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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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년12월] 존중 - 김연수

2020.12.08 20:02

편집실 조회 수:100

존중

 

김연수(도성포교소)

 

코로나 초창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예 전도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기존에는 깃발을 들고 노방강연을 주로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좋은 인식으로 보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초창기 확산사태가 종교 단체에서 비롯되어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 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태가 지속되면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전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보 위주로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거의 혼자 전도를 다니다 보니 박자를 치면서 도보를 하면 신명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어느 포교사 분에게서 힌트를 얻어 신명 깃발을 들고 휴대용 앰프로 신악가cd를 틀어놓고 도보를 합니다. 마주 오시는 행인 분들께 가벼운 목례도 곁들여서요. 그렇다고 매일 하지는 못합니다. 장사를 하는 처지다 보니 빼먹을 때도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천리교 조끼를 입고 깃발을 들고 버스터미널 화장실에 잠시 갔다 나오면서 칠십 조금 더 들어 보이시는 어르신들 두 분 옆을 지나가는데 천리교다.” 하면서 뭐라고 수군거리시더니, 그중에 한 분이 제게 오셔서 전도지를 내밀면서 이것 한 번 읽어보세요.” 하는 겁니다. 얼결에 보니 다른 종교의 전도지였습니다. “,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죠.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몇 번 있긴 했습니다. 한번은 건널목에서 전도를 하고 있는데, 여자 분이 다가오셔서 그거 하지 말고 이리로 오세요.” 하면서 그 종교의 전도지를 준 적도 있습니다.

한번은 전도하면서 길을 가고 있는데, 천리교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아주 호의적으로 묻길래 성의껏 설명해주고 나니, 제가 한 말들을 빌미 삼아 천리교는 틀렸고 자기네가 맞다고 반박하는 겁니다. 그때는 그분께 말했습니다. “각자 진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굳이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만 맞다고 생각하는 게 옳은 겁니까.” 하고요.

이런 식의 일이 생기면 처음에는 속으로 화도 좀 나고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밖으로 전도를 다닌다는 게 평신앙을 하는 수준의 믿음 이상이라는 것 정도는 누가 봐도 아는 사실일 테고 신앙이라는 범주에서는 어떤 종교를 믿던 그 정도가 비슷할 텐데 말이죠. 나는 충분히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각자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종교(?)를 신앙하시는 분들은 유독 다른 종교를 부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하는 적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잠시 클래식 음악에 빠져서 그에 대한 인터넷 콘텐츠를 찾아보던 때에 그분의 인터뷰를 몇 편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의 신앙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서양 클래식 음악의 토대가 기독교 음악에서부터 시작했고 그 한 가운데에 음악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바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흐가 주로 작곡했던 음악들이 기독교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음악들이었고 그 바이올리니스트도 자연히 바흐의 음악을 최고의 기독교 음악으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말하면서 그것에 기초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의 신앙과 결부시켜 사회활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번은 박자목을 치면서 시내를 도보하며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수녀님들 서넛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수녀님이 저를 보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만으로도 저분은 진심으로 자신과 다른 신앙을 존중해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대의 교황이신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종교는 진리를 전하고 있다.”라고 정의를 내리신 교황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 수녀님이 아마도 그 교황의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새기고 계셨던 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내가 상대방에게 인정을 받을 때도 있고,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 사람, 만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 모두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고 교리 책에도 여러 군데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쉽게 인정해주고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주는지에 대해 돌이켜보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저 역시 버젓이 전도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를 믿으라고 와서 자신의 전도지를 주시는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역시, 세상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인 듯합니다. 더군다나 신님의 일을 본다고 전도를 하고 있으니 어버이신님께서도 저의 마음을 비추어 제 마음을 상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크나큰 수호를 해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