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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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년01월]순대국밥 - 김혜원

2015.01.06 21:21

편집실 조회 수:113

(2014 칠곡 역사문화 스토리텔링 전국 공모전 수상작)

 

순대국밥

 

김혜원(진주삼현여중 3, 도성포교소)

 

, 돈 줄 테니깐 가서 맛있는 것 좀 사와 봐.”

오빠의 심부름에 질릴 대로 질렸지만 오빠에게 대들었다가는 내 비밀이 탄로 나게 될 테니 참아야지.

라면을 먹고 있던 오빠가 불룩한 배를 더 과시하는 듯이 손으로 그 축구공만한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자기 손가락이 이쑤시개인 냥 이빨을 쑤시고 있으니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모습이다. 이 모습을 오빠가 짝사랑하는 이현이 언니에게 보여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오빠의 귀는 토끼보다 좋으니깐 나 혼자 오빠에 대한 불만을 작게 중얼거리며 나오는데 마당에 있는 커다란 강화유리 문을 통해서 나를 보고 있는 오빠 때문에 결국은 오빠 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집 밖을 빠져 나왔다.

오빠가 말하는 맛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반대편 골목에서 만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유지야.”

어찌나 목소리가 컸던지 지나가던 차가 멈출 지경이었다. 나는 오빠가 심부름 시키면서 줬던 돈을 움켜지며 만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목소리도 큰 게 눈은 어찌나 좋던지 만지는 내 손에 쥔 돈을 바로 발견하고는 아직도 파란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신호등을 무시한 채 나에게로 달려왔다. 덕분에 도로를 시원하게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가 욕을 내뱉으면서 갔지만.

만지가 헐레벌떡 뛰어온 사이에 만지 입 속에서 나와야 할 거친 숨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나에게로 달려오자마자 그 돈(오빠가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줬던 돈.)이 어디서 났냐며 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 큰 목소리를 어느 정도 작게 듣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오빠의 심부름 때문이라고 겨우 말했다.

가쓰나, 또 오빠가. 서울에서 온 기지배들은 다 머슴 말 듣고 사나보네.”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칠곡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다. 아직 학교도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지도 않은 판에 친구까지 없으니 우울증에 걸릴 뻔 했다. 게다가 사투리도 못하니 어찌 이 지역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참에 먼저 다가와 준 것은 만지였다. 만지는 성격도 싹싹하고 우리 바로 옆집에 살아서 친해질 수 있었다.

만지와 친해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에게는 비밀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순대국밥이었다.

오빠는 중학생이었지만 정신연령은 나와 비슷했다. 그래서 자주 싸웠고 말도 편하게 했었다. 하지만 말을 편하게 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순대국밥이었다.

서울에 살았었을 때도 그랬지만 여자 아이들이 순대국밥을 먹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 돼지 창자 속에 잡채 같은 것을 쑤셔서 만든 것을 쪄서 먹다니. 나도 처음에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 징그러운 것을 누가 먹냐고 기겁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깐.

그런데 칠곡에 와서 입장이 바뀌어 버렸다. 그 순대국밥을 내가 먹게 되었으니깐. 엄마가 칠곡은 순대국밥이 유명하다며 순대국밥 집으로 가족과 같이 가게 되었다. 당연히 나는 먹는 것을 꺼려했고 오빠는 빨리 먹고 싶다며 안달이였다. 오빠가 기다리던 순대국밥이 나오기 전에 오빠는 볼 일을 봐야 한다며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 갔다. 오빠가 없는 사이에 순대국밥 4인분이 우리 가족 식탁 위에 올려졌다.

엄마는 내가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자 억지로 하나를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입 안에 퍼지는 그 순대와 밥, 그리고 곰국. 무슨 음식 탐구 티비 프로그램도 아니었지만 그 맛을 평가하라고 하면 기꺼이 맛있다고 평가해주리라. 오빠는 얼마나 큰 볼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내가 순대국밥을 다 먹어갈 지경에 이르자 오빠가 나를 보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나에게는 아직 친구라고는 싹싹한 성격의 소유자인 만지 뿐 이였으니깐. 그런데 일은 또 터져버렸다.

