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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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년 후반기 용재연성회 강화

 

전도 구제하는 즐거움

 

김 규 수 (성원교회장)

 

* 이글은 지난 920일에 실시한 후반기 용재연성회에서 전도 구제하는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김규수선생(성원교회장)이 하신 강화말씀을 풀어서 실었습니다.

 

박수를 받으니 좀 그렇습니다.(웃음) 집행부에서 부탁을 받아서 이 자리에 섰는데 처음부터 제가 신앙할 때 계시던 분도 지금 계시고 처음 보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막중한 자리를 할애 받아서 이 귀중한 시간에 얼마만큼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것인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렇게 서는 것도 어버이신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제가 포교의 즐거움, 전도하는 즐거움입니다. 처음 통보를 받았을 때 포교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내가 왜 포교를 작정했는가? 언제 작정했나를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입교의 으뜸하루로 바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입신한 지는 30여년 전, 초대회장님이 돌아가신지 한 달 뒤에 입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대회장님의 얼굴을 모릅니다. 제가 처음 입신했을 때 건물은 지금과 다릅니다. 그리고 그때 제 속엔 썩은 구렁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 교회 와 보고는 왜 교회가 이렇게 우울하노? 초상집 같노?’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처럼 받들던 초대회장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기 때문에 분위기가 그랬답니다. 그 당시 사감은 현재 문성소장님이신 김종수선생님이셨습니다.

제가 이길은 걷다보니 사람의 가슴속에 꽂히게 하는 말은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길게 말한다고 마음에 꽂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대회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 하신 말씀이 불효인연이 지중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 말 뒤에 그냥 말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를 입신시킨 사람은 지금 동산 2대 교회장의 이모님이셨습니다. 신앙 전에 저는 자포자기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사람은 아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180도 변해서 이렇게 건강합니다만,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구기운동은 다 좋아 했습니다. 축구, 배구, 농구 뭐 그런 걸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 축구선수도 했습니다. 그런데 축구를 하고 나면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팠습니다. 배구는 써브를 하면 공이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힘이 없어서. 그 당시 제일 부러운 게 턱걸이를 제대로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한 번도 못했거든요. 그만큼 몸이 약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이모님이 말씀하시길 아제, 아제를 보고 고성회장님 말씀이 ‘2-3년만 잘 넘기고 나면 참 백만원짜리 신앙인데라고 했습니더.” 이대교회장님이 말씀하신 그 자리에 제가 없었으니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겠고, 지금 생각으로는 좋은 쪽으로 이야기해 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동산회장님 이모님께서 제게 열심히 하라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 한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 입신한 신상은 노이로제 신상이었는데 들어와서 보니 노이로제뿐만 아니라 온 몸 전체가 썩었습니다. 저는 잠을 잘 못 잡니다. 옛날 우리 시골집 마루는 도끼자국 찍혀 있습니다. “나는 괴로워서 잠을 못자는 데 다들 무슨 잠이 와서 자느냐고 성이 나서 제가 도끼로 찍은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잠을 못 잤는데 고성교회 첫날 저녁에 와서 잠을 잤는데 30년을 신앙해도 그렇게 시원하게 잠을 자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마나 시원했던지, “~ 여기가 이렇게 시원한 곳이구나, 이렇게 수호받는 곳이구나.”싶었습니다.

저는 그 때 대가면 천황산에서 의부님 아래서 수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그분을 도인이라고 했는데 저도 나중에 알고 보니 그랬습니다. 그 의부님이 하나하나 가르치시는 중점은 효도였습니다. 그것이 이길에 들어와서 회장님 말씀 한 마디을 들어보고 교리를 배워보니 과연 우리 의부님이 도사구나싶었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공자가 사는 동네의 앞산은 니구산이다. 그런데 공자 이마가 꼭 니구산처럼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말씀을 듣고 임신의 중요성, 부모 마음씀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강습을 받고 신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핵심은 효도를 해야 좋은 자식을 낳는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상급의 말씀이 신님의 말씀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대회장님이 젊은 회장님이라 뭘 알아서 ‘2-3년 지나야 될 거라고 했을까?’하고 예사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있다보니 삼일을 못 넘기고 있기가 싫어요. 히노끼싱도 즐겁고 한데, 그래도 있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들락날락 했습니다. 그래도 회장님은 나가면 왜 나가냐’, 다시 들어오면 왜 들어왔냐고 한 말씀도 안 하셨어요. 들락날락거리기를 2-3년이 되니까 그때사 내가 무척 미안해 졌고, 신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회장님이 신님이구나싶었습니다. 그래서 삼년째 되면서 잘 있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사감을 맡았습니다.

