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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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113

 

오히려 축복이 된 치매

 

박지수

 

함께 모시고 사는 친정엄마는 치매 4등급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두 분이 치매 5등급을 받으셨고, 요양보호사가 집에 와서 두어 시간씩 돌봐 드리곤 했다. 물론 우리(자녀들)도 자주 찾아 가 뵙기도 하고 당번을 정해서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니 엄마한테 우울증이 급속히 찾아왔다.

우리 형제는 자라면서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집에서 부모가 싸워서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그렇게 자녀들 앞에서는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하신 적이 없을 정도로 금슬이 좋으셨다. 물론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싸울 일이 있으면 나가서 동네 둑길에서 싸우셨단다. 그 시절에 놀랍게도 지혜로운 행동이셨다.

아버지는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이셨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신 듯하다. 그 충격으로 엄마는 아예 말이 없어지고 무표정에 무반응, 그리고 매사에 무기력해지셨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아버지 출직을 계기로 더 급속히 진행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울증이 심해지신 엄마가 혼자 친정집에서 지내는 게 불가능해지셨다. 처음에는 큰 언니가 모시고 있었다. 거기서 노인주간보호센터인 일명 노치원에 다니셨다. 사정이 생겨 8개월 뒤에는 장남 집으로 옮기셨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다. 엄마는 천리교 신앙하여 폐결핵 신상을 수호받았고, 이어 아들을 낳고자 하는 소원을 100일 기도로 공들여 수호받았다. 그렇게 귀하게 얻은 아들 집에서 28개월을 지내셨다. 큰언니와 남동생은 같은 지역에 살아서 똑같은 주간보호센터 즉, 노치원에 다니셨다.

그러다가 장손인 손자가 다리 고관절 수술을 하게 되었다. 큰 수술인 만큼 올케가 아들을 데리고 입원해서 간병하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입원한 일주일 동안, 엄마와 유치원 다니는 어린 조카를 돌보기 위해 내가 남동생 집에 갔다. 퇴원 후, 올케는 어린 딸과 수술을 받아 깁스를 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12살 아들 재활 수발만으로 벅차게 되었다.

24녀 중 둘째 딸인 작은 언니는 시어머니도 계시고, 식당을 하고 있어서 모실 입장이 안 되고, 막내딸은 서울에서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었고, 막내아들도 부부 맞벌이라 모실 입장이 아니었다.

해서 자연스레 조카가 퇴원해 오던 날, 엄마를 모시고 저산으로 오게 되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셋째인 내 차지가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형제들이나 엄마는 우리 집에 오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이 연로하신 노년에는 우리가 모시려고 오래전부터 둘이 뜻을 모아 마음먹고 있었다. 시어머니도, 친정 부모님도 모실 수 있다면 노년에는 우리가 모시려고 했다. 셋째 딸인 내가 친정 부모를 모실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부모님의 노년이 편안하도록 내가 모시고 싶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순간, 부모님을 모실 기회가 우리에게 왔다는 게 감사했다.

그렇게 소원을 이뤄 친정엄마를 모신 지 이제 2년이 다 되었다.

작은 언니가 얼마 전에 말했다,

엄마가 치매가 오기 전에는 결혼한 딸 집에서 하룻밤도 주무신 적이 없다. 예의를 얼마나 차리는지, 하룻밤도 안 잤다. 잠깐 왔다 가셨지.” 했다.

그래? 그랬구나.” 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런 일은 몰랐지만 가까운 언니집에 오셔도 볼일만 보고 가셨다는 것이다.

엄마가 정상이라면 딸인 너희 집에 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을 거야. 엄마가 치매라서 그런 예의, 체면치레가 없어져서 가실 수 있게 된 거니 치매가 다행이다. 아니면 혼자 집에 계셔야 할 거 아냐. 그건 정말로 큰일이지.”

 

그래서인지 아직도 엄마는 남의 집이나 낯선 곳에서는 함부로 눕지 않으시고,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앉아 계신다. 얼마 전에 엄마를 모시고 지인의 별장에 함께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엄마는 거기서 TV 앞 소파에 몇 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 계셨다. 긴 소파에 편안하게 좀 누우시라고 아무리 권해도, 모두가 밖에서 논다고 곁에 사람이 없어도 그렇게 앉아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엄마가 조신하게 예의를 지키시는 그런 태도가 몸에 붙으셨네.’ 싶었다. 주간보호센터에 가셔도 몸이 아파도 침대에 눕지 않고 앉아 계신다고 한다.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모습인 모양이다. 그런 엄마 모습이 나는 오히려 좋아 보였다. 치매이긴 하지만, 자신을 제어하여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누가 봐도 좋아 보이지 않은가.

