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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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114

 

당신은 남이 행복해지는 데 무엇을 도왔습니까? 2

 

박지수

 

되돌아보면, 30살 한창 혈기왕성한 시기에 포교를 시작하여 어느새 24년이 흘렀다.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다. 둘러보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 용재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이 길의 상황은 나아지질 않았다. 점점 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추락선상에 있었다. 자꾸만 교세는 줄어들고, 인지도는 떨어지고, 활력도 사라져갔다.

흔히 이 길의 신앙자들이 가르침은 좋지만...” 하고 뒷말을 흐린다. 차마 뱉지 못하는 뒷말을 이어보면 참으로 간담이 서늘해지는 뼈 아픈 소리가 많다.

 

무엇이 문제일까? 다들 그렇게 노력해 왔는데도 왜 나아지질 않는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길 속에서 청춘을 쏟아 넣고 20년 넘게 보낸 내게는 이 길의 상황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곧바로 내 일이지 않은가!

세계구제라는 거대한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교 구제를 마치 개인 차원의 일로 치부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포교 문화를 만들어내지를 못했다. 이 길의 중심 가르침인 서로돕기와 즐거운 삶도 겹겹으로 둘러싸인 굴레로 막혀버렸다. 이길 전체 분위기가 고정 마인드 셋으로 무장되어 있고, 으뜸인 리가 말하는 성장 마인드 셋으로 결코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다. 함께 하는 파트너십도 희미하다.

 

그러나 이 길의 가르침에는 MS가 말하는 성장 마인드 셋과 파트너십이 이미 곳곳에 교리로써 바탕을 이루고 있다. 가장 핵심 교리인 으뜸인 리에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성장 마인드 셋과 파트너십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 문제는 가르침은 있되 지켜 행하지 않는 것에 있다 하겠다.

 

어버이신님께서는 매우 준엄하게 일깨워주고 계신다. 아무리 가르침이 좋다고 한들 지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조님께서 말씀으로, 지도말씀으로 지켜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래와 같이 미리 말씀해놓고 계신다.

 

신앙하는 사람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반대하는 것과 같은 것. (1896. 4. 21)

 

그래서 각한 각한으로 알려 주면 각한을 지켜 행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켜 행해도 아직 모자란다. 하물며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아예 없는 것과 같은 것. 모두 잘 분간해 들어다오. (1898. 5. 9 )

 

신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지키지 않기 때문에 수호를 받을수가 없는 거야. 신님의 말씀을 지키기 때문에 몸이 지켜지는 거야. 마음의 지킴이 몸을 지키는 것이 된다. 신님의 말씀은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행하지 않으면 안돼. 지키기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다.-- 중략 --

지킨다는 것은 사람의 진실인 거야. 진실한 마음으로 나날을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진실이라면 신님은 지켜 주신다. 신님이 지켜주시면 언제나 안심인 거야. 무엇이든 지키려는 마음이 되어 다오. 신님은 꼭 지켜주신다. (교조님말씀 76, 1873. 11.21)

 

우리들은 너무나 훌륭하고 최고급인 재료들을 가지고, 공짜로 줘도 마다할 형편없는 요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최고급 재료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구나 인정하는 이렇게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사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교조님 말씀, 지도말씀에 보듯이 그냥 지켜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가르침에다 자기 생각, 인간생각을 더하는, 즉 계산을 한다는 것이리라.

우리에게는 자녀 귀여운 어버이 마음에서 남겨주신 가르침들이 차고 넘친다. ‘모본의 길이라는 몸으로 보여주신 길이 있고, ‘3원전이라는 글로 남겨주신 가르침도 있다. 따라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자료가 없어서, 가르침이 없어서 따라 못한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실천하려는 의지, 실행력이 없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가르침대로 따르면 되고, 그것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오직 그 길밖에 없는 외통수 상황으로 우리는 몰리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그것은 더한층 가중되었다. 이제 정말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할 시기이다. 어쩌면 신님은 너무나 말을 안 듣는 자녀들에게 엄한 매를 드는 부모의 심정으로 코로나를 주시고 실천하라고 내몰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어버이신님께서는 코로나19를 통해 다음과 같이 물으시는 것 같다.

남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도왔는가? 이웃을 위해 무엇을 도왔는가?

다른 포교소나 교회의 성장을 위해 어떻게 도왔는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