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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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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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140년제 전교회 일제 순교

 

 

이승재(남일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좋은 계절, 교조탄생의 달에 교성교회 월차제에 이런 좋은 기회를 부여받아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고성교회에 오랜만에 오지만 항상 마음속으로는 저와 남일교회에 있어서 은인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제수씨 두 분을 고성교회에서 잘 키워서 보내주셔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고성교회 2, 3대 교회장님께 많은 은혜를 입어서 항상 마음속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 1026일에 진주님께서 유달을 발포하신 이래로 올해 126일부터 연제 삼년천일의 작정이 시작되면서 진주님의 어버이마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 본인의 일로 생각해서 삼 년의 날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알차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마음에서 각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는 본부의 방침에 따라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부족하지만 맡은 시간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4)

 

교조 연제에 대해서

 

각 교회에서도 모두 매일 읽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 교회에서도 매일 읽고 있습니다만 읽을 때마다 진주님의 어버이마음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번의 연제는 140년제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처음의 연제는 100년제입니다. 그때는 제가 터전에 있었습니다. 1년 전에 터전에 가서 다음 해에 교조 100년제를 맞이했습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교조 100년제의 의미를 전혀 몰랐습니다. 신앙도, 나이도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까운 시기를 지금과 같은 마음이었다면 얼마나 더 용솟음치며 즐거웠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당시에는 의미를 전혀 몰랐습니다. ‘축제인가? 사람들이 참 많이 모인다.’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순에 그곳에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110년제였습니다. 그때는 사회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신님과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교조 120년제는 제가 교회장에 취임한 후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연제였습니다. 한다고 하긴 했는데 형식적으로, 겉모습만 따라 하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10년 전인 130년제 때에는 조금 의미를 알고, 약간은 가슴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140년제입니다. 지금의 마음은 유달 말씀이라든지 그 의미가 상당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게 하나의 변화인가 하는 느낌, 조금은 성인 된 덕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년 10월에 터전에 가셨던 분들은 진주님께서 불편하신 몸으로 직접 나오셔서 육성으로 유달을 읽으시는 데서 어버이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올해 연두에서 진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조연제는 전교의 마디입니다. 전교의 교우들이 연제의 의미를 알고 걸으면, 또 걷는 사람이 늘어나면,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만이 임하는 것보다도 한마음 한뜻의 힘도 크게 되며, 그런 만큼 성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버이신님도 의미가 없는 것이고, 교조님도 그저 역사 속의 한 인물이며, 진주님도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더구나 연제라는 것은 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을 하는 사람은 믿기 때문에 그 말씀이 어버이신님이 교조님의 몸속에 듭셔서 50년간 모본을 남겨주시고, 교조님 은신 후에는 본석 선생, 진주님께서 그 리로서 우리들을 이끌어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근행을 봤습니다만, 신악가 제6장에

사람의 마음이라 하는 것이란 의심이 많은 것이 상례이니라

라는 말씀을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굉장히 열심히 하시는 분도 한순간에, 조그만 빈틈에 의심이 스며들면 와르르 무너집니다. 한순간입니다. 몇십 년을 신앙했어도 한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그렇습니다. 그런 경우를 제법 많이 봐왔습니다. 정말로 자기 마음을 조이고, 비우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인간 생각이 듭니다. 맞니 안 맞니, 옳니 그리니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겁니다. 신님이 왜 바보를 좋아하실까 하는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유달 말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읽어도 다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새삼스럽게 제가 여기 와서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글로서 읽는다면 별 감흥이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 담겨있는 마음, 의미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서대로 잘 풀어놓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유달 말씀을 평가한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처음에 진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연제는 전교의 마디입니다.

교조연제의 출발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시간 되시면 고본 천리교교조전9, 10장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9장에는 교조님의 노고에 대해 나옵니다. 1882년부터 1886년까지 18, 19회에 걸쳐 옥고를 치르시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 과정은 사람들이 모여서 근행을 올리면 교조님께서 나라 감옥 혹은 이치노모토 분서에 끌려가셔서 옥고를 치르시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교조님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근행을 보라고 재촉하십니다. 사람들은 교조님이 옥고를 치르시니까 근행 보기를 주저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교조님이 시키시는 근행을 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가 교조님 옆에 있던 상황이었다면, 양측의 입장에서 얼마나 고심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교조님은 교조님 나름대로, 신자들은 교조님을 위하는 마음으로의 고심이 있었던 상황이 제9장에 나옵니다.

