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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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회 기초교리강좌

 

은혜 보답 1

 

이상봉(고성교회장)

 

오늘 기초교리강좌는 은혜보답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천리교에서는 은혜보답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한 여깁니다. 천리교 신앙은 은혜보답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왜 은혜보답을 해야 되는가하면 그것은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빌린 것이라는 여기서 모든 것이 출발하기 때문에 은혜보답이라는 것이 꼭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빌린다고 칩시다.

예를 들어서 집을 빌리려면 전세로 얻든 월세로 얻든 매달 집값을 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집값을 안내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쫓겨나게 되겠죠? 계속 살려면 밀린 집세를 다 내야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을 해 보면 우리는 몸을 빌려 쓰고 있고 그 빌린 대가를 치러야 되는데 그걸 무엇으로 치를 겁니까? 그게 말하자면 은혜보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만이고 몸은 빌려주신 것이라 가르쳐 주시고 입니다. 말하자면 우리한테 마음에 맞는 그릇을 빌려주신 것입니다. 몸이 그릇하고 같은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러면 이 그릇을 빌리고 있는 대가로서 어버이신님은 뭘 바라고 계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보답이고 어버이신님이 바라시는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즐겁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 거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이 세상에는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인간은 그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살지 않고 나 혼자 힘으로 살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은혜로 가득 찬 세상

그렇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부 다 은혜로서 가득 찬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요즘에는 학교에서 은혜에 대해서 학생들한테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예전에 비해서 은혜에 대해서 아마 이야기를 잘 안 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옛말에도 그런 말이 있는데 물이 자기 목을 넘어갈 때는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목에 넘어가고 나면 아무런 생각이 안 난다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삼국지에도 그런 일화가 나오거든요. 조조가 자기가 실권을 잡기 전에 도망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도망을 다닌 시절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민가에 숨어 들어갔는데 밤에 있다 보니 식칼을 가는 소리가 삭 들리더래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나를 죽여가지고 목을 갖다 바치고 돈을 상금으로 타려고 식칼을 간다고 생각하고 그 집주인을 몰살시키고 도망을 갑니다. 사실 그 집 주인이 손님대접을 하려고 닭을 잡으려고 칼을 갈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자기를 죽이려는 줄 알고 몰살시켰다는 겁니다. 그 바람에 조조가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의 죽은 원혼이 저주를 해서 최후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은혜를 입었을 때 다음에 내가 잘 되면 다시 돌아와 은혜를 꼭 갚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언제 그랬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은혜보답을 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하고는 차이가 납니다. 운명에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은혜를 알고 우리가 느끼게 되면 고생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있고, ‘은혜를 모르게 되면 어려움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관상도 은혜보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출세하는 관상을 가지고 있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거지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운명이 그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신상이나 사정이 있어 이 길에 인도되었지만 그것을 도움 받으면 그걸로 끝이라 생각하여 안녕 하고는 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한 번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자기의 만족이나 취향하고는 관계없이 갚아야 되는 빚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큰 은혜 다섯 가지

우리 선배선생님들은 알기 쉽게 은혜에 대해서 다섯 손가락에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큰 은혜가 다섯 가지가 있는데 첫째 엄지는 어버이신님의 은혜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어버이신님은 이 세상 우주를 창조해 주시고 우리 인간을 비롯해서 온갖 만물을 창조해 주신 분입니다. 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 끊임없이 수호를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손에 비유하자면 엄지손가락에 비유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있는 이 손가락은 뭐라고 합니까? 인지라고 하기도 하고 검지라고 합니다. 인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해서 인지라고 하는데 이것은 교조님 은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왜 교조님 은혜를 이야기하느냐?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태초에 있었던 맨 처음 어머니가 교조님입니다. 처음에 여자추형묘상의리의 혼을 지니신 분이 교조님인데 교조님의 은혜로 인해서 우리가 태어난 겁니다. 어머니 은혜 즉 부모님 때문에 태어났지 않습니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교조님에 해당하기 때문에 교조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운데 손가락은 조심해야 되죠. 서양에서는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면 욕이 되는데 이 가운데 손가락은 선조의 은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집안으로 거슬러 가면 우리에게 모두 다 조상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족보로 따지면 족보에 처음 딱 기재되어 있는 분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알 수 있는 한에서 그분들이 다 조상입니다. 알지 못하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또 그런 분들 말고도 인류의 역사상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람들 예수도 마찬가지고 부처님도 마찬가지고 모든 성현들도 거기 선조에 해당하는 거예요.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차츰차츰 성인해 왔는지 성인시켜준 성현들도 다 선조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또 뛰어난 학자들도 다 마찬가지고 의사들도 마찬가지고 연구를 해서 과학이 발달하고 또 의술이 발전한 덕분에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다 이 은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가 오늘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손가락은 약지지 않습니까? 이것은 부모의 은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그 은혜가 되겠고 교회에서 말하자면 리의 부모가 있습니다. 상급교회 회장님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끼손가락은 그 외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혜입니다.

