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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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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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모두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남상우(구만교회장)

 

 

여보, 요섭이가 안보여요?”

오겠지.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교구에나 갔다 옵시다.”

 

구만교회에는 2년 전부터 키우는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이름은 요섭이라고 합니다. 개 이름 치고는 엣찌있고 세련됐죠. 사실인즉, 우리 집 딸아이가 가수 비스트(BEAST)의 양요섭을 좋아해서랍니다. 신자들 중에는 교회에 웬 개냐며 반겨주는 분도 계시지만, 더러는 교회오시는 낯선 분께는 왕왕 짖기도 해 그야말로 천덕구리같은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요섭이를 아내는 무서워합니다. 어릴 적, 개한테 발뒤꿈치를 물린 후부터 생겨난 트라우마(trauma)때문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우습게도 요섭이가 우리집 식구가 된 데는 아내의 공이 지대(至大)했습니다. 우리가 구만교회로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아내와 함께 신자들의 각 가정을 살펴보러 다니는데, 신자분이 개라면 질색하는 아내 품에다 갑작스레 젖만 뗀 요섭이를 던져주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화들짝 질겁해야하는 아내가 순순히 요섭이를 받아 챙겼습니다. 그런 묘()한 인연으로 요섭이는 우리집 식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요섭이를 데리고 특별난 일이 없는 한 아침근행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침운동을 나갑니다. 운동이라 하지만 특별나지는 않습니다. 적석산 아래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걸어오는 정도입니다. 그 날도 아침근행을 마치고 여느 날처럼 요섭이를 데리러 개집을 향했습니다. 신전청소 때까지만 해도 연신 꼬리를 흔들어대던 요섭이가 보이지 않는 거였습니다. 이웃마을의 하천다리공사 때문에 부쩍 교회 앞으로 덤프터럭이 많이 지나다니는데, 아침식전부터 재수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운동을 거른 채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연신 눈길은 개집을 향해 있었습니다. 개들도 봄바람을 타는지 최근 아침 마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몇 시간째 돌아오지 않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마치 우물가에 애를 내놓은 듯 했습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끝내 요섭이를 보지 못하고 볼일 때문에 교구로 향했습니다.

 

저녁근행 시간이 다 되어서야 우리는 교회로 허겁지겁 돌아왔습니다.

여보, 요섭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나간 지가 언젠데 그럴 리가.”

아내 이야기대로 개집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막연히 돌아오겠지 하는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교회 앞에 있는 텃밭을 향했습니다. 며칠 전 고추를 심기 위해 밭고랑을 낸 뒤 비닐을 덮어 두었는데, 바람 때문에 엉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닐에다 흙을 덮고 있는데, 텃밭 한 켠에 있는 허드레 물 웅덩이에서 낯선 할머니 한 분이 물을 길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보통으로 바람이 불어야지. 고추 심으려고?”

, 근데 처음 보는 할머니신데 어디 사십니꺼?”

내말이가? 저 윗마을 효대에 안 사나.”

물은 말라고 그렇게 힘들게 길러다 나르고 있습니꺼?”

요 밑에 있는 고추밭에다 물 좀 주려고.”

……

불편한 정적이 잠시 흘렀습니다.

근데 할머니, 혹시 개 봤습니꺼? 나갔다 교회오보니까 개가 없네에?”

으응, 무슨 말이고? 우찌 생겼는대?”

이른 아침부터 나간 놈이 아직 안 들어온다 아입니꺼? 하얗고 조그마한데.”

혹시 개목줄 끝에 줄넘기 손잡이가 달린 개아이가?”

예 맞습니더. 근데 우째 아십니꺼? 어디서 언제 봤습니꺼?”

내 방금 효대 집에서 나오다가, 효대 마을회관 옆 경운기에 못 보던 개가 묶여 있어 유심히 봤는데, 그 개를 말하는 거 아이가 모르겠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효대마을로 자동차를 몰았습니다. 마을회관 앞에 요섭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있다는 경운기도 없었고 그럼 누가 데리고 갔을까? 다급한 마음에 요섭아하고 몇 번을 크게 불렀습니다. 효대마을의 모든 개가 멍멍하고 짖어댔습니다. 그 중 귀에 익은 개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따라 찾아 뛰어갔습니다. 점점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습니다. 경운기에 묶여 있는 한 마리 개를 발견했습니다. 요섭이였습니다. 하루온종일 굶은 데라 낯선 곳에 묶여 있다가 주인을 보자,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는데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을 겁니다.

 

우연이라고 가장하기엔 너무나 완벽한 연출이었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할머니께서 그것도 같이 있었던 시간이 3분 남짓 되었을까요? 그리고 제가 그 타이밍에 텃밭에 간 것은 더 절묘했습니다. 더구나 낯선 분에게 집 나간 개 보았냐는 황당한 질문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물며 조금 전 고추밭에 가려고 집을 나서시다가 요섭이가 그 할머니의 눈에 띄었다니.

 

여전히 지금도 요섭이는 630분만 되면 아침운동에 자신도 데리고 나가달라고 난리법석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질풍노도기에 접어든 요섭이를 이 따스한 봄날 어찌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나는 또 오늘 어떤 인연(因緣)을 만날까요? 알 수 없는 이 떨림에 아내의 어깨에 슬쩍 제 손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