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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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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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105

 

고가도로 아래에서 2

 

박 지 수

 

 

대자연과 교감하며

도산 고가도로 아래 신명나르기를 하며 매일 아침을 맞이합니다.

왼쪽 가정집의 감나무에는 감 홍시가 달려 있는데 새들이 와서 쪼아 먹습니다. 직박구리나 참새, 까마귀가 주요 고객입니다. 대각선으로 왼쪽 앞에 있는 식당 흰둥이 강아지는 구경하러 우리 가까이 왔다가 지나갑니다. 오른쪽 집 담벼락 위에는 고양이가 우리 쪽을 향해 편안히 엎드려 한참 동안 신악가 소릴 들으며 명상을 하는 듯 잠자는 듯 있다가 사라집니다. 담장 위로 빨간 장미와 흰 무궁화, 연보랏빛 무궁화꽃이 하늘 하늘거리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며, 저도 손 흔들어 줍니다. 법마을 뒤로는 하얀 학이 날아갑니다. 녀석들도 자주 지나갑니다.

그래, 그래, 신악가 매일 듣는 너희들, 너희들은 다음 생에 이 길의 용재 되어라.’

라고 축원해 줍니다.

 

비 갠 날, 지법마을 뒷산을 오르내리는 안개구름에 손 흔들어 인사하며 혼자 웃습니다. 신님의 활동인 날씨! 신님께 손 흔들어 인사하는 셈이지요. 자연을 보며 신님을 느끼고 교감하니 좋습니다.

하루는 고라니가 작은 숲에서 깡충 뛰어나와 우리를 응원하듯이 모습을 살짝 보여주고는 이내 숲으로 달려 들어가고, 흰둥이, 누렁이는 그 앞 묵정밭에서 명랑하게 뛰놀고 있습니다.

신명나르기 하는 중 메뚜기 한 마리, 저 멀리서 날아옵니다.

"이리 와~. 깃발에 앉아라." 하며 깃발을 내밀었는데, 제 치마에 앉았네요.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녀석, 이 녀석은 제가 궁금했나 봅니다. 아랑곳없이 계속 신명나르기를 하고 있으니 심심한지 다시 날아가네요. 반갑고 신기한 녀석입니다. 녀석은 제가 나무나 풀로 보였는지 모릅니다.

다른 날은 나비 한 마리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보면서 나비에게 말을 걸고, 축원합니다. "어여쁜 작은 생명, 나비야, 너도 행복하게 사는 날까지 잘 살아라~." 나비도 내게 "지수 님도 행복하세요~" 축원하듯이 날갯짓합니다. 좋은 징조입니다.

 

어느 날, 바로 앞 도로에 노랑나비 한 마리 비틀거리듯이 앉습니다. 가만히 보니 아픈 것 같습니다. 놔두면 차에 치일 듯싶어 천천히 다가가서 손을 내밉니다.
'내 손에 올라와. 저리로 가자. 여긴 위험해.' 마음속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비가 놀라는 듯하더니 알아들었는지 제 손에 올라옵니다. 조심조심 숨을 죽이고 가만히 일어나서 풀숲으로 가서 놓아줍니다. 어여쁜 노란 나비가 풀숲에서 쉬면 회복되겠지요. 많이 다친 건 아닌 듯하고, 좀 놀랬는가 봅니다. 나비가 제 손바닥으로 무거운 날갯짓으로 날아 앉았을 때, 전율이 확 일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생명,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은 작고 여린 생명이 얼마나 놀랬을까? 한없는 연민의 정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은 바로 눈 앞, 도로에 주황색 나비 한 마리가 또 앉아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날개를 펴고 날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좀 이상해서 다가가 살펴보니 다친 듯했습니다. 차 다니는 길이라 저대로 놔두면 차에 치여 죽을 것 같습니다. 조심히 감싸서 길섶 풀밭에 놓아 줍니다. 생기를 회복하여 잘 살기를 축원하면서...

