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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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99

 

엄마와 행복하기 4

- 부모 입에서 효자난다.

 

박지수

 

막냇동생이 몇 달 만에 엄마를 찾아왔다.

엄마, 자주 못 와 봐서 죄송해요. 자주 와야 되는 데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아니다. 너그 누나가 잘해주니 나는 잘 지낸다.” 하십니다.

언니들이나 동생들이 전화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는 묻지 않아도 엄마는

너그 동생(너그 누나) 경이(어릴 때부터 나를 부르는 이름)가 잘한다. 맛있는 것도 많이 해 준다.”

며 저를 칭찬합니다. 제가 옆에 있으나 없으나 그리 말씀하십니다.

한 달에 한 번, 엄마가 다니시던 함안교회에 참배 가면 교우인 엄마 친구들이

아이고, 딸네 집이 좋은 갑네. 얼굴이 훤하네. 아무래도 며느리보다는 딸이 편하제?”하시면 며느리도 잘하고, 지금은 딸이 잘 해줘서 잘 지낸다.”는 단골 레파토리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별로 잘하는 것도 없는데, 옆에서 듣고 있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엄마가 나를 효녀로 만들고 있구나. 참 감사하다.’ 생각합니다.

 

엄마는 노치원(노인유치원,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기 때문에 평소 집에서 밥을 드시지 않습니다. 노치원에서 반드시 아침을 드셔야 한다는 게 처음 입소할 때 규칙이었습니다. 그것은 근처에 혼자 사는 어르신을 함께 차로 모셔가야 하므로 그렇다고 합니다. 아침 근행 후 바로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노치원 차가 와서 모시고 갑니다. 처음엔 3끼 식사를 노치원에서 하신다는 게 걸렸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치원은 규모가 크기에 조리사와 영양사, 간호사도 있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제공되고 있다니 안심이죠.

사실은 엄마를 집에 처음 모시고 올 때 마음에 걸린 것이 있었습니다. 때때로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날이 있는데 그때는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급 월차제라든가, 교구, 전도청 월차제, 혹은 전도하러 가는 시간은 아침 8시 전에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동생네 있을 때는 노치원에 9시에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그처럼 ‘9시에 가시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그러면 바깥에서 하는 전도 활동 따위 여러 일에 제약을 받을 테니까요. 그런데 노치원에서 먼저 그것을 입소 조건으로 이야기하니, 이 문제가 상쾌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저로서는 큰 수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애로 없이 엄마를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우리 엄마는 특히 고기를 좋아하십니다. 생선은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데, 생선회는 좋아하고, 돼지고기, 쇠고기에 쌈을 좋아하십니다. 엄마는 삼겹살이나 쇠고기 구이를 좋아하시는 데 저희는 그런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육고기 요리를 하는 일은 여기 온 후 24년 동안 거의 없었던 일이었지요. 그런데 엄마는 육고기를 좋아하시니 참 난감했습니다.

생선이라면 어떻게든 해 드릴 수 있는데 육고기라니.’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처음에는 장어를 사서 구워드리곤 했습니다. 다행히 장어는 잘 드셨습니다. 두어 달 지나니, 우리가 육식을 안 한다는 사실을 아는 형제들이 올 때마다 엄마 드실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넉넉히 사 옵니다. 그러면 일 인분씩 소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일요일 집에 계실 때 꺼내서 구워드리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엄마는 우리 둘이 밥을 먹고 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보통 어르신들은 자기를 빼고 음식을 먹으면 화를 내거나 서운해하거나, 와서 자리에 앉아 같이 드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한 푼어치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노치원에서 이른 저녁밥을 먹고 오셔서 배가 고프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엄마가 볼 때 맛없는 채소만 우리가 먹는다는 걸 잘 알고 계신 게지요.

 

장남이 모시고 있을 때는 어디 가면 엄마가 먼저 신발 신고 현관에 서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오셔서는 같이 나가자고 해도 내는 안 갈란다. 방에 텔레비전 보고 있을 끼다. 너그끼리 갔다 온나.”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 생각해보니, 장남 식구가 외출하면 귀여운 어린 손자손녀와 같이 가니 좋기도 하고, 재밌는데 놀러 가거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가거나 하니 좋아서 따라나선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나간다면 고작 전도하러 가거나, 상급교회나 교구, 전도청에 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너 번 따라서 와 보시고는, 전도하니 재미없고 힘들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지도 않는다는 걸 다 파악하신 겁니다. ㅋㅋ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엄마의 말씀 잘해 준다. 맛있는 거 많이 해 준다라는 건 맞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런 일을 두고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딸 사위는 맨날 저거끼리만 밥 먹고, 나한테는 신경도 안 쓴다. 불효한다.” “우리 딸은 맨날 저거 둘이 밖에 나가고, 나는 같이 안 데리고 간다. 못 됐다.”

고 하신다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한순간에 불효자식이 됩니다.

특히 치매증세가 있으신 분들은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금방 식사를 해도 돌아서면 안 먹었다,’ 세 끼를 다 드시고 간식까지 드시고도 배고프다, 굶긴다고 하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든 나가는 걸 좋아해서 항상 따라나서는 어르신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듣고 있는데 엄마는 전혀 아니어서 다행스럽고, 큰 수호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큰 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늙어도 엄마처럼 저렇게 이쁘고 착한 노인이 될 거니까 걱정 없다.”

