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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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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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회 기초교리강좌

 

과연 기도 기원은 효과가 있는 것인가?

 

남상우(구만교회장)

반갑습니다.

저녁식사는 맛있게 드셨습니까?

작년에 교육부로부터 기초교리강좌 강의 의뢰를 받고, 평소 제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을 강의주제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제1강은 강의주제가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악은 왜 여태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있는가?”였습니다. 주제 그대로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여태껏 왜 인류는 전쟁과 기아 등, 개인적 불행과 나라간의 여러 가지 갈등으로 즐거운 삶을 영위하지 못할까 하는 종교의 근원적 문제, 즉 악에 대해 나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2강은 우리 부부는 왜 지지고 볶는가?”라는 강의제목으로 부부갈등에 대해 평소 생각과는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부부문제를 접근해봤습니다. 오늘은 조금 전 사회자가 소개해 주신대로 제3강의 강의 제목은 과연 기도 기원은 효과가 있는 것인가?”입니다. 오늘 제가 만일 여러분 앞에서 기도기원이 효과가 없다고 결론을 짓는다면 여기서 몰매를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준비한 강의인 만큼 기초교리강좌 담당자께서는 강의료에다 목숨수당까지를 더해서 혹시 제가 여기서 맞아 죽더라도 꼭 아내, 채지화 선생님께 전해줄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삼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박수)

조금 전, 목숨수당 운운하며 강의료를 더 달라고 했지만, 이 강의는 제목만 보더라도 교회에서 하기엔 너무나 진부하고 어쩌면 강의결론이 너무나 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도와 기원은 효과가 없다는 문제제기를 강의 서두에 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귀에 거슬리거나 때로는 종교의 집단이기심과 맞지 않는 강의 내용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점 유의하시어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근행 중 얼마나 많은 시간 공을 들여 기원을 하십니까? 한때 강습소서 강의를 할 적에 터전의 근행과 일반교회에서 올리는 근행의 차이에 대해 학생들이 물어오면, 저는 근행의 외형적 모습에서 보이는 차이도 이야기를 하지만, 기원시간의 차이에 대해서도 꼭 말씀드리는 편입니다. 무엇이든 빨리 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게는 진주님의 지겹도록 지루한 기원 시간이 낯설기만 합니다. 터전에서 조석근행 중 엎드려 기원드리는 동안 코고는 사람을 더러 보았을 것입니다. 왜 이처럼 사람들은 공을 들여 기원을 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누구든 뭐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고 싶어 하고, 때로는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 힘으로 안 되면 남의 힘까지도 빌리고, 그래도 안 되면 이번에는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구상의 그 어떤 종교의 신이라 하더라도 사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신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디를 통해 비로소 세상만사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남을 구제해야 내가 구제받을 수 있다는 이 길의 구제원리의 실마리를 찾기도 합니다.

 

먼저 기원의 정의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기도 기원의 정의에 대해 혹시 자신있게 말씀해 주실 분 안 계십니까? (기다린다) 종교학술발표회도 아닌데 답변이 조금 엉뚱하면 어떻습니까? 평소 생각대로 말씀하시면 되겠습니다. 빠른 강의진행을 위해 천상 지명을 해야 하겠네요. 두 사람 정도 지명을 하겠습니다.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왜 다들 책상아래를 쳐다보십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하고 눈을 마주 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는데 말이죠.(두 명만 지명한다)

