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입교 172년 후반기 용재연성회 강화

 

전도 구제하는 마음가짐

 

 

 

이 상 봉 (고성 교회장)

 

 

* 이글은 지난 921일에서 행한 후반기용재연성회에서 하신 고성회장님의 강의를 풀어서 옮겼습니다. 많은 참고 바랍니다.

 

  

우선 비디오를 시청하고 강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유사에서 제작한 비디오인데 구제에 관해서다나베 교이치라는 본부원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입니다. 여기에는 천리교에서 지향하는 구제의 근본적인 말씀을 이야기해 주고 계십니다. 도유사에서 방영하고 있는 위성 방송 중에 천리교의 시간라는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몇 번씩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입니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천리교의 가르침을 구제라는 주제로 본부원 다나베 교이치 선생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 구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 여러 종교에서 가르침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의미가 제각기 다릅니다. 남을 돕는다는 점에서는 틀림이 없지만 천리교의 가르침은 인간에게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사람을 구제하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크게 말씀드리면 인간의 현세이익 가운데는 역시 질병이 제일 큽니다. 현세의 이익입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가정의 붕괴와 사정문제가 많습니다. 질병의 문제, 사정 문제가 많습니다. 신상과 사정, 몸에 일어나는 일, 몸의 장애가 많습니다. 신상은 육체를, 사정은 정신의 문제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입니다.

현세의 이익, 질병을 고치고 금전을 모으는 따위는 유치한 종교가 하는 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민거리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신상, 사정이라는 것은 구제받기 위한 이끄심 즉 인도입니다. 거기서부터 천리교의 가르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와는 이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이 신상과 사정을 통해 이끄심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신상사정에 담긴 가르침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리교의 가르침을 납득하고 신님의 의도에 맞는 마음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에 의해 도움 받게 됩니다. 이것이 천리교 구제의 본래 모습입니다.

요즘에는 액막이 굿이나 점을 보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옛날에도 그런 것을 금지한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금액기도금지, 1874년에 메이지 정부가 굿과 기도로써 의약을 방해하는 일을 금지하는 조약을 발표했습니다. 굿을 하거나 특정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또한 기도로써 병을 고치는 일은 일체 금지되었고 점을 치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한 때 교조님은 이것에 대해 친필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천리교 구제에 대해서 말이죠.

구제라 해서 절하고 비는 것이 아니오

물어 보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3-45)

천리교 구제는 절하고 비는 것이 아니고 점을 쳐서 물어보고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한줄기 말씀에 의해서 구제받는 것이라고 하시고,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는 것을 고대하셨습니다.

* 당시 정부의 조례방침이 발표된 즉시 이 친필이 적혀 졌습니다.

= 당시 시사문제에 대해 교조님은 아주 민감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 한줄기라고 하신 것처럼 신님으로부터 배운 교리를 가슴에 새겨 그것을 분간하게 되면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나옵니다만 천리교의 포교사가 남을 구제하기 위해 기원을 하고, 수훈을 전해서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훈은 절하고 비는 것이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수훈 또한 신님의 활동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친필 구절에

잘 깨닫도록 가슴속 깊이 생각하라

남을 구제하면 제 몸 구제받는다 (3-47)

천리교의 구제방법이란 남을 돕는다는 것 자체로 도움받고 있다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그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 예를 들면 교조님께 직접 구제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없는 목숨을 구제받은 기쁨으로 교조님께 도움받은 기쁨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여쭈었습니다. 그러자 교조님께서는 당신은 도움받은 기쁨을 남에게 전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기가 도움 받은 직접 체험을 했기 때문에 남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도움받은 이야기를 남에게 전해서 상대도 도와지도록 구제하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 그렇지만 신앙이 23대로 이어지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도움 받지 않았습니다.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분들도 신앙의 덕택으로 구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본래 신상 사정의 모습은 사라지고 구제받은 고마운 모습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열심히 했으니까 나는 놀아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 역시 집안의 인연 자각이 필요한 건가요?

