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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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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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을 연 첫 걸음, 극빈(極貧)

이영수(저산포교소장)

 

여는 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지향하는 현대사회, 편리와 풍요를 지향하는 오늘날. 우리는 이글거리는 물욕에 갇혀있다. 이런 물욕에 허우적거리는 현대인들에게 교조님이 걸어주신 극빈을 이야기 한다는 게 부담스러울지 모른다.

사실 누구 하나 가난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다. 나부터 가난을 바라지 않는다.

교조님이 남기신 모본의 첫걸음, 가난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는 과연 있는 것일까.

 

이길의 시작은 입산수도도 아니고, 치열한 공부도 아니다. 주유천하하며 견문을 넓힌 것도 아니고, 가르침을 전하며 사람을 이끌어 온 것도 아니다. 가족 품을 떠나지도 않았다. 때때로 곳간에 들어가서 홀로 계시기도 하고, 밖으로 나왔을 땐 단지 나누고 베풀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이 지나쳐서 결국 가난하게 되고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맨 밑바닥 가난, 즉 극빈에 다다르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서 떨어진 극빈의 길이란 어떠했을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어려움 그 자체 아니었을까. 차라리 도를 구한다고 산으로 광야로 훌쩍 떠났다면 떠난 입장인 사람에게 홀가분함도 있을 것이다. 남아있는 가족도 속이야 쓰리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엷어지면서 무덤덤해져 갈 것이다.

그런데 집을 떠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 차례차례 조금 조금씩 철저하게 나누고 베풀면서 떨어져 가신 가난의 길. 12년도 아니고 3510년도 아닌 무려 20여년.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상상도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언제나 밝게 즐겁게 걸어주셨다. 그런 길을 지나 가난의 맨 밑바닥, 극빈 속에 떨어졌을 때도 여전히 밝고 용솟음치시면서 비로소 펼쳐주시기 시작한 가르침은 참으로 감동적이고 참으로 고귀하고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다.

 

가난’ ‘자에도 가보지 못한 주제에 교조님이 걸어주신 극빈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이 정말 부끄럽고 죄송스럽다.

그렇다고 교조님께서 이길을 연 첫걸음인 가난, 극빈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용기를 내어 지극히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2. 교조님이 걸어주신 극빈의 과정

입교 직전인 소위 天保 3년에서 8(18382-1837)까지 무려 6년간 천보대기근이라는 게 있었다. 흉작, 쌀값폭등에, 농민폭동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기근, 빈곤, 역병이 유행처럼 번져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오오시오헤이하찌로오(大塩平八郞)의 난도 일어나는 어수선한 시기였고, 고통을 당하는 백성들이 넘쳐났다. 이러한 시기 끝자락에 천리교가 입교를 하게 되었다. 교조님 주변에 어려움으로 헐떡이는 영세민이 많았던 셈이다.

입교 당시 나카야마 댁은 15-6 정보의 땅을 소유한 땅부자인 소문난 자산가였다. 쇼야시키 마을사람들은 나카야마 댁의 땅을 밟지 않고서 다닐 수가 없을 정도였고, 쌀 생산량은 30여호 마을의 1/3에 이르렀다. 창고가 세 개로 하나는 도구 창고, 또 하나는 쌀창고, 다른 하나는 솜창고였다.

입교 이후 교조 50년의 모본 가운데 전반 25년은 가난에 떨어지는 길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교조님께서 끊임없이 베풀어주신 나눔은 가뭄에 단비처럼 가난한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었을 테지만 그 많던 재산이 사라지고 세인들의 비방조롱을 받고 외면까지 당할 때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가족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교조님께서 어떤 과정을 거쳐 극빈에 빠져 가셨는지 먼저 <교조전> ‘3장 행적편을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교조전 19-40쪽 요약)

 

월일의 현신이 되신 교조님께서는

극빈에 빠져라.”

라고 재촉하시는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따라, 시집오실 때 가져온 물건들을 비롯해서 곡식, 의복, 금전에 이르기까지 차례차례 어려운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다.

 

그리하여 가재도구에 이르기까지 모두 베풀어서 없앤 뒤의 어느 날, 각한(刻限)말씀에

이 집을 헐어라.”

