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184년04월][164회]진실한 마음 5

2021.03.26 15:51

편집실 조회 수:75

진실한 마음 5

 

 

김위태 (칠암교회장)

 

다음은 이 길의 용어에 기록되어 있는 교조 존명의 리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본고장에 있는 교조전은, 소위 교조님의 영을 모시고 있는 집이 아닙니다. 교조님이 실제 계시는 곳이며, 구제한줄기를 위해 밤낮없이 활동하고 계시는 장소입니다. 터전에 돌아가서 교조전에 계시는 존명의 교조님을 뵈옵는 것이 이 길의 자녀들에게는 다시없는 기쁨임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 용재가 받고 있는 수훈의 리는 진주님을 통해 존명하신 교조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며, 항상 받고 있는 어공도 존명의 교조님께서 내려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조님께서 입으셨던 붉은 옷을 증거부로서 내려 주시고 있습니다.

자아 자아, 이제까지 살고 있다. 아무데도 가지 않았어, 아무데도 가지 않았어. 나날의 길을 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90. 3. 17)

는 말씀도 있듯이 교조 존명의 리야말로 이 길의 생명이라고 하겠습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설선집』 「말의 리를 듣는다는 교조님의 숭고한 정신력은 은신하시면서 없어진 것이 아니고, 존명의 리로서 영원히 이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교조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은 막연히 발자취를 따른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교조의 모본을 실천해서 교조의 마음에 동화되어 자각을 얻기 위한다는 데 그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조는 이미 은신하셨고 현재로서는 직접 교조의 교화를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교조의 육체만을 보기 때문이다. 교조의 모습을 육체만을 통해 보아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교조의 숭고한 점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에 있는 것으로서 그 정신은 교조의 은신과 더불어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교조의 육체가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됨으로써 그 빛을 더 발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 정신에 직접 동화되어 간다는데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교조의 정신은 터전에 간직되고 있는 것이므로 터전이 바로 교조의 리가 깃들여 있는 곳이 된다.

그러므로 이 교조의 리가 있는 곳에서 이 길의 리를 받아 가지 않으면 안 되며 그 밖에 다른 곳에서는 이 길의 리는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지도말씀, 고본 천리교교조전, 이 길의 용어 그리고 고설선집에 기록되어 있는 교조 존명의 리의 부분을 골라서 정리해보았습니다. 감히 필자는 교조 존명의 리에 대한 설명을 한 글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교조 존명의 리를 얼마만큼 이해하고 또 실천하는 데에 따라 이 길의 앞날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친필 제1059수는 온 세상 사람들이 진실로 어버이신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어버이신님의 마음은 즐거워진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진실로 가슴속을

알게 되면 월일은 즐거울 텐데

위 친필 말씀은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맑아져서 어버이신의 뜻을 참으로 깨닫게 된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텐데.(친필 해설)

라는 뜻입니다.

 

천리교교전6인도편에는 어버이신님께서는 온 세상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귀여워하고 있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차별 없는 간절한 어버이마음을 밝히시고, 인간이 제 자식을 귀여워하는 부모의 마음에 비추어 잘 생각하라고, 참으로 자상하게 가르치셨다.

무릇 부모로서 제 자식을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식의 앞길을 생각하기 때문에, 때로는 부득이 엄하게 타이르기도 한다. 이 간절한 부모의 마음을 깨닫게 되면, 엄한 중에서도 자애로우신 어버이신님의 정성을 느끼게 되어 고마움이 뼈에 사무치게 된다.

이에 비로소 고루한 마음은 열리고, 어버이신님의 따사로운 빛을 받아 마음은 소생한다. 그리하여 오로지 돈독하신 어버이마음에 따르려는 마음이 정해진다. 이렇게 해서 진실로 마음이 정해지면, 어버이신님께서는 곧 그 마음을 받아들여서, 어떠한 자유자재한 수호도 보여 주신다. 어버이신님께서는 그것을 고대하고 계시는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리교교전강좌에는 위의 기록에 대한 해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상과 사정은 인간의 잘못된 마음씨에 대한 어버이신님의 지적이며 경고인데, 그것은 단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어버이신님께서 구제를 위해 베푸시는 수호를 즐거운 마음으로 확인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여기서는, 이 점을 인간의 어버이의 정에 비기어 가르치신 것으로서, 이에 대한 신뢰가 확고할 때 비로소 인도·손질이란 의미가 명확해지며, 신앙의 즐거움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다.

신상과 사정은 어버이신님께서 구제해 주시려고 손을 이끄시는 인도라는 이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면, 어버이신님께 마음을 의지하고 빨리 신앙을 실천하게 될 것이며, 또 그래야만 보다 좋은 현실이 눈앞에 전개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신상이나 사정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부질없는 어리석은 짓으로서, 결코 그것으로 문제의 해결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버이신님을 찾고 그 가르침에 산다는 마음작정이다. 이것이 밝은 인생의 문을 여는 열쇠이며, 수호를 받는 바탕인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신상과 나쁜 사정으로 인하여 고생을 하다가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해결이 된 후,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여 주시고 또, 인간은 어버이신님의 귀여운 자녀로서 항상 따뜻한 수호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버이신님의 마음은 한없이 즐거운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자녀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과 같이 어버이신님께서도 자녀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입니다.

신자분들의 자녀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잘살게 되면, 회장님께서 많은 기원을 하여 주셨기 때문에 자식들이 잘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친필 제118수는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서 입으로만 아첨하는 것은 어버이신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아첨하는 것 쓸데없어

마음의 진실을 月日이 보고 있다

위 친필 말씀의 뜻은,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남을 구제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입으로만 어버이신님에게 아첨하는 것은 모두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친필해설 참조)

 

어버이신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남을 구제하는데 노력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입으로만 윗사람에게 비위를 맞추려고 하고 알랑거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친필 제339수는 입으로 아첨만 하는 것은 필요 없고, 정성만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아첨하는 것 쓸데없어

마음 가운데 정성만 있다면

위 친필 말씀은, 실제로 남을 구제하려는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구제하는 척하는 아첨은 받아주지 않지만, 반대로 말은 안 해도 행동은 남을 구제하는데 정성을 다하면 어버이신님께서 그 정성을 받아주신다는 뜻입니다.

 

친필 제12113수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거짓과 아첨을 계속하면 월일이 물러난다는 것입니다.

월일은 거짓과 아첨 이것 싫어

앞으로는 월일 물러난다

위 친필 말씀의 뜻은

어버이신은 거짓과 아첨이 매우 싫다. 이만큼 일러주는데도 앞으로 거짓과 아첨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어버이신의 수호는 끊기고 말 것이다.(친필 해설)

라는 뜻입니다.

 

1898420일 지도말씀입니다.

아첨은 흐려지는 토대이다. 흐린 가운데는 신이 있을 수 없다. 아첨은 소란의 근본이다. 스스로 자멸을 초래하는 거와 같은 것이다.

위 지도말씀은 윗사람의 마음을 흐려지게 하는 아첨은 조직 전체가 진실한 구제를 하려는 마음을 흐려지게 하므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기대할 수가 없어집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지 못하는 조직은 자연히 여러 곳에서 소란이 발생하게 되어있으며 소란이 진정되지 않고 계속되면 그 조직은 자연히 스스로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