 히노끼싱을 했다. 봉고제 때, 나는 통역을 맡았다. 교회장님 왈, 그저 일본말만 좀 한다고 해서 통역을 맡길 수는 없었단다.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내가 추천을 받았는데, 알고 봤더니 예전에 별석장에서 통역하던 사람이었고, 여자악기 강사의 오빠였다는 것이다. 황송하게도 얼마 전 78일에는 그 교회에 대교회장님의 순교가 있었고, 그때도 통역을 맡게 되었다.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형태로 나타난 고마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천리교교전,

인간은 마음 하나를 나의 리로 허락받고 살아가는 가운데 좋은 씨앗도 뿌렸는가 하면, 나쁜 씨앗도 뿌려 왔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리가 나타나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리가 나타난다.

세상에는 어떠한 인연도 있다.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다.

(1895. 7. 22)

무릇 어떠한 씨앗도 뿌린다고 해서 곧 싹트는 것은 아니다. 인연도 당대에 써 온 마음씨를 보여 주시는 것도 있거니와, 과거 몇 대 동안에 써 온 마음씨를 보여 주시는 것도 있다. 자기 당대에 써 온 마음씨에 의한 인연이라면, 곰곰이 돌이켜보면 알게 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18년 전,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할 계획인가?’라는 천리교어학원 원서 질문 란에, ‘한국의 이 길을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 일본어로 된 교리 서적을 많이 번역해서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적었던 것 같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바라는 것 없이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어왔다. 그 마음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천성, 상급교회의 학생수련회와 청년근무, 그리고 터전에서 이바지를 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이리라.

7, 8월은 교회 수련회는 물론, 소년 히노끼싱대, 오야사토 세미나, 터전귀참 등 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많이 개최된다. 아이들이 좋은 씨앗을 뿌려 좋은 인연을 엮어갈 수 있도록 육성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기울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