라는 분부가 내렸다. 어이없는 일이라 이에는 젠베도 쉽게 승낙하지 않았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이상하게도 신상을 앓게 되어, 20일간이나 식사도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셨다. 친척들을 불러 모아 의논한 다음, 여쭈어 본즉,

오늘부터 남동쪽 모퉁이의 기와를 헐어라.”

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마에가와 한자부로(前川半三郞)와 하인 우헤이(宇平) 두 사람이 분부대로 기와를 헐기 시작하자, 교조님의 신상은 즉시 나았다.

그로부터 15, 6일 지난 무렵 또 심한 신상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보지도 못하는 심한 증상이었다. 또다시 친척을 불러 모아 의논한 다음,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여쭈어 보니,

북동쪽 모퉁이에서 기와를 헐어라.”

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을 들은 친척들은 신이 인간을 괴롭힐 리 없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그 말씀에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온갖 치료를 다해 봤지만, 아무런 보람도 없이 교조님의 병세는 날로 더 악화되기만 했다. 친척들은 입을 모아 쓸데없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말씀대로 따르자, 교조님의 통증은 즉시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내일은 이 집의 지붕 벽(高塀)(1)을 헐어라.”

라는 계시가 있었다.

 

지붕벽을 헌 후 친척과 친지들과 의가 상하여 멀어졌고, 동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저 사람도 마침내 정신이 나간 게 아닐까. 아니면 잡귀에 홀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무튼 젠베는 변변찮은 사람이야.’ 하고 조롱과 비방을 했다. 그중에는 나카야마 댁으로부터 상당한 은혜와 교조님의 자비를 받은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마저도 세간의 소리에 맞장구를 치며 비방과 조롱을 일삼았고, 끝내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교조님께서는 남을 구제하시려고 전답까지 팔아서 적선을 계속하셨다. 그런 가운데 1853222, 젠베가 66세를 일기로 출직했다.

 

일찍이 팔려고 내놓았던 나카야마 댁의 안채도 사려는 사람이 있어서 드디어 팔리게 되었다. 안채를 헐어낼 때, 교조님께서는

이제부터 세계의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축복해 다오.”

라고 하시면서, 기꺼이 인부들에게 술과 안주를 내놓으셨다. 사람들은 이처럼 즐겁게 집을 헐어 보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3)

1855년경에는 마지막 남은 3정보 남짓한 전답을 모두 같은 동네에 사는 아다치 주스케(足達重助)에게 연부로 저당을 잡혔다.

 

교조님 56세부터 약 10년 동안은 참으로 어려운 고난의 길이었다. 한창 시절의 슈지도, 한창 피어나는 처녀 고칸도, 단 하루도 좋았다고 생각되는 날이 없는 가운데, 오로지 교조님께서 의도하시는 대로 순직하게 따랐다.

 

60 고개를 넘으신 교조님께서는 더욱 혹독하게 몰아치는 가난과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

 

여름에는 지독한 모기떼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가랑잎과 나뭇가지를 태워 겨우 추위를 견디면서 밤늦게까지 일에 골몰하셨다. (5)

고칸이 어머님, 이제 쌀이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자, 교조님께서는

세상에는 머리맡에 먹을 것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먹으려야 먹을 수 없고,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들은 고맙잖아.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어버이신님께서 고맙게 보살펴 주고 계시는 거야.”

라고 타이르시고,

아무리 서글퍼도 서글프다 하지 마라. 거지 노릇은 안 시킬 테니.”

라고 격려하셨으므로, 자녀들도 쓰러지려는 마음을 되살려 교조님을 따랐다.

그처럼 생계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밥을 줄이고 옷을 벗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예사였다. 겨우 생긴 쌀 다섯 홉을 마침 문 앞에 동냥 온 거지에게 아낌없이 주신 것도,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입고 있던 덧저고리를 벗어 주신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 길 시작은 집 헐기부터 비롯된 거야. 정말 경사 났다 경사 났다고 하며 술과 안주를 내놓고 자축한 일을 생각해 보라. 별스런 이야기야, 별스런 이야기야. 자아 자아, 그러한 데서 오늘날까지 시작해 왔다, 시작해 왔다. 세상에서는 부자라도 오늘부터 부자유스런 날도 있다. 아무것도 아닌 데서 크게 되는 날이 있다. 집 헐기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1900. 10. 31)

 

이야기를 즐겁게 해 다오, 즐겁게 해 다오. 오랫동안 이 길을 데리고 걸어서, 30년 동안 차가운 밤에 쬘 것도 없었다. 이쪽에서 가지를 꺾고, 저쪽에서 가랑잎을 긁어모으며 걸어왔다. 신의 말에 거짓은 없겠지. 자아 자아, 이쪽에서 나온다, 저쪽에서 나온다.”