입신하기 직전, 천황산에 있을 때는 시골마다 치도라고 부락마다 할당이 있어서 자갈을 져다 붓고 했습니다. 어느 때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있는 데 천리교 선생님이 한분이 오셨습니다. 그때 60-70대 된 노인이셨는데 전도와서 천리교, 불교, 기독교랑 비교해서 말씀하셨어요. 근데 내가 감히 천리교 그게 뭔데 불교랑 기독교와 비교를 하냐고 하면서 세게 공격을 했어요. 다른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그 분이 좋은 말씀 몇 말씀 더 하시고 그냥 가시더라구요. 그러고 한달 만에 교회로 들어왔어요. 그 때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그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갈천 포교소의 초대 강선생님이라고 윗지방 사람이었죠. 저를 보더니 , 당신 들어 올 줄 알았어! 그런데 당신은 포교를 해야 돼.” “포교가 뭡니까?” “포교는 고생이라, 한마디로 고생이라.” 저는 고생이라면 귀가 솔깃해요. 아버지가 항상 젊어서 고생을 해라. 고생이상 없다.”며 항상 고생이야기를 해 주셨기 때문에 고생이라면 내가 할 수 있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고생이라면 하겠다싶었습니다.

교회에서 나왔다 들어 갔다하는 그때 저희 집은 부산 중부경찰서 뒤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 때도 말없이 나간 때였습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김해 어방에서 일입니다. 주변이 보리밭인데 갑자기 설사가 났습니다. 할 수 없이 기사님께 이야기했습니다. “기사님, 갑자기 배가 아파 안 되겠습니다. 좀 세워 주이소.”하니까 안 된다면서도 급해 보였던지 내려주었습니다. 전부 다 들판이고 보리밭인데 볼일 보고 나오니까 70대 노인이 담배꽁초를 줍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다 털어서 어르신 이걸로 담배 사이소.”하고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하기를 내가 여기서 집까지 걸어가면 포교에 성공할 수 있고 못하면 포교를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작정하고 신님께 고한 후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다가 쓰레기통에 수박도 주워 먹고 하면서 잘 마쳤습니다. 그때 포교를 작정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포교를 나갈 것이라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동산교회에는 젊은 40대 소장님이 서너분이 계셨습니다. 부산, 울산서도 오셨는데, 밤에 잠자리를 같이하면서 포교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 여기 뭐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오다가다 고생하면서 배고파 까치밥도 먹고, 채소밭에 들어가 무도 빼먹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 마음속으로 좀 사먹으면 되지 그렇게까지 해야 되는가싶으면서도 아, 그 말씀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이 오실 때마다 듣고 또 듣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포교를 나갔습니다.

