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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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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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님

2012.05.26 16:11

관리자 조회 수:2562

교조님의 입장

 

교조 나까야마 미키님은, 입교 이래 50년에 걸쳐 월일의 현신으로서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우리 인간들에게 전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몸소 행동으로 구제한줄기의 모본을 보여주셨다. 우리들은 그 행적을 모본의 길이라 하며, 교조님을 모본의 어버이로 흠모하고 있다.

교조님께서는 1887년 음력 정월 26, 자녀들의 성인을 촉구하며 현신을 감추심으로써 우리가 그 모습을 뵐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으뜸인 집터에 머무르시며 세계구제를 위해 활동해 주고 계신다. 이처럼 존명하신 채로 활동하고 계신다는 의미에서 교조존명의 리라고 한다.

 

생장과 행적

 

교조님께서는 1798418, 야마토 지방 야마베군 산마이덴(현 덴리시 산마이덴) 마을에서 탄생하셨다. 태초 인간창조시 어머니의 혼을 지니신 분으로서, 어릴 적부터 자비롭고 신심(信心)이 돈독한 성품이셨다.

인간을 잉태한 으뜸인 인연이 있는 나카야마 가에 시집오신 후에도 며느리로서 주부로서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은 더욱 더 깊어만 가셨다.

한 번은 쌀을 훔쳐가려는 사람을 위로하고 용서하신 다음 쌀을 주어 돌려보내는가 하면, 어느 때는 여자 거지에게 옷을 주시고 음식을 베푸신 것은 물론, 등에 업힌 아기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이시는 등, 자애 깊은 행적은 그 정도를 더해가셨다.

 

월일의 현신

 

18381026, 월일의 현신이 되신 교조님께서는, 우선 극빈에 빠져라는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따라,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온 물건들을 비롯해서 곡식, 의복, 금전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어려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며 극빈의 길을 걸으셨다.

이렇게 십 수년의 세월이 지나는 가운데, 남편 젬베에님의 출직(: 빌려받은 헌 육신을 어버이신님께 돌려드리고 새로운 육신을 빌려받아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는 큰 마디를 만나지만, 오히려 이제부터 세계의 역사를 시작한다. 축복해 다오라고 하면서 안채를 헐어내시고, 나아가서는 막내딸 고칸님을 나니와로 포교를 내보내셨다.

이처럼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은, 친척의 반대는 물론, 지인이나 동네사람들로부터 비방과 조롱을 받았다.

그 후로도 10여 년간 극빈의 길을 걸으시면서도, 교조님께서는 항상 밝고 즐겁게 용솟음치셨는데, 때로는 먹을 것도 없는 가운데서도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고 하시며 자녀들을 격려하면서 나아가셨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 이윽고 순산허락을 시작으로 하여 신기한 구제가 잇달아 나타남에 따라, 교조님을 산() 신님이라고 흠모하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또 시기와 질투, 몰이해로 인한 세상의 반대 공격을 부르게 된다.

 

근행 완성을 향한 길

 

그런 가운데 교조님께서는 근행장소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시며, 근행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악한 것 제거의 근행을 비롯하여, 12장의 지가와 손춤을 가르치시며 근행의 준비를 갖추셨을 뿐만 아니라, 친필을 통해 근행의 완성을 향한 길을 일러주시며, 세계구제를 향한 이 길의 모습과 근본 이치를 깨우치셨다.

또 수훈의 리를 내려주시고, 터전을 정하시며, 감로대 건설을 촉구하시는 한편, 근행인원을 이끌어들여 깨우치고, 근행을 올릴 것을 재촉하시는 등, 오로지 근행의 완성을 향한 길로 나아가셨다.

그런 가운데 이 길의 가르침은 점차 넓혀져, 교조님을 흠모하며 터전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해마다 점점 늘어나지만, 그와 함께 박해와 간섭도 한층 더 심해져, 교조님께서는 십 수차례에 걸쳐 경찰서나 감옥에서 노고를 겪으시게 되었다.

그러나 교조님께서는 항상 마디에서 싹이 튼다고 하시며, 조금도 거리낌없이 감옥으로 향하셨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근행의 실행을 재촉하셨다.

사람들은 고령의 교조님을 걱정하고 관헌의 단속을 염려하면서 근행의 실행을 망설이는 사이, 18871월 교조님의 몸에 이상을 보이시게 되었다. 일동은 몹시 놀라서 그 의도를 여쭈어본 즉, 신의는 일관하게 근행의 실행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신한줄기와 응법의 길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을, 교조님께서는 당신의 신상을 통해서까지 거듭해서 어버이마음으로 일러주시고 깨우치시며, 218(음력 정월 26), 일동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올린 근행이 끝날 무렵, 춘추 90세로 현신을 감추셨다.

교조님께서는 이처럼 50년에 걸친 모본의 길을 남겨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변함없이 존명으로 활동하시며, 우리 인간들을 즐거운 삶으로 이끌어 주고 계신다.

 

 

*본 글은 입교166년(2003년) 천리교 도우사에서 발간한 "용재핸드북"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