(1896. 3. 31)

 

 

3. 극빈의 과정 속에 담겨있는 가난의 참 의미

이런 과정을 거쳐 완전히 맨 밑바닥 가난까지 떨어지셨다.

세상 상식의 눈으로 보면 몰락하는 양반가의 모습, 양반이 완전 쌍놈으로 떨어지는 비참한 모습이다. 세상 기준은 집안의 번창, 경제적 번영, 오래된 질서유지다. 하지만 교조님의 행동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그리고, 가난이 극에 달한 이후에야 비로소 순산구제를 시작하시면서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가르침을 펼쳐나가기 시작하셨다.

그렇다면 이렇게 극빈의 과정으로 떨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가르침의 정수는 무엇일까.

 

1) 100% 어버이신님께 의지하는 일

극빈에 빠지는 것은 물질에 의지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100% 어버이신님께 의지하는 일이다.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는 이야기 속에서는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물밖에 먹을 것이 없는 가난의 맨 밑바닥에서도 물이 있다는 감사함’ ‘물맛을 느낄 수 있는 몸이 있다는 고마운 수호야말로 모든 수호에 앞선 근본 수호임을 일깨워주시는 것이 아닌가. 이런 근본적인 수호를 제대로 알 때 언제 어느 때라도 스스로 용솟음 칠 수 있고, 주변 사람들도 용솟음치게 할 수 있다.

결국 교조님께서 걸어주신 극빈의 길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물의 감사함과 물맛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 즉 어떤 상황에서든 신의 수호를 알고, 감사를 알게 하는데 있지 않았을까. ,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를 알고 산다. 이것은 100% 신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2) 마음을 맑히고 즐거운 삶을 열게 한다

극빈에 빠진다는 것은, 예컨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소위 벌거숭이가 된다는 의미이다. 뭔가 남겨 놓는 모습이 아니다. 몽땅 내려놓는 모습이다. 이것은 마치 목욕탕에서 몸을 깨끗이 씻기 위하여 옷을 벗는 것과 같다. 옷을 벗는 것은 목욕을 하기 위함이다. 이때 펜티나 브래지어를 남겨놓고 목욕탕에 들어가지를 않는다. 몽땅 다 벗고 들어간다. 물론 옷 벗는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몸을 깨끗이 맑히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극빈에 빠진다는 것은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말이고, 집착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가볍고 밝아진다. 이렇게 되면 즐겁지 않을래야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저절로 즐거운 삶이 열린다.

물질본위 금전 만능주의로는 즐거운 삶이 열리지 않는다.

신악가에 사욕이 한이 없는 진흙물이야 마음이 맑아지면 극락이로다’ (10장 넷에)고 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덕이나 분수를 생각하지 않고 욕심을 낸다.

30평 집을 살 형편인데도 40평 집을 사고, 자동차는 2000cc 살 형편인데도 기어이 3000cc를 사면서 빚을 낸다. 남이 크고 좋은 것을 가지면 못 견뎌하고, 기회만 있으면 필요 이상의 과시욕을 드러낸다. 사욕이 한이 없는 진흙탕 속에 처박혀 사는 모습이다. 마음이 어둡고 어깨가 무겁고 늘 쫓기면서 살게 된다. 부자유하다.

 

만약에 30평 살 수 있지만 25평에 만족하고, 2000cc 살 수 있지만 1500cc에 만족할 수 있다면 마음이 밝고 어깨가 가볍고 여유롭게 살 수가 있다. 여유가 있으니까 나누고 베풀면서 살 수도 있고, 자유롭다. 이게 바로 극락같은 삶이 아닌가.