, ‘10장 문을 열고서에서는 은신하시기 전의 1838년 정월의 사정들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거기서도 한결같이 교조님의 신상을 통해서 근행을 볼 것을 재촉합니다.

이런 과정들이 입교 당시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입교 당시에도 어버이신님이 교조님의 몸속에 듭셔서 교조님의 신상을 통해 남편이신 젬베에님이 월일의 현신으로 바치겠다는 얘기가 나오듯이 1838년 정월의 상황도 교조님의 신상이 이런 지경인데도 너희들이 근행을 올리지 않겠느냐는 가르침의 위중한 상황이 계속됩니다. 정월 26일 한 달 전부터 매일 밤에 기원근행을 올립니다. 음력 1225일부터 정월 26일까지 매일 밤에 12장 기원근행을 올립니다. 하지만 정월 25일 밤에 위중해지시고 26, 월차제에 초대 진주님께서 단단히 각오가 된 사람만이 근행에 참가하라는 얘기를 하고 옷을 껴입고 감로대근행을 올리게 됩니다. 다행히도 그날은 경찰이 오지 않고 12장의 근행을 무사히 올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교조님께서 좋아지시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조님께서는 12장 근행을 마침과 동시에 은신하시게 됩니다. 그 이전의 문답을 통해서도 문을 열고 땅을 고를까, 문을 닫고 땅을 고를까.” 하고 물으니 문을 열고 골라주십시오.” 하는 식의 대화도 나옵니다.

그렇게 교조님이 은신하신 후에 사람들은 이제 천리교는 끝이 났다. 살아있는 신님이 세상에 없으니 천리교는 이제 끝이 난 것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교조님의 제자들도 신자들에게 교조님은 틀림없이 115세 정명이라고 하셨으니 115세까지 계실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해왔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교조님 90세에 은신하셨던 겁니다.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럴 때 다행히 본석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본석 선생님에게 가서 신님의 뜻을 여쭙니다.

그때 나오는 지도말씀이

이제까지 말해 둔 것, ()의 상자에 넣어 두었지만 신이 문을 열고 나갔으니, 자녀가 귀엽기 때문에 어버이의 수명을 25년 앞당겨 줄여서 지금부터 구제하는 거야. 단단히 두고 보라. (중략) 자아, 이제까지 자녀에게 주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미처 주지 못했다. 또 또, 지금부터 앞으로는 차츰차츰 리를 내려 주마. 잘 들어 두라. (1887218(음력 정월 26) 오후)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앞날을 두고 보라라고 하십니다. , ‘차츰차츰 리를 내려 주마.’라고 하십니다. 결론적으로는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수호를 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선인들은 이 말씀을 믿고 똑같이 다니시면서 신님의 말씀을 전하고, 수훈을 전했습니다.

1888년 교조 1년제가 되었을 때, 3만여 명이 참배를 옵니다. 이때 근행을 시작도 못 하고 경관들이 모두 쫓아내 버립니다. 그렇게 1년제에는 근행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통하고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근행을 제대로 올릴 수 있도록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사카, 나라에 허락을 구했지만, 허락을 받지 못하고 결국 도쿄에 가서 허락받게 됩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신도, 불교, 기독교만 나라에서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신도본국 아래에 6등 교회로서 허락받고, 그 후 교조 5년제를 올리게 됩니다.

1891, 교조 5년제를 올릴 때 3일 동안 성황리에 올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배를 왔습니다. 당시 교조님의 유골을 나카야마 집안의 절인 젠푸쿠지 절에 모셔놨습니다. 젠푸쿠지 절로 사람들이 참배를 가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터전에 가면 교조님 묘소에 참배하시지 않습니까. 당시에도 인정으로서 터전에 와서 5년제 근행을 보고 묘소가 있는 절에 가서 참배를 하게 됩니다. 본부에서 이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지금 묘소가 있는 도요다 산을 매입하고 산소를 새로 조성해서 이전하게 됩니다.

