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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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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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부인회 신전강화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마음 그대로의 수호

 

이호열(성천교회장)

 

(4)반갑습니다. 6월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초여름과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아마 감기에 걸리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연제의 의의

지난 3월부터 지난달 5월까지 용재강습회가 전도청을 시작으로 해서 각 교구에서도 개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수강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현재 온 천리교가 교조130년제를 향해서 새로운 마음가짐 그리고 행동자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각자 신앙인으로서 각자의 입장에 맞는 마음작정을 모두 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생각을 해보니, 연제 때마다 마음작정을 해라.”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제 시순의 마음작정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일단, 한번 생각을 해 보고자 합니다.

1887126일에 교조님께서 은신을 하셨습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1년이 지난 시점에 교조 1년제를 모시게 됩니다. 그런데, 교조 1년제는 제전을 하는 도중에 관헌들이 들이닥쳐서 중도에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1년제는 못 올렸습니다. 그런 사정을 경험한 교직자들과 신자들이 마음을 합쳐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며

교조님의 걸어가신 50년간의 모본을 생각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작정을 해서 교조 5년제를 올리게 됩니다. 그 날의 기록을 보면, 1년제와는 다르게 경찰이 와서 교통정리도 해주는 등 아무 문제없이 올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5년제를 시작으로 10년마다 연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교조 연제를 10년 마다 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교조님께서 은신하신 이유는, 지도말씀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 것과 같이 첫째는 근행 재촉입니다. 근행을 올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녀에게 주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것을 주고 싶은 까닭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수훈의 리입니다.

교조님 당시에는 몇몇 신앙을 하시는 독실한 신자들에게만 수훈의 리를 내려주셨습니다. 교조님께서 은신을 하신 이후에는 별석의 말씀을 아홉 번 듣고 만석이 되었을 때 수훈의 리를 배대 받습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다 신청을 해서 아홉 번의 별석을 거치게 되면 수훈의 리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 길에서 근행과 수훈은 구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수훈이라는 것은 신상구제를 위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오직 신상구제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근행, 조석근행, 오늘과 같은 부인회 제전의 근행 등은 만 가지 구제, 신상 · 사정 등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구제하기 위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구제를 받고 싶거나 구제를 하고 싶은 사람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근행과 수훈이다. 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연제의 마음작정

제가 경험한 교조연제는 교조110년제와 교조120년제가 있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교조130년제가 있습니다. 교조 연제 때마다 마음작정을 하라는 말씀이 있었고, 그에 따른 유달 말씀이 있었습니다. 연제라는 것은 신앙의 으뜸하루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자신이 어떤 심정으로 신앙을 했고 어떤 자세로 신앙을 했는지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을 해보고 처음 시작했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연제의 마음작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처음의 마음과 다르다면, 처음의 절박했던 심정으로 되돌아가서 지금의 사정에 알맞게 다시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연제 삼년천일의 마음작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한번 해보자 하고 엄청난 작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해보자 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의 토대, 뿌리를 살펴보고 거름을 하는 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당연히 구제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저 자신도 그런 훌륭한 용재의 자질을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누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저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교회장이 되고 신앙을 이어나가는 신조는 초대이신 부모님께서 신앙을 통해 도움을 받은 사실이 있고 그 덕택으로 잘 살아오고 있으니 은혜보답의 마음으로 신앙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교회를 지키는 지킴이 역할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교회장을 하다 보니 신자 분들이나 다른 분들이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교회장님, 이런 신상이나 사정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속으로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럴 때는 마음을 바꿔야지요.”라는 대답으로 대신합니다. 그렇게 답해 드리지만, 대부분의 용재님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상이나 사정의 해결책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을 바꿔야지요.”라는 말을 듣는 것은, 이미 자신이 그 해결책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그 답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럼, 어떻게 마음을 바꿔야 합니까?” 하고 되물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말 곤란하기 그지없어집니다. 그럴 때는 어버이신님의 말씀과 교조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대신으로 전해드립니다. 제가 따로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교조님께서 하신 가르침과 말씀을 전함으로서 좀 더 보편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길은 아니지만, 아직 어버이신님께서 교조님께서 원하는 그런 신앙인으로는 상당히 부족합니다.

