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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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년08월][168회]진실한 마음 9

2021.07.29 18:26

편집실 조회 수:65

진실한 마음 9

 

 

김 위 태

 

1893621일 지도말씀은 이 길을 위하여 진실한 노력을 한 어버이의 뒤를 이어 자식이 이어가야 하지만, 이어갈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억지로 이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전해야만 하는 리. 어버이의 대()를 그 후손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을 필요조차 없는 것. 진실한 리를 본 이상, 어버이의 뒤를 자식이 이어간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시키려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근본되는 리를 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 지도말씀의 뜻은 이 길은 계속 전해져서 말대까지 이어가야 되는 길입니다. 어버이가 진실한 길을 걸어온 이상 그 뒤를 이어 후손이 어버이의 뒤를 이어 진실한 길을 계승해 나가는 것은 확고한 것입니다. 후손이 뒤를 이어 진실한 길로 나아갈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시키려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진실한 교조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야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고본 천리교교조전일화편90 1대에서 2대로에는 이 길은 후손들이 이어가는 길이라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81년경, 야마자와 다메조가 교조님 곁으로 오게 되었을 때, 교조님께서는

신님께서는 말이야, ‘부모에게 인연을 나타내어, 자식이 그것을 보고 따라오기를 신은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단 말이야. 그래서 1대에서 2, 2대에서 3대로 리가 깊어지는 거야. 리가 깊어져서 영원한 리가 되는 거야. 각자의 마음에 따라 1대로 끝나는 사람도 있고, 2, 3대에서 끝나는 사람도 있다. 또 영원히 이어지는 사람도 있다. 리가 이어짐으로써 악인연의 사람이라도 백인연으로 되는 거야.”

라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교조님께서는, 이 길은 원칙적으로 후손들이 이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길의 진주님께서는 반드시 교조님의 후손들이 이어가게 되어있으며, 각 교회의 후손들이 반드시 교회장직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쪽에서도 후손이 목사직을 세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상속세를 낮추어 기업을 창업한 후손들이 기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문턱을 낮추어 주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 많이 있고, 또 계속 발전하고 있는 사회는 안정된 사회라 할 수 있고, 안정된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영원히 이어지는 길이라는 내용이 고설선집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길을 연한의 길이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언제 큰 나무가 될지 모르는 초목이라도, 세월이 지나는 가운데 어느 사이에 놀랄 만큼 크게 자라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길도 연한만 지나면, 모르던 자도 알게 될 것이고, 따라오지 않던 사람도 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조급해 하지 말고, 당 대에서 되지 않으면 2, 2대에서 되지 않으면 3, 4대로 영원히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작정하여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영원히 이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정하기 위해서는, 대물 차물의 리를 진실로 믿는 것 외에 길이 없다. 차물의 리만 다스려지면, 영원히 이어지는 마음도 정해지는 것이다.

이 길을 영원히 이어나갈 수 있는 길은 대물·차물의 리를 진실로 믿고 실천하는 길 외에는 없다는 뜻입니다. 칠암교회는 신자도 별로 없지만 아직 이 길을 이어받겠다는 자식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이 6명이나 되니, 그중에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버이신님을 모시겠습니다.” 하고 생전에 나타날 수도 있고, 또 제가 출직하고 나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급한 생각으로 실망하고 있거나 걱정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1895318일 지도말씀은 진실을 다한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에 이 길이 크게 발전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정을 깨우치는가 하면, 모두들 마음을 기울이는 가운데 누구누구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과연 진실을 기울인 리로써 이 길이 이만큼 커졌다는 이야기를 해 두었다. 자아 자아, 위에서 했는지 아래서 했는지 모른다.

위 지도말씀은

무엇을 깨우치느냐 하면, 여기서 누구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모두들 진실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참으로 훌륭하다고 할 만한 진실을 다한 그 사람의 정성에 의해 이 길도 이만큼 커진 것임을 깨우쳐 두고자 한다. 자아 자아, 그것은 윗사람 아랫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진실을 다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길이 된 것이다. (지도말씀 연구)

는 뜻입니다.

위 각한말씀을 내린 배경은, 이 길은 모두가 진실을 다했기 때문에 신님의 수호로 이만큼 발전되었지만, 교회가 만에 하나라도 세상의 악평처럼 걷고 있다면, 앞길이 꽉 막히는 날을 보게 될 것이며, 이제 겨우겨우 한 길로 나왔는데, 지금에 와서 또 위태로운 낭떠러지 비탈길을 걸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아무것도 안 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 대해 일찍부터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신이 타이르려고 해도 그것을 다소곳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그것이 바로 사정을 일으키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맑은 길에 맑은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만 참된 거울집터가 될 터인데, 본래 맑아야 할 곳이 흐려 있어서는 세계를 비출 수 없다는 경고성이 강한 느낌을 주는 각한말씀입니다.(지도말씀 연구해설 중에서)

 

고설선집』 「한 집안에 사는 사람이라도에는 한 집안 내에서도 진실한 사람도 있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정되는 것이므로, 모두 다르다. 환생해 온 발자취가 다른 만큼, 그 마음이 다른 것도 당연하다. 따라서 부모 자식, 부부, 형제간이라도 모두 마음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한 집안에 살고 있어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더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 터전은 거울집터라고 하여, 교조님께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불러들이시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어떤 마음의 모습도 나타나 있다. 흔히 터전에는 깨끗하게 맑아진 사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선악의 본보기가 모두 다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리가 나타나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리가 나타난다는 말씀을 근거로 말한다면, 그것은 세상이나 터전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이에 차이가 있거나 차별이 있어서는 바른 집터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집터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신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처와 같은 사람도 있고, 또 아귀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마와 같은 사람도 있다. 그것을 보고 좋은 쪽을 본보기로 삼아 자신이 배우도록 노력하고, 나쁜 쪽은 자신이 배우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교조님께서

[알아듣는 것보다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하신 것이다.

교조 재세 시에 무엇이든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교조님께서는 그 사람을 티끌의 집터라고 하셨다. 그런 사람은 인연의 가르침을 근거로 말하면, 좋은 행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마음은 자기 고유의 것이므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또 그와 반대로, 본석과 같이 차츰 마음이 성인하여 나중에 교조님의 대리라는 입장으로 활동하신 분도 있다. 그러므로 어버이신님의 말씀처럼, 똑같이 한 집터에 살고 있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쪽을 본보기로 삼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나쁜 쪽은 보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아야 합니다.

불나방은 불을 보고 모여듭니다. 수많은 불나방이 불에 타죽는 모습을 보고도 불에 달려듭니다. 그 이유는 불의 모습이 화려하고 찬란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의 그 모습이 화려하고 찬란해 보여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쁜 짓으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서도 따라합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욕입니다. 우리도 외국어를 배울 때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