묘소 이전 당시의 초대 진주님의 제문에 보면 신자 수가 백수십만 명이라고 나옵니다. 처음 교조님 은신하실 당시에 비해서 약 30배가량 신자 수가 늘었습니다. 그 후에 10년마다 연제를 올리게 되는데, 1896, 10년제 때 급격하게 신자 수가 늘어납니다. 당시 교회 공인을 받고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현재의 대교회 등이 공인 후에 창립된 것입니다. 10년제 때, 신자가 3백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 인구가 3천만 명이니까 일본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정도입니다. 일본 사람 열 명 중의 한 명이 천리교 신자였다는 겁니다.

그렇게 급격하게 신자 수가 늘어나니까 사회적인 반발이 나고 국가에서도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10년제가 끝난 후에 내무성 비밀훈령이라고 하는 천리교 말살 정책이 시작됩니다. 그 후 40년간에 걸쳐서 가르쳐주신 근행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여러 가지 압박과 감시 속에서 신앙을 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가 연제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은 그때 당시의 선배들에 비하면 실제 의미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140년이 되었으니 관례로서 행사를 치르는구나.’ 하고 생각해버리면 그저 그런 행사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저 ‘1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행사구나.’ 하고 말이죠.

이번 교조 140년제는 16번째의 연제입니다. 처음 1년제, 5년제 이후에 10년마다 연제를 거행하고 있으니 말이죠. 이렇게 연제와 더불어 성장을 해왔습니다. 연제마다 천리교 내에 여러 가지 큰 마디들이 나옵니다. 그러한 마디 속에서 노력하고, 이루어내고, 연제를 잘 마쳤다. 하는 와중에 다시 마디가 나옵니다. 이런 과정이 계속됩니다. 10년제를 마치니 내무성 비밀훈령이 나오고, 20년제를 잘 마치니 본석 선생이 출직하십니다. 이러한 마디들이 나옵니다. 그 속에서 선배 선생들은 그 마디를 잘 승화시켜서 지금의 이 길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달 제4호의 의미

 

유달 말씀에서 처음에는 입교의 의의에 대해 나옵니다. , 어버이신님께서 이 길을 내셨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어버이신님께서는 순각한이 도래함에 따라 교조님을 현신으로 삼아 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세계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즐거운 삶으로 나아가는 구제한줄기의 길을 시작하셨다.”

천리교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천리교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천리교가 필요없다고 신님이 판단하시면 천리교는 저절로 없어질 겁니다. 하지만 즐거운 삶이라고 하는 뜻을 잘 받들어서 살려간다면 이 세상은 실제로 그렇게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그 후, 교조님께서는 월일의 현신으로서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일러주시고, 근행을 가르쳐주심과 동시에 몸소 모본의 길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그리고 1887년 음력 정월 26, 자녀들의 마음성인을 촉구하시며 정명을 줄여 현신을 감추셨지만, 지금도 존명하신 채로 으뜸인 집터에서 세계 구제를 위해 선두에 서서 활동하시며, 우리들을 이끌어 주고 계신다.”

그 방법으로서 교조 나카야마 미키 님의 몸속에 들어가신 겁니다. 친필에도 많이 나오지만,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지만 마음은 신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당시에는 신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가볍게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지금 월일이 생각하는 것은

입은 인간 마음은 월일이야 (친필 12-27)

등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50년 동안 모본의 길을 걸어주십니다. 즐거운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로서, 붓으로서, 행동으로서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위해 정명을 25년 줄여서 은신을 하시게 된 겁니다.

월일의 현신, 모본의 어버이, 교조존명의 리로서의 역할을 다하신 겁니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조님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우리에게 교조님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교조님이 존명한다는 것은, 사람은 출직했다고 하지만 교조님은 은신하셨다고 합니다. 사람은 출직을 하면 영혼이 신님 곁으로 돌아가서 다시 새로운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돌아옵니다. 하지만 교조님은 그런 윤회의 과정 없이 영원히 터전에 머무시면서 전 세계를 다니시면서 우리를 수호하고 계시고 활동해주고 계신 겁니다.

그러한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용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조님의 도구임을 깊이 자각하여, 기한을 정해 마음성인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가는 것이 교조님의 연제를 올리는 의의이다.

