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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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103

 

엄마와 행복하기 4

 

박지수

#치매-결핍을 채우려는 시기

보통 여자들이 갱년기가 되면,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무수한 상처들과 강박들과 결핍이 튀어나오면서 그것을 해결할 기회를 얻게 되는 시기라고 한다. 자신에게 결핍되었던 정서가 그것을 해결하라고 튀어나오고, 결핍되었던 일들을 하고 싶어지고, 걸림이 있던 일들을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시기인 것 같다. 그러기에 갱년기는 여자, 엄마로서 인생이 끝나고 한 인간으로 서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려면 치유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바로 잡아야 하는 것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우울하거나 짜증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엄마를 보면서 노년에 치매가 온 어르신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예쁘게 꾸미고 싶은 것을 못 했다면 이때 그것을 찾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엄마는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우며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매니큐어를 칠할 일이 없었고, 그럴 환경도 전혀 아니었다. 그런 결핍을 치매가 오니 메우려고 하는지, 요즘은 늘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니신다.ㅎㅎ. 그리고 예쁜 팔찌 같은 장신구도 한동안 관심을 갖고, 직접 몸에 걸치고 다니셨다. 예쁜 꽃무늬가 그려진 화사한 옷들을 좋아하시기도 하고...

그런 엄마를 보면서 예전에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나 형편이 안 돼서 못했던 것들(결핍)을 채우려고 하시는구나 싶어서 적극 해드린다. 옷도 알록달록 예쁜 것으로 사드리고, 뭐든지 예쁘고 고운 것으로 해드리려고 한다. 여자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공주인 듯 착각하고 그렇게 꾸미고 싶어 하는 때가 있다고 한다. 엄마는 그 시절 어르신들이 다 그러했듯이 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지나셨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공주처럼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은 갱년기나 치매 어르신이 아니라도 그렇게 결핍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결핍이란 불균형이고, 부족이다. 그 불균형과 부족을 바로 잡아야 행복해지는 것이니 그 결핍을 채우고 싶은 게 당연할 거다. 그런데 그런 면이 특히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게 중년의 갱년기와 노년의 치매라는 증후군이라 생각한다.

 

#매니큐어 칠하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가 좋아하실 만한 각가지 색 매니큐어를 8가지나 샀다. 손톱 발톱에 예쁘게 발라 드린다. 아이처럼 가만히 매니큐어 마를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모습이 귀엽다.ㅎㅎ 매니큐어라.... 참 새삼스럽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신기한 마음에 매니큐어를 몇 번 칠해 보고는 평생 안 하던 매니큐어를 엄마 손톱, 발톱에 칠해 드리네. 그런 손톱을 보고 기분 좋아하시니 엄마를 본다. 흐뭇하다. 노치원에서 선생님들이 손톱 예쁘다고 하면 엄마 기분이 더욱 업~ 된다.

어느 날 아침에 엄마 바지를 보니, 매니큐어가 묻어서 얼룩이 져 있다. 밤에 심심하셨던지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옷에도 이불에도 방바닥에도 묻혀 놓은 것이다. 옷이 얼룩져서 보기에 영 좋지 않다.

'~. 어떡하나? 새 옷인데 버릴 수도 없고... 그렇지! 신사임당처럼 매니큐어로 꽃을 그리자. 얼룩이 가려지도록... ' 퍼뜩 떠오른 좋은 생각에 기뻐하며 매니큐어로 꽃을 그린다. 가만히 보고 계시는 엄마한테

엄마, 이렇게 꽃 그리니 예쁘제?”하니 고개를 끄덕인다.ㅋㅋ

엄마가 사고 쳤네. 어휴 참...’ 이렇게 짜증을 내지 않고 그것을 활용해 더 예쁜 바지를 만든 것이 감사하다.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마음과 지혜를 주신 신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혼자 뿌듯해서 기뻤다.

 

#씻기는 일

엄마를 모시며 제일 힘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씻기는 일이다. 잘 씻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거의 모든 어르신의 특징 중 하나란다. 더구나 치매인 경우는 더 그렇다, 간혹 너무 많이 씻어서 문제인 어르신들도 계시기는 듯하지만.... 안 씻으려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한다.

노치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일주일에 한 번 샤워하는 날이 있는데, 어르신이 안 씻겠다고 해서 씻길 수가 없는데 어찌할까요?” 하고 전화가 왔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씻기지 마세요. 제가 집에서 씻기면 되니까요.”

