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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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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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월차제 신전강화

 

마음작정이 첫째

 

 

 

전인수(진홍교회장)

 

반갑습니다. 1년 중 5월이 가장 살기 편하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기온도 풀려서 적당히 따뜻하고, 지금까지 평균을 내었을 때 1년 중 가장 화창한 날이 많은 달도 5월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기념일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51일 근로자의 날, 55일 어린이날, 58일 어버이날, 515일 스승의 날, 521일 부부의 날, 527일 부처님오신날도 있고, 그 외 유권자의 날, 입양의 날,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 방재의 날, 바다의 날과 같은 다양한 날들이 있습니다. 또 올해 55일 어린이날은 제 생일이 겹쳐 올해 5월은 저에게 더 경사스러운 달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사스러운 달에 상급교회 신전강화 담당까지 맡게 되어 저에게는 더욱더 경사스러운 달인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어떤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거기서 깨달았던 부분이 있어 잠시 말씀드릴까 합니다.(4)

 

당연한 것에 감사

몇 달 전에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이분은 제가 어릴 적에 고성교회 왔을 때 자주 뵙던 분이었는데, 한동안 안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드렸더니 일을 다른 지역에 가서 하게 되어 한동안 고성교회에 못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이야기도 해 주셨는데, 이분이 한 20년 전쯤에 눈에 신상을 얻었다고 합니다. 모든 게 흐릿하게 보이더랍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보이지가 않아 큰 안과병원이라는 곳들은 다 가보았는데, 다들 고칠 수 없다는 이야기만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갔던 병원에서는 나중에 몇 달 뒤에 낫든 안 낫든 우리 병원에 와서 검진을 꼭 받아보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희소병이었다고 합니다.

병원에 들러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면서 의사가 하는 이야기가, 나을지 안 나을지 장담은 못 하는데, 입원해서 치료해 보겠느냐는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그때 이분이 든 생각이 어차피 병원에서 낫지 못할 거라면 굳이 내 돈 들여서 실험용 쥐처럼 이것저것 검사만 당할 필요가 있겠느냐, 차라리 그 돈으로 터전귀참을 하자. 어버이신님께 의지해보자.’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퇴원해서 바로 터전귀참을 했다고 합니다.

터전귀참을 가서 터전귀참 기간에 감로대 앞에서 어버이신님, 아직 애들이 어린데, 이 애들이 대학교 졸업해서 한 사람의 역할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원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창가에 앉았는데, 창가로 햇빛이 비치는 곳에 있는 글자는 보이더랍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있는 글자는 흐릿하게 보이지 않는데, 햇빛이 드는 곳에 있는 글자가 보여 신기하다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 후로 3개월 만에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눈의 신상이 해결되었고, 심지어 눈의 신상을 얻기 전보다 더 시력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 뒤로 다시 먹고사는 데 급급해,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눈의 신상을 도움받았다는 감사함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분 본가 쪽 가족들이 모두 불교를 믿고 있다고 합니다. 독실한 불교 신앙은 아니고 사월 초파일에 절에 가시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가족 간에 모임이 있으면 형제들이 형님은 참 특이하오. 우리 가족들은 다 불교 신앙인데, 형님만 특이하게 천리교 신앙을 하오. 그냥 형님도 불교로 넘어오소.”라고 이야기하곤 한답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너희도 내가 눈의 신상 얻어서 고생하던 것을 천리교 신앙해서 나은 것을 알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하면, 형제들이 그게 천리교 신앙해서 나은 거요? 병원에서 치료했던 것이 뒤에 효과가 나온 거지 않소.”라고 이야기한답니다. 하지만, 본인은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희소병이라는 말을 직접 들었기 때문에 눈의 신상이 나은 것은 치료 때문이 아니라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지금도 뚜렷하게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포기한 신상이나 사정을 이 길을 통해 구제받았다는 이야기를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는 그동안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는 병원에서 치료받았던 것이 뒤에 효과가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에도 우리는 이것은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교조전일화편에도 눈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에 대해 교조님께서는 어버이신님께서 잠시 눈앞에 손을 가린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이런 식으로 이분도 어버이신님께서 눈앞에 손을 가린 것을 다시 치워주셨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거기에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저는 이것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말에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밤에 주무시는 잠에 숨을 거두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의 딸이 간호학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수업 중에 교수님이 요양병원에서 환자들이 가장 많이 죽는 시간대가 밤 시간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 여러 가지 검사를 하여 평소와 다른 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평소와 다르게 혈압이 좀 높다든지, 피부색이 다르다든지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분은 밤에 출직을 할 수도 있으니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옛사람들도 그런 부분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기에 밤새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아침에 아무런 불편함 없이 눈을 뜨는 것 역시도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침에 잠에서 깨셨다면 어버이신님께 오늘도 이렇게 잠에서 깰 수 있도록 수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어버이신님의 수호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도, 들을 수 있는 것도, 먹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어버이신님의 수호입니다. 또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이런 것들을 모두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믿고, 그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앞에 이야기해 드렸던 분도 지금까지 이런 마음으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자녀들도 대학을 졸업하여 모두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해서 다니는 수호를 받았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라고 느끼고 감사하게 생활하다 보니까 결국 그것이 더 많은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은혜보답하는 마음