지도말씀에

모본의 길을 걷지 않으면 모본은 필요 없다. (중략) 모본의 길밖에 길이 없는 거야. (1889117)

라고 일러주셨다. 교조님의 연제를 향한 삼년천일은, 모본을 목표로 가르침을 실천하며 구제한줄기의 발걸음을 더욱 활발하게 추진해야 할 때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연제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천리교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 교복을 입고 계신 분들은 용재라고 생각합니다. 교조님은 이 세상을 즐거운 삶의 세상으로 만드는 것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하면 많은 재료와 일꾼이 필요합니다. 목수, 미장이, 나르는 사람 등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즐거운 삶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 내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 하고 신님의 말씀, 별석의 말씀을 아홉 번 듣고 신님의 도구로써 쓰이겠습니다. 수훈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신청을 해서 수훈의 리를 받으면 용재가 되는 겁니다.

저는 20대에 수훈의 리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아무 의미도 모르고 받았습니다. 별석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반 이상은 잤으리라 생각됩니다. 자고 나도 도장은 찍어주고, 아홉 번 받고 나니 수훈의 리도 내려 주셨습니다. 의미도 모르고 그렇게 받다 보니 별 감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이 있으면 수훈을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소중함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도 많이 들어 후회도 됩니다. 용재라는 것, 수훈의 리를 받는다는 것이 하나의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의지로 수훈의 리를 받겠다고 신청을 해서 받는 겁니다. 그게 용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조님의 도구임을 깊이 자각하여라는 겁니다.

지도말씀에

모두 각각 이 길의 도구, 도구(1895. 9. 13)

도구 갖추어지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1890. 9. 26)

평생 한 번 사용하는 도구라도 없으면 안 된다. (1888. 9. 2)

큰 일을 한다 하는데 작은 것을 가지고는 할 수 없다. 또 작은 일을 하는 데 큰 것을 가지고는 할 수 없다. (1900. 6. 23)

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도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가지고 신님의 용재로서, 도구로써 쓰여지면 되는 겁니다. 즐거운 삶의 세계라는 집을 짓는 데 있어서 어떤 역할이 필요한가. 어떠한 사소한 것도 필요합니다. 누구에게 물을 떠주는 것도 좋고,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한을 정해 마음성인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어가는 것이 교조님의 연제를 올리는 의의이다.”

기한을 정한다는 부분도 이어지는 지도말씀과 관계가 있습니다.

모본의 길을 걷지 않으면 모본은 필요 없다. (중략) 모본의 길밖에 길이 없는 거야. (1889117)

라는 부분입니다. 교조 1년제를 지나고 나서의 지도말씀인데 원문은 상당히 긴 지도말씀입니다. 중략된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고 붓으로 다 적을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천 년이나 2천 년을 걸은 것은 아니다. 불과 50. 50년 동안의 길을, 50년이나 30년이나 걸으라 하면 안 될 테지. 20년이나 10년을 걸으라고도 안 한다. 그저 10년 가운데 셋이야. 사흘 동안의 길을 걸으면 되는 거야.

기껏 천 날의 길을 걸으라고 하는 거야. 천 날의 길이 어려운 거야. 모본의 길밖에 길이 없는 거야. (중략)

단지 사흘 동안이야. 3년만 이 길을 걸으면 궁핍해지려고 해도, 고생하려고 해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사흘 동안이야.

이 부분에서 삼년천일이라는 기간을 정해서 노력하는 근거가 나오는 겁니다.

신님은 단지 삼 년, 사흘 동안의 길이다.’라고 쉽게 말씀하셨지만 천일도 쉬운 기간은 아닙니다. 상당히 긴 기간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걷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조님이 50년을 걸었으니 그중에 3년을 사흘처럼 생각해서 열심히 걷는다면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떤 선생님은 작심삼일이라고 합니다. 한번 마음먹은 것은 사흘은 간다. 그러니 3년을 사흘씩 잘라서 작정하면 그것이 쌓여서 3년이 간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나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지만 내 일처럼 생각해서 조금 더 열심히 하려는 새로운 마음을 먹고 3년 동안 해보자는 겁니다. 선배 선생들도 그랬던 것처럼 그냥 보내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뭔가 좀 더 긴장해서 더 노력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삼 년이 되어야 하는 것이 이 연제의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모본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교조님의 모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분들 각자가 생각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달에도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있습니다.

교조님 모본의 길은 먼저 극빈에 빠지시는 모습에서 시작되었는데, 교조님께서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어버이신님의 의도인 밝은 마음으로 걸어주셨다.

