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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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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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계대제 신전강화

 

천연자연의 리

 

 

교회장

 

 

(4)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고성교회 올해 추계대제 근행을 여러분들과 같이 용솟음치는 마음으로 즐겁게 올리게 돼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비가 오기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날씨가 활짝 갠 가을 날씨를 수호받은 가운데 대제를 올리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달은 천리교가 시작된 으뜸하루의 인연이 있는 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86년 전, 18381026일에 어버이신님이 교조님을 월일의 현신으로 삼아서 세계구제의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조님을 통해서 어버이신님의 존재를 알게 됐고 어버이신님을 우러러 받들면서 인간이 나름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따라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 길에서 믿는 신을 우리는 어버이신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버이신님의 정식 명칭은 천리왕님입니다.

오늘 근행을 올리면서 몇 번이나 천리왕님을 불렀을까요. 좌근부터 12장까지 소리를 내서 신악가를 부르게 되면 천리왕님47번 부르게 됩니다. 적지 않은 숫자입니다. 월차제가 있는 날에는 조석근행까지 하게 되면 하루에 100번 가깝게 천리왕님을 부르게 됩니다.

천리왕님이란 과연 어떤 뜻일까요. 천리왕님은 하늘의 순서로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의미입니다. 천리왕님은 천연자연의 질서로서 다스리는 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조님을 통해서 처음으로 어버이신님의 존재를 밝히셨을 때,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신이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실한 신, 인간의 어버이이자 하늘의 달과 해, 하늘의 장군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스스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천리왕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천연자연의 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천연자연의 리 이것이 하늘의 리이다. 원래 천리왕님이라는 것은 50년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지도말씀이 있습니다.

하늘의 실세로서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것. 천연자연으로서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말씀을 한 구절 인용하겠습니다.

원래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구제한줄기는 천연자연의 길. 천연자연의 길에는 내 집, 내 몸을 말하는 것 아니야. 천연자연의 길은 길고도 길게 걷는 것이 천연자연이라 한다. 천연자연의 길을 걷는 데는 어려운 길을 걸으므로 앞날의 낙이라 한다. 지금 안전한(편안한) 길 걷는 것은 앞날 얽히게(고생하게) 되는 거야. 자아 자아 천연자연의 리(), 이 리()를 모두에게 일러주어 즐겁게 한다. 자아 자아 먼 장래에 길다랗게 천연자연의 리()를 기다린다. (1888. 8. 17)

이 길을 신앙한다는 것은 천연자연의 길입니다. 천연자연의 길이라는 것은 쉽게 걷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걸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편안하고 즐거운 것만 찾으면서 가는데 그렇게 가서 되어지는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너무 편하고 낙만 찾으면서 살게 되면 나중에는 고생을 하는 길이 생기는 것이 천연자연의 길입니다. 지금 어렵고 고생스러운 길을 걷고 있어도 나중에 낙이 찾아오는 것이 천연자연의 길이기 때문에 그 이치를 생각하면 오랫동안 걸어갔을 때 우리가 나중에 즐겁게 되는 길을 추구하면서 가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도말씀을 한 구절 더 인용하겠습니다.

신한줄기의 길, 이것은 전혀 일러둔 적이 없었어. 천리왕님이란, 50년 전부터 정성의 리이다. 여기 하나의 장소를 천리왕님이라 하는 까닭은, 원래 없던 인간을 만든 신한줄기이다. 원래 5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근본을 분간해 들어 다오. 어느 곳 누구라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농사짓는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한 사람의 여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야. 대저 구극의 가르침을 일러주는 리를 분간해 들어라. 어디로 보러 간 것도 아니요, 무엇을 배운 것도 아니다. 여자인데도 하강하여 리를 펴는 것을 잘 분간해 들어 다오. (1888. 1. 8)

교조님을 통해서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펴시게 된 데 관련된 구절입니다.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어버이신님께서 즐겁게 사는 것을 보고 함께 즐기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해서 길러서 지금까지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신한줄기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늘과 땅의 본을 받아서 인간세계에서는 부부로 만난 것처럼,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져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월일에게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내 자녀다. 어버이신님은 우리 모든 인간이 자녀라고 생각하고 자녀에 대해서는 어버이로서 모두 귀여워하는 마음, 보살피려는 마음만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신이라는 존재는 뭔가를 평가하고, 잘못을 하면 벌을 주고, 착한 일을 하면 상을 주는 존재라고 이야기하기 쉽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라는 겁니다. 부모는 어쨌든 자식이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과 인간의 질서라는 것은 천연자연의 규칙에 따라 살리어지고 있으므로 여기서 벗어나면 어쩔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연자연의 길

 

인간에게 천연자연의 길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천연자연은 인연이라고 지도말씀에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연에 의해서 이 길에 이끌려져 왔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면 인연에 의해서 부모자식의 인연으로 가족을 맺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이 인연이라는 것이 천연자연의 길입니다. 무엇이든 보이는 천연자연의 길을 잘 따르면서, 인간의 천연자연으로 맺어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잘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천연자연의 길이라는 겁니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인연이 틀리기 때문에 사람은 남의 인연을 보고, 남의 가정을 보고 저건 참 좋겠다.’, ‘저건 참 안 됐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인연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이 천연자연의 길을 잘 따라서 살아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천연자연의 길을 잘 따르면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천리교 신앙을 하면, ‘남을 도와라.’라는 말을 수없이 듣지 않습니까.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도 남을 도와라. 남을 구제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 남을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역시 이것은 사람에 있어서 천연자연의 리인 인연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면 왜 남을 도와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은 인연이라고 하는 천연자연의 리에 의해서 맺어져 있는 거야. 라고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친필에도

