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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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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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란 무엇인가 11

 

 

김위태 (칠암교회장)

 

고설선집』 「으뜸 하나만 알게 되면에는 어렵고 복잡한 사정이 생겼을 때는 교조님이 걸으신 길을 토대로 해서 다스리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끝에서부터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 일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한 집안에 매우 어렵고 복잡한 사정이 발생했을 경우, 그 집안의 주인을 중심으로 다스려 나가면 해결될 것을 반대로 끝에서부터 뿌리 쪽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억지를 부리기 때문에 가정은 더욱더 복잡하게 얽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원이 되는 한 가지를 알게 되면 두세 가지는 반드시 알게 된다. 그만큼 근원이 소중한 것이다.

이 길에서는 교조님이 걸으신 길이 근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토대로 해서 마음을 다스려 나간다면 반드시 해결된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각자 자기의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다스려 나가려고 생떼를 쓰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일도 해결이 되지 않아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위 기록의 뜻은,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는 교조님께서 걸어오신 50년간의 모본을 토대로 해서 해결을 하려고 하면 해결이 되는데, 엉뚱하게 인간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하므로 해결을 못하고 고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본 천리교교조전』 「7장 마디에서 싹이 튼다에는 이 길의 실마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이 길을 시작하는 실마리로서 아무 부자유 없는 슈지의 몸에 표시를 보이신 것이다. 그 후 슈지는 어렵고 고생스러운 길을 걸었고, 또 언제나 반대 공격의 정면에 서서 갖은 고난과 고초를 다 겪었다. 교조님께서는 출직한 슈지의 이마를 쓰다듬으시며

가엾게도. 어서 돌아오너라.”

하고, 오랜 세월 동안의 고난에 대해 따뜻이 위로하셨다.

위 기록의 뜻은, 이 길의 실마리는 18381023일 밤 10시경 슈지님의 다리 질병이 재발되었으므로 치료를 위하여 재액 기도를 올린 것이 이 길의 실마리라는 것입니다.

실마리에 대한 선배 선생님들의 말씀입니다.

· 이 길의 용재나 신자들이 어려운 신상이나 나쁜 사정을 만났을 때, 신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만, 이 길의 순서를 무시하고 인간 생각으로 처리하면 해결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나쁜 사정이 더 생기면서 주변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 마음을 버리고 순서에 따라 처리하면 아무리 큰 어려움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면서 주변의 사람들도 만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가족 간에 어려운 문제로 갈등이 있어 고통을 받게 되면, 우선 계급 의식을 버리고 상대방을 손님같이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모든 것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 부부간의 갈등을 푸는 실마리는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합니다. 그 후 대화를 시작해야 하고, 대화가 되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좋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갈등은 자연히 풀립니다.

· 폭행이나 폭력으로 인하여 형사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고 합의가 되면 해결이 됩니다. 흔히 발생하는 사고입니다.

· 마음이 교만하고 탐욕이 많은 사람이 어려운 사정이 생기면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낮추어야 해결이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 아무리 어려운 사정을 만나도 상대방에게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용서를 빌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896421일 지도말씀은 진흙물 가운데서도 기어오르려고 하면 길이 트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진흙물 가운데서도 이쪽으로 기어오르고 저쪽으로 기어오르려고만 하면 어쨌든 길은 트인다. 이것은 안된다 하며 예 하라. 이밖에 기어 오르는 길은 없다. 이제 안심이 될 말을 해 두마.

위 지도말씀의 뜻은, 너희들의 마음에 이 길의 리가 없어진 다음에는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러나 비록 진흙 물에 빠졌다 하더라도 이쪽으로 기어오르고, 저쪽으로 기어오르는 노력을 한다면 아무튼 올라오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국이 이것도 안 된다고 하거든 하도록 하라. 이렇게 된 리를 자각한 다음에 다소곳이 따르는 것 이외에는 진흙 물속에서 기어오르는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자각으로 걷는다면 신이 지켜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지시해두마. (지도말씀연구 해설 참조)

위 지도말씀을 내린 배경은, 당국에서 189649일 내무성 훈령이 내린 데 대한 마음가짐을 여쭈어본 결과 내리신 지도말씀이며 해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길에 대한 탄압으로 헤어날 수 없는 진흙물 속에 있더라도 만 믿고 나아가면서 당국이 시키면 하고 따르면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무성 훈령의 내용은 근행을 제한하고, 포교 활동을 제한하고 또 신자들의 교회 출입을 제한하기 위하여 경찰관들이 엄한 감시를 계속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본 천리교교조전일화편』 「183 모진 바람은에는 탄압에 대처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아 자아, 모진 바람에 비유하여 이야기하마. 모진 바람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불지는 않아. 사납게 불 때는 가만히 움츠리고 있다가 잠잠해진 다음 가면 된다.

모진 바람을 거슬러 가면 넘어지거나 자빠질지도 모르니 가만히 있어. 또 잠잠해진 다음 슬슬 가면 못 갈 것은 없는 거야.”

라고 깨우쳐 주셨다.

