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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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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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 강좌 61

 

교조님의 숨결 2 우리도 교조님처럼!

선인들의 신앙에서 느껴보는 교조님의 숨결

 

박용매(저산포교소)

 

반갑습니다.

대제 준비 히노끼싱에 피곤하실 텐데도 교조님의 숨결을 느끼려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리 그거 다 아는 건데! 뻔한 이야기인데 들어서 뭐하나? 교육? 그거 뭐 소용없어, 들을 때 그때뿐이야. 그 시간에 히노끼싱이나 하지 뭐. 내일을 위해서 피곤한데 잠이나 자지.’이렇게 말하기가 쉽죠?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있더군요.

학습이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재발견하는 것이고, 행동은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리처드 바크

 

우리가 말을 배울 때 엄마란 몇 번 들어야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백 번? 이 백 번? 천 번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다 아는 이야기, 뻔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인가 싶습니다.

 

저는 교조님의 숨결을 어떨까? 늘 느껴보고, 궁금해하는 사람입니다. 교조님이 어떤 분이셨던가, 어떤 가르침을 펼치셨나? 어떤 상황에선 어떻게 깨우치셨던가? 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호기심 많은 천성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주변의 제 연배 용재들이 거의 2대로 부모님의 신앙을 이어받아 들은 것도 본 것도 배운 것도 많은 데 비해, 저는 평신앙의 부모님을, 우리 소장님은 초대이기 때문에 더 그런 부분에 목말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교조님 일화에 관심이 많고, 선인들이 교조님께 어떤 깨우침을 받으시고 또 그 삶이 변화했는가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초교리강좌는 교조님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들을 위주로 준비하여 별로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다는 점을 미리 양해구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기록마다 달라 혼선이 일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정리한 것을 나누어, 함께 깨닫고 신앙의 기쁨을 얻고자 합니다.

 

1. 우메타니 시로베 +다네, 우메지로(아들), 쯔네(), 미치에(차녀-86.2 출직), 도미에(삼녀), 순수한 교리의 우메타니라 불림, 센바 대교회

 

등장하는 일화편

5. 흐르는 물과 같이, 82 어여차, 92. 부부가 함께, 106. 밥상을 차려놓고, 107. 태독은 지저분한 거야, 123. 사람이 목표인가, 126. 강사 목표로, 159. 신한줄기의 집터

170. 하늘이 근본, 184. 깨닫는 방법, 198. 어떤 꽃이라도 말이야

 

우메타니 규에몬의 3남으로 어릴 때 이름은 가쯔조였으나, 14세 때 오사카 하꼬야 마을의 미장공 우라타 고헤의 양자로 감, 우라따 집안은 오사카성을 쌓을 때 그 미장일을 맡은 명예로운 장인 집안이라 한다. 일반서민이 아닌 무가집안이나 큰 상인들의 집이 주거래처로, 기술자도 수 십 명, 제자도 많이 거느린 유복한 집안이었다.

시로베가 17세 때부터 집안의 14대를 이으며 시로베라 개명하였다. 1877년 양모가 자기 친정식구에게 우라따 가통을 잇게 하려고 하자, 처자를 데리고 나와 원래 성인 우메타니라고 성을 고치고 독립하였다. 첫째, 둘째아이는 연이어 요절하고, 3남이 우메지로로 2대교회장이 된다.

 

입신 동기는 친형의 눈병을 도움받고자 입신했다.

소문을 듣고 오사카에서 제자 한명을 데리고 출발하여 터전에 저녁 무렵, 참배하여 두명의 전갈인으로부터 교대로 다음날 새벽까지 태초의 이야기, 십전의 수호, 대물,차물, 여덟가지 티끌, 그리고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영혼을 흔드는 것 같은 감격을 느꼈다. 오사카로 돌아올 때 갑자기 인간의 몸은 신으로 빌려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10리도 안 남았는데 인력거를 빌려 타고 돌아왔다.