전생 인연 모아서 수호한다

이것으로 영원히 확실하게 다스려진다 1-74

라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리에 의해서 만나지고 곁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인연의 리에 의해서 이끌려져 오는 것이라고 지도말씀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부가 되는 것도 인연이고, 부모 자식이 되는 것도 인연에 의한 것입니다. 인연이 없으면 결코 사람은 만나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가족이나 친척들도 모두 인연으로 맺어져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도 모두 인연에 의한 것입니다. 올해 발표에 의하면 이 세계의 인구는 805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그 805천만 명 중에서 오늘 이 자리에 모여서 같이 근행을 올리고 천리왕님을 부르는 것도 참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제 중의 형제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특별한 인연에 의해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께서도 보는 것도 인연, 듣는 것도 인연. 인연이 없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전 전생으로부터 혹은 15살부터 싹터온 티끌은 반드시 때가 되면 나타난다. 이것은 아무래도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있으면 인연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흔히, 좋지 않은 인연이 나타날 때는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피하고 싶어서, 고생스럽다, 어렵다 해서 피하려고 해서 피해지면 그것은 인연이 아니라는 겁니다.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렇게 나타난 인연은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불교에서는 인연과(因緣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연과 인연이 만나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사람이 인연을 만들었을 때, 그 인연이 싹트는 조건이 만났을 때는 결과가 나타나는 겁니다. 천리교에서 인연을 다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한자로 쓰면 같은 의미로서 인연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인연이 없는 일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남을 도와야 하는 이유

 

그러면 우리는 이 길을 가면서 왜 남을 도와야 하는가에 대한 지도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치를 말하자면, 전생에서 사람 백 명을 괴롭혔다면, 이번 생에서는 그 보답으로 백 명분을 고생해야 합니다. 전생에서 사람 열 명 쓰러뜨렸다면 이번 생에서 열 명분 쓰러진다. 집안을 빙글빙글 돌아도 쓰러진다. 이래저래 피할 수가 없어.

그래서 인연을 자각한 자는 백 명을 괴롭혔다면 빨리 백 명분을 기쁘게 해야 한다. 10명 쓰러뜨렸다고 하면, 빨리 열사람을 일으켜야 인연은 끊어진다. 이것은 이치(理理).

남이 나를 괴롭히는 일을 겪게 되면, 내가 남을 괴롭혔구나 하고 자각을 하는 겁니다. 이것을 인연자각이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상대방이 잘못해서 자꾸 나를 괴롭히고 나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연자각을 한 사람은 그런 일을 겪어도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사회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 길을 가는 사람 중에도 이런 걸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내가 하지도 않은 일, 괴롭힌 적이 없는데, 나쁜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나를 괴롭힌다고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인연자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확실히 깨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악인연을 다하는 길이, 세계(이 길 이외)에서는 알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도 이런저런 일을 해서 이 죄를 없애려고 고심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우리 부모님 제삿날이니까 좋은 일을 해야 되겠다. 화가 나는 일이 있고 다툴 일이 있어도 오늘이 우리 부모님 기일이니까 내가 참는다.”라고 하기도 하고,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라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습관으로 하는 것뿐입니다. 인연을 자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인연에 의한 것은 자신의 습성이나 습관에서 나와서 좋지 않은 인연을 계속 쌓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다시 나쁜 일을 쌓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인연을 자각해서 하게 되면 그런 티끌을 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연자각을 해서 하는 행동과 그저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인연을 끊어낸다고 하는 데는 반드시 이런 인연자각이 필요합니다.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 나는 억울하다고 따진다든지 하면 인연자각이 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이런 어려운 일이나 고생의 길을 걸어가는 데는 이런 이치가 있어서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것이구나.’하고 깨닫는 겁니다. 그런 과정이 없이는 결코 악인연을 끊어낼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이치를 분간해 듣는다면 어버이신님은 대난은 소난, 소난은 무난으로 해주시는 것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마음으로써 살아간다면 어버이신님께서 도와주시는 겁니다. 어버이신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100명을 괴롭혔는데 이번 생에는 100명을 즐겁게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10명만 즐겁게 해줘도 나머지는 어버이가 맡아준다고 했습니다. 90% 정도를 할인해준다는 겁니다. 어버이신님이 도와준다는 건 이렇게 100명 중에 10명분만 노력하면 어버이신이 기특하게 여겨 도와준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모두 지도말씀에 언급된 이야기입니다.

100명을 괴롭힌 사람도 10명이나 20명만 즐겁게 해준다면 나머지는 신이 맡는다. 10명을 쓰러뜨린 자라도 2, 3명만 일으켜 세우면 나머지 7,8 명은 어버이신이 구제하는 거야.

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인연자각을 하고 이런 일을 할 때 그렇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인연자각 없이 했다면 그것은 필요 없는 겁니다. 이 길에 인연이 있어서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인연자각을 통해서 마음을 즐겁게 하고 구제를 하는 일에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것만큼 이익이 되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알고 해야 한다고 교조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길을 신앙하면 남을 도와야 된다. 구제해야 된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으므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시가 없는 곳에는 표시를 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나날이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모두 인연을 다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단노를 하면서 걷는 거예요. 감사하다. 감사하다. 고맙다. 하고 말을 하는 것만으로서 인연을 다하는 일이 되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겪더라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마음먹고 말만 해도 인연을 다하는 길에 들어간 겁니다.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들은 어쨌든 이런 태도를 가지고 신앙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에는 그저 사회의 풍조에 휩쓸려서 자신의 주장이나 권리에 대해서 강하게 이야기하고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는 풍조에 휩쓸리는 것은 이 길의 신앙의 값어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는 것은 구제의 길로 나섰다는 겁니다. 우리도 그것을 생각해서 각자가 처한 입장 속에서 교조님께서 일러주신, 나도 구제받고 남도 구제받아서 서로 즐거울 수 있는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