만지 집에 놀러갔을 때 만지의 오빠가 얼마나 잘생긴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만지의 오빠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만지의 집에 가니 그것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며 어찌나 친절한지 만지의 오빠와 내 오빠를 바꾸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지의 오빠도 나처럼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장이 칠곡으로 옮겨지게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만지가 태어났고.

나는 만지 오빠의 자태를 바라보며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초면 이였던 그 순간이 나중에는 내가 그 오빠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만지 오빠는 우리 오빠와 친해지게 되자 오빠는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그 정신연령으로 내가 만지 오빠를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순대국밥을 먹은 것을 만지 오빠에게 말할 거라며 나를 놀리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화를 냈었지만 오빠가 나의 약점을 알게 되니 그 이후로는 자신이 귀찮은 일은 몽땅 나에게 시켰다. 나는 항상 오빠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왔다. 그리고 어느 날, 또 어김없이 심부름을 가던 도중에 만지를 만나게 되었다.

, 너거 오빠가 뭐 사와라 카던데?”

그냥 맛있는 거 사와라고 하더라.”

맛난 거? 그럼 우리 순대국밥 먹으러 가자. 니 그거 억수로 좋아하지 않나?”

너희 오빠는 어디 있어?”

친구들이랑 축구하러 가삤다.”

그럼 너희 오빠 절대로 순대국밥 집 안 오지?”

절대 안 온다. 걱정마라.”

근데 난 오빠 심부름을…….”

, , 가쓰나야, 맛난 거 산다고 돈 다 써삤다고 말하면 되지.”

나는 만지의 설득(?)에 이끌려 결국은 순대국밥 집으로 발을 옮겼다. 그래, 순대국밥 사 먹고 남은 돈으로 맛있는 것 사서 오빠한테 주면 되지.

칠곡에 왔을 때와 같은 그 순대국밥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역시 유명한 집이라 그런가.

이모, 여기 순대국밥 3그릇 주이소.”

나는 만지가 3그릇을 산다고 해서 놀랐다. 만지가 어떻게 2그릇을 다 먹지?

, 너 혼자 어떻게 2그릇을 먹어?”

아이고, 서울에서 온 그 좋은 머리는 어데서 갖다 쓰노? 너거 오빠가 맛난 거 먹고 싶다메. 하나는 오빠 끼다.”

만지가 웃으면서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나는 그제야 , 그렇구나.’라고 깨닫고는 순대국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순대국밥이 우리 앞에 있는 식탁에 올려지자 나는 입에 고이던 침을 꿀꺽 삼키고 순대국밥의 맛을 느끼며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흡입했다. 정말 맛있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더욱 그랬다. 아마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게 해주신 엄마께 감사라도 표해야 할 것이다.

순대국밥을 다 먹고 마지막 남은 하나는 주인아주머니께서 비닐봉지에 싸주셨다. 그냥 검은 비닐봉지에 싼 것뿐인데 정말 먹음직스럽게 짤 싸신 것 같다. 그런데 만지가 침을 꼴깍 삼키더니 내 왼손에 쥐어 있던 순대국밥이 싸여 있는 비닐봉지를 계속 눈여겨보았다.

장유지, 우리 이거 먹을래?”

, 언제는 우리 오빠 줄 거라고 싼 거라며.”

괘않다. 걍 묵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너거 오빠 기억력 억수로 나쁘다메.”

, 그럴까?”

나도 먹었던 순대국밥이 벌써 소화가 다 되었던 것인지 또 먹고 싶었던 참이었다. 우리는 다시 순대국밥 집에 들어가 순대국밥을 꽁꽁 쌌던 비닐봉지를 풀고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집에 돌아가니 심부름은 만지 말대로 오빠가 잊은 것이 아니라 내가 잊은 것 같았다. 처음부터 오빠는 내 이름 대신 를 부르며 심부름 시킨 것은 어디 있냐며 트집을 잡았다.