늘 벌레나 곤충들,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많습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크든 작든, 다치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하니까요. 모두 각자 사는 방식대로, 각자 사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지나는 사람들과 인사 나누며

오디 농장 사장님은 트럭 타고 지나가면서 빵빵하고 경적을 울려 아는 체하십니다. 우리 동네 분들도 지나가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줍니다. 꽤나 추웠던 오늘 아침에는 동네 분이 차를 멈추고 따끈따끈한 두유를 주고 가셨습니다. 자주 지나다니다가 마음먹고 일부러 사 오신 듯했습니다. 따뜻한 두유보다 더 따뜻한 마음에 제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이제 낯이 익었는지 많은 분이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숙여 화답해 주며 지나갑니다. 물론 대부분 사람은 그냥 지나칩니다. 때때로 천천히 목을 빼고 눈이 빠져라 쳐다보며 신기한 구경하듯 보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럴수록 더 반갑게 손을 흔들고, 더 활짝 웃어드립니다. '그래요. 실컷 보세요~' 하듯이 웃으며 손을 흔듭니다. 마치 미스코리아처럼, 환한 웃음으로 우아하게 손을 흔들어 인사합니다.

가끔 엄지척해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천사같이 보입니다. 너무 고맙고 기쁩니다. 그리고 반갑게 손 흔들어 준 여자분도 감사합니다. 덕을 쌓는 것이 별거 아니지요. 그렇게 반응해 주는 모습을 보며 우리 마음이 즐거워지고 용솟음치게 되니 그분들께도 덕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사해서 손해 볼 일 없고, 화답해서 덕 짓게 되니 좋은 기운이 세상으로 번져갑니다.

 

깊이 허리 숙여 교만을 참회하기

신명나르기를 하며 깃발을 들고 허리를 굽혀 깊숙이 숙입니다.

제 마음속에서 이기려는 마음을 참회합니다.

나를 세우고, 상대를 누르는 마음을 참회합니다.

좋은 소리만 듣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려놓습니다.

쓸데없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버티는 마음을 참회합니다.

상대를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교만을 참회합니다.

낮은 마음으로 상대를 세우겠습니다.

교조님께서 본석님께 해 주신 말씀, ‘열사람 위에서 열 사람을 위한 일을 하더라도 마음은 열사람 아래에 두도록, 백 사람 위에서 백 사람을 위한 일을 하더라도, 마음은 백 사람 아래에 두라. 천 명, 만 명일 때도 마찬가지지.’ 당부하신 말씀을 새기며 참회의 절을 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숙이고, 마음을 숙입니다. 몸을 낮춰 마음을 낮춥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교만의 티끌, 분노와 원망, 미움과 편애의 티끌을 참회합니다.

 

끊는 말, 막말

 

언제나처럼 신명나르기 하던 어느 날, 고가도로 아래 주차해 있던 도로공사 하는 차들 주인이 왔네요. 그리고 관계자들도 여럿 왔습니다. 그중 팀장인 듯한 사람이 오더니 다짜고짜 마구 소리 지르며 화를 냅니다.

"지난번에 여기서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당장 가세요. 저 소리도 듣기 싫으니, 지금 바로! 당장!! 바로 옮기세요. 저쪽으로!!!"

떠밀 듯이, 한 대 때릴 듯이 화를 내며, 저쪽을 가리킵니다.
'누가 여기서 계속하겠다고 버텼나? 알아듣고 옮기려 하는 데 좀 심하구나.'
싶네요. 전에도 한번 여기서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입니다.
덕분에 저쪽, 오른쪽 도로로 건너가서 햇살 아래 따뜻한 곳에서 합니다. 거기서 하라고 했으니까요. 말 잘 듣는 우리입니다. 어버이신님이 이제 추우니까 햇살이 비치는 이쪽에서 하라고 불러들이신 듯합니다.