= 저는 여러 교회에 순교를 갑니다. 그 교회들에게 교회사를 만들라고 합니다. 초대가 어떤 신상이나 사정으로 신앙을 하게 되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길 권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움 받은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라 해도 자기가 도움 받았다는 자각이 없으므로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사를 통해 초대가 도움 받은 사실과 대대로 전해오는 집안의 인연을 자각해 본다면 도움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자신의 대 뿐만 아니라 집안의 인연을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군요. = 집안의 인연을 자각하면 좋지 않은 일을 겪어도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노가 가능해 집니다.

* 선생님, 포교사가 남을 구제하고픈 마음은 있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그 문제는 남을 구제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괴로운 문제입니다. 마음을 작정하고 구제를 하고 열심히 수훈을 전했는데 그 다음날 그 분이 출직을 해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유가족을 보러 가는 일이 괴롭습니다. 그래도 막상 가보면 유족들이 원망을 하지 않고 도리어 사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난처한 일이지만 유족들도 이쪽이 최선을 다한 것을 알아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제는 신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포교사가 남을 구제하겠다고 기원을 합니다만 구제는 포교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를 해주시는 주체는 어버이신님이십니다. 어버이신님이 하시는 일을 돕는 것이 포교사의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정월이 되면 절이나 신사에 가서 절하고 일 년 동안 탈 없이 장사가 잘 되기를 빕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는 도움 받지 못합니다. 자기만 도움 받고 싶어 하니까요.

잘 깨닫도록 가슴속 깊이 생각하라

남을 구제하면 제 몸 구제받는다 (3-47)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을 할지라도

남을 구제할 마음이 없으므로 (12-90)

이제부터는 월일 부탁이야

마음을 단단히 바꿔다오 (12-91)

이 마음 어떤 것으로 바꾸는가 하면

세계를 구제할 한결같은 마음으로 (12-92)

이것이 천리교의 구제의 방법입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교조님께서 가르쳐 주신 구제를 위한 방법에는 근행과 수훈이 있습니다.

* 근행과 수훈입니까?

= 근행과 수훈은 둘 다 남을 구제하기 위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자기가 구제받기 위해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원할 때는 내 몸과 내 집안 일이 아니라 구제하고자 하는 상대를 위해 기원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원 방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도 이쪽에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남을 도와서 내 몸이 도와지는 것입니다.

* 그래서 기원하는 쪽도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군요.

= 천리교의 구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만 구제의 모습은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천리교 신앙을 해서 이 신앙은 참 고맙고 감사하구나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 구제받은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님은 근행과 수훈으로 구제한줄기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근행과 수훈으로써 남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는 여기에 내 몸이 구제받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구제 본연의 모습인 것입니다.

* 오늘 천리교 시간은 구제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유사에서 제작한 영상물입니다만 도유사에서는 위성방송으로써 일본 전역에 일주일에 몇 시간씩을 할애해서 내보내고 있습니다. 교리 주제별로 영상물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구제에 관해서 영상물을 봤습니다만 이 이야기 속에는 구제에 관한 핵심적인 말씀들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질병에 대한 생각을 인도, 이끄심이라고 보고 있는 게 다른 종교하고 틀린 점입니다. 질병이란 것은 어버이신님이 필요에 의해서 이끌어 들이신 것이기 때문에 천리교에 입신해서 신앙하여 도움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나, 도움 받은 사람은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따라 이끌려온 도구라는 자각이 중요합니다. 도움 받았으니 용무가 끝났다며 다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하고는 틀립니다. 도움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용도에 맞게 쓰여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교조님 시대 사람들은 모두 다 불치의 병을 안고 있을 때 교조님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교조님께 도움 받은 일은 부지기수로 많습니다만 질병을 구제받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구제받는 것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길은 생로병사에 대해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근본의 문제를 가르치고 계신다. 앓지 않고 죽지 않고 병들지 않는 구제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종적으로 마음의 문제에 이어지게 됩니다.