이처럼 기도 기원이 뭡니까?’하고 물으면 저마다 조금씩 생각과 답변이 다릅니다. 기원을 사람에 따라서는 내가 믿고 따르는 절대자에게 나와 나의 이득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의(주로 가족) 이득을 보장해 달라고 비는 행위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분명 이 자리에 계실 것입니다. 정의의 대다수가 겉으로는 고상한 단어로 치장을 하지만, 결국 기원내용을 보면 내 자신과 이득범위가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극단적 이기심의 행위라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 국민모두가 하나의 종교를 믿는 하나의 나라가 있다고 합시다. 그 나라에는 10년 만에 한번 치르는 중요한 시험이 있는데, 거기에 합격하면 빛나는 미래가 보장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모든 수험생과 그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이 이 시험에 합격하게 할 수 있도록 기원을 할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경쟁률이 2:1이라면 와이로든, 빽이든, 신이든 아무튼 무엇을 믿든 간에 반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신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50%를 갈라내는 것일까요? 이것은 매우 특수한 설정 같습니다만, 실제로는 매우 일반적인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누구누구를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행위는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남들의 불합격을 비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내 자식이 취직을 하면 내 옆집 자식이 떨어지는데도, 이 둘은 같은 교회에 가서 같은 기도내용을 같은 신에게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짚신장사 사위와 우산장수 사위를 두고 있는 부모의 난처함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대놓고 어느 쪽에도 박수를 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바로 신님의 마음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론 기도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 자식이 잘 되기를 기도한 것이지, 옆집 자식이 잘못되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할 것입니다. 게다가 더러는 뻔뻔스럽게 신을 자주 찾지도 않으면서 꼭 극도로 필요할 때만 돈 몇 푼 올려두고서 자신의 욕심을 소원이나 기원이란 말로 멋지게 포장하여 신에게 애걸복걸내지는 대놓고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창피한 일이지만, 같은 노력을 했다면 신에게 기도하면 더 이룰 가능성이 크다고 어느 종교의 성직자든 간에 신도들에게 설교를 합니다. 하지만 포교사로서 조금만 물러나서 생각해봅시다. 만일 기도를 하면 할수록 더 큰 이득을 얻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믿음이 깊어질수록 해서는 안 될 금지행위가 저는 오히려 기원 기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 우리의 일렬형제, 그리고 내 이웃을 생각한다면 기도를 하는 족족 정말 다 이루어진다면 기도기원을 오히려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기도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기도의 효과는 실재하는 것인지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도를 통해 기도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가짐이나 심지어 신체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누구든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가 신에게 도달하여 그의 특별한 개입을 초래하고 그 결과 현실 상황이 달라진다고 믿기란 비신앙인에게 있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기도의 영향과 효과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것에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을 본 적이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약 1년 전에 했던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소원바위편을 보신 분이 계십니까? 경북 영천에 돌할매라는 돌이 있는데, 소원을 말한 뒤 그것을 들어 올리지 못하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유명한 돌을 말합니다.

 

프로그램 내용은 대체로 이러합니다. 프로그램 제작팀이 가짜 돌할매를 제작해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돌할매의 실제 무게는 10kg 남짓으로 성인남자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들 수 있는 무게지만, 실험 결과 소원을 빌기 전보다 빌고 난 뒤 돌이 더 무거워졌다고 한 사람이 12명 중 8명이나 됐습니다. 그러나 그 중 5(62.5%)은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고 3(37.5%)은 탈락을 했습니다. 가짜임에도 무게 변화를 느낀 건 무엇 때문일까요? 합격을 더 간절히 원하는 사람일수록 무거워졌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그 중에는 돌의 무게에 변화가 없다는 사람도 4명이나 있었습니다. 4명 중에도 합격자가 나오기는 했는데, 1(25%)이 있었습니다.

