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184년02월][162회]진실한 마음 3

2021.02.22 17:37

편집실 조회 수:77

진실한 마음 3

 

 

김위태 (칠암교회장)

 

다음은 고본천리교교조전6터전 결정편에 기록되어 있는 근행인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차츰차츰 6월이 되면

증거수호부를 줄 것이라 생각하라 4-5

라는 말씀에 따라, 얼마 후 본고장에 돌아온 증거로서 증거수호부(證據守護符)를 주시게 되었다. ‘온세상 마음 맑히는 감로대의 손짓은 이듬해인 1875년에 시작되었는데, 근행인원이 의도대로 갖추어지려면 아직도 요원한 일이긴 했으나, 이로써 구제근행의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가까워졌다.

……

어버이신님께서는 으뜸인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신상으로 표시를 하고, 또 붓으로 적어서 으뜸인 본고장에 근행인원으로 이끌어 들여, 그들을 가르쳐 구제한줄기의 근본 되는 길인 감로대근행의 완성을 서두르셨다.

고본 천리교교조전8어버이마음편에는 근행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질병이나 아픔이란 전혀 없다

신의 서두름 인도인 거야 2-7

서두르는 것도 무슨 까닭인가 하면

근행인원이 필요하므로 2-8

라고, 근행의 완성을 서두르기 위해 몸에 표시를 해서 근행인원을 이끌어 들인다고 깨우치셨다.

……

이 근행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세상을 안정시켜 구제할 뿐이다 4-93

이 길이 확실히 나타난다면

질병의 뿌리는 끊어져 버린다 4-94

라고 하시며, 근행은 이 세상 태초 이래 일찍이 없었던 세계 구제의 근본 되는 길이다. 근행인원은 빨리 손짓을 배워 익혀라. 근행만 확실히 행하게 되면 세계는 다스려지고, 질병의 뿌리도 끊어진다고 가르치셨다.

……

간단한 근행이라고는 생각 말라

36인의 인원이 필요해 10-26

그중에 악기 넣어서 19

신악근행의 인원이 필요하다 10-27

라고, 감로대를 둘러싸고 근행하는 인원이 열 사람, 악기는 아홉 사람이라고 각각 그 수를 알려 주시고, 손춤과 악인(樂人) 또는 학인(學人)까지 합하여, 근행인원은 75명이라고 가르치셨다.

……

이 근행인원이 어디에 있는지 너희들은 잘 모를 것이나, 어떠한 곳에 있더라도 어버이신은 자유자재로 이끌어 들인다. 차츰차츰 인원이 갖추어지면 마음의 진실을 살펴보고 역할을 정한다. 신악 열 사람을 비롯하여 악기 인원이 갖추어지게 되면 무슨 일이든지 안 될 일이 없다고, 근행의 완성을 위해 자유자재한 수호를 약속하셨다.

이상의 기록으로 인연이 있는 근행인원을 인도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시고 또, 근행인원을 진실한 마음으로 바꾸는데, 교조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전진주님께서 즐거운 삶에서 근행인원에 대하여 기록하신 내용입니다.

그리고, 신악근행의 성격이나 근행인원의 역할도 모두 인간 창조시의 리를 이어받는 것이므로, 이 근행에 대해 절대적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든 교조님께 의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근행????에는 물론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근행인원????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참배자입니다.

교조님께서는 먼저 이 열 사람의 근행인원을 모으는 데 애를 쓰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리를 일러주고 납득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셨으나, 결과는 교조님의 뜻하신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위 기록에서 열 사람의 근행인원은 태초 인간을 창조하실 때 십전의 수호와 관계가 되는 사람이므로 교조님께서 무척 노력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길의 많은 용재가 근행을 올릴 때 근행인원을 모으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근행인원을 모으시는 데 심혈을 기울이신 교조님을 생각하면서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모두 갖추어서 근행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친필 제740, 41, 42수는 어버이신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순산구제를 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여러가지 길을 걸어왔지만

순산구제의 징험은 처음이야

이번에는 순산구제의 진실을

어서 나타내려고 月日 서두르지만

모든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르는 일이므로

모두들 잠잠히 침울해 있다

위 친필 말씀은

지금까지 인간들은 갖가지 길을 걸어 왔으나, 이번에 즐거운근행을 통해 순산구제를 하는 것은 실로 이 세상 창조 이래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에는 순산구제의 수호를 빨리 나타내려고 어버이신은 서두르고 있으나, 모든 사람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일이므로 반신반의하며 주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친필 해설 참조)

)여기서 순산구제란,

순산허락을 통해 안산을 수호하는 구제로서, 순산허락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수월하게 출산할 수 있으며, 산후에도 여러가지 기()할 것, 기댈 것이 필요없이 곧 일어나서 평상시와 같이 활동할 수 있다. 또 순산허락은 이를 받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산기(産期)를 당기기도 늦추기도 하는, 자유자재한 수호를 할 수 있는 신기한 구제이다. 이 순산허락은 태초 인간창조시 어버이신님이 터전에서 인간을 잉태시킨 그 리에 따라 터전에서 내려 주며, 따라서 이것은 터전에서만 행할 수 있다.