 

가장 큰 은혜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은혜에 둘러 싸여서 살아가고 있는데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아주 큰 은혜라는 것이 사람의 힘을 초월하는 엄청난 은혜가 있습니다.

봄이 되면 꽃나무에서 꽃이 피지 않습니까? 그 꽃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가지를 분질러보면 꽃이 있습니까? 없죠? 봄이 되면 꽃이 피어나는 거죠. 그 능력이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나서 꽃을 피우고 하는 그런 것을 누가하는 건지 그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꽃을 피우는 봄의 시순은 누가 오게 하는 건지 대우주를 움직이고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힘인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의한 활동에 의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여름에 길을 가다가 목이 마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길가에 있는 집에 들어가서 시원한 물을 한 잔 얻어먹었다 칩시다. 우리가 시원한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가 되겠죠? 갈증을 해소하게 해 준 것은 누구 은혜입니까? 우리가 얻어 마신 물의 은혜죠. 그런데 우리는 은혜를 누구한테 이야기합니까? 그 집주인한테 이야기하죠. “! 참 잘 먹었습니다.” 하지만 물한테 대고 물님아, 참 고맙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집주인한테만 고맙다고 하면 그냥 다 빚을 갚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진짜 우리한테 갈증을 해결해 준 것은 물이라고 할 수 있죠. 물 덕택에 갈증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대해서 고마워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쌀 한 홉하고 공기가 얼마간 있다고 하면 어느 게 더 소중합니까? 쌀이 고맙다고 보통은 선택을 하지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밥은 하루 안 먹어도 우리 사람이 살 수 있는 데 만약 공기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 사람이 살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공기에 대해서 고맙다고 생각을 안 합니다. 쌀 준 사람은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공기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생각을 안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도 보면 숨이 끊어지지 않습니까? 숨을 못 쉬게 되고 그럴 때 공기가 없어서 숨이 끊어집니까? 천지에 공기가 있는데 숨을 못 쉬는 겁니다. 이 조그만 폐를 채워줄 공기가 없어서 말하자면 우리 몸 안에 들이킬 능력이 없어서 숨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봄이 되서 누군가 산나물을 캐고 약초를 캐고 해서 그런 걸 선물로 받으면 그 선물을 준 사람한테는 참 고맙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것들이 산에서 자라나게 되었는지 생각을 안 하죠. 농사를 짓는 사람도 내가 비료를 잘 해서 곡식이 잘 자란다고 생각을 하고, 어부도 내가 그물을 길목에 잘 쳐놔서 고기가 잘 잡혔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곡식이, 그 물고기가 누가 만들고 길러냈는지 그것을 고마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작은 은혜는 알지만 천연자연의 큰 은혜는 잘 모르고 산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어버이신님의 수호 안에서 품 안에 안겨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제일 첫째가는 은혜가 어버이신님의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대은을 잊은 채 소은만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그냥 세상을 원망하고 남을 원망합니다. 너무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생각해 보면 천연자연 만물의 혜택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고 끝이 없는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이 은혜에 대해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봄이 오게 하고 꽃을 피게 하는 근원