현대는 풍부함과 편리함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현혹되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끊임없는 욕망을 추구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근원은 무시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상실하고 있다. 이것은 사욕에 고삐가 풀린 채 삼가는 마음을 잃어버린 탓이 아닐까.

 

삼가는 이길에서 말하는 즐거운 삶의 키워드 세 가지 중 하나다. 감사 겸허 서로돕기 이 세 가지를 즐거운 삶의 키워드라고 하는데 여기서 겸허는 일본어 쯔쯔시미를 번역한 말로,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말 삼가에 더 가깝지만 명사가 아니라서 채택하지 않는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절제와 겸허를 다 포함하고 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삼가란 자기를 절제하고 상대를 세우는 가운데 함께 공존하려는 마음씀이다. 자기 욕망을 통제하고, 주변 사람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이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낮추어서 남을 세우고 받든다.

 

더 먹을 수 있지만 숟가락을 놓고, 더 가질 수 있지만 만족하고, 더 말하고 싶지만 침묵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삼가다.

 

삼가함을 잃어서 얻게 된 결과는 무엇인가.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에너지 위기,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쓰레기 증가, 생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생명의료기술(장기이식, 출산전 진단, 유전자조작), 이혼증가와 불륜, 카드 가계 빚의 증가로 인한 자기 파산, 빈부격차와 사회적차별,,,, 끝이 안 보인다.

교조님은 풋잎사귀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말고, 종이 한 장이라도 소중히 쓰며, 먹다 남은 음식도 천하게 여기지 말고 귀하게 대접하라고 일러주셨다.

 

삼가는 일반사회에서 널리 쓰는 말인데 의무 도덕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그러나 이길에서 말하는 삼가는 물 불 바람의 수호, 즉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의해 살리워지는 기쁨과 감사를 알 때 저절로 우러나는 태도이다. 도덕적 의무감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버이신님에 대한 감사를 절실히 느껴질 때 저절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버이신님이 주신 모든 것, 물건 사람 자연 모두를 아끼지 않을 수 없고,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고, 관심과 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어서 삼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가는 감사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리고 삼가는, 서로돕기로 나아가게 하는 징검다리이다. 삼감이 없으면 나누고 베풀 수가 없다. 나누고 베풀지 않는 관계 속에서 서로 돕기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감사 삼가 서로돕기는 따로따로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3) 베품은 서로돕기

극빈은 결국 나눔의 실천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없는 자에게 내 놓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지만 무엇이 되었든 가지고 있다. 그것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나누고 베풀다 보면 일시적으로는 어려운 때도 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나누고 베풀기 때문에 줄어들어야 되는데 서로 돕기 때문에 가난하려야 가난해 질수 없고, 오히려 더 풍요로워진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만을 도우려 하고, 먼저 채우려하고, 쌓아놓고 움켜쥐려고 한다. 마음은 한없이 어둡고, 무리하게 되고, 그래서 더 많이 가질수록 더욱 위태로워지게 된다.

 

내 떡 내 먹고, 니 떡 너 먹어라한다면 삭막한 세상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그러나 가진 게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에게 나누기 시작한다면 기쁨이 넘치는 세상이 된다. 극락을 다른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세상 일반에서는 주고받기를 말한다. 받기 위해서 먼저 주어야 하고, 주었으니까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었는데 상대가 뭐라도 나에게 주지 않는다면 관계가 서먹해지고 심하면 깨지게 된다.

 

하지만 이길에서는 주되, 받을 생각없이 주라고 한다. 줄 것이 없을 때까지 준다. 되돌려 준다면 좋은 일이지만 주지 않아도 좋은 일이다. 빚이 갚아졌거나 저축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액땜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빚을 갚아도 기분 좋은 일이고, 저축해도 기분 좋은 일이고, 액땜을 했어도 기분 좋은 일 아닌가.