우메타니는 그 무렵 관절염(신경통)을 앓아 걷기가 불편하여 멀지 않은 곳도 몇 번이나 쉬어가며 가는 형편이었는데 터전까지 7~80리길을 쉬지 않고 걸어가서 밤새워 이야기를 듣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는 96킬로의 길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가르침이라고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대물, 차물의 교리가 생각나서 정말로 죄송스럽다, 몸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멀리 않은 곳인데도 자택까지 인력거를 타고 갔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이길은 부부 함께 신앙하라고 하시니 당신도 신앙해야 겠소.”하고는 함께 신앙하기로 맹세를 했다.

첫 참배 10일 후, 두 번째 참배에서는 7-8명의 사람을 데리고 참배, 세 번째는 30명을 데리고 귀참하였고, 3개월 만에 메이싱조라는 강명을 받을 정도로 열렬한 신앙을 하게 된다.

 

188210월 교조님께서 나라감옥에 구류당했을 때 이야기는 일화편 밥상을 차려놓고에 나온다.

그때 교조님께서 구류되신 당일 밤, 이브리이조를 통해 지도말씀이 계셨는데

아무 것도 걱정하는 길이 아니야, 금과 은과, 납과, 쓸모없는 쇠를 분리했다. 아무래도 걱정만 하고 있다. 열 명이라면 아홉 명까지 도망가고 남은 한명은 진실이야, 이것이 이바지의 고오끼가 된다.”

집터로 돌아오신 교조님께서는 시로베, 수고가 많았다.”라는 감사한 말씀과 함께 전갈인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교조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1883년 휴식소 역사가 진행되어 삼엄한 단속 속에서 오로지 히노끼싱을 하려는 생각에 여러 가지 방편과 수단을 강구해서 터전으로 돌아왔다가 공사 진척이 느려서 두 세 번 오사카와 집터를 왔다 갔다 한 일이 있을 때 일이다. “오사카에서 밥줄이 끊긴 미장이가 야먀토 지방까지 일하러 왔다는 분별없는 사람들의 험담을 들었을 때, 일화편에 나오는 신이 목표인거야.’에서 나오듯 그따위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이야 무슨 소리를 하든, 나는 신님을 목표로 한다는 마음을 굳게 정했다.

 

말년에 시로베는 교회와 터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내가 이렇게 까지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까지 이바지하고 있는 데라고 생각하며 일해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리는 남지 않는다.고 깨우치셨다.

 

1887516일 본석님께 숨수훈을 받았다. 시로베는 그때의 감격을 아내에게 적어서

정말 감사한 일이오,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한 일이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요. 교조님께서 숨수훈을 내려주셨다는 것을 어머님께도 말씀드리고, 11살 우메지로, 다카에게도, 히데타로에게도, 생후 4개월된 도미에까지 모두 들려주고 교조님께 깊이 감사를 올려주시오.”라고 썼다.

네 명의 어린 자녀에게도 그 기쁨을 전하고 하면서 신앙은 한사람 한사람 각자의 것, 한사람 한사람의 자녀가 장래 이길의 신앙인으로 자라 주었으면 했다. 신앙의 감격과 기쁨은 역시 어릴 때부터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구나 들려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쁨의 마음이 어린 아이의 마음에도 전해져서 자녀 한명, 한명의 영혼에 새겨 주고 싶다는 시로베의 어버이 마음이었다.

 

18877월 이찌노모토에 사는 오꾸니 시마란 사람이 병이 짙어 구제를 청하러 왔다. 그 무렵도 경찰의 간섭과 박해가 심하던 때이고 더구나 그곳은 경찰서가 있는 곳인지라 경찰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우메타니와 시미즈 요노스케가 나섰다.

그 때 내린 지도말씀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항상 위로 삼는 이 지도말씀입니다.