이길을 걸어가면서 포교를 하지 않으면 인연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도 단독포교를 나가야 인연이 끊어집니다. 10년 청년근무하면서 내 딴에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단독포교를 나가보니 전혀 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라요. ‘~ 이게 포교의 세계구나.’ 전혀 별천지였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포교를 하실 분은 될 수 있는 대로 단독포교를 나가세요. 그러면 별세계가 펼쳐집니다. 신님을 믿고 나가면 신님이 수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처음 교조님이 천계를 받을 때 전혀 포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천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신의 현신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족들은 허리, 눈병, 다리병 신상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3일 동안 신인문답을 주고받고 하다가 마지막에는 최후의 통첩으로 신님이 천계를 받지 않으면 이 집안을 콩가루로 만들어버리겠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자 가족들의 신상은 온데 간데 없이 깨끗이 나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전혀 인간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신님의 뜻을 받들겠다는 한줄기 마음, 한줄기 마음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많은 미꾸라지 가운데 인어와 흰뱀을 섞여있어 잘 살펴보니 인간의 얼굴. 그들이 한줄기 마음인 것을 살피신 다음]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줄기 마음인 것을 보고 인간의 본으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길을 가는 우리들의 가장 기본되는 마음가짐도 바로 이 한줄기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길을 가장 바르게 가는 길, 인연을 끊는 길은 한줄기 마음, 한줄기 마음으로 나아가고 포교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인연이 참 무겁습니다. 제가 왜 인연이 무겁냐하면, 나병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증조부가 나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오면 제 몸이 솜뭉치같이 돼 너무나 피곤해서 어디라도 눕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이게 나병이구나.’ 싶었습니다. 입신 초기에 히노끼싱하다가 문성소장님께 우리 증조부가 나병으로 돌아 가셨습니다고 하니까 그게 당신 아니가!”하셨습니다. 그 당시 문성소장님은 솥단지도 안 걸고 단독포교를 하고 계셨을 때입니다. 초대회장님께서는 너거 포교 나가려거든 거기 가서 포교 실습해라하셨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 이것이 나병인연 탓이구나. 그렇다면 이 인연을 끊어야지.’하고 마음을 더욱 단단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연을 끊기 위해 히노끼싱에 더욱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이길은 남을 구제함으로써 내가 구제받는 길입니다. 그렇지만 남을 도울 때는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정자나무 하나를 옮겨놓아도 내가 옮겨놓으니까 덕이 안 되겠나하면 덕이 안 됩니다. 종이 한 장을 주워도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 이 깨끗한 장소에 쓰레기가 있으면 불쾌하지 않겠나하고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주워야 하겠지요. 상대를 생각해서 하면 덕이 된다고 봅니다. 덕과 부덕의 차이는 여기서 납니다. 모든 것을 상대를 위해 하느냐, 나를 위해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덕자는 남을 생각하고 부덕자는 자기 위주로 생각합니다. 포교를 하다가 중한 신상자를 만나면 어려운 실천을 해야 되는 데 부덕자는 내 몸도 아픈데.”하면서 적당히 포기하면서 어려운 실천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덕자는 끊임없이 남을 위해, 남을 구제하려고 어려운 실천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길은 초대정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고성교회의 초대정신은 상급에 이바지하는 것, 단노 그것이 초대의 정신입니다. 그 초대의 정신에서 우리가 이렇게 오늘날 감사한 날이 있습니다. 초대정신에서 2-3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말로만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산하와 자식이 보는 그대로 따라옵니다. 초대정신이 얼마나 무섭냐하면 80년 마디 때 우리 고성초대회장님께서 천리교를 살리기 위해 서울의 모교회에 가셨는데 이길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을 합쳐야 안 되겠나.” 그러니까 합쳐야지!” “그러면 돈이 필요하다.” 하니까 그 교회 초대는 우리교회 지붕이 새어서 수리해야 되어 돈이 많이 든다. 그 때문에 못한다.”고 했답니다. 사실 이길 안에서는 어느 교회가 어떻는지 사정을 다 아는 거 아닙니까? 할 만하니까 가서 이야기한 것인데 자기 교회만 생각해서 거절한 겁니다. 그랬는데 3대 손자에 와서 한쪽은 큰 역사에 책임자가 되고, 그 못한다는 교회의 3대는 몇 백억 대의 교회건물이 고스란히 남에게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만큼 초대의 리가 무서운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시고 초대가 어떻게 걸어야 될 것인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인연을 끊기 위해 서울도보를 작정했습니다. 서울 성진교회가 초대 살아 계실 때 독산동에 있었습니다. 처음 참배하니 100번이 떠올랐어요. ‘, 한두 번도 아니고 100번을 어떻게 하겠나.’ 싶어도 작정을 했습니다. 그 때 부산에 살고 있을 때인데 상급 당직도 보름씩 해야 되고 도저히 안 되더라구요. 38번 밖에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 100번이라는 게 가슴에 찡해 있었습니다. 포교소를 부산에서 마산으로 이전해 왔을 때 암신상자였던 임선생이 왔는데 가까운 데서는 깊은 실천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실천을 다시 이어서 해야겠다 싶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서울 도보실천, 그것이 오늘날 나를 살린 것입니다. 내가 이길을 걸어갈 수 없는 무거운 인연인데 거기서 제가 살아난 것입니다. 왜 살아났냐하면 한마디로 고생을 해서 살았습니다. 돈을 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돈이 없었습니다. 또 여자분들은 쉽지 않겠지만 저는 남자니까 할 수 있죠. 되는 대로 잘 수 있으니까요. 버스 정류장도 이슬을 피해서 잘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번 걷고 두 번 걷고 하다 보니 집안이, 자녀들이 달라집니다. 집사람은 현재 겉으로 보기에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장군입니다. 왜 장군이냐면 집에 있으면 저보다도 훨씬 실천을 많이 합니다. 토대로서 잘 하고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로서 살았지만 서로 그때 당시는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집사람이 토대로서 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덕이 없어서 신자가 많이 없습니다. 자기 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지난 번 부인제때 감화했지만 초대회장님은 어머니때부터 덕을 많이 샀기 때문에 그 덕으로 많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덕합니다. 신악가 가운데 제 가슴에 와 닿는 것이 한마디의 말씀도 히노끼싱한마디 말씀, 그것이 씨앗입니다. 나는 한마디에 전도받고 왔는데 왜 전도가 안되는 가, 나는 한마디에 전도받아 강습받고 2년 만에 고향에 가니 그때야 어머니가 너희 아버지가 일본 있을 때 옆에 회사직원이 천리교 가면 좋다 김선생 갑시다. 해서 천리교에 갔었는데....” 그때 내 가슴에 꼽힌 게 이거구나. 이게 내가 한 게 아니구나, 그 한마디 말씀이 이렇게 크구나, 전도가 이렇게 크구나!” 그 때 무슨 깊은 교리를 말씀하셨겠습니까? 천리교 가면 좋다는 그 한마디가 30년이 되니까 우리 누님이 신앙하고, 여동생이 하고 내가 하게 된 것입니다. 이 한마디 말씀이 히노끼싱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습니다.

