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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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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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106

 

고가다리 아래에서 3

 

박지수

 

서는 자리, 역할 바꿔가며

코로나19로 인해 가정방문 전도와 대면 전도가 어려워지고, 여럿이 모여서 하는 전도도 어려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작정한 매일 전도는 빠뜨릴 수 없는 일이지요. 해서 생각한 것이 고가도로 아래에서 신명나르기입니다. 거기다가 때때로 깃발을 들고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신악가 선율에 맞춰 박자목을 치면서 도보를 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고가도로 아래나 옆에서 매일 하는 전도는 통영지역 용재들로 주로 세 명에서 다섯 명이 하고 있습니다. 깃발 1~3, 피리, 박자목으로 구성하고 있지요. 가끔 노방강연도 합니다.

깃발든 사람은 손 흔들어 인사하고, 한 사람은 박자목, 한 사람은 피리를 부니 어우러져서 좋습니다. 노방강연은 가끔만 하고 있습니다. 거리두기를 하느라 충분히 간격을 두고 서서 신명나르기를 합니다.

 

좌근과 팔수로 기원근행을 올립니다. 한번이 끝날 때마다 서로 자리와 역할을 바꿔 4번의 기원근행을 올립니다. 인간은 관성의 법칙이 있어서 늘 서던 자리, 늘 앉은 자리, 늘 하던 일을 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상급교회에 가도 늘 앉던 자리에 가서 앉게 되지요. 버스를 타도 즐겨 앉는 자리가 있고, 자주 가는 곳은 어디나 앉는 자리가 정해져 버리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고착되어 버립니다. 왼쪽에만 앉으면 왼쪽에서만 보는 시야로 굳어져 버려 오른쪽 시야, 뒤쪽에서 보이는 모습, 혹은 정면에서 볼 때 모습을 생각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세상을 자기 자리에서 고정된 눈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제대로 바르게 보지 못 하게 하는 원인, 분란의 원인이 될 수 있지요.

 

역할도 서로 바꿔가며 합니다. 피리를 불면서 만나는 신님, 박자목을 치면서 만나는 신님, 깃발을 들고 손을 흔들며 만나는 신님은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피리는 자신의 호흡과 신악가 소리에 몰입하게 만들고, 박자목은 유연한 손목 놀림과 박자목 소리와 신악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박자목을 칠 때, 때때로 초여름에 많이 듣는 아름다운 섬휘파람새 소리가 생각납니다. 그 맑고 고운 소리에 듣는 사람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맑아집니다. 우리 박자목 소리 역시 그럴 것입니다. 신님께 그렇게 마음을 맑히는 소리로 들리도록 해 주십사하고 기원드리며 박자목을 칩니다. 이 청아한 박자목 소리가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 아름다움을 느끼는 맑은 마음을 일깨워 주기를,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하기를 열심히 기원 올립니다.

깃발을 들고 인사할 때는 지나는 사람들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교감하고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데 역점을 둡니다. 그리고 이 고가도로 아래 사거리를 지나는 모든 차량들, 모든 분의 안전과 행복과 평화를 기원드리며 깊이 절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집중하다 보면 더욱 용솟음치게 됩니다.

폭넓은 시야, 폭넓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선 이런 자리, 저런 역할도 골고루 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구요. 독불장군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리와 역할을 바꾸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세상의 평화를 만들어내는 조그마한 몸짓이기도 합니다. 내 자리에선 이것이 옳지만, 저 자리에선 저것이 옳을 수 있는 게 세상사이니까요. 그래서 서로 역할을 바꾸고, 자리를 바꿔가며 전도합니다.

 

마음 다하여 정성스럽게

깃발을 든 사람이, 손을 흔들고 고개와 몸을 깊이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지나가는 차들,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 속의 사람들이 유심히 봅니다. 얼마나 정성스러운지, 공손한지, 진정으로 하는지, 아니면 건성이나 습관적으로 하는지. 보는 사람은 느껴지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한 번을 인사해도 정성을 들입니다.

내가 인사하는 차 속의 사람만 우리를 보는 게 아니라, 사방팔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차들, 근처 가정집에서도 우리를 지켜보는 눈들이 많습니다. 때로는 거리를 두고 보면 더욱 잘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신님, 교조님도 함께하며 지켜보십니다.