이길은 10, 20, 백리, 아무리 멀리 나갈지라도 언제나 진실한 신님이야, 진실한 신님이라 생각하며 신의 가르침만 굳게 지킨다면 멀리 나가도 불의에 고생은 시키지 않을 것이니, 앞에서든 뒤에서든 하늘에서 신이 지탱해 줄 것이니

이런 속사정을 알고 있다면 이 유명한 지도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가슴에 더 찡한 감동이, 전율이 일지 않을까요?

 

우메타니는 본부원으로 일찍이부터 해외 포교에 눈을 떠서 1896년 미국에 포교사를, 1910년 영국 런던 포교사를 내 보냈다.

교리에 정통해서 순수한 교리의 우메타니로 불렀다. 그의 이야기는 깨우침과 경험이 일체 배제되어 있다. 그것은 교조님의 말씀을 들은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성실하고 정직한 성격과 완고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시로베가 하는 이야기는 자신이 진실한 마음으로 집터를 찾아오는 시로베에게 한밤중인 12시가 넘어서부터 교조님께서 직접 그이 혼에 일러주신 신님의 진실한 이야기, 그것이었다.

 

나중에 본부원으로 터전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월차제나 대제를 전후해서 교조님께 직접 들은 진실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센바 신자숙고에 있는 시로베 방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로베는 밤 12시 전까지는 세상 이야기를 하다가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깨우쳤다. 방석을 치우고 겨울에는 화로를 방밖으로 내다놓은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로베가 깨우치는 교리는 어두운 인연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감격을 바탕으로 교조님께 들은 진실한 이야기를 자상하게 자신의 체험이나 깨우침을 일체 섞지 않고, 용솟음치는 밝은 빛을 사람들의 마음에 전하는 것이었다. 숨수훈을 신상자에게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교조님의 온기를, 교조님께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해서 용솟음치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라고 깨달아 한평생을 지켜 나갔다.

2. 마스이 이사브로오(아들, 아버지 동명) 마스이 기쿠(), 마스(여동생)- 무라타 스마로 개명,

 

10,너무 멀리 둘러서-너무 둘러서 왔군요. 여기 오면 다 계시는 데, 이때 아버지는 천식을 수호받았고 기쿠는 감사한 마음에 경단을 만들어 교조님께 가지 기뻐하시면서 하나를 집어 절반을 드신 다음, 남은 절반을 직접 기쿠의 입에 넣어주셨다. 기쿠는 격의 없는 부모와 자녀간의 정을 느끼면서 경단을 감사하게 받아 먹었다. “이 신님이야말로 참된 어버이라고 느꼈으면 몸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고 한다. 아버지 이사브로는 그 후 4년 뒤 출직 이렇게 출직하는 것은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이다, 앓아서 인연을 다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태어나면 건강한 몸으로 되돌려 주마라고 교조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조님 말씀대로 아버지는 아들 야쓰마쓰(교조님이 지어주신 이름)로 환생하여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았다.

16,자식이 부모를 위하여(15)-도움받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도우려고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애쓰는 마음, 이것이 진실이야, 진실은 신이 받아들인다) , 50,고스케와 스마, 57,아들은 아버지가 데리고(야오이 나라조-, 소고로-), 78,부자집터, 122, 리만 있으면, 137, 말 한 마디가 소중해,(말 한마디가 중요해, 내는 숨, 들이는 숨의 조화로 집안이 화목해 진다. 자네는 밖에서는 자주 친절하고 남들과도 잘 지내는 사람이지만 부인에게는 잔소리만 하고 화를 내며 나무라는 데 그것이 제일 나쁜 짓이야. 그것만은 앞으로 결코 하지 말도록.) 160, 감고르기,

161, 자녀가 즐거워하는 것을(어버이는 귀여운 자녀를 조금도 괴롭힐 생각은 없는 거야. 이신은 귀여운 자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지 않는 거야. 이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자녀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아야만 신도 기뻐하시는 거야.)