교조전일화편 147진정한 구제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야마또 지방 구라하시 마을에 사는 야마모또 요헤이의 부인 이사(당시 41)는 오랫동안 앉은뱅이였는데, 1882년 신기한 도움을 받아 아랫도리가 부드득부드득 소리를 내며 일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손이 약간 떨렸는데 좀처럼 잘 낫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으나 본인은 이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1884년 여름, 터전으로 돌아와 교조님을 뵙고 그 떨리는 손을 내밀며

숨을 불어 주십시오.”하고 청했다. 그러자, 교조님은

숨을 불어 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나, 자네는 다리를 도움 받았으니까 손이 약간 떨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말끔히 도움 받는 것보다는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전생의 인연도 잘 깨닫게 되고, 언제까지나 잊혀 지지 않아서 그것이 진실로 도움 받는 리가 소중한 거야. 숨을 불어 주는 대신 이 책을 빌려 주마. 이것을 베껴서 끊임없이 읽어라.”하고 깨우쳐 주시면서, 친필 17호 전권을 주셨다. 이때부터 이사는 손이 떨리는 것은 조금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가 베껴 주신 친필을 평생 언제나 읽곤 했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열심히 포교하며 89세까지 장수했다.

결국 우리가 질병을 앓아서 이길에 인도된다는 것은 대물차물의 리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물차물이란 것은 인간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를 알게 해 줍니다. 무엇 때문에 인간과 이 세계가 있는 것인가? 라는 진실에 눈을 떠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제의 첫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인 것을 알게 되는 첫 싹이라는 것입니다.

질병을 고치려고 오는 사람은 그것이 절박해서 오지만 사실은 원래 어버이신님의 의도는 우리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질병에서 도움 받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굉장히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 그 기쁨도 옅어지고 끝내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지 모릅니다. 결국 사람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에 대해 전혀 생각지 않는 일상생활 태도로 되돌아가 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이사씨도 손이 떨린다는 부자유가 있기 때문에 도움 받은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화편 마지막에 이책을 빌려주마하며 친필을 빌려주시며 이 책을 끊임없이 읽어야 하는 거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는 친필을 마지막까지 평생 동안 읽었다고 합니다. 친필읽는 동안 손의 떨림은 전혀 고통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통이라고 생각했다면 마음이 즐겁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을 구제하면 제 몸을 구제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남을 구제하면이라고 할 때 하면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남을 구제하면 그 보상으로써 도움 받는 다거나 내가 구제받고 싶다면 먼저 남을 도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에는 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조전일화편 42남을 도우면에서 그것을 알아보면

18754월 상순, 후꾸이현(福井懸) 산도오(山東)마을 스가하마(菅浜)에 사는 에노모또 에이지로오는 딸 기요의 정신병을 도움 받고자 서쪽 지방의 사찰을 순례하여 제8번 하세관음(長谷觀音)에 참예하던 중, 찻집의 할머니로부터 쇼야시끼 마을에는 산 신님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바로 미와 마을을 거쳐 쇼야시끼에 이르러 집터를 찾아가, 전갈인에게 부탁하여 교조님을 뵙게 되었다. 그러자, 교조님은 걱정할 필요 없다, 필요 없어. 집에 재난이 생겼으니 어서 돌아가도록. 가거든 온 마을 집집마다 들어가서 마흔두 사람을 돕는 거야. 나무 천리왕님이라 부르며 손을 모아 신님께 정성껏 기원하면서 돌아다니는 거야. 남을 도우면 제 몸이 도움 받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에이지로오가 개운한 마음으로 쇼야시끼를 떠나 기즈(木津), 교오또(京都), 시오즈(塩津)를 거쳐 스가하마에 도착한 것은 423일이었다. 딸은 몹시 악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손을 모아,

나무 천리왕님

하고 되풀이 기원하고 있는 중에, 신기하게도 딸은 차츰차츰 잠잠해졌다. 그래서, 교조님의 말씀대로 온 마을에 포교를 하러 다니며, 환자가 있는 집에는 거듭 몇 번이고 찾아가서 42명의 쾌유를 계속 기원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딸은 말끔히 수호받아 쾌유되었다. 여기저기 수호받은 집에서도 인사하러 왔다. 얼마 후 완쾌된 딸을 결혼시키고 그 사위를 양자로 삼았다.