모든 일에 정성을 들이는 게 성인 된 모습이지만, 특히나 신님 일에 정성을 들이려고 합니다. 정성 없이 대충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자세이자, 수호를 제대로 받기 어려운 일이 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면 어느새 쉽게 건성이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중하고, 정성을 들이는데 정말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

 

지나는 차에 눈 맞추며

깃발을 들고 인사를 할 때는 지나는 차 속의 사람들과 눈 맞추기를 열심히 합니다.

가까이 지나가는 차들은 모두 눈을 맞춥니다. 시선이 마주치면 밝게 웃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공손히 고개를 숙입니다. 시선을 맞추면 훨씬 많은 사람이 인사에 답합니다. 상대편에서도 웃거나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숙여 화답하고 지나갑니다. 밝고 경쾌하되,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고개를 숙이면 상대방도 저절로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은 거울 세포가 있어서 상대방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인사를 나누다 보니 점점 더 즐거워집니다. 신명나르기가 재미있어집니다. 지루할 틈이 없지요. 오고 가는 사람들과 교감하고, 자연과 교감하고,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과도 교감하니까요.

시선을 맞춘다는 건 교감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용재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는 자신에게 스스로 당당함이 있어야 시선을 맞출 수 있습니다. 당당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없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라면 당당히 시선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당당하고, 열정적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감동을 줍니다.

 

서로 인사하는 따뜻한 세상

어느 날, 깃발을 들고 있을 때 지나가는 차 속의 여자분이 아주 반갑게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답니다. 그날, 두 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 남자분들, 특히 중년 이후 남자분들이 손을 잘 흔들어 주는 편인데, 그날은 거기다가 여자분들이 아주 반가워합니다. 아마도 천리교 신자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은 한껏 용솟음치며 즐거워집니다. 단지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는 것임에도 정말 마음이 확 밝아져 옵니다. 그러므로 손을 흔들어 주는 단순한 행위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마음도, 상대방의 마음도 환하고 밝게 하는 덕을 쌓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부터 근처 도산초등학교 앞에는 매일 아이들 등교 시간에 교통 정리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아침마다 그곳을 지나면서 그분께 손을 반갑게 흔들어 드렸습니다. 그분도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시지요. 서로 기분 좋은 순간입니다. 무엇이든지 서로 주고받고 화답하는 것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따뜻한 세상이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이처럼 쉽게 덕을 쌓는 일이 어딨겠습니까? 이렇게 쉽게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날마다 지나는 차들에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세상을 밝히니 감사합니다.

 

뭐라 하든 좋은 소리로 듣는다

어느 날은 온종일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 전도할 시간이 나지 않아 밤에 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밤이라 사위가 고요하기만 한데 박자목을 치려니 시끄럽지 않은가 싶어 신경이 쓰였습니다. 조용조용히 신악가를 틀고, 맑고 청아한 박자목 소리를 냅니다. 전도하다 보니 겨울철이라 모두 이중으로 문을 닫고 있구나. 오히려 박자목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겠네싶어 마음 편히 전도합니다.

그때, 어느 차가 지나가면서 창문을 열고 크게 소리치며 지나갑니다.

저 차가 뭐라 카노?”

야밤에 수고한다거나, 파이팅 같은 소리겠죠. 뭐라 카든 좋은 소리로 들으면 좋은 거지요.”

맞네, 맞다!”

살면서 잘 들리지 않은 소리, 정확하지 않은 소리를 자기식으로 나쁘게 들어 스스로 기분을 나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건 어리석은 일이지요. 어차피 무슨 소린지 알지도 못하는데, 좋은 소리로 좋게 들으면 다 좋은 것입니다.

 

함께 마음을 모아 활동하기

주변 어느 용재 분이 사정이 있어, 함께 신명나르기 했으면 하여 시작한 고가도로 아래 전도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전도, 구제이니까 가장 쉽게 수호를 받는 방편으로요. 우리는 어차피 어디서든 매일 전도하기로 작정하고 있으니, 서로 만나기 좋은 곳에서 더불어 함께 신명나르기를 할 수 있으니, 잘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돕기이자 큰 복입니다.