 

*하루미치(治道) 대교회

 

나이어린 신앙인, 14세 때부터 아버지 신상 수호받기위해 교조님께 어머니와 다녔고, 15세 때 처음으로 혼자서 어머니의 신상을 도움받고자 교조님을 찾아갔다.

교조님의 가르침 그대로 실천했기에 평생 수호부를 받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교조님께서는 이사브로야, 너는 마음속에 항상 진실을 명심하여, 내가 말한 것들을 잘 지키고 있으므로, 수호부는 필요없는 거야.”깨우쳐 주셨다.

이사브로는 자식이 생기면 이 길을 걸어가는 데 여러 가지로 지장이 있으니 좀 더 있다 가겠습니다.” 장가를 가지 않으려고 했을 때 교조님께서 나를 보렴, 내게도 남편도 자식도 있다. 또 남편도 섬겨보았고 자식도 키워보았다. 그런데 자네라고 해서 그걸 못할 리 있겠는가. 나를 보렴.”하시며 설득하시고 중매를 하시므로 결혼을 하셨다.

 

1882,3년에 경찰에서는 아무리 말려도 도리어 신자가 불어나므로 교조님을 어딘가 먼 곳에 보내려고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잔뜩 걱정하고 있었다. 우메따니 시로베를 만나 시로베씨는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교조님의 뒤를 따를 작정이오, 부모니 처자식이니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나도 그래요, 교조님이 가시는 곳이면 설령 이 세상 끝이라도 따라 가겠소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결의를 굳혔다. 이렇게 목숨을 건 신앙을 하였다. 초대 선생님들은 거의 다 이렇게 목숨을 건 신앙을 하며 이길을 지키고 이어 나왔다.

 

*부인 마스이 오사메=니시오 나라기쿠 (엄마 니시오 유키는 다마에 출산 때 교조님을 배행하여 뵤도지 마을로 감) 35. 붉은 옷, 37. 기특하게 일을 잘 하는 구나.

이사브로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성격, 조심성이 많은 소극적인 사람, 집안사람과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일 없이 대했다. 결코 다른 사람에게 반말하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신앙을 반대하며 험담하는 동네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끌려갔다. 신앙 문답을 하자는 것이다. 문답에서 이사브로가 이기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이길 신앙을 하고, 지면 마을에서 쫒아내겠다는 것이었다. 마스이 이사브로는 평소에도 마을친구들에게조차 존칭을 쓸 정도로 예의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논쟁을 해서 도저히 이길 승산이라곤 없었다. 신앙문답 장소에서 이사부로는 한마디도 논박하지 못하고 거의 패하게 되었다.

그렇게 궁지에 몰렸을 때 돌연 이부부로의 입에서 월일의 신님은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이것을 시작으로 교조님께 들었던 교리를 막힘없니 전했다. 그때까지 고자세였던 마음 사람들이 신념에 넘친 당당한 그 이야기에 굴복해서 이사부로가 신앙문답에서 이길 수 있었다. “큰 마음을 가지면 어떤 섭리도 한다. 만일의 경우 월일의 대리라고도 말했다” 1902.7.23.

야마모토 리사브로오(추우까 대교회) 씨름판에서 가슴을 다쳐 3년 동안 누워서 지내다 수호받은 이야기(33, 지역을 잇는 다리) 1877년 리사브로는 가와찌에서 타종교 사람의 반대에 부딪쳐 크게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명쾌한 답변을 하여 상대방을 압도했다는 것, 리사브로는 의기양양하게 교조님께 와서는 어제는 참 유쾌했습니다. 상대도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신이 말하게 해 준 거야, 자기가 말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신님이 듭셔서 말하게 해 준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교조님께 교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술술 나온 것이지 아무 진실한 정성이나 노력도 없는 사람, 욕심만 차 있는 사람에게 이런 말씀이 나올리는 없다.