저 역시도 언니 말에 100%로 공감하고, 같은 생각입니다. 엄마가 노년을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자식들 효도 받으며 지내시는 걸 보면 흐뭇합니다. 특히나 딸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엄마를 거의 그대로 닮는다고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요. 물론 조금은 다를 수도 있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들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생각하며 엄마를 보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고, 안도감이 생깁니다.

내 노년도 저렇게 편안하고 걱정 없이 지내겠구나. 치매가 걸린다 해도 저렇게 이쁜 치매니까 남들에게 민폐를 덜 끼칠 테니 다행이지. 게다가 엄마는 평신자였는 데 저 정도 수호를 받는 걸 보니, 나는 용재로 사니까 좀 더 나은 상태로 노년을 맞이하지 않겠나.’ 은근히 안도하며 기대합니다.

보통 자식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상황이 안 되거나, 여력이 안 되거나 해서 못할 뿐이겠지요. 그렇지만 나름대로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각자 나름대로 엄마에게 마음을 쓰고 정성을 쏟는 것처럼요.

 

엄마는 이야기 중에 누구를 나쁘게 이야기하면 대꾸를 안 하십니다.

엄마, 우리 어릴 때 누가 제일 애먹였어요? 누구를 키울 때 제일 힘들었어요?”

애먹인 아가 어딨노? 우리 아~들은 다 착하다. 지금도 아들은 아들 대로 잘하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잘하고, 딸 사위는 딸 사위 대로 다 잘한다.”

고 언제나 말씀하시지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절대로 나쁘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때때로 술을 과하게 드시고 오신 일도 있어 엄마가 힘들었을 때도 있었지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엄마는 너그 아버지는 그런 일이 없다, 항상 적당히 드셨지, 오데 많이 묵었나.”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서로 의미 있는 눈짓을 교환하며 웃었지요. 엄마가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계신 것이 고마운 일이니까요.

그런 엄마의 모습은 이 길을 50년 가까운 오랜 세월을 신앙해 온 결과로 나타나는 모습이라 싶어 엄마의 신앙이 고맙습니다. 그 신앙을 이어받아 온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봄 직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 한 고을에 소문난 효자와 소문난 불효자가 살았다. 효자는, 해가 떨어지면 군불을 지펴 방을 따사롭게 하고 부모님의 침구(寢具)를 잘 깔아놓아서 방 기운과 이불 속을 따사롭게 하였다. 그것도 부족하여 부모님이 잠자리에 드실 시간이 되면 옷을 벗고 미리 이불에 들어가 자기의 체온으로 침구를 따뜻하게 덥혀 놓았다.

  효자의 부모는 사람들을 만날 적마다 "우리 아들은 효성이 지극하다."라며 극구 칭찬하니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이 효자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한편, 같은 마을에 사는 불효자는 효자보다 열심히 일하고 나름대로 부모님께 잘한다고 하는데도 이상하게 불효자라는 딱지가 붙어 다녔다. 친구가 효자라고 사람들의 떠받음을 받는데 은근히 화가 치민 불효자는 어느 날 큰맘 먹고 효자네 집에 몰래 숨어들었다

어떻게 하면 효자라는 말을 들을까. 저 친구와 똑같이 하면 나도 곧 효자라는 소문이 나겠지.’ 숨을 죽이고 효자의 행동을 살핀 불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효자 되기 정말 쉽구나.’

  다음 날 해 질 무렵, 불효자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서 방을 따끈하게 하였다. 아랫목에 부모님의 침구를 깔아놓고 밤이 이슥하기를 기다렸다. 부모님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불효자는 옷을 벗고 이불에 들어가 체온으로 안을 덥히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잠을 청하러 방에 들어오니, 아들놈이 자기의 이불 속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기가 막힌 아버지는 호통을 치면서 아들을 나무라면서 마구 때렸다.

"이놈이 버릇없이, 아비의 이불에서 잠을 자다니 불효 중의 불효구나."

  다음 날,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제의 일을 얘기하면서 아들을 불효자라고 몰아세웠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돌아 마을 사람들이 이 불효자를 더 멀리하게 되었다.> [울진타임즈, 2008.5.31. 효자와 불효자를 누가 만드나, 백암산 글에서 부분 발췌]

 

예부터 전해지는 부모 입에서 효자 난다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이야기입니다. 위 효자 부모처럼 엄마는 함께 지내는 저를 효녀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크나큰 복이지요.

엄마와 함께 지낸 지 벌써 4번째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수훈을 아침저녁으로 매일 전하며 엄마가 마지막 날까지 지금처럼 편안하고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실 수 있기를 기원드리고 있습니다.

 

어버이라 한다. 자식이라 한다. 자식에게 충분히 만족시켜서 어버이가 즐긴다. 자식이 성인하면 어버이를 소중히 한다. 이것이 낙이야. 이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리, 모든 일이 당장에 다스려진다. (1895.11.14. 지도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