에이지로오와 딸 내외 등, 세 사람이 도움받은 사례를 드리고자 터전으로 돌아와서 교조님을 뵙게 되었다. 그때 교조님은 붉은 옷을 입으시고 백발을 뒤로 묶어 짧게 드리운, 품위있고 고상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교조전일화편 167남을 도우면에 보면 다음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미 효오시로오는 188591, 당시 13세의 장녀 기미가 갑자기 두 눈이 거의 안 보이게 되고, 107일부터서는 효오시로오 자신도 눈에 가르침을 받아 보이지 않게 되었으므로 111, 부인 쯔네를 시켜 터전에 대신 참배케 하였다. 교조님은

이 눈은 말이야, 어려운 병은 아니야. 신님이 손가락으로 조금 누르고 계시는 거야. 누르고 있다는 것은 말이야. 시험과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니 만큼.” 하고, 이어서

남의 전갈은 남의 전갈. 남의 부탁은 남의 부탁. 남의 입 한 사람 거치면 한 사람, 두 사람 거치면 두 사람. 남의 입 거치는 만큼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야기가 달라지면 세상에 과오가 생기는 거야. 과오가 생기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러니, 본인이 직접 와야 해. 그러면 단단히 깨우쳐 줄 테야.”

하고 말씀하셨다. 쯔네가 집으로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전하자 효오시로오는 옳아, 말씀대로야.”하고 진심으로 감격하며, 3일 아침 가시마(笠間) 마을에서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부인의 부축을 받아 가며 40리 길을 걸어 집터로 돌아왔다.

교조님은 우선 자아 자아.”하며, 그로부터 약 두 시간에 걸쳐 태초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 교조님의 음성의 크기는 주위의 창문이 덜컥덜컥 진동할 정도였다. 그 말씀이 그치자마자 문득 생각하니 눈은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선명해졌으며, 또 집으로 돌아가 보니 장녀 기미의 눈도 선명하게 수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효오시로오의 눈은 매일 아침 8시까지는 희미해서 먼데 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으므로, 이듬해 1886년 정월에 다시 터전으로 돌아와서 여쭈어 보니,

그것은 말이야, 인도는 끝났지만 시험이 끝나지 않은 거야. 시험이란 남을 도우면 제 몸도 도움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제 몸 생각해서는 안 돼. 어떻든 남을 돕고 싶다, 도움 받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고친다면 신상은 선명해지는 거야.”

하고 깨우쳐 주셨다. 그래서 그 후 열심히 구제에 노력하는 중에 효오시로오의 신상도 말끔하게 도움 받았다.

 

이게 남을 도우면에 관련된 2가지 교조전일화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제 몸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도움받기 위해 남을 도우면 제 몸 생각이 핵심이 되므로 도움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까 비디오에서도 나왔듯이 이길에서는 근행과 수훈으로써 구제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근행이란 흔히 올리는 조석근행이 아닙니다. 조석근행은 사례근행입니다. 보통 기원근행은 뭔가 내 자신과 집안에 문제가 있을 때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남을 위한 기원근행에 참배한 일이 있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교회에서 때때로 기원근행을 올리는데 나와 아무 상관없는 근행인데하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원근행이라면 기원당사자들이 올려야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수훈도 내 가족이나 관련있는 사람은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은 전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 마음은 자기를 중시하는 마음입니다. 나를 앞세우면 남을 도우는 길에서 멀어진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시험이 끝나지 않은 거야.’라고 했습니다. 인도는 질병으로 도움받는 것으로 끝났지만 시험은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남을 도와서 또 다시 내가 도와지는 체험을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시 남을 도와서 내 몸이 도와지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신님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제 몸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제 몸 생각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합니다. 남은 못 봐줘도 나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하물며 나와 상관없는 남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은 인간생각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는 정말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들이 질병을 구제하기 위해 수훈을 전합니다. 이 때 꼭 지켜야 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그런 분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아프다고 자기 몸을 쓰다듬으며 자신에게 전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수훈에는 효능의 리가 있습니다. 이 효능의 리는 남에게 전해주는 보물, 평생의 노자로써 내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수훈을 자신에게 쓸 때는 아무런 효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기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근행에서도 어버이신님께 엎드려 제가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결해 주십시오.” 하고 기원하지 않습니까? 제 역시도 그런 기원 많이 해 봤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도움 받지 못합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안 돼서 안타깝다 할지라도 도움이 안 납니다.