 

엄마의 성격은 냉정한 편이다. 대신 아버지는 다정다감하셔서 우리 형제는 모두 아버지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자녀들한테 한없는 사랑을 베푸셨다. 때때로 자녀들이 잘못이 있거나 나무랄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떠넘기고 말이다. 엄마 처지에서 보면 자식들한테 마냥 좋기만 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혼내고, 가르치고 해야 하니 그렇게 좀 냉정한 성격이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엄마가 어느 날 아버지께 항변하는 소리를 들었다. “항상 자기만 좋은 소리 듣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 나는 잔소리를 하고, 혼내는 나쁜 엄마가 되게 하고...” 그런 것을 보면 아버지가 엄마한테 악역을 떠맡긴 모양이다. 인자한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가 보통 집안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반대로 자상한 아버지와 엄격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치매를 앓고 나서 많이 바뀌었다. 자식들한테 평생 해 보지 않았던 사랑한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맛있는 거 사줘하는 말씀을 곧잘 하신다. 냉정하던 성격이 다정하게 바뀌었다. 자식들이 우리 엄마 맞나?’ 싶을 정도로 다정하게 변했고, 만나면 안아주기도 하신다. 농담도 곧잘 하시며 웃기신다. 예전의 엄마를 생각해 보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많이 변하셨다.

자라면서 엄마한테 듣지 못했던 다정한 말들을 이제라도 듣게 되니 평생 가슴속에 있던 서운함이나 아픔이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가 치매여서 오히려 더욱 가족들이 화목하게 된 지금을 다행스럽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도 한동안은 수훈을 조석으로 받으시고, 신님 품속에 계셔서 좋아지셨네. 수호구나. 참 감사하다.’ 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다 보니 엄마는 모시기 편한 치매구나, 착하고 순한 이쁜 치매구나. 참 다행이다.’ 하며 당연하고, 예사롭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지난 5월 중순, 효도이벤트를 한다고 큰 언니 집에 엄마를 12일로 모셔다드린 날 밤에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는 다른 일이 있어서 밤에 휴대폰을 꺼놓고 있다가 아침에 켰더니 한밤중에 엄마가 사라지셨단다. 가족들과 놀다가 밤늦게 잠자리에 드셨다는데 그사이 엄마가 사라진 것이다.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나서, 한참을 찾아 헤매었다가 새벽 3시에 겨우 찾았단다. 큰 언니네 아파트가 18층인데, 한밤중에 지하주차장까지 엄마가 어떻게 내려가신 것인지, 생전 처음 가 본 낯선 지하주차장에서 얼마나 헤매며 불안에 떨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는 그렇게 약 두어 시간 정도를 놀라고 무서워 떨면서 헤매었던 모양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엄마는 치매 이후 몇 년 동안 연락처, 이름이 새겨진 은목걸이를 하고 계셨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오시고 나서는 주간보호센터 가는 것 외는 밖에 아예 나가시지 않으니, 목걸이가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목걸이를 귀찮아하셔서 빼놓았다. 그렇게 신원을 알 수 있는 목걸이조차 없었는데 엄마를 잃어버렸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엄마가 단순히 모시기 편한 치매여서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시는 게 아니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보다는 우리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전도를 빠지지 않고 신님 일에 정성을 기울이며 지내는 것을 보시고, ‘신님께서 특별히 수호해 주신 모습이었구나하는 자각이 일어났다. 그렇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또한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깊이 느끼며 감사드렸다.

 

엄마가 치매에 걸린 후 엄마와 가족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치매를 앓게 된 것이 오히려 특별한 신님의 수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모·자식 간에 쌓인 서운함을 풀고, 못다 나눈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고 나누라. 그래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라는 신님의 큰 뜻이 숨어 있는 선물 같다. 평생 수고하신 엄마한테 마지막으로 행복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이 치매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