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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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110

 

 

엄마와 행복하기 6

 

 

박지수

 

어느 날 아침, 센터에 가시는 엄마를 챙기기 위해 갔더니 얼굴에 상처가 나 있다.

손으로 긁어서 생긴 상처다. 한 군데 상처가 난 것을 보고 조금 마음이 쓰였지만 괜찮겠지하며 그냥 넘겼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세 군데 빨갛게 피가 나 있다. 순간, ‘이건 우울증 증세인데?’ 싶어 간이 철렁했다. 그래서 노치원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배차 오신 선생님한테도 엄마가 센터에서 잘 지내시는지 물어보았다. “요즘은 예전보다 침울해지셨어요.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도 잘 안 하시고, 가만히 보고만 계세요.” ‘걱정하던 그대로네. 정말, 우울증이 도지는 것 같아. 그래, 지금 상황을 보면 당연한 일이야. 내 잘못이구나.’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한다.

 

3월부터 새로 시작한 일들

3월부터 요청이 들어와서 인터넷 화상으로 새벽 시간에 요가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는 지난 2월 하순부터 수정이가 같이 지내고 있다. 수정이는 조용한 곳에서 인터넷으로 공부하면서 체중조절과 식습관을 바꾸고, 생활을 바로잡고, 건강을 위해 단식과 요가를 하려고 이곳으로 왔다. 그런 수정이를 위해 저녁마다 요가를 가르치던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열기로 하여 새벽뿐만 아니라 밤 9시에도 인터넷 줌으로 요가 수업을 하게 되었다.

요가를 가르쳤던 8년의 경험으로 다시 시작하려니 그동안 잊었던 것들을 다시 찾아 공부해야 했다. 물론 요가 수업을 쉬었던 지난 6~7년 사이에 드문드문 있었던 단식 수련이나 다른 수련이 있을 때 요가를 가르쳤고, 새벽에 일어날 때도 늘 혼자 요가를 해 왔다. 그러나 혼자 요가 하는 거야 내 맘대로, 내가 좋아하는 자세들 위주로 하면 되지만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가르쳐야 하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더구나 요청해온 요가 수업 시간은 새벽 5시다. 5시에 수업을 하려면 4시쯤 일어나서 챙기고 준비해야 한다. 잠이 부족하고 피로가 쌓이게 된다. 그래, 두 달만 해달라니 두 달만 어찌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 것인지 요청받은 요가 수업이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 설렜다.

그런 데다 3월 중순부터 퍼실리테이터 육성강습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퍼실리테이터 육성강습회는 교단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데 매주 수요일 밤 두 시간 수업이다. 2월부터 강습회를 했다는데, 늦게 알아서 신청하지 못했다. 나중에 배려해 줘서 참가자가 아니라 손님으로 들어가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이들은 다 아는 것들을 나는 몰랐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비해 나이도 있는 데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여러 기법을 배우고 따라가려니 한참을 노력해야 했다.

 

엄마의 우울증이 도지다

그렇게 갑자기 2, 3월에 걸쳐 새로운 일 4가지가 생겨나서 새벽부터 밤까지 엄청나게 바빠졌다.

요가 수업이 새벽과 밤, 수정이 단식 지도하기, 퍼실리테이터 육성강습회로 인해 정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매일 하는 일 중 줄일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결국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인 저녁 시간이 거의 사라졌다. 매일 서너 시간씩 엄마와 함께 보내던 시간이 겨우 30분 정도로 팍 줄었다. 밤 시간에 강습회에 참가하고, 요가 수업을 해야 하고, 그 준비도 해야 하니까.

엄마가 신경이 쓰였지만 없는 시간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해서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수정이한테 하루 30분이라도 할머니랑 같이 좀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 부족분을 그렇게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 수정이가 있어서 더 바빠진 것도 사실이니 나를 도와달라고 한 셈이다. 그렇게 수정이가 틈틈이 할머니랑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안심하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얼굴을 긁어서 여러 군데 피를 낸 것이다.

엄마가 여기 오시기 전에도 계속 그런 증세를 보였다. 늘 얼굴이나 손, , , 다리나 몸에 긁어서 피를 내었다. 온몸 군데군데 거뭇거뭇한 흔적들, 상처들이 있었다. 그것이 우울증 증세라고 하면서 병원에서는 우울증약을 처방해 줘서 계속 드셨다. 그 우울증약을 여기 오신지 6개월 만에 끊었고 1년 넘게 잘 지내셨다. 그런데 그 증세가 다시 도진 것이다. 앞이 캄캄하면서 엄마한테 죄송하고 속상했다.

 

대신할 수 없는 일

나중에 알아보니 치매 환자들에게 중요한 사람은 자신과 교감하고 애착을 가진 한 사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즉 수정이가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정이가 할머니랑 지내면 좋지만, 그것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단다. 손녀는 같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평소에 친밀하게 교감하는 한 사람인 내가 함께 있는 시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수정이가 나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남편과 이 문제를 의논하여 양해를 구하고 해결책을 찾았다.