는 뜻입니다.

 

고본 천리교교조전3행적편에는 순산허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54년 교조님 57세 때, 오하루가 초산을 하러 집터에 돌아와 있었다. 그때 교조님께서는

무엇이든 안에서부터 시험해 보일 거야.”

라고 말씀하시며 배에다 숨을 세 번 불고, 또 세 번을 쓰다듬어 주셨다. 이것이 순산허락(順産許諾)의 시초이다.

그해 115일 출산 당일, 큰 지진이 있어서 산실의 뒷벽이 한 평 남짓 무너졌는데도, 오하루는 마음 편히 아주 수월하게 아들을 낳았다. 사람들은 순산허락을 받고 나면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으니, 과연 고마운 일이라고 납득하게 되었다. 오하루가 24세 때로서, 태어난 아기는 장남 가메조(龜藏)였다.

그 다음 날, 집터에 찾아온 동네 사람 시미즈 소스케(淸水惣助)의 부인 유키는, 오하루가 아무 탈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신기한 수호라고 감탄하고는 저도 출산할 때 원하면 그와 같은 수호를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여쭈자, 교조님께서는

마찬가지야.”

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후, 유키는 임신하여 순산허락을 청했다. 교조님께서는 오하루에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세 번 숨을 불고, 세 번 배를 쓰다듬으시며

인간생각은 일체 필요 없다. 어버이신님께 의지하여 안심하고 낳도록.”

하고 깨우치셨다. 유키는 순산허락을 받았으나, 교조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기()할 것, 기댈 것 등 종래의 관습에 따르자, 산후의 열로 30일가량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래서 교조님께 여쭈어보니,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유키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과연 그렇구나.’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진심으로 참회했다.

교조님께서는 그 갓난아기를 맡아 돌보셨다. 유키는 곧 완쾌됐다.

이듬해 임신하자, 유키는 이번엔 절대 의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굳게 다짐하고, 다시 순산허락을 받았다. 그때는 교조님의 가르침을 잘 지켜서 오직 한마음으로 어버이신님께 의지한 결과, 신기하게도 쉽게 출산을 했고 산후도 그 회복이 아주 순조로웠다. 이전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동네 사람들 사이에 그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근처까지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교조님께서 어버이신님의 현신임을 아직도 모르면서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겨우 느끼기 시작했다.

이 길은 순산수호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일을 무엇이라 말하지 마라

장래에 한길이 나타나리라 3-36

지금 어떤 길을 걸어도 탄식하지 마라

장래 있을 본길을 낙으로 삼아라 3-37

그리하여 다시 수년간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시던 어느 날, 비로소 쌀 너 홉을 갖고 사례 참배를 하러 오는 사람이 생겼다. 이윽고 이전에 길을 터놓은 순산허락의 진기한 수호가 잇달아 나타나자, “쇼야시키 마을에는 순산 신님이 계신다지. () 신님인 모양이야.” 하는 소리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팔방으로 퍼져서, 초산을 앞두고 걱정하는 사람이나 산후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 그리고 미리부터 난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신기한 구제를 받으러 모여들 뿐만아니라, 중병을 앓는 사람들도 구제를 청하러 왔는데, 그럴 때면 교조님께서는 언제나 기꺼이 그에 응하셨다.

1862년 교조님 65세 때, 요청에 따라 친히 안도(安堵) 마을에 가셔서 산후병으로 위독한 환자를 구해 주셨다.

20 수년에 걸친 기나긴 행로를 걸으신 뒤에야 가까스로 어버이신님의 의도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위 기록의 뜻은 교조님께서 극빈에 빠져라하는 신님 말씀에 따라 많은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선하시고 난 후 20여 년 동안 극빈생활을 한 연후에야 이 길이 순산수호를 시작으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길의 사람들도 마음 작정하고 출직을 앞둔 사람을 구제해야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프랑스에는 유명한 나폴레옹 장군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장군 부대에는 전쟁을 잘하는 하사관이 있었습니다. 하도 전쟁을 잘하는 것을 보고 나폴레옹은 그 하사관에게 예쁜 여자와 좋은 집에서 살도록 하고 승진도 시켜주었습니다.

그 하사관은 예쁜 여자와 좋은 집에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하여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피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 모습을 보고 큰 실망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 길의 사람들도 잘되고 나면 어려운 고생을 피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