 

4) 극빈은 권위를 허무는 일

남편 젬베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직 극빈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3정보가 되는 논밭이 남아있을 정도였으니까. 극빈에 빠진 다음에는 삼천세계를 구제한다는 말씀을 익히 들었지만 살아생전에는 극빈에 빠지는 중이었으므로 단 한사람도 구제되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젬베도 평소에는 적선하기를 좋아했고, 입교 첫날부터 신님의 말에 납득하고 따르고자 했기 때문에,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기는 했어도 베푸는 일 그 자체에는 그렇게 까지 이의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담을 허물고 지붕벽을 허무는데 까지 이르렀을 때는 참으로 난감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집이 곧 권위 지위 부 계급을 상징하는 상징물이기에 그것까지 허물어지는 아픔을 견뎌내기는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지붕벽(高塀타카베이)은 한 집안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지붕위의 또 다른 구조물이다. 오오사카, 나라 지방 특유의 건축양식으로 이것을 해체한다는 것은 선조대대로 쌓아온 집안의 권위를 허물뿐만 아니라 집안의 몰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을 촌장을 지낸 남편 젬베로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쉽게 납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변사람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쳤나 돌았나 여우에 흘렸나 귀신에 씌였나하고 온갖 소리로 비방 조롱하고 혹은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을 가족들이 참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웠을까.

 

지붕벽을 허무는 일은 기존 질서를 허무는 일이었고 체제옹호자들이 볼 때는 신분제도를 파괴하는 일로 비춰졌다.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조님 가족을 배제시키는 한 방법으로 신들렸다, 여우에 흘렸다는 말을 더욱 사실화하며 차별하고 외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이것은 그 당시 일본사회에서는 기존 제도와 체제를 흔드는 어떤 세력을 배제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 젬베는 더 노심초사했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소유의 핵심은 내것 니것의 구분을 명확히 하는데 있다. 경계를 가르고, 담을 쌓아 접근금지 독점하는 것이다. 자기 것임을 선포하고 독점한다는 의미이며, 타인과 관계를 가르거나 끼리끼리 한 통속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재물의 소유, 명예의 소유, 권력의 소유는 그 만큼 남과 나를 구분해서 격리시키고 다르게 대접하는 근거였다.

 

담을 허문다는 것은 마음의 벽을 없앤다 차별을 없앤다는 의미였다. 지붕벽을 내린 다는 것은 권위 위신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누구든지 차별하지 않겠다는 말이며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곳이 되게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이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 즐겁게 해 주지 않고서는 한 사람도 그냥 보낼 수 없다. 어버이에게는 온 세상 인간은 모두 자녀인 거야.”고 하셨고, 쓰지추사쿠가 들려준 이 집터는 어떤 사람이라도 오지 않으면 안 되므로 가난에 떨어져라. 어떤 사람이라도 거리낌없이 오게 된다.”는 교조님 말씀에서도 확인된다.

 

교조님이 걸어주신 가난이란 물질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라 이해받고 인정받고 존중받으려는 정신적인 집착까지도 내려놓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은 남들이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에 치를 떤다. 코딱지만한 자존심을 건드리면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파르르 떤다.

 

교조님이 걸어주신 가난의 길은 이해받지 않아도 묵묵히 가셨고, 대접받지 못해도 즐거워하셨고, 자존심을 건드려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백성, 자존심이 짓눌린 민중과 함께 하려고 하셨다.

 

극빈에 빠지는 것은 물질에 한정하지 않는다. 과거의 내 생활 방식, 내 자존심, 미움 원망 아쉬움 후회 같은 묵은 감정들, 그리고 습관까지도 버린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생활방식, 새로운 습관, 새로운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 젬베가 출직한 직후 1853년에는 안채까지 허물었다. 안채를 허물 때 교조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이제부터 세계의 역사(役事)를 시작한다. 축복해 다오.”

라고 하시면서, 기꺼이 인부들에게 술과 안주를 내놓으셨다. 사람들은 이처럼 즐겁게 집을 헐어 보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3-4평 되는 토담 창고로 세 식구(교조님, 슈지, 고칸)가 옮겨 살면서 10여년 세월을 더욱 극빈에 빠져가셨다. 얼마나 가난한 살림이었는지 더 이상 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채가 헐린 자리에 세계구제의 근행장소가 마련되어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발길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5) 극빈은 구제를 위한 바탕

극빈에 빠져라. 극빈에 빠지지 않으면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모른다. 물이 떨어지면 튀어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립만배(一粒萬倍)로 돌려준다.”