저는 걷는 것뿐만 아니라 전도를 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자를 치면서 걷게 된 것은 어느 날 정자나무 아래 노인들이 앉아 이야기하면서 저게 뭐꼬?”하니까 안택 아니가?” 안택이라면 집안이 어지럽고 안 풀릴 때하는 굿같은 것을 말합니다. ‘, 맞다!’ 싶었습니다. 많이 알리려면 박자를 치는 게 좋고, 그게 더 즐거웠습니다. 박자를 치면서 전국에 씨앗을 뿌리는 것이죠. 전 내려올 때 그냥 오는 게 아니고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고 옵니다. 여기 마산지역에서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서 박자치며 전도하려면 아침 6, 7시는 넘어야 됩니다. 근데 거기는 내려오면서 새벽 첫길 박자를 치면 소리가 작아도 하고 안 퍼집니까? 그러면 제 가슴에 그렇게 즐겁습니다. 내려오면서는 다섯시에는 아파트에 들어갑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크게 칩니다. 이야기도하고, 그 씨앗이 지금은 4년째 하니까 아직 시끄럽다고 하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고, 대전 동대전역사 뒤에 가면 엄청난 아파트 단지가 있고 거기에 서울보다 더 큰 기라성 같은 교회가 100미터 안에 죽죽 서 있습니다. 근데 거기서 다섯시에 박자를 치고 다닙니다. 저는 아침에 전도를 가야 즐겁습니다. 새벽 5시에 들어가도 한번도 밀려난 때가 없습니다. 그만큼 초대로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서 만족합니다.