우연의 일치든 간에 실험의 결과, 소원을 빈 뒤 무겁게 느껴졌다는 사람들에서 합격률이 훨씬 높았습니다. 이는 바람이 간절할수록 시험에 더 집중하고, 이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돌의 무게에 변화가 없다는 사람에서도 1명이 합격했으므로 이를 우리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기원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오늘 이 곳에 모인 여러분들은 한번쯤은 간절히 소원을 빌거나 조상이나 신()께 기도를 올려본 적이 있을 겁니다. 현재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기도가 생활화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편이나 비록 비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거나 기도를 올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는 하늘을 감동시켜, 될 것도 안 되게 하고 안 될 것도 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종교를 가지고 있든 없든 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의도나 기도와 기원하고는 전혀 다르게 우리들은 어처구니없는 자질구레한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신의 창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의도가 어떻든 자신의 기도나 기원에 따른 수호가 되었든 간에 성공한 것만 그리고 잘된 것만을 오랫동안 기억하려 합니다. 만일 실패하고 배반당하고 좌절한 것만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인간이 만들어졌다면 그 누구도 온전히 평생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기원이나 로또의 행운만을 바라며 신을 찾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원성취의 기도보다는 실패했을 때의 그 좌절감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기원하고 신을 찾는다는 말이 적어도 저에게는 더 설득력이 있는 주장 같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하는 기원을 보고서 얌체기원이니 기복신앙이니 이기적인 신앙이니, 잘못된 기원이니 하며 남의 기도나 기원을 우리는 제 눈의 안경으로 너무나 쉽게 판단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월권이자 금물입니다. 기도는 신님의 수호와 상관없이 당사자에게는 이미 그 자체로 위로이며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며칠이고 엄청난 비가 그칠 기미 없이 쏟아져 내렸다 합니다. 바람까지 매섭게 불어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얼어 죽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때 인조 임금과 세자가 밖으로 나와 하늘을 향해 빌기 시작합니다. “하늘이시여, 오늘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저희 부자의 잘못이 크기 때문입니다. 백성들과 성안의 군사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벌을 내리시려거든 저희 부자에게 내려주시고 다른 모든 죄없는 백성을 보살펴주십시오.” 임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빌었다고 합니다. 신하들이 안으로 들어갈 것을 거듭 청했지만 인조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실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치고 밤하늘에 은하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군사들과 백성을 걱정했던 인조임금의 진심어린 마음이 하늘에 그대로 전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공명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을 때쯤, 촛불을 켜두고 49일간 하늘에 자신의 목숨을 연장시켜달라는 기도와 제사를 지냈는데, 기도 마지막 날 장수 위연이 갑자기 막사 안으로 들어오다 마침 그때 분 바람에 촛불이 꺼져버렸는데, ‘내일 내가 죽겠구나.’하며 통탄했고, 그의 말대로 그 다음날 수명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죽을 사람의 목숨도 연장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하기도 하나, 운을 거슬리지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교조전 제3장 행적편을 보면 즈찌 추사쿠선생님의 입신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내용을 요약해보면, 1863, 즈찌 추사쿠선생의 누이동생 구라의 정신병 신상에 대해 여쭙자, 교조님께서는여기 팔방의 신이 좌정하고 있는데 천리왕님이라 한다. 시장할 때 첫술에 배가 부르지 않듯이 그리 쉽게 낫지는 않겠지만 나날이 조금씩 나아질 테니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이에 가르쳐 주신대로 집에 돌아와 조석으로 박자목을 치며 나무천리왕님 나무천리왕님을 반복하며 기원(근행)을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자 다시 교조님께 찾아가 여쭙자, ‘기원(근행)이 짧다는 교조님의 말씀 한마디에 즉시 잘못을 사과하고 제대로 된 기원을 올리자 차츰차츰 나아서 곧 완쾌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교조전 일화편에서도 기원에 대한 것을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중 일화편 199한 살이야편을 보면, 1882년 혼다 세이씨의 신상을 보고서 교조님께서는 금생에서 쌓은 티끌이 아냐. 전전생에서부터 지고 나온 거야. 신님께서 반드시 구제해 주실 거야. 마음이 변해서는 안 돼.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결코 이 끈을 놓아서는 안돼. 전전생일은 모르니 용서해 달라고 기원하면서 신님께 사례를 드리면 되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작년 1119일에 있었던 제62회 기초교리강좌 내용을 정리해서 싣습니다. 이 강의는 유투브 동영상강의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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