친필에

안타깝다 아무리 생각을 할지라도

남을 구제할 마음이 없으므로 (12-90)

라고 하셨습니다.

전도하고 노력을 해도 구제가 안 되고, 이래도 저래도 안 되는 것은 사실 우리가 근본적인 문제를 아주 소홀히 하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꾸 내 몸 생각하니깐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교회장님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천리교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렇게 전도 구제하기도 힘든데 이대로 가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하니까 어떤 분이 있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 게 제 몸 생각이 강한 것이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이 세상은 천리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라고 하셨는데 만약에 우리가 전도 포교가 안돼서 밑바닥에 떨어진다 해도 거기서 차고 올라오면 된다. 전도가 안 되고 신자가 없어진다고 해서 거기에 매달려 걱정을 하지만 그런 생각이 나거든 남을 돕는 데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도가 안돼서 수호를 못 받아 자꾸 쇠퇴해져 간다 해도 만약에 그것이 신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용도에 맞게 쓰여 지지 않고 있다면 그렇게 되어가는 것도 천리에 맞는 모습이 아닌가. 그것을 보고 잘 깨달아야 한다. 내가 신님의 용도에 맞게 쓰여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아야 한다.”

예전 모습에 비하면 지금은 겉모습이나, 형태는 아주 훌륭해지고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어떤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음가짐이 문제입니다. 20-30년 전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즐겁고 감사한 마음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고맙고 감사한 수호를 받고 있으면서 왜 이러냐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이 현재 신님께 그대로 비춰져서 현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 조건이 자꾸 안 좋아진다면 그만둘 것입니까? 만약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저렇게 걱정하면서 정말 아무도 안 오고 땟거리도 없고 남들에게 외면당할 때가 오면 그만둘 것입니까? 그러기 위해서 여태까지 이길을 걸어왔다는 것입니까? 심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은 그런 모습을 보고 뭐라고 생각하실까요? 그럼 너는 그만둬도 괜찮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우리는 전도가 안 되고 구제가 안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신님의 의도에 맞는 도구로서 과연 잘 쓰여 지고 있는가?’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의해 이끌려 온 용도로써 제대로 쓰여 져야 한다는 자각을 하는 것이 본래 구제받을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나에게 주어진 재물, 자녀, 사람들도 그에 걸맞게 쓰여 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죠.

어떤 분은 신앙을 하면 인연을 고치고 팔자도 고치고, 재물도 많이 생겨 주변 환경이 좋아진다고 이야기 합니다. 대체로 그렇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방송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조기유학을 많이 보내는 데 미국에 유학가는 목표는 딱 하납니다. 제일 좋은 대학, 하버드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버드대학에 가면 따 놓은 당상이다고 생각합니다. 수 만 명의 학생이 거기만 들어가려 노력합니다. 들어가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 가보면 아무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입니다. 하버드 나왔다고 특별히 보장되는 것이 없더랍니다. 톱 클라스 안에서도 톱만 보장이 되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안에서 하층은 역시 아무것도 아닌 거죠.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주 좋은 대학을 나와도 우리가 직업적으로 보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복지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있고 급료도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을 취재하면서 당신은 하버드까지 나와서 이런 데서 일하는 게 아깝지 않습니까?” 물어보면 본인은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직장에 오는 게 즐겁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고 합니다.