각자 각자 자기가 어디에 초점을 둘지 자기만의 고오끼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까 회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자기 고오끼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나의 길이라는 고오끼라 필요합니다. 고성초대라면 상급 받들기, 단노, 자비가 있고, 원남성 초대라면 전도, 포교가 있죠. 그 특성은 교조님 모본을 추구하여 각자 고오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길은 정말 맞는 길입니다. 교조님이 천계를 받을 때 [지금은 모르지만 20-30년 지나면 과연 그렇구나 할 날이 올 것이다.] 하셨습니다. 저도 20년이 지나니까 아직 별로 신자는 없지만 그래도 20년이 지나니 어디서 되어 와도 되어 옵니다. ,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는 데 학교 보낼 거 다 보내고, 갈 데 가고, 많지는 않지만 상급에 끊지 않고 한줄기 마음으로 받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줄기마음으로 상급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입니다.

몸을 말하자면 한뎃잠을 잡니다. 요즘은 시원하죠.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34도 정도는 되는데 잠이 올 때까지 걷습니다. 잠이 오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그 자리에서 죽는 듯이 잡니다. 잠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한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면 추워서 달달 떱니다. 달달 떨면서 오로지 교조님만 찾습니다. 그러고는 계속 또 걷습니다. 걷다보면 아침 1011시쯤 햇빛을 받으면서 몸이 풀립니다. 그때는 방에 잔 것보다 훨씬 뜨시고 좋습니다. 그런 재미로 나가서 한뎃잠을 자고, 실천을 합니다. 그러면 몸에 있는 액운이 빠져 나갑니다. 그 피곤한 속에서 꿈으로 액운이 나가는 걸 봅니다. 벌레가 다리로 숭숭숭 끼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얼마나 몸이 가벼운지, 그게 지금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3, 4도되는 바깥에서 자보면 청진기가 필요 없습니다. 내 몸이 어디가 안 좋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노이로제가 있으면 머리가 어디 아픈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나흘 한뎃잠을 자면 어디가 아픈지 오른 쪽 여기인지, 왼쪽 여기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간이 안 좋았습니다. 간이 안 좋으면 바늘로 꾹 찌릅니다. 신앙 전에 내가 화를 많이 내서 그런데 푹 찌르는 것처럼 고꾸라집니다. 그럴 때 간암이 이런 것이구나.’싶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프면서 동그란 주먹만한 게 축 처집니다. 제 느낌이 그랬습니다. 다른 데는 이상이 없는데 꼭 아픈 그곳만 계속 아픕니다.

저는 실천하러 올라갈 때마다 이사람, 저사람, 구제하기 위해 올라가기 때문에 구제하려는 그 실천을 통해 내 몸이 구제받습니다. 몸은 어버이신님 말씀에 늙지 않고 쇠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60대인데도 20대 몸 아플 때보다도 몸이 훨씬 가볍습니다.

처음에는 대구에서 마산까지 하루 만에 못 들어왔습니다. 남지에 오면 죽을 것처럼 힘들고 길에서 자다 걷다 간신히 들어왔습니다. 지금은 대구에서 그냥 들어옵니다. 아침 다섯시에 출발하면 마산까지 들어오면 11, 수월케 들어옵니다. 나이가 더 들어가는 데도. 예전보다 훨씬 마음이 즐겁고 몸도 가볍게 들어옵니다. ‘. 이건 나이와 상관없구나, 인연이 끊기면 되는 구나, 내가 뿌려 놓으면 어디로 가겠나? 나는 뿌리는 것으로 족하다, 신자가 오고 아니고는 상관없다.’