지도말씀에,

어버이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각자 오늘이 있다. 노력과 효능을 쌓아야만 각자의 길. 1895. 8.3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버이, 부모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덧붙여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효능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쌓아놓은 먹을거리가 남아 있어도 남아 있는 걸 먹고 있을 뿐이지 자기가 이룩한 것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아주 엄한 지도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의 마음이 자식에게 이어진 사정

여기서 잠시 제가 지난달에 야기신자숙소에서 교양담당을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합니다.

교양담당은 한국에서 가시는 강습생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말을 할 수 있는 분들이 가서 대신 심부름도 해주기도 하고 기타 여러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 교양담당으로 갑니다. 제가 이번에 갔을 때는 일본 수양과생이 두 명 있었습니다. 그 중에 스물네 살 정도 되는 아가씨가 한명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틀정도 돼서 보니까 이 아가씨는 전혀 식사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저 아가씨가 왜? 식사를 안 합니까.”하고요. 하시는 대답이 저 아가씨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라는 겁니다. 저는 다이어트라도 하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가씨는 교회본부에서 2년 정도를 근무했다고 하는데도 교회본부에서 나오는 식사를 거의 안 하다시피 했답니다. 그럼, 뭘 먹고 사는가 하고 물어봤더니, 현미를 이틀 간 물에 불려서 먹는답니다. 그걸 가지고 다니면서 식사시간 마다 그렇게 먹는답니다. 일절 교회본부에서 나오는 걸 먹지 않는답니다. 교회본부의 식사를 먹기만 하면 모두 토해버린답니다. 물도 보통 물을 먹지 않는답니다. 휴대용 정수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물을 그 정수기에 걸러서 그 물만 마신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아침에 신전 청소할 때 수양과생들을 데리고 가야합니다. 아침 근행이 5시니까. 3시에 일어나서 청소하고 나면 시간이 애매해서 잠을 못 자고 있다가 근행을 봐야합니다. 아침에 수양과에 등교할 때 보니까 말을 안 하는 겁니다. 사람이 불러도 대답을 안 합니다. 한 번은 등교하면서 보니까, 귀에서 뭔가를 꺼내는 겁니다. 뭔가 싶어 봤더니 귓속에서 귀마개를 꺼내는 겁니다. 양쪽 귀에 귀마개를 하고 있는 겁니다. 가방 안에 작은 통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 통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귀마개가 들어 있고 늘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되니까 밤에 930분만 되면 소등을 하고 잠을 자는데, 한 번은 밤에 잠이 안와서 밖에 나와서 보니 그 아가씨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겁니다. 그냥 밤에 늦게 자는 정도인가 했는데,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기도 한 겁니다. 물어보면 밤새 잠을 안 잔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잠을 안 잔답니다. 이런 사정이 있는 아가씨였습니다.

뭔가 큰 사정이 있는가보다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가씨는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한번 말을 내뱉기 시작하면 계속 조잘조잘하고 말을 잘 하기도 합니다. 물어보니 집이 교회랍니다. 오사카에 있는 어느 교회장 딸, 장녀라는 겁니다. ‘교회장 딸이 왜? 이럴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자기 기분 좋을 때 얘기를 해줍니다. 이 아가씨의 아버지의 할머니가 초대였답니다. 그 초대 할머니가 열심히 포교·전도를 해서 교회를 이룩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열심히 했습니다만 그 아들인 그 아가씨의 할아버지는 한량으로 살았습니다. 이후에 초대가 출직을 하고 그 초대의 아들(아가씨의 할아버지)이 교회장을 이어받았습니다. 한량 기질이 있다 보니 교회장직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나중에 이 아가씨의 아버지가 교회장직을 이어받기 위해 그 교회로 입주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 교회 사정을 잘 몰랐답니다. 한량짓을 하는 동안 흥청망청하는 바람에 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정이 많이 얽혀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입주한 후에 이 아가씨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허구한 날 싸움만 하는 겁니다. 당시 이 아가씨는 초등학생 정도 되었나 봅니다. 이 아가씨가 그렇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싸우는 모습만 보면서 컸습니다. 어린 마음에 드는 생각이 이 교회는 지옥이다. 빨리 자라서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 싸움이 지나치다 보니 그 할아버지 내외가 교회를 은행에 담보로 잡혀서 돈을 구해서 나가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다보니 아버지가 그 할아버지를 원수로 보게 됐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천리교와 아버지가 싫다는 생각, 원망하는 생각만 남은 겁니다. 그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품었던 원망이 고스란히 딸에게 전해져서 아버지를 원망하게 되는 겁니다. 교회장인 아버지의 음악적 소질을 이어받아서 이 아가씨도 대학은 교토로 가서 음악을 전공하고는 있습니다만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입니다.

