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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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박혜경(진홍교회)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달부터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게 된 박혜경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지면이 남으면 땜빵(?) 차원의 글을 쓰다가 지난달 편집부 회의에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새로운 작가를 찾아보자기에 간 크게 손을 들었다고 하면 밥맛이 엄청 떨어지겠지요? ^^;;; 하하하. 사실은 연재글 쓰시는 분을 오랫동안 고민해 오다가 다들 섭외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저의 코너 제목은 재미있는 글이 될 때까지입니다. 지금은 안 되더라도 다음 글은 재미있기를 바라보며, 읽기 쉽기를 기대하며 지금부터 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장면 하면 많이 떠오르시죠? 선거유세는 아니지만, 여러분의 기를 모아서 재미있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달 제목은 시작입니다.

저는 시작에 대한 느낌이 참 남다르다는 생각을 살면서 엄청나게 많이 했습니다.

항상 뭔가를 시작하면 제가 하게 되는 이런 운명을 뭐라고 해야 될지. 어떨 땐 시작의 저주인가.’ 할 정도로 힘들기도 합니다. ‘왜 항상 나만 처음을 해야 하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면 저와 시작의 인연을 지금부터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작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이 20살 때 제과점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처음 일을 하러 가니 제과점이 분위기가 정말 어수선했습니다.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아르바이트생 보고 욕을 하고 화를 내고 조금은 무서웠습니다. 그러다가 상황을 살펴보니 그 직원들은 자매였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동생이 갑자기 일할 사람도 구해 놓지도 않고 나가려고 하고 언니는 못 나가게 하고 그렇게 싸우고 있었던 겁니다. 마침 제과점이 아침 일찍이 아니면 점심때까지 좀 여유가 있어서 손님이 없어서 그렇지 가게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처음 하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는데, 직원들은 싸우고 있고, 난장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결국, 언니가 포기를 하고 가게가 바빠지기 전에 동생을 내보냈습니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나가면서 저보고 이런 데서 일 하지 마라고, 고생만 하고 돈도 제대로 못 받는다고 하며 나갔습니다. 그러고 바쁜 점심시간이 되니 손님들은 밀려오고 저는 원래 홀에서 손님들이 가시면 빈 접시 주방에 갖다 놓고, 바닥 깨끗이 정리하는 일만 하면 되는데, 주방에 그릇은 쌓을 데가 없을 정도로 어지럽혀져 있어서 안 되겠기에 주방과 홀의 나눠지는 테이블을 뛰어 넘어가서 설거지를 하고 홀을 정리하고 그렇게 바쁘게 일을 했습니다. 주방에 일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한 달 아르바이트 하고는 발목인대에 무리가 갔는지 한동안 파스를 붙이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하고는 방학도 끝나고 학교 수업이 있어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처음은 참 중요한데 이렇게 첫 아르바이트는 일의 기준도 없고, 어느 선도 없이 정신없이 지나갔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두 번째 시작

두 번째 아르바이트는 지금의 대구E월드의 시작인 우방타워 과학관이었습니다. 그 때도 처음 개관을 하기 며칠 전부터 개관 준비를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처음 문을 여는 곳이니 여기도 일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고,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면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시범 보이고, 로봇 목소리 흉내 내고, 표 받고, 설명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시작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할 때도 섬유회사인데, 섬유 전공한 여직원은 제가 첫 입사라 여기서도 인수인계도 없이 직원들도 횡설수설 하고, 저도 황당해하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다방에 취업을 했나.’ 생각되기도 하고, 그때는 자판기보다는 사무실 주방에서 부서별로 손님이 오시면 알아서 차를 내고 했기 때문에 차를 대접하는 일이 반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도 여직원을 뽑아보질 않아서 어느 선까지 일을 시켜야 되는지 몰라 많이 허둥댔습니다. 퇴근도 자기들이 늦게 퇴근한다고 저까지 야간 근무를 시켜서 제시간에 퇴근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제가 할 일이, 제가 잘하는 일이 정해지고 저는 섬유 분석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인내심과 지구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라 남자 직원보다는 여직원이 적성에만 맞으면 더 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손에 각질이 일어나도록 실을 풀고, 돋보기나 현미경을 보면서 천의 짜여진 조직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습니다.