어느 때는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라고 하시며, 어떠한 가운데서도 어버이신님의 크나큰 수호에 감사드리며 지낼 것을 가르치셨다.”

라고 하셨습니다.

극빈에 빠진 상세한 언급은 없지만, 이 시대에 천리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극빈에 빠지라고 하면 그것이 와닿겠는가. 교조님이 처음에 모든 것을 갖추신 상태에서 현신이 되셨을 때, 그 상태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라고 설파했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를 자기는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니까 자기는 저런 얘기를 하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재산, 지위,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즐거운 삶에 대한 얘기를 하셨던 겁니다.

부자가 돈이 많다는 게 죄가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좋지요.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마음이 바뀌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돈이 좀 있다고 해서 마음이 높아지고 사람을 자기 아래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자신이 안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돈이 많고 적고는 그 덕에 따라 신님이 주시는 것이니 감사하게 받으면 됩니다. 반대로 돈이 없다고 해도 위축되거나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극빈이라는 모습에서 시작되었다는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밝은 마음으로 걸어주셨다고 하시면서 세 가지 말씀이 나옵니다.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 ”

마디에서 싹이 튼다.”

남 구제하면 제 몸 구제받는다.”

물을 마시면 물맛이 난다.’라고 함은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몸, 대물차물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몸이 아프거나 신자분들이 편찮으실 때 경험했던 것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금식이라는 표찰이 붙어있는 병상도 있고, 혹여라도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먹고 싶어서 먹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모두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조님은 물에 비유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은 무미, 무취입니다. 아무런 맛도 냄새도 없습니다. 거기서 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데 살아가는 데 필수인 신님의 수호에는 물과 공기가 필수입니다. 정말 감사함을 느끼려고 하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운 요소입니다. 생활 속에서 스쳐 지나기 쉬운 것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든지 수도를 틀면 물이 나오고 정수기가 비치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물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에 대해 느끼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아졌을 때는 스스로 그런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마디에서 싹이 튼다.’라는 부분도 교조님께서 옥고의 노고를 치르실 때 신자분들에게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옥고를 치르는 것도 신님이 하시는 일이다.” 라고요. 하지만 그러한 노고 가운데에 신자들이 점점 더 많이 불어나게 됩니다. 탄압을 받을수록 더 불어나게 됩니다. 현재 교회의 초대분들은 모두 마디에서 싹을 틔우신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각자의 삶 속에서 마디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 얘기를 어느 분이 나와서 얘기를 하더라도 밤새워 얘기할 수 있는 꺼리가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 사람이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튼튼해진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그 마디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마디를 겪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디를 겪게 되었을 때 그 마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매일 조마조마하게 지내다가 마디를 만나면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헤쳐 나갑니다.

다행히 저는 그런 마디에서 한 번도 ?’ 하고 질문해본 적은 없습니다. ‘내가 천리교 교회장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제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열심히 한 사람이라면 교조님, 어버이신님께 따지고 들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튼 그런 마디를 나름 잘 넘어간 것 같습니다.

처음에 말했던 것에 이어서 말씀드리면, 제가 터전 다녀와서 사회생활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자동차가 제 몸 위를 지나갔습니다. 뼈가 부러지고 해서 입원했습니다. 그때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신님이 나를 부르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 교회에서 청년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고마운 것은 저 스스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기특하게 잘했다는 겁니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여러 마디가 많이 있었습니다.

남을 구제하면 제 몸 구제받는다.’ 하는 부분도 여기 계신 용재분들은 많이 느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몇 년 전에 저도 큰 마디를 만났습니다. 저의 큰아이가 병이 나서 생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 왔습니다. 절박하게 신님께 기원을 드렸습니다. 상급 교회에도 다 연락을 드려서 기원을 부탁드리기도 했습니다. 상급 원화분교회 전 사모님이 그런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괜찮다. 괜찮아질 거야.”라고요. 예전에 원화분교회에서 부탁을 받아서 한 아이를 3년 정도 저희 교회에 데리고 보살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방황하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잘 커서 시집도 가고 잘살고 있습니다. 원화분교회에 가면 사모님과 회장님께서 그때 그 아이를 잘 데리고 있어 줘서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하십니다. 저희 아이가 아플 때 그때 그 아이를 너희들이 잘 키워줬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해주셨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저에게는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남 구제하면 제 몸 구제받는다는 말씀이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신님의 영역이 있지 않으냐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살면서 겪었던 인생의 고비들을 잘 넘어온 것은 제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희 부모님이 걸어오신 길이 있기 때문에 제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저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길도 저나 저의 집사람이 쌓아놓은 거름을 가지고, 바람도 맞고 태풍도 피하면서 걸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구제라는 것은 마디에서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뒤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구제한줄기의 길로 나아가면 어느덧 마음이 맑아져, 밝고 즐겁게 구제받게 된다고 가르치셨다.”