 

1874년 붉은 옷을 입으신 교조님께서는 전갈인 중에서 성실한 사람에게 수훈의 리를 내려주셨다. 첫째 숨은 나카타 기사브로(44), 둘째 익힌 것 수훈은 마쓰오 이치베(40), 셋째 세 살 손춤은 쓰지 추사쿠(39), 넷째, 착실히 감로대 손춤의 수훈은 25세의 이사브로가 받았다. 1876년 결혼하였다.

 

입신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마쓰무라 기치타로(다카야쓰대교회)가 터전에 돌아와 초대진주께 인사를 드리러 가면, 진주님은 어김없이 마스이를 불러라고 하셨다. 교리의 요점을 이사브로가 전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때때로 동석한 일이 있었던 히노라 노라조(고리야마 대교회)는 마쓰무라씨 덕분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사브로는 말하다가 하이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교조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나 자신도, 내 마음에 일러주며 예 예 하고 납득시키고 있는 중이야,”라고 했다.

교리에 밝아서 여러 곳으로 교리를 전하러 다녔는데, 본석께서 내리는 지도말씀을 해석하고 신의를 깨닫는 데 일인자였다고 한다. 어느 여름 마스이가에 열심히 신앙하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이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당시 미시마마을의 모기는 극성스러웠는데 이야기를 듣던 청년이 무심코 모기를 때려잡았다. 그 순간, 이사부로의 이야기를 중단되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모기가 앉았다고 해서 그것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진지함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 청년이 잘못을 빌고 나서도 약 두 시간이 지나서야 심야의 이야기가 새로 시작되었다.

 

교리에 밝아서 여러 곳으로부터 이야기를 부탁받아 갔다고 한다.

교조님의 이야기의 요점을 전할 때에도 이 이상 이야기를 하면 마스이의 깨달음, 마스이의 이야기가 된다며 너무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조님 마지막 노고를 나까타 기사브로, 마스이 이사브로와 같이 10일간 함께 하였는데 그때 워낙 고생을 많이 하여 나까타는 그해 6월에 출직하였다,

 

교조님께서는 결코 어려운 것, 필요없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나날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마음의 길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나날이 항상이라는 마음을 굳게 정해서 교조님께서 깨우쳐 주신 요점을 마음에 잘 다스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항상 이야기를 해 줘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감사한 이길의 리를 깨우치지 않으면 안된다.본부원 강화집

신상을 구제받는 근본은 단노, 단노가 없어서는 구제받지 못한다. 높은 마음으로는 수호를 받지 못한다. 마음을 밑바닥까지 낮출 때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우마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기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단노를 할 수 있다.’

인간의 머리는 둥글다. 사람도 지위가 올라가고, 우두머리가 될 사람은 머리와 같이 둥근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성을 내거나, 모가 나서는 오래 가지 못한다.’ 이사브로가 교화 중에 말한 교리이다. 마스이 고시로, 선배 언행록에서.

 

3. 후카야 겐지로(겟코겐상-좋아좋아, 고맙다고맙다, 만족스럽다)

 

등장하는 일화편

141,마디에서 싹이 튼다. 142,좁은 것이 낙이야, 143, 자녀가 귀엽다,(1년이 지나면 1년의 리가 있고 2년이 지나면 2년의 리가 있다. 3년이 지나면 어버이가 된다. 어버이가 되면 자녀가 귀엽다. 어떻든 자녀를 귀여워 해다오, 자녀를 미워해서는 안 돼. 이 말씀을 듣고 신자들은 더운 소중히 여겼다. 손수 초밥을 만들거나 떡을 빚는 등 정성을 다해서 신자들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148,맑은 곳으로

*메이세이사에서 탈퇴하여 시도회를 만듬-후까야, 우노 젠스케, 사와다, 야스라, 나카니시,

 

차남으로 어릴 때부터 밝은 정신에 신에 깃든다는 신조로 부지런하고 밝고 명랑한 성품으로 신앙에 대한 일이라면 겐지로에게 물어라할 정도로 신앙에 관심이 많고 신심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받아들이는 성품, 재미있는 인품과 차별없이 신자를 귀여워하는 태도, 천성이 밝고 명랑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13살부터 부모님께 밥을 짓게 하는 일이 없었고 17살 때부터는 부모님이 안심할 수 있도록 가운이 번성할 것을 기원하며 한평생 냉수욕을 할 것을 맹세하고 실천, 오전에 번 돈은 생계비로 오후에 번 돈은 모두 부모님을 위해 사용했다. 18819, 동료의 권유로 입신한다.