저도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현재의 그 교회장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이 정도의 사정에 이를 때까지도 부모에 대한 용서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가르침대로 따르자면 부모가 아무리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부모에 대한 마음을 열어놓고 용서를 하는 마음으로 원망, 분노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는데 그걸 아직까지도 품고 있다는 겁니다. 그 교회장도 그걸 알고는 있지만 안 되는 그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자식을 생각할 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밤에 잠이 안 오는 겁니다. ‘당장 참회하고 반성하고 부모에게 남은 마음은 털어버리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몰론, 그렇게 간단한 상황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아가씨에 대한 해결책은 하루 빨리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 분노의 마음을 참회하고 마음을 바꾸는 길이 도움을 받는 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꽃다운 나이에 주위의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에는 귀마개를 하고 있고, 말도 하기 싫고 잠도 못 자고 누구나 다 먹는 음식도 못 먹고 하는 것들이 인간적으로, 신앙적으로 참으로 가엾기 짝이 없습니다. 빨리 도움 받았으면 좋겠는데 안 되는 것도 하나의 사정이구나, 그걸 보는 사람이 빨리 마음을 바꿔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처지가 되어서야 부모의 심정을 깨닫다

다른 이야기 하나를 더 들려 들이겠습니다.

전쟁이 한창 중이던 일본의 이야기입니다. 1940년 전후가 되겠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훗가이도를 제외한 전국이 폭격을 받았습니다. 도쿄의 어느 나가야(일본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길게 늘어선 주거 형태)에 한 천리교 포교사가 전도를 하기 위해 그 주변을 다니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 우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어른이 아이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고 어른은 그 아이를 죽이려고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 전도사가 어른을 밀쳐내고 아이를 구해서 데리고 자기 교회로 데리고 갔습니다.

무슨 사정인가 싶어서 이후에 그 집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목을 조르고 있던 어른은 그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전쟁 중에 일본에는 결핵이 많이 퍼져있었는데 그 아버지도 심한 결핵을 앓고 있었던 겁니다. 병으로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의 엄마는 이미 한참 전에 그 사실을 알고 도망간 상태였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도 몸이 허락을 할 때만이라도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자신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자신이 죽은 이후에는 그 자식은 굶어 죽을 것이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애비인 자기가 자식을 죽이고 난 후에 자신도 죽는 게 낫겠다는 심정으로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포교사가 그 아버지에게 수훈을 전하긴 하지만 며칠 후에 출직을 합니다. 천애고아가 된 이 아이는 그 교회에서 맡아서 기르게 됩니다. 다행히 그 교회장 부부에게는 마침 아이가 없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일본에서는 아이를 양자로 들이게 되면 양부모의 성씨로 성을 바꿉니다. 그 아이의 본래 이름이 홍길동이었더라도 양부모의 성씨가 박씨이면 박길동으로 바꿉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양자로 들였음에도 불고하고 성을 바꾸지 않은 채 원래 생부의 성씨인 홍길동인 채로 키웠습니다. 이 아이는 크면서 교회장 부부의 지극한 정성 속에서 잘 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부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그 기억을 지울 수 없게 됩니다. 그 영향으로 커나가면서 크게 빗나가게 됩니다. 천하에 더러운 짓거리는 다하게 됩니다. 약도 하고, 도박도 하고 남의 물건도 훔치고,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 빼고는 다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양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양아버지는 출직하게 되고 양어머니 밑에서 크면서 결혼은 하게 되고, 신앙은 교회에서 자라다 보니 아침 저녁 근행을 보는 정도로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홀로 계시던 양어머니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회장직을 누군가 이어받아야 되고 자신이라도 교회장직을 맡아서 양어머니를 수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성은 착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받은 도움을 다시 되돌려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과 상의를 합니다. “내가 교회장을 이어 받아야 되는 상황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하고요. 하지만, 그 부인은 나는 신앙은 해도 교회장 사모님 소리는 안 듣겠다.”라고 하며 단호히 반대합니다. 결국에는 거기에 대해 합의를 하지 못하고 이혼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장이 되기 위해서 이혼을 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양어머니가 출직할 때까지 홀로 병수발을 하고 교회를 맡아서 하게 됐습니다. 양어머니가 출직을 할 때 너의 생부가 너를 죽이려고 했던 것에 대한 반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야기하지 못할 사연이 분명히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렇게 양어머니가 출직을 한 후에 새로 부인을 얻어서 결혼을 했지만, 얼마 안되어 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늦은 나이에 아들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몸이 좀 이상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의사 말이 당신의 온 몸에는 암이 퍼져있고 앞으로 3개월 밖에 살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아이도 아직 어리고 한데 어쩔 수가 없다. ‘다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천리교 집안에서 자라서 목숨이 소중한 것이고 빌린 몸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누누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을 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문득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친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되더랍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 마지막 남은 부정으로 자식의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때의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심정을 병든 몸으로 깨닫게 되었던 겁니다. 아버지의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그때 느꼈던 겁니다.