(4. 일립만배로 돌려준다)

교조님께서는 우메타니 시로베(梅谷四郞兵衞)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셨다.

내가 무심코 있으니 신님께서는 흐르는 물과 같이 낮은 데로 떨어져라, 떨어져라. 으리으리하게 대문을 만드는 따위로서는 남을 구제하지 못한다. 가난하라, 가난하라.’라고 말씀하셨다.” (5. 흐르는 물과 같이)

 

어려운 사정에 빠진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루만져 줄 수 없다면 구제가 열리지 않는다. 가난에 빠지는 것은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는 첩경이다. , 가난은 구제로 가는 통로이다. 형편이 된다고 먹을 것 다 먹고, 가질 것 다 가지고, 잘 것 다 자고, 누릴 것 다 누려서는 구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난에 떨어진다고 해서 영원히 가난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는 일립만배로 되돌려 받는 날이 돌아온다고 했다.

나중에는 아무리 베풀고 베풀어도 줄어들지 않는 때가 반드시 있다는 말이다. 나카야마댁이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깨끗이 없어진 뒤 세워진 것은 무엇인가. 근행장소. 개인 행복을 위해 존재했던 집이 세계구제의 근행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 이 길을 신앙한다고 해서 가난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며 가난한 채로 머물며 거지처럼 사는 것도 아니다.

극빈에 빠지는 것은 전 인류를 자녀로서 사랑하시고 품에 안아 주시려는 어버이마음의 발로였다. , 인생의 밑바닥에 서서 모든 인간을 품에 안아 주시려고 팔을 벌리시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누군가 물에 빠졌다고 해 보자. 물을 한 두 모금 마신 상태에서는 그대로 의식이 있기 때문에 다리 위에서나 배 위에서 서서 밧줄이나 긴 막대기를 늘어뜨려 빠진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모금 물을 마시고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는 그런 느긋한 방법으로는 사람을 절대로 구할 수가 없다. 이때는 옷을 홀라당 벗고 물속에 직접 뛰어 들어가서 익사 직전의 사람을 등 뒤에서 끌어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교조님께서 극빈에 빠지신 모습은 마치 이와 같이 가장 맨 밑바닥에 떨어져서, 팔을 활짝 벌려 모든 인간들을 품에 안아 구제해 주시려는 모습 아닐까.

 

지금 구제가 잘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다리 위에 서서 줄을 늘어놓은 채 잡고 오라오라고. 아직 정신이 있을 때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액운에 빠져 완전히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는 그런 느긋한 방법으로는 절대 구제할 수 없지 않는가. 이래라 저래라 말만 하고, 이리 했으면 저리 했으면 하고 바라볼 뿐. 직접 발 벗고 같이 걸어주지 않으면 구제할 길이 없지 않을까.

 

신님은 맨 밑바닥에서 기다리신다는 말이 있다. 중간이나 70% 80%가 아니라 99%라도 안 된다. 남아 있는 1%까지 가지 않으면 신님의 수호가 없다.

신악가에서도 여기까지 따라오라 수확량이 정하여졌다’ (1장 아홉에, 열로)든가

잘도잘도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진실한 도움이란 이제부터야’ (3장 넷에)

는 말씀이 있다.

수호를 해 주고 싶다. 그러니 여기까지 따라오라는 거다. 어버이신님께서 정해 놓고 기다리시는 여기까지가 분명이 있다는 게다. 내가 정하는 여기까지가 아니라 어버이신님께서 정해두신 여기까지 이다.

 

우리들은 열심히 하고 난 뒤 더 이상 못하겠다, 이것이 한계다, 하는 때가 있다. 액운의 뿌리를 끊어갈 때도 액운 속에 살면 살았지 더 이상 못하겠다는 순간이 온다. 열 번 스무 번 100번도 더 참았는데 더 이상 어찌하라고 소리치며 몸부림쳐질 때가 온다.

온갖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고, 미친년 돌아버린 놈이 하는 손가락질을 잘도 참아내다가 더 이상 못 참아 하면서 비감함이 극에 달할 때도 온다.

이럴 때 한걸음 더 떼고,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떨어지기를 각오해야 한다. 맨 밑바닥까지 다다르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튀어오를 수 없으며, 신님이 기다리시는 거기까지 가지 않으면 신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선물을 받을 수가 없다.