 

겐지로는 물과 불이 첫째의 리라는 가르침이 마음을 끌었다. 대장장이였기에 아무리 좋은 재질의 금속과 뛰어난 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달구고 두드려도, 물과 불의 가감이 나쁘면 좋은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과 불이 첫째의 리야!”하고 자신의 직업의 체험에서 깨달아 무척 감격한다. 또 하나는 노래에 맞추어 춤추는 즐거운 신앙형태로 선천적으로 밝고 즐거운 겐지로 마음에 큰 자극을 준다.

 

이렇게 입신하여 다음해 봄에 달궈진 쇠부스러기가 오른쪽 눈에 튀어 들어가는 일로 실명할 뻔하다가 도움받아서 이 신님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치겠다는 신앙작정하게 된다.

후카야 겐지로의 시도회(18843)1900년대 초에 이미 5105호 강사까지 생겨났다. 188799일 수훈의 리를 받고 시도회 일과 구제에 바빠서 거의 매일 밤 교토시내나 주변마을, 혹은 시가현 오쓰방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새벽 1~2, 일행이 앞에서 손을 끌고 뒤에서 허리를 밀어주는 가운데 졸면서 돌아오는 일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감사하게 받아들이던 겐지로의 즐거운 신앙은,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따라 어떤 일이든 실천한다.”

신한줄기의 정신과 의도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면 어버이신님께서는 틀림없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시는 결과를 수호해 주신다.”고 하는 절대적인 신념에서 솟아나는 즐거움과 밝음이었다.

 

1889218일 가와라마치 분교회 설립, 고가지교회, 1890년 우지타하라 91년 니시진, 고시노꾸니, 가메오카, 고토, 시가, 1892년 닛코등 계속 교회수가 불어나서 33개의 대교회가 생겨났다.

 

겐지로는 터전에서 자린-자녀를 너무 사랑해서 어리석은 언동을 하는 부모를 일컫는 일본 속어-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리의 자녀를 사랑하여 어버이 마음으로 육성했다. 그런나 단순히 어버이마음을 베풀기만 하고 귀여워만 한 것이 아니라 리에 대해 엄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일례로 한 출장소가 지교회로 승격했으나 좀처럼 덕을 쌓기 어려운 상태였는데 그 교회장은 세와인으로 대교회 준원이고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으므로 가능한 적은 금액으로 덕을 쌓으려는 생각에서 겐지로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겐지로는 차츰 얼굴빛이 변하더니

당신은 더 현명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대단한 바보로군! 지금까지 가르쳐 준것들은 대체 어디로 들은 것인가. 신님께서 출세시켜 주려고 하시는 데 그 값을 깎을 셈인가, 작은 리로 때우려는 생각은 세상 보통 사람들의 근성이야. 이길은 무거운 리라고 가르친 것을 잊었는가하고 크게 꾸짖었다. 부인 하나가 중재를 해서 겨우 사죄를 할 수 있었다.

그 지교회 회장은 참회를 하고 교회 역원과 상담한 뒤 빌려서라도 내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하나가 이것은 노회장님(겐지로)이 주신거야.하며 두꺼운 돈다발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겐지로의 신앙자세 중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어버이한줄기의 신앙에 철저했다는 것이다. 겐지로 개인이 받은 신상, 사정에 대한 여쭘의 지도말씀만도 70개가 넘는데 이것은 무슨 일이든 교조님께 여쭌 뒤 성인의 발걸음을 내 디뎠던 신앙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어버이의 의도를 잘 깨달아, 어떻든 어버이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 겐지로의 신앙의 근본이었다.