남편과 수정이는 저녁 식사를 엄마가 돌아오시는 5시쯤에 먹는데, 그것을 남편과 수정이가 알아서 해결하기도 한 것이다. 요즘 나는 아침은 간단한 과일채소식단으로 하고, 점심만 제대로 먹고 있다. 이렇게 거의 1식을 하기에 그 시간에 먹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해서 찾은 해결책이 첫째, 엄마가 돌아오시는 시간부터 저녁근행 시간 직전까지 한 시간 반을 무조건 엄마랑 함께 시간을 보낸다. 둘째, 요가가 끝나고 잠자기 전에도 엄마 방에 들러 30분쯤 함께 지낸다.’이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 이벤트

한편, 엄마를 더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뭔가 조금 더 이벤트가 필요했다. 해서 형제들한테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형제들의 양해를 얻어 제일 먼저, 엄마를 작은언니한테 모시고 갔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 드렸다. 그사이 우리는 시간을 얻어 결혼식장에 다녀왔다. 두 번째로 그날 오후 늦게 큰언니한테 모시고 갔다. 거기서 1박 하시게 하고 우리는 통영 집으로 갔다. 마침 큰언니 집 근처에는 얼마 전에 삼촌 내외분이 이사를 오셨다. 엄마는 몇 년 만에 만나는 시동생 삼촌과 숙모와 옛날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지내셨다. 그리고 큰언니 집으로 밤 시간에 장남 식구들이 찾아가 함께 보냈다. 장남 식구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이다.

다음날에는 큰언니 부부와 삼촌 내외분과 온천에도 함께 다녀오시고, 외식도 하셨다. 그 이후에 엄마를 모시러 우리가 큰언니 집으로 갔다. 엄마는 많이 즐거워 보이셨다. 그리고 통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동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막내아들도 만나게 했다. 막내아들은 김해에 사는데 효도 이벤트에 참가하여 엄마를 만나러 달려온 것이다. 막내와 카페에서 다과를 함께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엄마는 많이 웃으셨다.

그렇게 짧은 12일 여행이지만, 차녀 부부와 사돈, 장녀 부부, 시동생 부부, 장남 식구들, 막내아들을 차례로 번갈아 가며 11명을 만나고 오셨다. 그날 밤 엄마는 무척 행복해하셨다.

때때로 이런 효도 이벤트가 꼭 필요하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한 사람이 중요해

며칠 전, 엄마가 화장실에 가셨다가 서재에 앉으셨다. 좋아하시는 유튜브 품바 공연을 틀어드렸더니 즐거워하신다. 한참을 같이 보고 있다가 엄마 혼자 보시게 두고 방에서 할 일이 있어 들어갔다.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엄마는 그렇게 즐겁게 보던 유튜브를 그냥 두고, 자기 방으로 가셨다. 그때, 남편이 뒤쪽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가, 엄마 행동을 지켜본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는 내가 방에 들어가자 열린 방문으로 몇 번이나 나를 쳐다보다가, 나올 기미가 없으니 포기하고 그냥 자기 방으로 가시더란다.

장모님이 아무리 좋아하는 품바 공연이라도 당신이 같이 보지 않으면 재미가 없나 보다.” 한다.

평소에 엄마 방에 가보면 반쯤 눈을 감고 주무시는 듯하다가, 내가 가면 일어나 앉아서 그제서야 티브이에 집중하며 반응을 보이곤 하셨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엄마의 세상에서는 자기 혼자만은 즐거움이 없고, 애정을 가진 자식이 함께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인가 보다. 그렇게 치매 환자나 어르신들에게는 자신을 보살피는 한 사람의 관심이 중요한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라는 단 한 사람이 그토록 절대적이듯이...

 

효도 이벤트 후

지난 토, 일요일을 그렇게 보내고 온 엄마는 기분이 계속 좋으시다. 지난주부터 내가 신경을 써서 엄마 곁에 조금 더 붙어 있고, 자식들을 만나고 오셔서 그런 것 같다. 감사하게도 얼굴을 긁어 상처를 내는 일도 줄어들었다. 아직 흔적들이 있지만...

그날부터 엄마는 방에 둔 이동식 변기가 아닌 화장실로 나와서 볼일을 보셨다. 작년에 코로나 검사를 받다가 그 후유증으로 몸이 다소 불편하여 방안에서 볼일을 해결하며 지낸 지 몇 달이나 지났다. 어쩌다 이동식 변기를 챙겨놓지 않으면 가져오라고 찾으시곤 했다. 중간에 어쩌다가 가끔 컨디션이 좋은 날은 화장실로 나오시긴 해도 거의 방안에서 해결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계속 화장실로 나오신다. 그만큼 컨디션이 좋다는 뜻이다. 센터에서도 엄마가 예전처럼 밝은 모습을 되찾고 잘 웃으신다고 한다.

오늘 새벽근행을 올리고 있을 때는 엄마가 양말을 신고 나오셔서 뒤에 앉으셨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근행에 나오지 못하시다가 그게 습관이 돼 버려 나오지 않으셨다. 재작년 겨울부터 안 나오시다가 처음으로 나와 뒤에 앉아서 근행을 올리시고, 수훈을 받으셨다. 평소에는 늘 방에서 누워서 스킨쉽 마사지 겸 수훈을 받으셨는데...

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라고 그러시나? 역시! 엄마가 좋아지고 있구나.’ 싶어 감사하다.

이런 엄마의 밝아진 모습을 형제들에게 전하면서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형제들이 참가하는 효도 이벤트를 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잠깐의 마디가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잘 넘어가고 있다. 엄마와 행복하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퍼실리테이터(facilitaor)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고 조절함으로써 조직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공유하는 비전을 개발하고 강화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이는 교육 훈련 프로그램의 실행과정을 통해 중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퍼실리테이터는 팀 구성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팀 구성원들의 생각에 맞서며, 한편으로는 독려한다. 개인이나 팀에게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다.
퍼실리테이터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학습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팀이 취하는 다양한 행동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성찰을 고무하며 학습자들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학습을 촉진하는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