하지만,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본인의 눈의 신상을 도움받은 것, 또 자녀들이 잘 커서 대기업에 입사하게 된 것도 어버이신님의 수호라는 것에 대해 감사함은 있는데, 이 감사함에 대해 어버이신님에 대한 은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은 없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은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보다는 일단 먹고 사는 데 더 급급하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은혜 보답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대한 은혜 보답하는 마음이 있고, 그것을 실천했더라면 더 많은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새 신전에는 없습니다만, 예전 신전에는 옆에 삼개훈과 팔계명 액자가 있었습니다. 저희 진홍교회 신전에는 아직 오른편에 액자가 있습니다. 삼개훈과 팔계명 중 팔계명을 여덟 가지 티끌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선배 선생님들이 번역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탐내는 마음이 많아서 탐의 마음이 제일 앞에 나와 있습니다만,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에는 인색의 마음이 제일 앞에 있습니다. 교조님께서 이 여덟 가지 티끌의 우선순위에 있어 특별히 순서의 차이는 없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만, 제 나름으로는 인색의 마음이 제일 앞에 있는 것도 하나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색의 마음에 대한 개요를 보면 몸과 마음 쓰기를 꺼려하고, 세금이나 당연히 내야 할 것을 아까워하며 세상을 위해 남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빌린 것을 돌려주기를 아까워하며, 궂은일은 남에게 시키면서 자신은 편하게 지내려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내기를 아까워하고 수고를 아까워하는 천리에 맞지 않는 마음이 티끌이 됩니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몸 쓰기는 이 길에서 이야기하는 히노끼싱입니다. 그럼 마음 쓰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마음 쓰기를 마음 내기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에 마음을 내는 것이 바로 마음 쓰기입니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앞에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면서 들고 가고 있다면 그것을 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이것이 마음 쓰기입니다. 앞에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면 결국 그 사람은 인색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때 무거운 짐을 거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 인색의 마음을 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길의 신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마음 작정도 마음 쓰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길을 신앙하면서 마음을 내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신상이나 사정이 찾아왔을 때는 마음을 내어야만 합니다. 그때 마음 작정을 하지 못하고 시순을 흘려보내는 것도 결국 그 사람은 인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경남교구 월차제 신전강화에서 진해에 있는 동광교회장님께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상급교회장님이 이 길에서 교리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그 상급교회장님께 이 길을 신앙하는 데 있어서 실천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마음작정이 중요합니까?”라고 여쭤봤다고 합니다. 그때 상급교회장님께서는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바로 마음작정이 중요하지.”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실천을 다 하는 것은 어버이신님의 수호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아무리 내가 실천을 다 하려고 노력해도 내가 가진 덕이 부족하거나 어버이신님께서 수호를 해주시지 않으면 중간에 실천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거야. 따라서 실천은 어버이신님의 영역이야. 하지만, 그 실천을 해야겠다고 마음작정을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영역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작정 밖에 없는 거야.”라는 의미로 풀이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은 작정을 해도 3일 단위로 짧게 짧게 작정을 합니다만, 예전에는 간 크게 100일씩 작정을 한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00일을 작정하여 실천을 해가다 보면 꼭 2~3번씩은 그 실천을 못 지킬 사정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떻든 작정한 것인데, 해야지 하면서 무리해서 실천을 하면 100일이라는 날짜를 채우기 위해 정성의 마음은 사라지고, 억지로 그 실천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은 다시 마음을 세워 더 정성을 다해 노력하시겠지만, 저는 그냥 무의미하게 날짜만 채우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음에 어차피 중간에 마음이 해이해질 건데 하면서 그런 실천을 해야겠다는 마음작정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마음을 내어서 마음작정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실천을 해나가면 그 마음을 어버이신님께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 마음 내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버이신님께서 수호를 내려주고 싶어도 내려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작정 밖에 없는 거야.”라고 이야기하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내는 것에서 이 길의 신앙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래서 여덟 가지 티끌 중 인색의 마음이 제일 앞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앞에 이야기해 드렸던 분도 평소 어버이신님의 수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그것에 대해 어떻게든 은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만일 여기서 마음을 내어 이 수호에 대해 은혜 보답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음작정을 하셨다면 더 많은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올해는 교조140년제 삼년천일의 첫해입니다. 앞으로 3년 뒤인 2026126일 교조140년제를 올리게 됩니다. 교조140년제를 향해 우리도 무언가 하나를 마음작정하여 실천해야만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 교조140년제라고 하는데, 마음작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어버이신님께서 수호를 내려주고 싶으셔도 내려주시지 못하십니다.

무슨 마음작정을 하면 어버이신님께 수호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는 어버이신님께 기원드리면 어떤 마음작정을 해야 할지 어버이신님께서 반드시 알려주실 겁니다.

남들이 이런 마음작정을 했다는데, 나도 그것을 해야겠다고 안일하게 마음작정을 하면 중간에 반드시 무리하게 되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지하게 어버이신님께 기원드리면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마음작정해서 실천해나가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버이신님께 기원드리고, 마음작정하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실천은 어버이신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중간에 다 못하게 될 때는 다시 마음을 작정하여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실천을 다 못하는 것에 대해 굳이 마음의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실천을 다 못한다면 ! 아직 내가 마음성인이 덜 되었구나. 더 노력해야겠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작정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어버이신님과 교조님께 보여드려, 교조140년제 때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많이 받아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교조140년제를 맞이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모두가 즐거워할 수 있는 교조140년제를 만들기 위해 모두 함께 어버이신님께 마음작정하고 그것을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를 당부드리면서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