 

이러한 겐지로의 신앙자세를 기특하게 생각해서인지 본석은 특히나 겐지로를 귀여워했다. 그래서 본석이 가와라마치를 5번이나 찾은 것으로도 알 수 있는데 역시 겐지로의 순직하며 즐겁고 밝은 마음과 신앙이 본석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본석 재세시에는 시중의 들기위해 본부원들이 교대로 집터에서 묵었다. 겐지로는 이 당직을 설 때에 본석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기위해 여러모로 마음을 썼다. 겐지로가 집터로 올때에는 언제나 문밖에서 아호다라쿄(불경의 훈독을 흉내내어 세태를 우스꽝스럽게 풍자한 속요)에 재밌는 가락을 붙혀서 부르며 들어오므로 본석은 이 노래소리가 들리면 , 보인다, 보여, 후까야씨가 보여‘”하면서 손뼉을 치며 기뻐하셨다고 한다. 본석의 상대로 장기를 두었다. 입담이 더 재밌었는데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노는 것 같았다. 겐지로는 이야기를 잘 하기로 유명, 당직이 아닐 때도 본석은 겐지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심부름꾼을 보냈다. 그럴 때는 자다가보 벌떡 일어나 본석을 찾아가 손짓, 발짓, 성대 모사등을 섞어서 겐지로 특유의 우습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여주었다고 한다. 본석은 겐지로가 도쿄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그날 밤, 겐지로를 불렀다고 한다. 겐지로의 일생은 세 살 때 마음~!

 

188510월부터 근행장소를 마련했던 881224-33개월-까지 절이 많던 도쿄 한가운데서 절의 본당을 빌려 당당히 근행을 올리고 신명을 봉창하였다. 그때는 본교의 강들과 절의 충돌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시기였다. 매달 4,9가 들어간 날 근행을 올렸는데 4,9,14,19,24,29. 각 강사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악기는 박자목, 제금,, 현종, 피리, 장구, 해금, 월금으로, 손춤은 인원 제한없이 키순으로 서로 마주보고 서서 올렸다. 언제나 인원이 백 명을 넘어서 정원까지 사람이 넘칠 정도였고, 2좌나 3좌의 손춤을 올려서 손춤경연장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감기에 걸려 고열로 고생하던 별과생을 병문안 가서

곧 터전의 흙이 되겠습니다.”- “그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네가 지금 본고장에서 감사한 영원한 리를 받아 이길의 도구로서 각지각처에로 나가야 할 중요한 시점에 신님께서 각인을 새겨 주시는 거야. 굽은 곳이 있어서는 도구가 될 수 없으므로 그것을 고쳐 주시려는 어버이마음에서 손질을 하시는 거야, 바로 이것이 고향으로 가져가야 할 선물인 거야, 기쁜 마음으로 감사드리게.

 

구제의 비법서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조르는 한 청년의 말에 엄한 얼굴로

너는 정말로 비법서를 보여달라고 한 것이냐? 비법서를 보는 것만으로 구제를 할 수 있다니 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능력이 좋구만! 나에게는 도저히 그런 능력이 없네. 어떻게 하면 구제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신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지도 몰라 무던히 마음을 쓰고 애를 쓰며, 저기에서 머리를 부딪치고, 여기에서 벽에 부딪치고 울고 싶어도 울수 없는 일을 겪는 가운데, 차츰차츰 겨우 구제할 수 있게 된 거야.”