그 분은 3개월 남았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올바르게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대로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그 분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탕한 생활이 아니라 아주 절제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물론, 항암치료는 받지 않았습니다. 3개월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항암치료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때부터 안 피우던 담배를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맥주를 하루에 한 병씩 마시고, 밥도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하게 됩니다. 그게 즐거운 겁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지만 대신 절제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게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이번에 교양담당을 하면서 그 회장님을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해서 부끄럽다고 싹 밀고 오셨습니다. 마침 밖에서 담배를 아주 맛있게 피우고 계시길래

회장님, 요즘 어떠십니까?”

하고 안부를 여쭸더니

아주 좋다.”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담배 피우시네요?”

하고 또 여쭸더니

요새도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있다.”

라고 하십니다.

암은 어떻습니까?”

하니

암도 아직 몸속에 그대로 있다.”

하십니다. 20년 전의 암이 다 퍼진 채로 아직도 몸속에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 암이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 없어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는 겁니다.

제가 이번에 그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주 드라마틱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돌아가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여쭈니

니 맘대로 해라. 대신 다음에 올 때 담배 몇 갑 사갖고 오너라.”

라고 하십니다. 이제 팔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죠. 그 아들이 이번에 교회장을 이어받으려고 준비 중이랍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키워준 양부모가 자신의 성을 양부모의 성으로 바꾸지 않고 친부의 성인 채로 둔 이유를 알겠다. ‘친아버지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심정, 그 부모의 마음을 알아라는 의미에서 성을 바꾸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의 성씨는 자신의 본래 성씨가 아니라 자신을 길러줬던 양부모의 성씨로 바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장직을 물려주기로 했답니다.

친부의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죽이려고 했지만, 그 행동으로 이 아이를 구제받게 한 것이 되었고, 평생 남을 위해 구제 활동을 한 양부모 입장에서는 평생을 한줄기 길로 해서 싹이 터서 교회의 리를 이을 수 있고 또한 자신의 가문의 성씨를 물려줄 이 길의 자녀를 얻게 된 것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너무도 정직하고 선명한 수호의 세계가 아닌가 감탄케 합니다.

 

신앙은 희망을 품는 것

제 말주변으로 그 심정을 다 전하지는 못했을지 모르지만, 신앙, 구제라는 것은 알아가는 것, 알았을 때 비로소 행해지는 것이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을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모든 일에 희망을 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성숙시키려고 원하고 바라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것처럼 이 길은 원하는 대로의 수호가 아니라, 마음 그대로의 수호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희망에는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을 수 있는 즉 즐거운 삶의 끈을 풀 열쇠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영어로 호프HOPE입니다. 이것을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H (health). 건강을 말합니다.