 

네 번째 시작

첫 직장을 퇴사하고 나서 다음 회사도 섬유 전공한 사람은 저밖에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는 거기에 더 보태져서 하청업체 관리에 공장까지 가서 안 해도 될 일을 하기도 했고, 출퇴근 시간도 없이 공장에 서울 출장에 정신없이 돌아다녔습니다. 퇴근하고 집에서 자다가 밤12시에 긴급 출근한 적도 있고, 출장 때는 비나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되면 새벽 4시에도 기차를 타고 서울 출장을 가야 했고, 그때 택시를 타고 다니며 기사님이 저보고 아가씨는 직업이 뭐냐고 물으시던 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새벽에 일 나가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정장 차림이고, 자정에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사무실만 빽빽한 곳에 가자고 하니 영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마쳤습니다.

 

다섯 번째 시작

제가 결혼할 때 시어머님이신 우리 교회 사모님은 뇌졸중에 좌측 수족이 불편하셨고, 치매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모의 역할을 아무도 가르쳐주시지 않아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한 번씩 저 자신을 뒤돌아보면 만약 누군가 가르쳐주시는 분이 계셨다면, 우리도 남들처럼 든든한 부모님이 계셨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여섯 번째 시작

결혼 당시 우리 회장님께서 고성 교회보 편집을 맡아서 하셨기 때문에 저도 같이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편집부에 여자는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교회보 발행부 수도 적었고, 페이지 수도 적어서 일하기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다른 한 가지는 지금보다 오타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이 잘 되어있어서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맞춤법 검사기도 되어있어서 좀 귀찮기는 하지만, 틀린 부분은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일곱 번째 시작

전도청에서 여자악기 조율강습회를 한다기에 갔다가 우연히 보조 강사가 되었고, 성천교회 사모님과 제가 여자악기 강사가 처음으로 되었습니다. 교재부터 시작해서 지도하는 프로그램까지 다 처음으로 만들어야 하고, 명칭정리에 연주자세까지 하나의 기본을 정하기 위해 많은 의논을 했습니다. 그리고 강사들도 각자 배운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기본자세를 연습하기 위해 각자가 연습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때 일이 생겼습니다. 교단과 어느 교회의 문제로 전도청에 못 가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고, 서로 서운한 마음만 남긴 채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두 달, 두 번의 연습만 마쳐도 그 기수는 수료했을 텐데 마디에 넘어지고 말았던 겁니다. 항상 처음을 열며 많은 고생을 해도 유종의 미는 나름대로 잘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은 끝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던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그때 같이 여자악기 조율강습회에 참가하신 분께는 너무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갑자기 사라진 강사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생하신 동맹교회 사모님께, 갑자기 시작하시느라 고생 많으셨던 대연교회 회장님께도 감사하고, 죄송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덟 번째 시작

경남교의강습소에서 여자악기 강사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서도 여자 강사는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는 월급의 개념이나 그런 건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상으로 힘들 때 신님께 약속드린 것을 지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너무나 감사하게 시작된 일이었고 지금까지 무사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시작

전도청 여자악기 강사 일을 손 뗀 지 십 년 정도 되었는데, 이번에 대연교회장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제가 다시 강사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양회 여자악기 강사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시작이 지금까지 여덟 번의 시작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위의 여덟 번의 시작하는 동안 아무도 일을 먼저 하던 사람이 없어서 혼자 시작한 것이었다면, 이번은 지금까지 해 오던 강사님이 계시니 그 뒤에서 몇 달 지켜보고 그다음부터 제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고생한 덕분에 인연이 좀 닦여진 게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번 시작은 깨달음도 많은 시작이라 멋진 유종의 미를 위해 열심히 나아가고자 합니다.

늘 자라면서 부모님께서 명심시킨 부분인 사람은 신용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저는 한 번의 신용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살다 보면 마디에 넘어져서 아플 때도 있고, 주춤할 때도 있지만, 그 마디를 잘 넘기면 반드시 신님의 수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막연히 생각만 해오고 있었는데, 글을 쓰며 기억을 더듬어보고 정리를 하다 보니 정말 저는 시작과 인연이 참 많네요. ‘왜 나만?’이라는 물음도 던져보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는 게 더 나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생각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올해부터 저의 처음 시작된 연재글, 많은 시작을 알리는 일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엄마들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 중2, 3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신님과 남편의 뒤를 이어 두 아이를 모시고 살지, 내가 모심을 당하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시작은 좋은 출발이라고 스스로 만족합니다.

 

올 한해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가득하시기를, 하시는 모든 일이 행복에 이르기를 기원하며, 저와 함께 연재글로 이어진 모든 분께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글이 될 때까지 저는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