-이것을 읽고 저는 희망을 느낍니다. 구제의 달인이라는 겐지로 선생님도 처음에 저렇게 어떻게 하면 될지 몰라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일을 겪으셨구나, 결국 내가 구제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1912~3년에 한국과 중국에서 많은 신자들이 돌아와 잘 자리가 마땅찮아 뒤뜰 뽕나무밭에서 천막을 치고 자야 할 형편일 때

모처럼 먼데서 돌아온 사람들을 천막에다 재우다니, 내방도 있고 사무실고 있다. 나도 방을 비우마, 사무실과 너희들 방 모두 비우라, 그리고 너희들은 제전기간동안 천막에서 지내라, 우리는 언제나 큼직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 이럴 때 한번쯤 천막에 자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이 말을 듣고 교회장, 신자들은 감격했다. 특히 혼지마 대교회의 가따야마 요시조는 그렇다면 신자 숙소를 더 크게 지으면 더욱 좋겠다고 마음작정하여 한국과 중국을 직접 순회하고 신자의 헌금을 모아 겐지로에게 바치니 다른 교회들도 한마음이 되어 지금의 신자숙소가 지어졌다는 것이다.

1890년 봄, 고시노꾸니 대교회를 설립한 다까하시 나오히데가 겐지로를 찾아왔을 때 겐지로는 순순히 순서의 리를 깨우쳐 주었다고 합니다. 다따하시는 원래 쯔루가 지방에서 경찰권을 장악했던 무사로서 이때 천리교를 연구해 보려고 왔었는데 겐지로의 설교에 감복해서 그렇다면 저도 쯔루가에 돌아가 신앙하겠습니다.” 결심을 밝히자 다까하시씨, 쯔루가 지방은 당신에게 맡기겠소.”

인사를 하고 나갔는데 겐지로는 맨발로 현관으로 내려와 다카하시의 신발을 나란히 챙겼다. 그 행동에 놀라

아니,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저에게 순서의리를 들려 주셨습니다. 신자인 제가 회장이신 선생님의 신발을 챙기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는데, 선생님이 저의 신발을 챙기신다는 것은 리가 어긋나는 게 아닙니까?”

다까하시씨, 단 한 두 시간의 이야기로 그 정도 깨달으셨다니 정말 고맙소. 그러나 세상에는 당신처럼 분별이 빠른 사람은 잘 없어요. 모두 어린애와 같습니다. 당신도 이제부터 쯔루가에 돌아가 신자를 키우게 되겠지만 어버이가 자식을 키우는 것처럼 귀엽게 돌봐야 합니다. 앞으로 모든 사람의 신발을 챙겨주도록 하십시오.” 겐지로의 따사로운 어버이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선인들의 신앙 발자취에서 느끼는 교조님의 숨결

따스하다.

용솟음- 밝게 깨닫고 단노하기

3. 어버이마음

* 선인들의 신앙태도

교조님의 가르침만 전한다.-자신의 깨달음이나 경험을 섞지 않는다.

무엇이나 교조님께 여쭤서 한다.-겐지로, 다카이,

목숨을 걸고 성진실한 마음으로 신앙을 한다.-한줄기마음

 

*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교조 일화편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교조전 일화편이나 교조전을 읽으며 선배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인물별로 정리해서 보고, 서로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고 하는 게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로 함께 나눠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알아야 이해하게 되고 이해해야 사랑하게 된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이길을, 교조님을 얼마만큼 아느냐에 따라 그 만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직접 교조님을 뵙지 못하지만 선배선생님들께서 남겨놓으신 교조님의 일화나 교조님의 직접 제자였던 선배선생님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참 감동스럽고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는 느낌이 있어 좋습니다.

강의 준비 공부를 하면서 교조일화편, 그리고 이 선배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번씩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끼기도 하면서 선배선생님들의 신앙을 제 몸으로 직접 느끼는 고마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써, 교조님의 제자로서 제 행동, 마음을 점검하게 되고, 구제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우게 됩니다.

다음 제가 맡은 기초교리강좌 시간에도 이런 생각으로 계속 선인들의 이야기를 공부하여 나눌 생각입니다. 여러분들과 계속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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