씻지 않으려는 엄마 마음을 생각해 본다.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씻는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들 거야. 특히 여자이지 않은가. 같이 씻는 것도 아니고, 치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벗은 몸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을 내켜 할 사람이 있을까? 자존심도 상할 거고, 어쩌면 거칠게 대할지도 모르지. 아무렴, 딸처럼 하겠어? 그러니 내가 씻기자.’

 

어느 날은 그래도 잘 씻는데, 어떤 날은 절대로 안 씻겠다고 완강하게 버티신다. 공부해서 알고 보니, 치매 어르신들한테 씻기라든가, 운동이라든가 이발이라든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은,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마치 낭떠러지에 서 있는 데, 자꾸 미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고 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엄마한테 무엇이든 강요는 안 된다. 억지로 시키면 안 된다.’는 기본 간호 수칙을 명심하고 있다.

그래서 잘 씻기기 위해서 평소에 엄마를 자세히 관찰하고 잘 살펴보았다. 어떤 날 잘 씻는지, 혹은 어떤 날 안 씻으려 하는지. 어떤 경우에, 어떤 말씀을 드리면서 꼬시면 잘 씻는지... 엄마는 보통 노치원 다녀오시면 바로 화장실에 가시는데, 그때 씻기면 대체로 잘 씻으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노래를 부르거나, 자녀들 이야기를 하면서 씻기면 기분 좋게 씻으신다. 그래서 한동안 그렇게 부드럽게 씻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바로 돌아오시면 씻기려고 준비해 뒀는데 오잉? 오늘은 아예 화장실에 안 가신다.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눈치챘는지 저녁근행 전까지 가실 생각조차 안 하시네. 그러다가 저녁근행에 우리가 상단에 올라가니 방에서 나와서 화장실로 가신다. 참말 뛰는 지수 위에 날으는 엄마이다.

뭐 그래도 좋지. 내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 뭐냐? 물 없이 머리 감는 샴푸, 물 없이 샤워하는 보디클렌저를 이럴 때 쓰려고 미리 구해 뒀다. 그러니까 날으는 엄마 위에 비행기 탄 지수가 있지롱~^^

#자주 화장실 가는 일

엄마는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이동식 변기를 사용하셨다. 그래서 첫날부터 당연히 방에 이동식 변기를 준비해 놓고 편리하게 이용하시도록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화장실로 나오셨다. 나는 그게 신경이 쓰였다. 행여나 엄마가 화장실에 가시다가 넘어져 다칠까 봐...

엄마, 여기 이 변기에 하면 되는데, 왜 힘들게 화장실에 가요?”

니가 비울라모 힘들다 아이가.”

하셨다. 순간 멍해졌다. 그러니까 딸이 고생하는 게 미안해서 불편해도 화장실로 가신다는 말씀이다. ‘엄마가 내 생각해서 그러셨구나.’ 살짝 감동스러웠다.

그건 감동이었지만 잠귀가 밝은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화장실 가시는 소리가 다 들리면 행여 다치실까 긴장이 되어서 깬다. 그러길 하루 이틀,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힘들고, 짜증이 솟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렇지! 엄마를 신님께 기원드려 맡기자. 신님께 지켜 달라고 부탁드리고 나는 편히 자자. 이렇게 잠 못 자다가는 엄마를 오래 모실 수 없으니까.’

 

그 뒤부터는 걱정은 사라지고 편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걱정은 안 하는 데 화장실 가는 소리에 잠이 깨게 되니 잠을 설치게 되었다. 하룻밤에 5~6번은 기본인 것 같다. 그렇다 보니 한숨이 난다.

왜 저렇게 화장실에 자주 가시는 거지? 그냥 방에 있는 이동식 변기를 쓰시지. 어휴~ 정말 힘들구나.’

그때 감사 찾기를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화장실을 자주 가시는 것에서 어떤 감사를 찾을 수 있을까? 누워서 곰곰 생각하였다. 마침내,

그렇지! 엄마는 움직여서 운동하길 싫어하는 데 저렇게 화장실 가는 것으로 다리 운동이 되니 좋은 거네. 일부러 운동시키려면 힘들고 안 하려고 하시는 데 잘 됐다.'라고 생각을 싹 바꾸었다. 그랬더니 마음에 걸림이 없어지고 편안히 잠잘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그것도 다 내 마음의 걸림이었던 것이다.

관찰을 해 보니, 엄마는 평소 내가 옆에 있으면 화장실에 안 가시고, 옆에 없으면 자주자주 가시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걸까?