만약에 레벨이 있는, 브랜드가 있는 큰 회사에 취직해서 얼마를 받는다는 게 우리 행복의 목표라면 거기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일 수 있겠죠. 하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전도포교를 많이 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오고 교회가 커지고 번성해 지는 것만 목표로 생각하고 노력해왔지만 안에 든 내용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매 순간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 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정말로 좋아서 하는 지, 그리고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지?’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을 구제하기 위해 수훈을 전하고, 기원을 올리는 게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는 그런 기분, 그런 행복감을 느끼는 마음으로 진정 구제에 나서는 것일까요. 형태적인 성공의 모습만 그리면서 한다면 신님의 눈으로 볼 때는 어긋난 모습입니다. 결국에는 마음의 즐거움이나, 행복과도 멀어진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찌됐든 내 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 몸 생각을 버린다는 게 내가 추구하는 즐거움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추구하는 즐거움이 신님이 바라시는 즐거움과 같아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내 혼자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남들도 다 함께 즐겁도록 하는 것이죠.

어제 말씀드렸듯이 세상은 포도알과 같다는 일화편을 잠시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에게는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영역이 있습니다. 이 영역의 원들이 다 모이면 뭔가 겹쳐지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길을 같이 신앙한다는 것은 공통된 부분을 공유한다는 거죠. 그 공통된 부분이라는 것이 우리들은 서로 남을 돕는다.’는데 있습니다. 교조님이 가르쳐 주신 근행과 수훈을 통해서 남을 도와가는 것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공유하는 부분이 더 커지고 많아질수록 한마음 한뜻이 되겠죠. 하지만 나는 남과 같이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한다면 어버이신님께서 보실 때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식대로 할 거야. 남들은 근행과 수훈으로 하지만 나는 내 식대로 구제할 거야.” 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겠지만 구제를 위해 우리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면 그 만큼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선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고, 남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저는 아주 추상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을 돕기 위해 노력하자는 말은 굉장히 추상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것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도록 훈련을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을 위해서 올리는 것이 근행이고, 남을 위해서 전하는 것이 수훈이라는 근본 가르침에 입각해서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근본에서 어긋나 있으니까 어렵습니다.