화를 내던 그 남자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지도말씀에 어떤 경우에도 막말, 끊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막말, 끊는 말은 신이 매우 싫어한다. 인연이 되어 몸에 나타난다. ... 나쁜 말은 아주 싫다. 깨끗이 바꿔라.(1891.1.28)]
적당히 이야기해도 충분히 알아듣고 '미안합니다.' 하고 자리를 옮기려 하는데, 당장 안 간다고 화를 내는 모습이 막말, 끊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심하게 하니까 '우리가 잘못했구나. 미안하다. 옮겨야지.' 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대신
'좀 심하네. 옮긴다는 데 저렇게까지 화를 낼 게 있나? 자기 땅도 아니고. 고가도로 밑인데 방해될 게 뭐 있다고. 너무 하네. 아저씨 참 성질 까칠하네. 그렇게 화를 내서 당신 하는 일이 제대로 되겠어?'

하는 마음이 생기고, 기분이 나빠지면서 반발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 순간, 화가 올라오는 자신을 보면서 반성합니다. 나 역시 부드럽게 말해도 충분히 상대가 알아들을 때조차, 심하게, 지나치게 화를 내서 막말, 끊는 말을 해 버린 적이 없는가. 반성합니다. 그리고 참회합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고, 부드럽게 말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구나. 나 자신 유순한 마음을 가지고, 부드러운 말을 쓰도록 하자고 다시 새기며, 자신을 반성 참회합니다.

 

가혹한 마음일랑 털어버리고

그 뒤는 아예 그 고가도로 아래가 아니라 옆 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신명나르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전도를 시작하니 너무 추웠습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해 뜨는 자리가 조금씩 남쪽으로 옮겨지고,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니 예전에 해가 잘 들던 전도 자리가 이제는 응달입니다. 산등성이에 가려 해가 더 늦게 비쳐듭니다. 가장 춥다는 해뜨기 직전 시간이 되니, 몸이 떨릴 정도로 추웠습니다. 특히나 피리를 불기 위해 노출된 손가락이 얼고, 피리도 찬바람에 얼어서 소리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두 번 기원하고는 추위를 피해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고가도로 아래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 남자분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잠시인데 설마 오겠나 싶었지요.

그런데 옮기자마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지난번에 우릴 쫓아냈던 그 남자분이 나타납니다. ‘옴마야!! 놀래라. 귀신같네. ㅠㅠ전에 당한 이후로 고가도로 아래는 아예 가지 않다가 오늘 처음으로 갔는데, 그것도 금방 옮겼는데, 보고 있었던 것처럼 딱 나타나다니,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지난번보다는 조금 언성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상당히 강하게 말을 하고, 그 전보다 더 길게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직무에 충실한 사람처럼 말이지요. ‘종교탄압이 아니라고 변명까지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우리는 다시 쫓겨나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신명나르기를 마무리합니다. 그분은 5분쯤 고가도로를 살펴보다가 가네요.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납니다. 저 역시 어느 전생에서인가 권력을 쥐었던 시절, 가혹하게 사람들에게 대했던 인연이 많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혹은 맡은 바 직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한 행위라 생각하면서 갑질을 수없이 하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하면 될 일을 열 마디 하고, 가볍게 훈방해도 될 일을 무거운 벌을 내리고, 별것 아닌 일에도 심하게 다루면서 괴롭히거나 심지어 죽이지 않았을까. 사극을 보면 나쁜 양반들이나 권력자들이 한 짓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남을 자신의 성향을 참회하면서 절하다가 울컥했습니다.

 

신악가 5장 여섯에
'가혹한 마음일랑 털어버리고, 인자로운 마음으로 되어오너라' 하셨는데....

그리고 교조님께서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으로 '평소 말씨, 심한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 하셨지요. 이런 가르침들을 다시 되새깁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과거, 전생, 전전생에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면서 절을 합니다. 가혹한 마음으로 상대를 괴롭힌 과거를 참회하면서 절을 합니다. 부드럽게 친절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을 가혹하게, 냉혹하게 한 인연을 참회하면서 절을 합니다.

남은 전도 시간 내내 죄송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또 참회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들에 절을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