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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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경쟁유감(競爭遺憾)

 

이영수 (저산포교소장)

 

이번 어린이 수련회 밤행사에서 아이들이 조를 나누어 교조님 일화 한편씩 각색해서 연극을 했다. 심사를 해달라는 소리를 듣고 얼떨결에 그 자리를 앉았지만 1, 2, 3, 4위 순위를 매기기를 요구받았을 때 당혹스러웠다. 한 조가 연극을 한 뒤 점수를 매겼지만 나머지 세 조에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줬다. 똑같은 점수를 매겼다. 교회 안에서 더군다나 아이를 대상으로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밤행사가 끝나고 아이를 대상으로 왜 순위를 매기게 했느냐고 어떤 선생님께 따지듯 물어보았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동기유발이 돼서 열심히 하지요.’ 했다.

경쟁심리를 이용해서 동기유발을 시킨다. 기가 막힌다.

어버이신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경쟁심리로 동기유발이 되어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물 불 바람을 경쟁시켜서 이 세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들고 대자연의 혜택을 베풀면서 즐거운 삶을 만들려고 하셨을까?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교조님의 가르침 그 어디에도 경쟁을 시켜서 동기유발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마음 한뜻을 이야기를 했으면 했지.

 

경쟁을 부추는 것은 여덟 가지 티끌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 인색, , 미움, 편애, 원망, 분노, 욕심, 교만 모든 티끌에 해당하지 않을까? 경쟁을 부추기니까 은근히 1등에 대한 탐이 일어난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욕심에 불이 붙는다. 다행히 욕심대로 되면 교만해지고 으스대고 싶다. 욕심대로 안 되면 원망 분노가 일어난다. 잘했다고 평가받는 팀한테서는 시기 질투 미움이 일어난다. 남이 잘하고 애쓰고 노력하는데 대해서 격려도 칭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인색하기 짝이 없다. 니편 내편을 갈라 편 가르기를 하고 다르게 대접하려니 편애의 티끌이 쌓인다.

 

이렇듯 경쟁은 편 가르고, 높고 낮음을 만들고, 차별하게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돕지 못하게 한다. 서로 돕지 않는데, 즐거운 삶이 열릴 리 없다.

 

우리 주변 생활 곳곳에 경쟁을 부추기는 제도적 장치들, 심리 상태가 너무나 많이 도사리고 있다. 스포츠 경기가 그렇고, 학교 성적이 그렇고, 선거가 그렇다. 어느새 경쟁이 우리 생활 곳곳에 삶의 바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들 삶이, 사회가 늘 고달프고 위태위태하고 삭막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경쟁의 늪 속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즐거운 삶으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만약 교조님이 연극하는 자리에 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1, 2, 3, 4위라는 등수를 매겨라 하셨을까. 그 보다 1조는 노력하고 단합을 잘했기 때문에 단합상을 주고, 2조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었으니까 아이디어상을 주고, 3조는 스토리가 탄탄하기 때문에 스토리상을 주고, 4조는 웃음을 많이 선사했기 때문에 웃음상을 주라고 하지 않았을까? 어느 조 하나 소외시키지 않고 뭐라도 칭찬할 점을 찾아 격려해 주지 않았을까?

경쟁은 통제를 위한 유효한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모두에게 티끌을 일게 한다.

경쟁은 즐거운 삶과도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경쟁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을까?

 

무엇이든 月日이 지배하므로

크다 작다 말하지 마라 (친필 7-14)

 

다섯 손가락처럼 형제라면 어느 손가락을 깨물어도 다 아프겠지. 이쪽은 세우면서 저쪽은 넘어뜨리려 하지 않겠지. (1899.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