위 기록의 내용은, 이 길에 대한 탄압이나 단속이 심할 때는 조용히 움츠리고 있다가 단속이 잠잠해지면 슬슬 나아가면 된다는 것이며, 탄압에 대하여 저항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조님의 철저한 무저항 정신을 모본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위 기록 중에서 진흙물이라는 용어가 있는 데, 쓰이는 경우에 따라서 뜻이 다름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천리교교전』 「3장 으뜸인 리에서 나오는 진흙바다는 맑은 갯벌이 모든 바다에 깔린 현상을 말하는 것이며, 신악가 제10장 넷에 나오는 진흙물은 사욕의 마음이 쌓여 있는 티끌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며, 1896421지도말씀에서 나오는 진흙물은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뻘과 물이 진창으로 되어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당국의 탄압이 극심한 상태를 비유해서 말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1896520일 지도말씀은 큰길에서는 다치지만, 좁은 길에서는 다치지 않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아 자아, 또 하나 이야기해 둔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깨우쳐 두었다. 큰길에서 다치지 마라, 다치지 말라고 깨우쳐 두었다. 좁은 길에서는 다치지 않는다.

위 지도말씀의 뜻은, 자아자아 또 한마디 해 두겠다. 지금까지도 온갖 사정에 대해 깨우쳐 왔지만, “큰길에서 다치지 마라.”고도 깨우치셨다. 사실 좁은 길을 지날 때는 마음이 긴장되므로 다치지 않지만, 큰길에 나서면 자칫 마음이 풀어지고 자만에 빠져, 되려 다치기 쉬운 것이다. (지도말씀연구 해설 참조)

위 해설에서 큰길이라는 것은 국가적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이 길에 대한 탄압이 없고, 또 교회는 몇 년 또는 몇십 년 동안 교회장과 역원들의 노력으로 많은 사람을 구제한 결과 신자들도 많아지게 됩니다. 또 교회 신전도 바라는 대로 완공되고,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이라는 것은 국가적 또는 사회적 차원에서 이 길의 탄압이 극심하여 신자들이 떠나가게 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때도 있고, 오로지 신님의 가르침에 따라 신상과 나쁜 사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으로 단독포교를 하는 포교사들이 걸어가는 길도 좁은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친필 제334수는 지금 큰길을 걷고 있어도 장래 좁은 길은 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아무리 큰길을 걷고 있어도

장래 있을 좁은 길 보지 못하니

위 친필 말씀의 뜻은, 누구든지 처음부터 편안한 길을 걷고 싶어 하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고생의 길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친필 해설 참조)

사람들이 조금만 잘 나가게 되면 아랫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은 신이 되면서 사치와 낭비 등 엉뚱한 일에 빠지면 어버이신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큰길에서는 다치기 쉽다고 하였습니다.

친필 제149수는 좁은 길을 고생하면서 지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큰 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좁은 길을 차츰차츰 넘어가면 큰길이야

이것이 확실한 본길이니라

위 친필 말씀의 뜻은, 이 좁은 길을 차츰차츰 지나가면 마침내 큰길이 나온다. 이처럼 온갖 어려운 길을 지나서 나타나는 큰길이야말로 참으로 틀림없는 한길이라는 뜻입니다. (친필 해설 참조)

위 해설의 뜻은, 이 길의 용재들이 오로지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수호만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다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는 큰길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8961010일 지도말씀은 뿌리가 나쁜 쪽의 가지는 시들고, 뿌리가 좋은 쪽의 가지는 무성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나쁜 쪽의 가지는 시든다 시든다. 뿌리가 좋은 쪽의 가지는 무성하다. 이것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이것 분간하게 되면 전의 이야기. 이만큼 깨우치면 알겠지.

위 지도말씀의 뜻은, 뿌리가 약한 쪽의 가지는 일찍 마르고 한편 뿌리가 튼튼한 쪽의 가지는 무성해진다. 이것은 별것 아닌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그 가운데 담겨 있는 깊은 리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분간할 줄 알면 앞서부터 말해온 것도 알아들을 것이다. 이만큼 말하면 전반에 걸쳐 마음에 짚이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지도말씀연구 해설 참조)

위 해설을 간단히 설명하면, 뿌리가 강해야 가지와 잎이 무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마음의 근본인 정성이 강해야 발전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근본인 출발점은 사람의 머리입니다. 사람의 몸도 뇌 신경이 뇌경색이나 뇌출혈로 신경세포가 손상되면 뇌 신경에 따라 몸도 마비되는 것입니다.

만약 오른쪽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되면 몸의 딱 절반인 왼쪽이 마비되고, 왼쪽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되면 몸의 딱 절반인 오른쪽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나무에 비교하면 뿌리는 머리에 해당하고, 나무의 몸통과 가지 그리고 잎은 사람의 머리를 제외한 몸통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 생기는 질병의 원인은 머리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머리의 상태가 나빠지는 원인은 사람의 마음이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친필 제543수는 나무는 뿌리가 가장 소중하다는 내용입니다.

근본되는 것은 작은 듯하나 뿌리가 소중해

무슨 일이든 근본을 알라

위 친필 말씀은, 나무뿌리는 그 가지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듯해도 나무에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것이듯, 지엽적인 일을 밝히려면 먼저 그 뿌리가 되는 근본을 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친필 해설 참조)

위 해설에서 그 뿌리가 되는 근본을 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사람에 비교하면 뿌리가 되는 근본은 머리에서 생기는 마음의 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