, 맛있는 거.”

맛있는 거? , 심부름…….”

설마 까먹었냐?”

…….”

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제 만지오빠는 그 징그럽지만 맛좋은 음식을 먹었다고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우리 오빠는 만지 오빠한테 모든 것을 말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거지처럼 순대국밥을 먹어 치웠는지 모두 다. 아니, 어쩌면 만지가 다 말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찌나 순대국밥을 좋아하는지 우리 오빠가 시킨 심부름도 다 먹어치웠으니깐. 그러면 만지 오빠는 나를 싫어하고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다 하고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엎드렸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울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방 밖에서 오빠가 전화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을 여닫는 소리까지 들리고는 잠잠해졌다. 한동안 엎드려 있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조용하다는 것은 오빠가 없다는 것이다. 오빠가 만지 오빠에게 내 비밀을 털어놓기 위해 가는 것 일까? 망연자실하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만지네 집으로 달려갔다. 내 생각이 맞았다. 만지네 집 앞에서 오빠는 만지 오빠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은 것 같았다. 자포자기한 듯이 나는 만지네 집 쪽으로 걸어갔다. 만지 오빠가 나를 보았는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에는 나를 비웃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오빠는, 우리 오빠는 그 비밀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내가 순대국밥을 먹었던 것을. 오빠는 만지 오빠에게 오빠의 영원한 짝사랑이 될 이현이 언니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방금 집에서 울 것 같은 기분으로 엎드려 있었던 것도, 엎드리면서 쓸데없는 걱정거리들로 가득한 잡생각만 한 것도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그리고 오빠가 나에게 시키는 심부름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았고. 지금 생각해보니 순대국밥을 비밀로 한다는 것도 우스웠다. 순대국밥은 순대 알레르기가 있거나 정말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 못 먹는 것이지 대부분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먹는다. 나는 괜히 순대가 돼지 창자로 만들어서 그것을 흉측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번데기를 먹는 것을 본 외국 사람들처럼. 별 것도 아닌데 나는 속으로 호들갑을 떤 것이다.

칠곡으로 전학을 온 이후로 그 비밀도 아닌 비밀을 지키기 위해 오빠의 심부름을 모두 떠맡아서 한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나는 걸어갔다. 그리고 오빠 앞에 섰다. 아주 당당하게.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보다 오빠에게 더 비밀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장유지. 심부름도 안 한 게 막 돌아다닐 용기는 나냐?”

상관없어. 더 이상 오빠한테는 볼 일 없거든.”

그럼 얘한테 다 말해?”

오빠가 말하는 란 만수 오빠를 말한다. 나는 당당했다. 나는 만지 오빠한테 뭐든지 말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순대국밥 먹은 게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유지야, 순대국밥에 뭐 문제 있었나?”

만지 오빠가 건넨 한 마디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순대국밥을 나 같은 여자가 먹어도 상관없었구나.

아니에요. 별 문제 없었어요.”

나는 우리 오빠에게로 미소를 보냈다. 오빠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했던가. 나도 오빠의 약점을 건드렸다.

만지 오빠, 이현이 언니 많이 예뻐요?”

, 마이 이쁘다. ? 너거 오빠가 마이 말하나?”

. 많이요.”

오빠는 오빠가 나의 비밀 아닌 비밀 이였던 순대국밥을 움켜쥐었던 것처럼 나도 이제는 오빠의 영원한 짝사랑이 될(나는 이현이 언니가 훨씬 아깝다고 본다.)이현이 언니를 손에 쥐게 되었다.

결국 순대국밥 사건(?)은 막을 내리고 몇 주일 또는 몇 달 동안은 이현이 언니를 이용해서(이현이 언니, 미안해.) 여태까지 있었던 나의 고비를 반대로 오빠에게 모두 돌려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순대국밥 집을 다닌다. 만지와 만지 오빠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