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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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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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월차제 신전강화

 

눈에 보이지 않는 덕

 

교회장

 

(4)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번 여름, 장마도 아주 길었고, 폭염이 있는 날도 많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8월 월차제를 맞이해서 함께 참배하고 용솟음치게 근행을 올리게 되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덕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교조전일화편에 보면 덕에 대해서 몇 군데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것과 남이 깨워서 일어나는 것은 덕과 부덕으로 나뉜다는 글입니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것은 덕이 되는 것이고, 일어나기 싫은데 남이 깨워서 억지로 일어나는 것은 부덕이 된다는 것입니다.

, 일화편 63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이 있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어느 때, 야마나카 고이소에게

눈에 보이는 덕을 바라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바라는가. 어느 쪽인가?”

라고 말씀하셨다.

그에 대해 고이소는 형태가 있는 물건은 잃기도 하고 도둑맞기도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주 짧은 내용입니다. 뭔가 알 듯 말 듯 한 구절입니다. 여러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덕과 보이는 덕 중에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뭔가 눈에 안 보이는 덕을 택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눈에 보이는 덕이라는 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눈에 보이는 혜택 들입니다. 육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건강한 것이 될 것입니다. 신체 건강하게 잘 자라서 학교에 진학을 하고, 무사히 사회에 진출해서 취업을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등이 눈에 보이는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덕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앙을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더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눈에 보이는 덕도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좋은 것들이 하나도 필요 없느냐. 재산이니, 물질이니, 명예도 필요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신앙을 하는 마음에서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자식이 잘된다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덕을 말하는 겁니다.

사람이라면 눈에 보이는 덕을 바라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게 절대 나쁜 건 아닙니다. 누구나 눈에 보이는 덕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충족되어야만 사람이 즐거움을 느끼고 거기서 행복을 찾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에 안 보이는 덕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신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눈에 안 보이는 덕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눈에 보이는 덕이 우리에게 충족되더라도 그것을 누릴 수 없다면 자기 덕이 아니겠지요.

여기에 나오는 야마나카 고이소라는 분도 여기에 해당되는 분입니다. 이분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야마나카 고이소는 야마나카 주시치의 따님입니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야마나카 주시치는 교조님에게 온 최초의 신자입니다. 매일 일참을 한 최초의 신자입니다.

예전에 교인강습회에 가면 사적 견학을 했습니다. 그때 교조님 생가를 한번 들렀다가 야마토마코토분교회에 가게 되는데 거기가 야마나카 주시치 선생의 교회입니다. 그 야마나카 주시치 선생의 따님이 야마나카 고이소입니다. 신앙을 하게 된 계기가 고이소의 형제가 13녀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자기 언니와 여동생, 이렇게 세 명이 한 해에 모두 출직했습니다. 어머니도 중병을 앓아서 목숨이 위태로울 때, 교조님께 도움을 받아서 입신을 하게 됐습니다. 순탄치 않은 입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예전 초대들은 거의 목숨과 관련된 일로 입신을 했습니다.

그 후에 부모님이 정해주신 사람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결혼 생활도 절대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소개해 준 결혼 상대는 당시 학교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일본은 1868년부터 메이지유신이 시작되어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서 교육제도 등도 서양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만들고 그에 따라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은 아주 탄탄한 직업이고 집안도 괜찮고 해서 결혼을 시켰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딸을 둘을 낳았습니다만, 아들을 못 낳는다고 해서 첩을 집안에 들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하녀처럼 부리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굴욕적이었겠습니까. 견디다 못해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런 과거를 가지신 분이 야마나카 고이소입니다. 그래서 교조님이 너는 신님 곁에서 일을 봐야 한다.”라고 해서 교조님 시중을 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화편 등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고이소 이분은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 상대와 결혼해서 잘살 줄 알았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한 것은 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언니나 여동생이 일찍 출직하는 일을 겪는 것도 그것을 누릴 만한 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조님 곁에서 시중을 들 작정을 하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가, 구라하시 마을에 사는 야마다 이하치로라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교조전일화편 84, ‘남쪽 지방참조)

이분도 결혼을 해서 부인을 아주 사랑했습니다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결혼한 후 3년 동안 아이가 없으면 이혼해도 괜찮았습니다. 칠거지악이니 뭐니 해서 이혼을 해도 아무 지탄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결혼 후 3년이 지나도록 애가 없으면 본가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게 당연시됐던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분은 3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음에도 부인을 정실로 받아들여서 결혼식을 하니까 아이가 임신이 돼서 아들을 낳게 됐습니다. 하지만 10일 만에 아들이 출직하게 됩니다. 너무나 실망해서 결국엔 이혼하게 됐습니다. 본인도 우울증에 걸려 집안에 칩거해 있다가 다른 사람의 중매로 야마나카 고이소와 선을 보게 됩니다.