용재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수훈을 전하거나 받는 쪽이 제 몸 생각에 치우쳐서 전하고 받고 있습니다. 기원근행도 제 몸 생각에 빠져 올리는 것을 보면서 교조님이 가르쳐 주신 것에서 멀어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버이신님의 뜻을 알리고 전하기 위해서는 남의 어려운 고민, 걱정거리를 해결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도말씀에서는 신앙하는 자도 내 자녀, 반대하는 자도 다 내 자녀다. 하지만 가르침을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길에서는 사회에 대해 포교하고 전도하기 위해 애초부터 응법의 길로써, 교회를 허락한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응법의 길, 전도 포교하는 수단으로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체제로 경쟁사회에서 뛰어들어 활동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사회에서는 뒤떨어지면 밀립니다. 누가 뭐라 하든지 천리교에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근행과 수훈 아닙니까? 그런데 근행과 수훈에 정성을 들이지 않아 신상 사정의 구제에서 밀리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밀리는가? 근본적인 가르침을 등한시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특별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이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 기초부터 잘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요즘 들어서 제가 많이 생각하는 것은 [잘하려고 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아이들 가르치면서 많이 느꼈는데 잘하려고만 하면 욕심입니다.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잘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는 데,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잘하려고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혼시바 후사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천리교 교회의 가장 모범이 되는 교회로 소개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수훈전하기 목표를 3만 번 정하면 한 달 안에 다 채웁니다. 그리고 교내 최고의 수양생 배출이라든가 모든 면에서 최고 기록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서 활동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대단하다,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제가 그렇게 해보려 해도 처해진 현실을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첫째 수훈이나 전도에 대해 생각하는 괴리가 너무 큽니다. 거기는 전도를 아침 운동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산으로 운동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 속한 부인회원들이 주축이 되어서 전도를 하는 데 어렵고 골치 아프게 이야기 안 합니다. “이길 신앙하면 즐겁고, 감사한 도움을 받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교회로 와서 들으세요.” 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많이 했던 이야기로 합니다. 전혀 어렵게 생각 안 합니다. 그냥, 아주 쉽게 접근합니다. 자기가 친한 동네사람을 그냥 아주 쉽게 쉽게 데려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하고 아주 큰 괴리가 있습니다. 수훈전하기 몇 번하자, 전도 몇 번 하자고 하면 금방 금방 목표가 채워집니다. 너무나 쉽고 편하게 생각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와 너무 큰 괴리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철저히 자기 몸을 버리는 생각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교소가 교회로 승격할 때 기존 신자를 전부 다 상급교회에 올립니다. 교조님은 집착을 버리고 자기 생각을 버리라고 하셨는데 거기서는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 몸 생각을 버리는 데서 수호가 납니다. 그것을 틀림없는 일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일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한다면 모든 것이 차츰차츰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잘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하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나 여러분들은 신님의 의도에 이끌려서 온 하나의 도구, 즉 용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전도구제에 임하는 우리 용재들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오늘, 12일 동안 용재연성회에 참석하셔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전도 구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날짜
35 [182년03월][기초교리강좌 제107회]으뜸인 리를 읽는다 새긴다 전한다 1 - 이시중 2019.03.10
34 [177년05월][기초교리강좌 제64회]은혜 보답 2 - 이상봉 2014.05.02
33 [177년04월][기초교리강좌 제64회]은혜 보답 1 - 이상봉 2014.04.03
32 [177년03월][기초교리강좌 제62회]기도, 기원은 과연 효과가 있는가? (2) - 남상우 2014.03.12
31 [177년02월][기초교리강조 제62회]과연 기도 기원은 효과가 있는 것인가? - 남상우 2014.02.04
30 [177년01월][기초교리강좌 제53회-2 ]교조님의 숨결 1-2 - 박용매 2014.01.03
29 [176년12월][기초교리강좌 제53회]교조님의 숨결 1-1 - 박용매 2013.12.05
28 [176년11월][기초교리강좌 제61회]교조님의 숨결 2 –우리도 교조님처럼! - 박용매 2013.11.02
27 [176년11월][기초교리강좌 제60회]친필에 담긴 어버이마음 2 - 전인수 2013.11.05
26 [176년10월][기초교리 강좌 제60회]친필에 담긴 어버이마음 1 - 전인수 2013.10.07
25 [176년09월][기초교리강좌 제59회] 재미있는 인연이야기 2 - 정선일 2013.09.05
24 [176년08월][기초교리강좌 제58회]재미있는 인연이야기 1 - 정선일 2013.08.07
23 [176년07월][유달강습회 2]구제한줄기의 이정표-교조 130년제(2) - 서용석 2013.07.11
22 [176년06월][유달강습회 1]구제한줄기의 이정표-교조 130년제 - 서용석 2013.06.07
21 [176년06월][기초교리강좌 제56회]‘한마음 한뜻’의 조화 3 - 이영수 2013.06.07
20 [176년05월][기초교리강좌 제56회]‘한마음 한뜻’의 조화 2 - 이영수 2013.05.09
19 [176년04월][기초교리강좌 제56회]‘한마음 한뜻’의 조화 - 1 - 이영수 ▣동영상강연 포함▣ 2013.04.03
18 [176년01월][기초교리강좌 제46회]정성 3 - 이상봉 2013.01.04
17 [175년12월][기초교리강좌 제53회]교조님의 숨결 1 - 박용매 2012.12.23
16 [175년10월][기초교리강좌 제51회] 리를 무겁게 - 김위태 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