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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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년10월]전도 - 김연수

2021.09.29 15:14

편집실 조회 수:91

전도

 

김연수(도성포교소)

 

오늘은 전도 다녔던 일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몇 번 얘기했던 내용이 반복될 수도 있지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진주로 이사 와서 처음에는 거의 전도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빵집 살림방에 간단하게 옥수만 올리고 근행을 올리다, 몇 년 지나 우연히 신님을 반납하는 댁에서 신전대를 얻게 되어 신전대를 놓고 신님을 모시고 조금은 그럴듯하게 근행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 빵집을 하면서 팔다 남은 빵을 어디 줄 데가 없을까 찾다가 푸드뱅크를 알게 됐습니다. ‘푸드뱅크는 정부 주관의 먹거리 나눔 사업인데 그때 처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진주에서는 푸드뱅크를 천주교 재단의 노인요양원에서 운영을 위탁받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푸드뱅크를 알게 되어 거기에 연락이 닿아서 남은 빵을 주곤 했는데, 푸드뱅크 차량을 운행하시는 분이 그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는 복지사 한 분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 복지사는 저랑 동갑이었고 친구로 말을 트고 지내게 됐습니다. 그때, 저도 어디 봉사할 데가 없을까 찾던 중이었는데, 진주시에 속했지만,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서 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교회(개신교)를 소개받았습니다.

지금은 아동센터가 지역복지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그때는 아동센터가 처음 시작되던 시기여서 센터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정부 지원도 거의 없다시피 했던 때였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도 거의 봉사로 센터를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거기에서 아이들 영어 공부를 3~4년 정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제가 공부를 더 많이 하기는 했지만요.

그렇게 나름 봉사를 한다고 하다가 가지 못할 사정이 생겼습니다.

전에 신앙적으로 고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해서 도움을 받곤 하던 포교소장님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그 소장님에게 전화해서 봉사를 다니던 센터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더 이상 다니기 곤란한 상황이 됐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바로 나온 대답이 봉사를 다니던 날짜에 맞춰서 시내 전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동센터 봉사는 월, , 목요일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언을 해주면서 어디 공터에 가서 좌근 손춤을 추라는 겁니다. 그분은 노방전도를 하면 시장 같은 데 가서 12장 손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약간의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손춤 전도를 할 거면 사람들 있는 데서 하지, 굳이 숨어서 할 거 뭐 있겠나?’ 하고요. 아마 당시 공터에 가서 손춤을 추라고 한 속뜻은 그렇게 연습해서 사람들 많이 있는 곳에 가서 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의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됐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십일, 이 년 전의 일이네요.

그때는 신악가 12장을 온전히 외우지를 못했습니다. 신악가를 다 외지 못하는데 길거리에 신악가대를 세워놓고 하기도 곤란하니 신악가 12장을 다 외우는 게 먼저였습니다.

신악가 12장을 조그맣게 종이에 프린트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립니다. ‘천리교띠를 매고 걸으면서 시외버스터미널 가는 길에 일주일에 한 장씩 외우기로 했습니다. 첫 주에는 터미널에서 좌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주에는 1장을 다 외워서 좌근부터 1장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좌근부터 2장까지 하는 식으로 3개월 동안 신악가를 외워서 12장 손춤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터미널 손춤 전도를 거의 3년 정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전도 형태를 여러 가지로 바꿔서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그렇게 전도를 할 때는 창피하기도 하고 용기도 잘 안 나고 했습니다. 시작할 때 동쪽을 보고 교조님 지켜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기원하고 손춤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졸이는 마음으로 전도를 시작하면 저 멀리 하늘의 구름 뒤편에서 교조님이 지켜보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기분 탓이었겠지만요. ㅎㅎ

항상 우리는 모든 면에서 너무나 많은 수호를 받고 있지만, 전도를 하면서 나름의 수호를 보너스로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수호는 주변에 감사할 일이 조금씩 더 늘어나고, 신님의 수호를 조금 더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수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전도를 나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처음 전도를 시작했던 때만큼의 열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열정은 없지만 끊이지 않고 변함없이 전도의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