여기서 구제를 받았다는 것은 내 마음이 맑아져서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상태가 구제받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행복의 기준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 길에서의 구제받는 모습은 마음이 맑아져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밝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이 구제받은 상태라고 저는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터전을 그리워하며 오로지 어버이신님의 의도에 의지하는 가운데, 과연 그렇구나 하는 날을 반드시 나타내 보여 주신다.”

라고 하십니다.

올해 2월에 저희 어머니께서 출직하셨습니다. 나름 저희 형제들이 마음을 모아서 어머니, 아버지를 집에서 잘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희 형제들끼리 모여서 하는 말이 우리들은 어머니, 아버지처럼 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아들 넷을 낳아서 키우셨습니다. , 자식과 한집에서 잘 지냈습니다. 저에게 연배이신 많은 신자분이 이 연제 시작하는 시순에 우리 남일교회는 좋은 마디를 만났다. 잘될 것 같다. 분위기가 좋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 “터전을 그리워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천리교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터전이 실재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에덴동산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터전이 실재해서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어버이신님이 진좌하고 계시고, 교조님께서 머물고 계신 터전을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신상과 사정들은 모두 어버이신님께서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남에 대한 배려심보다 자기주장이나 한순간의 만족을 추구하는 행동이 넘쳐난 나머지,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자기중심적인 어두운 마음으로 헤매고 있다.”

세상에서는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당연한 것입니다. , 한순간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도 당연시 여겨집니다. 이 사회도 그런 것들을 부추기는 면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어두운 마음이라고 합니다. 구제받은 마음과 어두운 마음은 서로 대비가 됩니다. 천리교에서 추구하는 것은 형태적인 것보다 마음입니다. 형태적인 모습은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우선은 마음이 밝고 즐겁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들이 봤을 때 없는 게 없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을 것 같지만 내 마음 하나가 밝지 않고 즐겁지 못하면 지옥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음 하나가,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이 없어도 남을 향한 배려심이 있고 밝아있다면 그 사람이 성인 되고 어른인 사람인 겁니다.

모두가 서로 돕고 서로 위하는 즐거운 삶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라는 부분이 신님이 바라는 인간의 모습,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로입니다. 부부간, 형제간, 부모·자식 간, 교우 간, 산하와 상급 간, 친구 간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잘 안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신님이 좋은 인연만 모아준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극복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부부간에도 원수 같은 사이가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이 그렇게 만나게 해주신 겁니다. , 극복해서 이겨내라는 겁니다. 이번 생에 정 안 되겠다 하면 금생에 헤어지기도 합니다. 다음 생에 다시 하면 됩니다. 다음 생에 하기 싫으면 금생에 이를 악물고 이겨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도저히 안 되겠다. 하면 그냥 헤어지세요. 하고 권하기도 합니다.

이 시순에서 우리 용재가 해야 할 일도 제시해주십니다.

용재는 스스로 교회에 발걸음을 나르고, 나날이 히노끼싱에 힘쓰며, 가정이나 직장 등 가까운 곳에서부터 향기를 전하는 데 힘쓰자.”

교회는 어버이신님이 진좌하시는 곳입니다. 히노끼싱은 어디서든지 할 수 있습니다. 히노끼싱은 신님에 의해 살리어지고 있다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도 지금 여러분들에게 신님의 말씀을 전하는 히노끼싱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신님이 빌려주신 몸으로 운전해서 여기까지 와서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히노끼싱하는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도 히노끼싱하시는 마음으로 제 얘기를 들어주고 계신 것이고요. 서로 히노끼싱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서로 돕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무엇이든 일방적인 것은 없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등 가까운 곳에서부터 향기를 전하는 데 힘쓰자. 라고 하십니다. 신앙은 말로서만 전할 수가 없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말이 거꾸로 돌아옵니다. 말만 번지르르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얼마 전에 며느리를 봤는데 신앙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직 근행에 올라가지는 않고 참배만 하고 있습니다. 저는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럴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저 오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며느리는 제가 키운 사람이 아니고 다른 집에서 커 온 사람이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신상이나 사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친근하게 다가가 근행을 통해 수호받기를 기원드리고,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수훈을 전하여 진정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전하자. 어버이신님께서는 그러한 진실한 마음을 받아들여 자유자재한 수호를 베풀어 주신다.”