', 이건 엄마가 '왜 내 옆에 안 오니? 외롭다.’ 하시는 무언의 표현이구나'

고 깨닫고 나서 가능하면 엄마 옆에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한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어느새 화장실 가는 것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이 들면 제일 무서운 건 외로움

나이가 들면 제일 무서운 것이 외로움이고, 소외감인 듯하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저 한 공간에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같이 티브이를 보고 웃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게 상당한 안정을 주고, 위로가 되는 것을 느낀다.

처음 한동안은 그런 시간이 아까워서 싫었다. 평소에 티브이를 안 보고 살았던 나는 티브이를 보며 엄마와 있는 시간이 낭비로 여겨졌다. 특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시간은 좋아하는 독서나 공부나 글쓰기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나만을 위한 그 시간이 엄마에게 바쳐지는 시간이 돼 버리니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마음을, 생각을 바꾼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엄마를 돌보는 일이다. 함께 티브이를 보는 일이다. 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 소중한 시간이다. 엄마에게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신님도 이러길 바라실 거야.’

그러고는 내 속에 불만이 사라졌다.

 

#머리 손질하기

아침에 배차 온 노치원 원장님이

어르신이 머리를 안 자르겠다고 하시네요. 아무리 달래봐도 안 하겠다시는데... 오늘 한 번 더 달래볼게요.” 한다. 그러더니 그날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오셨다. 두어 달 후 또 자르지 않겠다고 하신다고 연락이 왔다.

그럼 그냥 두세요. 제가 깍일게요.”

했다.

노치원에서 미용봉사를 와서 머리칼을 자른 것을 몇 번 지켜보았다. 어떤 때는 예쁘게 잘라 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깎아서 언뜻 보면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 구별이 안 될 때도 더러 있다. 엄마는 그렇게 머릴 자르는 것이 남자 같아서 싫다하신다. 당연하지. 내가 보기에도 싫은데... 그렇게 짧게 남자 머리처럼 깎는 것이 보통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미용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관리하기 편하니까. 그래서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짧게 깎는다고 했다. 그건 의식 없는 분들한테는 해당하는 이야기지. 엄마 같은 사람한테 남자처럼 짧게 잘라 놓으면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인데, 평생 여자로 살았는데 남자처럼 머릴 깎아 버리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그런 엄마 마음을 헤아리니, 그때부터 엄마 헤어스타일 가꾸기도 내 몫이 되었다. 짧게 깎은 것에 심한 거부감이 있어서 머리칼을 자를 기미만 있어도 기겁을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서 못 깎도록 강하게 거부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을 하며 이러 저러한 방법을 궁리하였다. 가위를 들면 기겁을 하니 그건 안 되겠고, 어쩌나? 하다가 빗기만 하면 머리칼이 잘리는 이발빗을 구했다. 엄마가 머리 감을 때 그 빗으로 쓱쓱 빗으면 헤어스타일이 조금씩 정리된다.ㅎㅎ 그렇게 한 후에 때때로 삐져나온 머리칼은 가위를 써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엄마를 달래가며 조금씩 다듬듯이 자른다.

잘린 머리칼 보여드리며

엄마, 이것 보세요. 조금밖에 안 잘랐죠? 센터에서 엄마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서 남자같이, 보기 싫게 잘랐죠? 나쁜 사람들이네~. 나는 조금만 다듬는 거예요, 이렇게 삐져나온 것만 자를게요.”

이렇게 아이처럼 달랜다. 그러면 엄마는 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순해진다.

 

#1년이 지난 후

엄마를 모셔온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동안에 엄마가 드시고 있던 치매약 속의 우울증약은 3개월 만에 반으로 줄이고, 6개월 만에 완전히 뺄 수 있었다. 그리고 늘 가는 병원 주치의는 6개월에 한 번씩 있는 정기 검진에서

치매는 서서히, 혹은 급격히 나빠지는 게 정상인데, 어르신은 오히려 좋아지셨네요. 모시는 분이 잘하면 그렇습니다.”라는 칭찬을 한다. “감사합니다. 매일 기도를 전하는 덕분인가 봅니다.” 하고 말했더니 의사 선생님,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 따라 약도 조금 줄여 약하게 지어 주셨다.

노치원에서도 잘 적응한 엄마가 즐겁게 지내시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밴드로 올려서 알려 준다. 1년 사이에 엄마도, 우리도 많이 편안해졌다. 덩달아 형제들의 마음도 편안해지고,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이렇게 1년을 지내면서 엄마와 행복하기라는 신님의 숙제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

 

어버이신님, 교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