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여는글

 

人之所有 孰爲不借者(인지소유 숙위불차자)

 

남 상 우 (구만교회장)

 

나는 집이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서 타곤 했다. 그런데 늙어서 둔하고 야윈 말을 빌려 얻었을 경우에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감히 채찍질을 못할 뿐만 아니라, 말이 금방이라도 쓰러지고 넘어질 듯해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다. 더구나 개천이나 도랑이라도 만나게 되면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곤 했다. 그래서인지 낭패를 보거나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빌려 탔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여 방자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챘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마치 내 집 안방인 양 생각해 기분 좋게 질주하곤 했다. 그래서 간혹은 위험하게 말에서 떨어지는 변고를 겪기도 했다.

아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뒤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빌려서 잠깐 동안 쓸 때에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진짜로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야 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빌리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이 있겠는가?(人之所有 孰爲不借者)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하인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더욱 많은데,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어찌 미혹(迷惑)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 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어버리는 판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맹자(孟子)도 이에 말하기를 오래도록 빌려 쓰고서 되돌려주지 않았으니, 그것들이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상(以上)은 고려말 학자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차마설(借馬說)의 내용입니다. 이 길의 대물차물의 리와 함께 제가 가까이에 두고 무언가를 마음작정할 때 자주 떠올려보는 한 생각(一說)입니다. 집이 가난하여 말을 빌려 탈 때의 느낀 점을 빌린다는 데 초점을 두고 이야기의 논의를 점점 확대해 가다가, ‘임금도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사고확장의 결론을 맺습니다.

임금의 권력이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개념과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발상이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더구나 권력을 국민에게서 잠시 빌린 것, 언젠가 되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권력자가 권력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리고, 비리를 저지르는 일들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국가 권력이 절대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오히려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돈에도 똑같이 적용될 듯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모은 것이라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가난한 사람들의 피땀, 눈물이 들어갔을 테니 말입니다. 이 돈을 남들에게서 잠시 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비록 자기가 열심히 해서 모은 돈일지라도 좀 더 값있게, 그리고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30대 후반, 가장(家長)으로서 이 길과 저 길(?) 사이에서 인생의 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이 길의 대선배이신 다쯔미 후미에(辰巳 文江 소분가와분교회 초대교회장)선생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남선생, 돈이란 많고 적고를 떠나 어버이신님께서 보채는 아이들에게 잠깐 동안 맡긴 그리고 빌려주신 장난감 같은 거야. 어른이 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이잖아. 그래서 마음성인의 첫 장애물이 바로 돈이며, 질병고통에서 벗어나는 첫 관문 같은 것이야.”하시며 평생 대물차물의 리에 경계를 풀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각자의 몸은 차물임을 모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친필 3-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