피는 꽃을 봐도 꽃을 피게 해주는 그 근본되는 근원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몸도 젊고 건강할 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자기 것이라고 알고 쓰죠. 나이가 들어서 여러 군데가 아프고 원래대로 못쓰고 탈이 나죠. 이가 성한 사람도 이 하나 빠져보면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이를 차츰차츰 못쓰게 되면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씹어서 즐기지 못하게 되고 그렇죠. 또 귀가 어두워지면 아무리 좋은 소리가 있어도 듣질 못하지 않습니까? 또 눈도 나빠지면 좋은 경치도 못 보는 겁니다. 저도 눈에 노안이 와서 가까운데 것을 보려면 안경을 안 벗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굉장히 불편합니다. 전에는 그런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건강할 때는 우리 몸을 건강하게 쓰는 것을 공기처럼 잊고 있지만 병에 걸리고 나서 처음으로 우리가 건강한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어버이신님의 수호인 대은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매일매일 우리가 무사하게 살고 있는 것도 또 출직을 해서 저 세상에 갔다가 또 다시 이 세상에 오는 것도 다 어버이신님의 섭리로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큰 은혜 속에 우리가 안겨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은을 잊은 채 소은만으로

친필에도 나와 있죠?

인간은 모두가 신의 대물이야

무엇으로 알고 쓰고 있는가 (3-41)

이걸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그걸 제외하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은혜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길에 신앙하러 들어온 사람들도 처음에는 이걸 모르니까 우리 집안이 잘되는 것을 먼저 생각을 하죠. 병에 안 걸리고 걸린 병도 낫고 재수도 좋아지고 또 장사도 잘 되고 돈도 많이 벌고 여러 가지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고를 안 당하도록 지켜 주십시오, 병에 안 걸리도록 신님 수호해 주십시오.”하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보살핌을 벌써 받고 있고 지킴을 받고 있는 그 은혜를 바로 알고 느끼고 감사를 한 그 다음에 내 개인의 사정에 대해서 기원하는 것이 순서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월차제 근행을 보는 것도 다달이 살려지고 빌려주시는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조석근행도 나날이 살려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한 그 다음에 개인의 사정에 대해서 기원을 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뭉뚱거릴 수는 없습니다.

월차제 근행을 보면서 개인의 사정을 속으로 먼저 빈다 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바라더라도 기원을 하더라도 먼저 나날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인간끼리 일어나는 작은 은혜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그런 작은 은혜 때문에 어버이신님이 만물로써 우리한테 혜택을 베풀어 주시는 큰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도말씀에

대은을 잊은 채 소은만으로 지내고 있어서는 아무래도 안 된다. 나날이 리를 잊고서 리가 서겠는가, 리가 있겠는가. (1901. 2. 4)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해서 신상 수호 받았다고 하는 것도 신앙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수호를 받은 거지, 우리가 병을 고치기 위한 목적으로서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보답하는 가운데 그런 일이 천연자연으로 우리한테 나타나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의 신자분이 신앙을 오래 하셨는데 신상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장이 물어보기를 대물차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느냐라고 물어보니까 대물차물은 맨날 들은 건데 잘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빌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오늘까지 얼마만큼 은혜보답을 했습니까?”하니까 대답을 못 하더라는 겁니다. 그 은혜에 대해서 어찌 갚아야할지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수긍해서 그 은혜에 보답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니까 수호가 났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신님한테 은혜보답을 하는 일이란 남을 도와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걸 우리 천리교에서는 간단하게 히노끼싱이라 합니다. 남을 편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히노끼싱을 하는 겁니다. ‘사욕을 저버리고 히노끼싱이라 되어 있죠. ‘병을 고치기 위해서 히노끼싱을 한다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은혜보답이 아닙니다. 순서가 안 맞는 것입니다. 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열심히 히노끼싱 하다보니까 그 결과로서 우리가 수호가 나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 이 강의는 인터넷 유튜브, 천리교 고성교회에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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