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버이신님을 언제 느끼시나요? 여러분들이 진실한 마음을 바쳤을 때, 신님이 뭔가를 보여주실 때. 신님이 내 마음을 받아들여서 신님이 활동해주시는구나 하고 느끼실 거로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신님은 뿌려놓은 씨앗은 싹을 틔워주시지만 뿌리지 않은 씨앗은 싹을 틔워주시지 않습니다. 진실한 마음을 잘 심어서 덮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진실한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선배 선생님들이 하셨던 것이나 지나온 역사를 보더라도 이 연제의 시순이라는 것은 진실의 씨앗을 많이 뿌려서 3년 후에 싹이 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순이라고 얘기를 하고 계십니다.

대교회에서도 이번 연제를 기해 마음작정의 실천 항목을 전해 내려주셨습니다. “교조님의 모본을 목표로 구제한줄기에 삼년천일을. 월차제를 올립니다. 때를 놓치지 말고 수훈 전하기를 실천합시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전도에 힘쓰고 별석, 수양회를 보냅시다. 터전, 교회에 대한 이바지에 힘씁시다.” 등입니다. 이것은 대교회의 방침입니다. 각 교회는 나름의 방침을 정해서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면 됩니다. , 개인들은 그 나름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 됩니다.

저희 교회의 경우는, 시대를 넘어서 교조님을 좀 더 가깝게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강습 이후로 천리교교조전을 펼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유튜브 천리티비에서 모본을 보다 가까이를 낭독을 해줍니다. 교조전보다는 풀어서 시대 상황 등을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저희 신자들에게 이 천리티비를 매일 듣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혼의 덕으로 산다라는 신앙 수필도 낭독해주고 있습니다. ,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환경정화 캠페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이것들은 저희 교회에서 같이 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마음 작정을 조금 더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제 기간 동안 전도청 월차제에 조금 더 일찍 참배해서 헌찬에 동참해야겠다는 작정을 했습니다. , 세 분 정도 정해서 집중적으로 기원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별석을 모두 마치지 못한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해서 별석을 마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너무 상세하게 작정하면 질려서 안 할 수도 있으니, 대략적으로 정해서 하려고 작정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형편에 맞춰서 새롭게 마음 작정을 하셔서 연제 시순이 헛되지 않고 모두가, 나의 일처럼 교조님의 손발이 되자는 작정으로 삼 년을 지내고 맞이하는 연제는 또 다른 의미로 각자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연제 때에 교조님 저 잘했지요?” 하고 여쭤볼 정도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조님 한 분으로부터 시작된 이 길을, 선인들은 교조님의 모본을 마음의 지주로 삼아 정성을 다해 걸으며, 우리들에게 이어 주셨다. 그 신앙을 이어받아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손자에게 이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의 착실한 발걸음이 장래 영원히 이어지는 길이 된다.”

입니다.

저 같은 경우도 이 길이 없었으면 이 세상에 없었을 사람입니다. 이 얘기를 저희 형제들이나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너희들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초대가 목숨을 도움받은 덕분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그 은혜를 잊지 말고 이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합니다. 단지, 의무감이나 무게감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걷다 보면 사회에서와는 전혀 다른 신앙에서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갈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이제 와서 얘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나이가 되니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잘 걸어올 수 있었던 것들이 저희 부모님들이나 선배 선생님들의 희생하는 마음 덕분이라는 것이 가슴에 많이 와닿습니다.

제가 작년에 손자를 봤습니다. 아직은 아들, 며느리가 열심히 하지 않으니 저와 집사람이 대신해서 그 손자에 대해 기원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모님들 세대가 이런 마음으로 지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제 개인적인 얘기도 많이 하고 두서가 없었지만 제 얘기를 잘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큰 히노끼싱을 해주셨습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