여러분 포교는 근원적 수호를 받습니다. 근원적 수호는 가정, 부부, 자녀, 갖출 것을 갖추는 것입니다. 거기서 즐거움, 감사가 나옵니다. 나는 지금, ‘, 이것이 포교한 보람이구나.’ 싶습니다. 신자는 별로 없어도 임선쟁, 노선생 용재 두 사람, 친척이 몇 있지만 이렇게 내가 전할 수 있고, 내가 벌써 헛발될(죽을) 사람인데... 엊그제도 집사람이 전도청에 가니까 부산에 어느 초대회장님이 당신 아직도 살아있나? 난 당신들 죽은 줄 알았는데. 참 신님이 계시제? 당신 헛발 몇 번 될 사람 아이가.”하시더란 말을 들었답니다. 이것이 포교입니다. 자식들도 키워보니까 꼭 나 같습니다. 상철이가 여기 근무할 때 근행 제대로 봤습니까? 그래서 저게 터전가서 우찌 해 나가겠노해도 해 나가고 있고, 우리 덕민이가 고성교회에서 근무할 때 머리가 아파서 제대로 근행을 못 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터전에서는 잘하는 지 못 하는지 모르지만 해나가고 있습니다. 말이 없으니 그렇게 해 나가는 줄 아는 거지요. 덕민이가 있는 터전을 향해 지금도 수훈을 전합니다. 수훈을 끊임없이 전합니다.

제가 길만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걸어오되 반드시 전도를 합니다. 수훈도 열심히 전합니다. 지금은 곳곳에서 자기들이 먼저 알아보고 수고합니다.”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보면 다 알잖아요? 자기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차를 피해주고 아는 척을 합니다. 택시기사, 버스기사들이 인사를 합니다. 인도를 가면 안 즐겁고, 상식대로 하면 안 됩니다. 저는 초대이니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전도를 할 수 있을까? 방해를 안하면서 전도를 많이 할 수 있고,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서 일차선 선 위를 걷습니다. 피해 주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선위를 걷습니다. 처음에는 좀 그랬지만 지금은 택시, 버스기사들이 먼저 비켜 줍니다. 식사도 수고한다면서 쇠고기 두루치기같은 것을 사줍니다. ‘당신은 이런 걸 먹어야 된다고 합니다. 커피는 수없이 사 줍니다. 나는 그 씨앗이 언젠가는 싹이 튼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을 전국으로 해 나간다는 그 마음으로 했습니다.

2-3년 전에 한번은 정월 춘계대제에 눈이 온 적이 있습니다. ‘춘계대제는 교조님 은신하신 날을 기념해서 올리는 제전인데 그날의 분위기가 교조님 은신 당시 같아, 바로 이날이구나.’ 싶어서 대제를 마치고 바로 전도 나갔습니다. 그 때 진짜 가랑비가 오고 눈발이 날리고 꼭 은신하신 그날 같았습니다. 부산에서 전도를 하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꼭 그런 분위기, 눈발이 날리는 정월 26일 같은 분위기를 2-3년 전 전도청 달력에 있어서 지금도 걸어놓고 있습니다. 박자를 치면서 전도를 하고 있는데 70대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저더러 하시는 말씀이 내가 기차를 타고 갈려고 했는데 어디서 이렇게 듣기 좋은 소리가 들리나, 이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더라. 그래서 소리를 찾아 따라온 게 여기까지 왔다.” 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그 분이 내가 보기에는 지금 기독교, 불교가 번창해도 앞으로는 천리교와 원불교가 번성하겠다. 나는 학자라면 학자인데 나와 약조를 해 달라, 계속 앞으로도 이렇게 하겠다고 약조해 달라.”하면서 돈 삼만 원을 주었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 돈을 올리고 신님께 고했습니다. 그 분을 만난 일도 신님이 듭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자가 있든, 없든 그것은 신님이 하실 일입니다.

