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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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년02월]교수님 - 김연수

2021.02.22 17:43

편집실 조회 수:81

교수님

 

김연수(도성포교소)

 

덕이 많다는 게 뭘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요새 드는 생각은 느긋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이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무엇에든지 여유를 갖고 서두름이 없는 한가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마음.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겸손할 수 있는 자세도 여기에 속하는 것 같다.

참으로 나하고는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동네에 사는 단골손님 중에 진주의 한 국립대학교 부총장을 맡으셨던 교수님이 계시다. 속속들이 잘 알거나 얘기를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동네에서 마주칠 일이 자주 있다.

몇 년 전에, 그 대학교 주변으로 박자목을 치고 전도 다닐 때도 가끔 뵀다. 전도 다니는 시간이 점심시간일 때가 많다 보니, 그 교수님이 동료들과 같이 밖으로 점심을 드시러 드나들 시간에 우연히 몇 번 맞닥뜨린 일이 있다. 나 같으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종교를, 게다가 이상한 막대기를 쳐대며 전도하는,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 사람과 내 친한 동료들과 같이 지나면서 만나게 되면 은근히 시선을 돌려서 모르는 척하고 지나칠 것 같다. 그 교수님을 알아본 순간, 나도 살짝 놀래서 당연히 그렇게 지나칠 줄 알고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해드렸는데, 같이 있는 동료들은 아랑곳없이 먼저 다가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얼결에 나도 답인사를 드리고 그렇게 지나긴 했는데, ‘사람이 참 순수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얼마 전에는 아이 학교 문제로 그 학교에 대해 잠시 상담을 드렸는데, 이러저러하게 자신이 아는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시고, 보태서 더 자세한 내용은 그 학과에 연락해봐서 다시 말씀을 전해드리겠노라는 약속까지 해주셨다. 내가 그 교수님 입장이었다면, 그 학과에 전화해서 물어봐라 라든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한번 보라고 권해줬을 법한데도 마치 그 교수님에게 무슨 의무라도 지워진 것 같은 자세로 말씀을 해주시니, 도리어 상담을 청한 내가 송구하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그 학과에 연락해서 알게 된 내용을 전해주시러 일부러 오시기도 했다.

한 대학교의 교수님까지 지내시는 분이 허름한 동네빵집을 하는 사람에게 대하시는 태도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신 분이다.

 

천리교에서는 흔히 티끌을 털고 덕을 쌓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전생부터 써 내려온 마음이 버릇되어 지금 나의 급하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이 굳어진 것이라면 그 마음의 티끌을 하루하루 털어가는 게 천리교가 아닌가. 그렇게 차츰차츰 마음을 맑히는 노력을 하다 보면 금생이 아니라 몇 대에 걸친 내생에라도 나도 그런 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전 부인회 때, 터전에 공부하러 갔다 온 청년이 터전에서 연구 발표한 내용을 인연이라는 주제로 신전 강화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내용이 새삼 떠올라 그 일부분을 여기에 옮겨본다.

단노가 인연을 끊기 위한 마음의 방법이라면, 나르고 다하기는 인연을 끊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말씀에,

어떤 인연도 나르고 다하는 리에 의해 다한다, 끊는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르고 다하기란, 히노끼싱, 전도, 구제, 근행 등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사람들이 기뻐하도록 일하는 것입니다.

인연을 끊기 위해서는, 단노의 마음을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나르고 다하는 것, 즉 어버이신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