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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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야기

[183년02월]단노

2020.02.04 18:13

편집실 조회 수:127

잠깐 이야기

 

단노

 

이상봉(고성교회장)

 

단노라고 하는 것은 되어져오는 대로 만족하면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되어져오는 대로 만족하면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연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겨울이 와서 날씨가 추워지면 춥다고 느낍니다.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고 난방을 하게 됩니다. 여름에 더우면 얇은 옷을 입고, 비가 오면 우산을 씁니다. 이런 것들이 자연에 적응해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자연법칙대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극단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동물들은 자연의 섭리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 중에는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람에게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다고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이 강자라고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힘이 있고, 권력이 있거나,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거나, 돈이 많거나, 하는 것도 자연으로 바꿔보면 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동물의 세계로 비춰본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을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높낮이가 없고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환경에 제일 잘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상당히 많은 동물의 종이 있었지만,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는 도태되어 멸종됐습니다. 강한 동물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면서 환경에 제일 작 적응한 동물이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사회는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옛날과 비교해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도 시대가 변하고, 사회와 가치관이 변화하는 데 잘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어르신들도 디지털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생존본능에 따라서 살아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욕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욕망이나 욕심에 의해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살아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의해서 자연을 거슬러, 내가 하고자 하는 식으로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다 보니까, 나타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천리교에서는 마음의 부족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족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마음에 부족을 가지고 있으면 몸의 부족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만족하지 못하면 몸이 만족하지 못합니다. 몸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신상이나, 질병을 의미합니다.

이 길에서는 마음으로 만족하는 것을 좋은 덕목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단노입니다. , 단서가 하나 붙습니다. 되어져오는 대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되어져오는 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마음의 부족이 됩니다.

마음에 부족이 일어나면, 후회를 잘하게 됩니다. 지나간 일을 자꾸 돌이켜보면서 미련을 남기는 겁니다. 또 하나는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걱정하는 것은 대개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되어져오는 대로 만족할 마음이 없으므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내가 과거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지금, 이 순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하게 되는 겁니다. 내년이나 몇 년 후에 일어날 일도 미리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되고 싶은데, 안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회나 걱정을 한다는 것은 마음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실제로 살다 보면 생각대로 되지 않거나,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마음에 부족을 느끼기 쉽습니다. 어찌 됐든,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떻게 되어가든, 사람의 있는 그대로가 자기 자신의 모습이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어버이신님이 그렇게 만들어놨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내 마음에 부족을 느끼는 것은 어떤 일에 그 원인이 있느냐? 내가 살아오면서 써 내려온 마음의 길에 그 원인이 있는 겁니다. 그것을 인연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의 인연이라고 하면, ‘이런 일을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천리교에서는 마음의 길이라고 합니다. 자기 마음 써온 대로 줄기처럼 가지가 뻗어가는 겁니다. 내가 어떤 일을 보고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은 나의 인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단노는 인연자각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만족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연이 무엇인지 깨달아야만 자기 마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겁니다. 인연은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써온 마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걸 내가 깨달을 때 비로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교도소에 있는 죄수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전과가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들어오고 나가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가정이 좋지 않아서 부모에게 학대를 받는다거나 해서 아주 안 좋은 환경에 처하다 보니 가출을 한다든지 해서 그런 환경 속에 살게 되어 도둑질도 하게 되고, 그렇게 가다 보니 계속 그런 생활을 하게 된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결론은 나쁜 부모 아래에서 자기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도 천리교의 가르침으로 풀어서 말해보면, 이것은 불효인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는데, 이런 부모에게 잘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좋지 않은 부모 밑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면 누가 효도를 하겠는가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만히 보면, 내가 효도를 하고 싶어도 효도할 수 없는 부모 밑에 태어났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어가는 상황,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 자기의 인연자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그런 상황에서도 부모에게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단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인연이 끊어지는 길이 되는 겁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고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죠.

 

지도말씀에

안 되는 가운데 단노하는 것은 정성, 정성은 받아들인다. (1897. 10. 8)

안 되는 가운데라는 말은 인간의 상식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가운데서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것이 단노입니다. 그렇게 된 상황을 부족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 인연에 대해서 깨달아 흔쾌하게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어떤 부모에게든 어쨌든 고맙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단노의 길이며, 운명을 바꾸는 길이 됩니다.

마음의 부족은 여덟 가지 티끌 가운데 의 티끌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내 마음에 부족을 느끼는 것은 누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저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강한 겁니다. 예를 들어, 부인이 남편에게 술도 끊어줬으면 좋겠다. 담배도 끊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남편은 술, 담배를 끊을 생각도 안 합니다. 그럴 경우, 부인의 마음에 부족이 올라오게 됩니다. 그렇게 바라고 애원하는데도 그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 말을 안 들어주니까. 부족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의 티끌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을 내게 맞춰서 고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 인생을 비춰봐도 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제일 어려운 게 상대방을 고쳐서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 본인이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의 말을 듣고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요구하는 것은 바로 현실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오는 겁니다. ‘은 상대방에게 요구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내 마음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탐의 마음을 고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편이 잘된다고 해서 내가 더 좋아지는 건 없습니다. 내 마음이 지금의 현실에서 부족을 쌓지 않고 만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상대에게 부족이 생길 때는 나는 탐이 많은 사람이라고 깨달아서 상대를 만족시켜주는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에 부족이 오지 않게 되는 겁니다.

탐이 많은 사람은 뭐든지 못마땅합니다. 식구를 봐도 그렇고, , 아래를 봐도 항상 못마땅합니다. 사회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이 많은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를 만족시켜주는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 덕이 없으므로 내가 계속 부족의 마음이 솟아오는 겁니다. 배우자에게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저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부족을 품는 것보다도 그 사람을 만족시켜줌으로써 인연이 끊어지는 길이 생기는 겁니다.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남을 도와서 내 몸이 도움받는다.”라고 합니다. 상대를 고쳐서 내가 어떻게 좋게 되려 하지 말고, 상대를 도와서 그 사람에게 만족을 실어주면 그게 나에게 돌아와서 내가 만족스럽고 즐겁게 되는 겁니다.

저는 단노 만큼 중요한 가르침은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인연자각을 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습관적으로 후회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말이나 생각으로도 억울하다든지,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상념에서 몰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면 부족이 생기게 됩니다. “부족은 끊는 리라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길이 막히는 길밖에 생기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은 단노에 대해서 제가 깨달은 바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 이번 잠깐이야기는 지난 입교 1821230, 겨울 신앙수련회 준비를 위해 합숙 중인 대학생들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