본인도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과 언약을 맺고 싶다는 얘기를 합니다. 고이소가 교조님께 여쭈어보니 너는 다른 데 가서는 안 돼.” 하고 단번에 거절을 하셨습니다. 결국 결혼이 성사가 안 되고 그다음 해에 이하치로가 다시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청했습니다만 그 두 번째도 교조님이 절대로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거절하셨습니다. 그래도 워낙 결혼을 바랐기 때문에 세 번째 허락을 구했을 때 교조님이 비로소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시집보내는 것이 아니야. 남쪽에는 이 길이 전혀 열려 있지 않으므로 남쪽 지방에 이 길을 넓히러 보내는 거야.”라고 하시면서 결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교구제의 길을 내기 위해서 허락해 주었던 겁니다.

이하치로라는 분은 원래 천리교 신앙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이소와 결혼하기 위해서 교조님께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신앙에 전념하게 됐던 겁니다.

생각해보면, 교조님이 그렇게 세 번째 허락하신 이유가, 이하치로라는 분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렸던 겁니다. 아내를 얻을 수 있는 덕도 한 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되었을 때 허락을 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결혼을 하고 포교를 떠났습니다. 이분이 나중에 심유강 초대 강장이 되시고 심유강이 후에 시키시마대교회(敷島大敎會)가 됩니다. 교조님이 각별하게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고이소에게 눈에 보이는 덕을 바라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바라는가하고 물으니 당연히 눈에 보이는 덕을 줘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쌓아서 눈에 보이는 덕을 누려야겠다는 깨달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조전일화편의 많은 이야기가 이런 배경들이 깔려져 있는 겁니다. 그냥 보기에는 단순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역시 신앙을 하면서 초대들이 열심히 걸어주고 구제해 준 덕으로 인해서 그 뒤를 따라서 눈에 보이는 덕을 많이 누리고 있는 겁니다. 지금과 같이 편안하고 안락하고 훌륭한 신전에 앉아서 이런 더위에도 이렇게 쾌적하게 근행을 보는 것도 눈에 보이는 덕입니다. 초대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덕과 그동안에 이어져 온 노력들 덕분에 이런 것이 존재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덕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있고 안 보이는 것이 있는데 안 보이는 덕이 밑에 있다면 그 위에 눈에 보이는 덕이 있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덕이 천박하고 싫은 게 아닙니다. 모두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덕이 밑에서 기초로 깔려 있어야 그 위에 보이는 덕이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겁니다.

친필에도 우리가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우리 몸에 수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행복을 누리도록 충분히 수호하고 있다

몸에 받게 될 테니 이것을 즐거워하라 2-42

충분히 수호하고 있지만 누리고 안 누리고는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이미 많이 주고 있지만 우리가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덕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을 도와서 구제를 해서 눈에 안 보이는 덕을 쌓기 위해서 노력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교회에 다니고 신앙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겁니다. 저걸 해서 돈이 나오나, 무슨 생산적인 일을 하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걸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눈에 안 보이는 덕은 전혀 필요 없고,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덕에 지탱되어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근행을 보고 남을 도우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것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코 덧없는 일을 하거나 가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눈에 안 보이는 덕을 쌓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기초가 튼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남을 돕기 위해서 마음을 내야 합니다. 자녀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실천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이런 것 없이 그냥 지내게 되면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만 가지고 이 세상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라가는 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는 관념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가 계산이 뻔하니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직장 구하기 어렵고, 만족스러운 수입을 얻기 어렵고, 결혼을 하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안 하려고 하는 겁니다. 결국, 이런 것들도 눈에 안 보이는 덕이 있으면 그런 어려움이 있어도 하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고 또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서 내가 옳은 쪽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아나는 것들이 모두 눈에 안 보이는 덕 때문인 겁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 조부모, 그 위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오는 덕이 있다는 겁니다. 혼자의 힘으로 결코 그걸 생각하고 계산해서 살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우리는 부족하나마 나름대로 덕을 쌓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천리교에 오면 어쨌든 남을 도와야 한다.’고 합니다. 신앙을 하지 않고 나만 알고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덕만 쫓아서 산다면 이것마저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길을 알아서 어쨌든 남을 돕는 흉내라도 내고 노력을 하면서 내 마음을 가다듬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충분히 누리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이런 것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버이신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신악가에도 신님께 의탁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고생이 없도록 하여줄테니

신님의 마음에 의탁하여라 (신악가 9-2)

이때의 손춤 동작은 상체를 뒤로 기울이게 됩니다. 내가 뒤로 넘어가더라도 뒤에서 받쳐주는 겁니다. 나 혼자 힘으로 모두 해결하려 하는 게 아니라 신에게 의지를 하고 내가 노력해온 눈에 보이지 않는 덕에 의지해서, 지탱받아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겁니다.

이 길을 신앙하는 것이 덧없는 것이거나 허황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도 자식들이 눈에 보이는 덕을 충분히 겪게 하고 싶어서 열심히 신앙하셨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과정을 전해 가는 단계입니다. 이 길에 끌려서 인도된 이상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본을 나름대로 깨달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은 덕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