물이 바닥을 치면 더 이상 떨어질려야 떨어질 수 없고 저절로 튀어오른다. 거기까지 떨어지라는 거다.

더 이상 못해한다는 것은 아직도 더 떨어질 것이 있다는 말이다. 맨 밑바닥에 닿으면 그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니, 말할 필요조차 없다. 저절로 튀어 오르고 있으니까.

 

구제를 위한 대전제는 가난이고 극빈이다. 철저한 나눔과 비움이다.

 

그리고, 구제라고 할 때 용재들이 흔히 착각을 심하게 하는 일이 있다. 자기 자신을 구제하는 사람’, 상대는 구제할 대상으로 보는 잘못이다. 구제할 대상이나 구제하는 사람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다 구제받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길에서 귀가 따갑도록 듣는 말 중에 남을 구제하면 제 몸 구제받는다는 말이 있다. 이것만 봐도 구제하는 사람, 구제할 대상이 따로 없음이 확연해 진다. 내가 구제 받기 위해서 너가 있고, 너가 구제 받기 위해서 내가 있을 뿐이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다. 우리 모두가 구제받을 대상이다.

구제하는 사람과 구제할 대상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근대의 산물이며, 제국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다. 그래야 약한 자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침략할 수 있고, 온갖 간섭에 대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으니까.

 

4. 닫는 글

가난한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시기 질투,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이 가득하다. 부유한 사람들은 그 부유함으로 뻐기고,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교만하고 과신하기 쉽다. 이것이 모두 집착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대로 집착을 하고,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집착을 하고 있다. 집착이 있는 한 누구라도 도와지지 않으며, 즐거워지지 않으며, 행복해지지 않는다.

신앙해서 이런 저런 어려운 시기를 지나 이게 좋아졌다, 이렇게 부유해 졌다하는 말을 많이 하고 많이 듣곤 한다. 좋은 일이다. 때론 자랑하고 으스대고 싶다. 그래도 좋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얼마나 나누고 얼마나 베풀며 사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럴 때 변함없는 기준은 교조님이 걸어주신 가난, 극빈의 길이다. 이것을 말하지 않고 이것을 되새기지 않으면 필시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다들 어려운 시절을 살아왔기 때문에 가난, 극빈이라는 말조차 끄집어내기 싫어하고 외면하고 싶을 줄 모른다.

나도 그렇다. 지금도 어렵지만 포교초기 차비가 없어서 상급교회 가는 것이 걱정일 때가 많았고, 월차제가 다가와도 순교비는 고사하고 제물비도 없어 쩔쩔매던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처가 동생들의 비아냥거림에 못 견뎌하는 아내를 보아야 했고, 사람 좀 되라며 다그치는 어머니 말에 가슴 저미는 일도 있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이러던 것이 이제 많이 사라지고 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다시 돌아 가보라고 한다면 갈 수 있을까. 그저 추억처럼 삼고 가난, 극빈이라는 말조차 끄집어내기 싫고, 외면하고 싶다.

그래도 교조님이 걸어주신 극빈의 길을 거듭해서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을까. 그 속에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길이 어렵게 된 것은 세상의 논리, 즉 부유하게 사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거기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 지상주의, 성장, 경쟁에 매몰되면서 갈 길을 잃어버린 탓은 아닐까. 가난과 무소유, 그리고 나눔과 베품, 이것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교조님 모본중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가난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고, 부유함에 대한 부러움과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교조님이 걸어주신 가난의 모본은 더 이상 우리들의 모본이 아니다. 리금을 올리고, 음덕을 하고, 주변에 베풀어도 감사함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부유함을 구걸하는 것이라면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만다.

 

나누고 베풀면서 극빈에 이른 과정이 25여년, 그 후 근행완성의 길 25여년. 그런데 근행의 기본정신은 둘하나와 한마음 한뜻, 서로돕기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 대한 존중과 모자람을 채워주는 나눔과 베품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가난에 담긴 구제정신은 교조 50년 동안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가장 으뜸되는 정신임에 틀림이 없다.

(175. 7. 19 고성교회 제48회 기초교리강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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