액운은 다리에 모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다리로 아픈 기운이 모일 때 쓰러질 각오로 전도를 하면 신기한 수호가 있습니다. 전도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뭐가 좋다, 뭐가 좋다고 건강에 대해 난리입니다. 노인들도 너무 좋은 게 많아 건강을 지키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면 다 해결됩니다. 전도를 하면 다 낫는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요즘 나가면 , 저 사람이 천리교 하더니....”하면서 아는 척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었소? 오늘은 와 이거 안하요(박자치는 거 시늉하며)?”하고 물어보곤 합니다. 진동에 가면 택시기사들이 오늘은 몇 시에 출발했습니까?” “일곱시에 출발했습니다.”하면 두 시간 반밖에 안 걸렸네. 어디서 출발했습니까?” “추산동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면 자기들끼리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에 우리 노선생과 임선생과 함께 걷는데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처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욕했습니까?” 그럴 때 저기 저 욕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전부 다 우리 전도사이다. 지금은 욕하고 해도 두고 봐라.”고 했습니다. 걷기를 열 몇 번 넘어가니까 회장님, 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면서 , 저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이거 아니가합니다.”

지금도 마산 길을 걸어가면 먼저 오늘은 어디로 걸었냐? 왜 여기는 안 왔냐고 합니다. “저를 어떻게 압니까?” “마산에서 당신 모르면 간첩 아니가.” 그럴 때마다 나는 용재다. 이럴수록 나는 마음과 몸을 더욱 더 낮추고 잘해야겠구나. 모든 것을 신님께 맡기고 우리는 정성만 올린다.’ 는 마음을 되새깁니다. 그 정성을 헤아려 수호를 해주시는 건 신님입니다. 우리가 할 것은 정성, 실천 밖에 없습니다. 나는 내가 걸은 것이 옳다고 걸은 것이 아니고 내 인연에 맞춰 걸어갈 뿐입니다. 아무 것도 없고 가정도 형태도 없는 사람이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진짜 포도알처럼 형태를 갖춘 것입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어버이신님께 고하길 제가 그런 자리에서 바르게 이야기를 안 하면 누가 우리 후계자인 상철이와 뒤따라오는 우리 후배들을 바로 이끌어주겠습니까? 그런 마음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배님들에게 배우는 입장에서 후배를 이끌겠습니다.’ 했습니다.

옛날 초대는 바로바로 구제의 수호가 납니다. 지금의 초대들은 2-3대와 섞여 있기 때문에 본래의 초대정신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찾아갈 것은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 발자취를 따라 가다가 결국 마지막은 교조모본입니다. 선인들의 발자취를 외면하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실천하고 구제하는 데 노력해야 합니다.

어쨌든 여러분 즐겁고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부덕해서 가슴에 있는 것을 다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합니다. 이 귀중한 시간에 죄송한데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인연을 끊으려면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고생이 훗날의 즐거움입니다. 얼마만큼의 고생을 했느냐 그 깊이가 다음날의 즐거움의 크기로 바꿔집니다. 즐거운 것을 만드는 과정이 괴롭고 고생이 되는 것입니다. “고생을 즐거워하라. 고생이 훗날의 낙이야했습니다. 이대 삼대들은 있는 신자를 다듬기 위해 세공하지만 초대들은 어쨌든 고생해서 씨앗을 뿌리는 겁니다. 만인을 구제하면 좋겠지만 설사 아무도 따라 오지 않더라도 열심히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각자 각자 인연에 의해 수호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줄기 마음으로 변함없이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길을 걸어 다니면 지금 무엇이 많이 따라 오느냐면 경찰이 항상 따릅니다. 세상이 어수선하니까 무슨 사고를 칠까봐 경찰이 감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콤같은 경비업체가 따라오면서 감시하고, 그 다음 가스 기름업체가 기름도둑이 많으니까 감시합니다. 그 다음엔 농촌 전선 도둑이 많으니까 전기 전선 업체가 감시하면서 따라 붙습니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의심을 받고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만 나한테 물어보면 교조님은 알고 계신다. 아무리 사람이 감시를 하고 해도 교조님은 내 마음씨 쓴 것을 전부 다 알고 계신다.’ 안 그렇습니까. 뮈니뮈니 해도 이길은 교조님을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가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보이는 대로, 보는 대로, 인연대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교조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께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조용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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