우리들의 몸은 신님으로부터의 차물이며,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어버이신님께서 빌려 주신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수호로써, 눈으로 사물을 식별하고, 귀로써 리를 분간하며, 코로써 사물의 냄새를 맡고, 입으로 씹으며 맛을 봅니다. 손으로 일을 하고, 발로 걸어서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눈은 보고 즐겨라. 안 좋은 거 보고 이렇다 저렇다 하지 말고 보고 즐겨라. 귀는 듣고 즐겨라. 듣기 싫다고 귀마개를 하고 안 들으려고 하지 말고 좋은 소리를 듣고 즐겨라. 목소리는 소리를 내어서 즐겨라. 꽁하고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이야기를 해서 남도 즐겁고 나도 즐겨라. 머리는 생각을 해서 즐겨라. 안 좋은 걱정해서 내일 일 미리 걱정하고 걱정거리 만들어서 걱정하지 말고 침울해지지 말고 좋은 것만 생각해라. 다리는 걸어서 즐겨라. 손은 일을 해서 즐겨라. 몸을 빌려주신 목적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때때로 점검해 보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O (0pportunity). 기회입니다.

기회는 영어에서 찬스Chance와 오퍼츄니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찬스는 야구에 비유하자면 투수가 볼넷을 내어주거나 야수의 실책으로 생기는 기회 같은 것입니다. 그 옛날 뱃사람들이 기다리면 바다 길이 잠잠해진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남에게 의지하여 일을 이루려고 함의 비유)입니다.

오퍼츄니티는 기회라는 것은 같지만, 출세, 승진, 향상, 성인 등의 목표달성의 기회를 말합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기 위해서는 수호를 받을 수 있는 기회, 즉 월차제 근행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봉상하며, 앓고 있는 사람에게 수훈을 전하고 터전귀참이나 또 장래를 위해서 각종 강습회에 자신이나 자녀를 참가시켜 육성하고 히노끼싱의 실천 등으로 즐거운 삶의 기회를 용재로서 신앙인으로서 노력하여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P(parents). 부모입니다.

교조님께서는 어버이신님을 어버이(부모)”라는 말로 바꾸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존엄하고 경건하기만한 신이 아니라, 어떠한 일도 숨김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육친의 부모라고 가르치기 위해서 어버이라고 부르며 친근함을 느끼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버이신님은 인간의 진정한 부모입니다. 자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밝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여 애쓰고 계십니다. 우리들 모두가 고맙게 살고 있는 것은, 모든 천지를 포괄하시는 어버이신님의 슬하에 안아서 따뜻하게 어버이 마음으로 보살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버이신님에 의해 살려지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깨달고 보은감사의 행동을 실천(다하기, 나르기, 이바지 하기, “3할의 마음, 7할의 토대”)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친필에,

어버이의 눈에 맞는 자는 나날이 차츰차츰 마음 용솟음칠 뿐이야 15-66

 

E(equality). 평등, 공평을 말합니다.

친필에,

이 나무도 여송 남송 말하지 않아 어떤 나무든지 월일의 의도 7-21

1898327일 지도 말씀에

남성, 여성 말하지 않는다. 남녀 구별 없다.

라고 말씀하시고, 즐거운 삶의 세계건설에 용재로써 모여 온 사람들은 남녀의 구별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더욱이 친필에,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형제야 남이라곤 전혀 없는 거야 13-43

높은 산에서 살고 있거나 골짜기에서 살고 있거나 같은 혼인 거야 13-45

온 세상의 인간들은 모두 형제자매이며, 일렬형제는 모두 평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자나 여자나 국적이나 민족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수호하신다는 것입니다. 피부색이나 풍습, 습관이 달라도 우리들은 일렬형제입니다. 신악가에,

무엇이든 온갖으로 서로 도웁기

가슴속 깊이깊이 생각하여라 (4장 일곱에)

라고 하신 것처럼, 서로 도와서 즐거운 삶을 맛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용재는 함께 그 사실을 깨달고 몸소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억지로 어디 거창한 데 가서 남을 구제하고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마음자세가 신앙인으로서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발 밑을 살펴보는 것이 연제의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연제의 시순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씨앗을 뿌린다. 시순의 리를 보고 뿌리면 열매가 맺는다. 순을 지나쳐 뿌리면 저곳으로 흘러가 늦어도 안 돼. 아무것도 안 돼

라는 지도말씀이 있습니다.

이 좋은 시순에 각자의 정성의 씨앗을 뿌릴 것을 부탁드리면서 좀 길었습니다만 오늘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