때로는 또 다른 용재가 참가를 원해서 서로 맞춰 함께하기 위해서 시간을 조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전에 하기도 하고, 오후에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추운 겨울이라 햇살이 퍼지고 추위가 살짝 누그러지는 한낮에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아침보다 차는 적게 지나가지만, 오전에 지나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낮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이 길을 알리게 되니 그것도 의미가 큽니다. 그리고 용재가 한 명이라도 더 같이 마음을 모아서 신명나르기를 한다는 사실은 정말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서로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는 마음이 커야 합니다. 서로 맞추기 위해서는 마음이 크지 않으면 함께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즐겁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생각이 다르고, 인연이 다르고, 그릇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작으면 함께 하는 것이 정말 고역이 됩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 맞추려는 노력이 기본입니다. 자잘한 일에 불만을 가지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맞추려는 마음이 없으면 혼자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는 즐거움이 적습니다. 신님도 여럿이 마음을 모아서 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그것이 근행에 담긴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음을 모아서 하는 일은 수호도 훨씬 많이 받게 된다고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지역 용재가 서로 호응하면서 활동하라고 진주님께서 유달을 통해 말씀하셨듯이, 서로 마음을 맞춰 함께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혼자는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함께 마음을 모아서 같이 하는 건 더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고, 서로 돕기가 되고, 신님도 즐거워하십니다. 게다가 때로는 전도 후에 특별이벤트로 식사를 대접받기도 하고, 맞춤 토막 강의를 하게도 되고, 서로 주고받는 모습이나 대화 속에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렇듯 천연자연으로 이어지는 즐거움이 매우 큽니다. 이렇게 척척 맞춰지는 것이 신님 뜻에 잘 맞기 때문인 것 같아 더욱 기뻤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이끌고 함께 성장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고, 큰 기쁨입니다. 자신의 마음성인, 영혼의 성장에 매진하면서 더불어 타인의 성장을 돕는 것, 이것이 신님께 받은 사명 중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다하고 있다는 마음이 드니 감사합니다. 사명에 충실한 만족스런 날들입니다.

 

세상 모든 이를 축원하며

깃발을 들고 인사를 할 때는 이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축원합니다. 때때로 참회를 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축원을 많이 합니다.

 

이 길을 지나는 모든 차들, 모든 분이 마음이 평화롭고, 하는 일이 잘 되기를

오늘도 마음먹은 일들이 술술 잘 풀리는 하루이길

어떤 일을 겪더라도 결국에는 모든 일이 다 잘 되기를

기쁨과 즐거움을 만드는 하루가 되기를

하루 일과가 물 흐르듯이 순조롭기를

모든 일이 척척 잘 이루어지길

 

생각나는 대로 축원을 하고, 인사를 합니다. 마음이 낮아지질 않을 땐 아예 몸을 더 확 낮춥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차츰 낮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차츰 더 즐거워집니다.

축원을 하는 것은 상대를 보고 하는 것이지만 결국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남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좋은 말 습관이 내게 붙는 것입니다. 내 혼의 덕이 되고, 내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급히 달리는 차는 특히나 더 간절히 무사하고, 안전하기를 기원드리고, 어느 차이든 어떤 사람이든, 오늘 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고가도로 만들기 위해 땡볕에서 일하던 분들을 기억하며 감사와 축원도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하는 일이 잘 되고, 무탈하기를....

그렇게 하다 보니 도로에 쓰인 시멘트, 벽돌, 철제, 자갈들을 만드는 회사, 만드는 사람, 운반한 사람, 그 사람들을 일할 수 있도록 밥을 해 주는 사람, 그 사람들이 입은 옷을 만든 사람 등등... 한없이 많은 사람에게로 감사가 확장되어 갑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이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내가 다 알지 못하지만 내 삶을 떠받치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지만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덕분에 제 삶이 영위됩니다.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해 축원하다가 문득 코끝이 찡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하길 기원하다 보니 어버이신님의 마음이 깊이 느껴집니다. 신님께서는 우리 인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애틋하게 보살피고 계실지 그 마음이 전해집니다. 신상 사정으로 힘들어하는 자녀들을 안쓰러워하면서, 어떻게든 행복으로 이끌어 주려고 하시는 어버이신님을 생각하니 울컥합니다. 어버이신님의 한없는 어버이마음을 느끼며 감동으로 눈물이 맺힙니다.

! 어버이신님, 언제나 생명을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한없이 자애로우신 어버이마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