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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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야기

잠깐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다

 

이상봉(고성교회장)

 

몇 달 전에 있었던 국가적인 큰 사건 때문에 요즘에 종교인과 관련된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사회적 인식이 별로 안 좋습니다.

무신론자와 신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서로를 평가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약한 경우가 많다.”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보이지도 않고 존재도 증명할 수 없는 신에게 의지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과연,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신앙을 할 수 없습니다. “종교를 갖는다.”, “신앙을 한다.”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가 없는 신을 믿는 일인데 마음이 강하지 않으면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한 순간의 믿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그 믿음을 이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지간히 강한 정신력이나 마음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는 걸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다리가 보이면 다리가 눈에 보이니까 안심하고 그 다리를 건너지 않습니까? , 길을 가다 건널목에서 푸른 신호등을 보면 안심하고 건너갑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못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푸른 신호등에 건너가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면, 그 푸른 신호등도 못 믿게 되는 겁니다. 안전하다고 확신하던 것들이 무너지고 꺼지고 해서 사고를 당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조차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많이 믿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신뢰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신뢰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기에 상대를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한두 번 만으로는 힘듭니다. 오랜 기간 동안 반복해서 신뢰를 줄 수 있는 마음을 쓰고 시간을 내서 행동으로 옮기고 물질도 오고가고 해서 신뢰가 쌓여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를 쌓고 믿음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마음의 소모가 필요합니다.

아기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낳아서 배고프면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합니다. 이 얼마나 정성을 많이 들이는 것입니까? 그래서 아기는 엄마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한 아기들은 자라면서 사람과의 대인관계가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무한한 신뢰를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엄마가 아기를 키울 때는 얼마나 많은 수고를 쌓아가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마음이 약한 사람은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신님이 기분에 따라서 존재한다고 하고 기분이 안 좋으면 없는가 보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천리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만약에 눈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눈 이외의 다른 감각부분인 청각이나 촉각이 예민해져서 귀나 손발에 의지해서 살거나 남이 이끌어주는 대로 그것을 믿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못 믿게 될 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편파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지경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신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계속적으로 믿어가는 것입니다. 신은 실체도 없고 보이지 않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어가는 것입니다. 그걸 보고 계속적으로 믿어가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강한 마음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어떤 일을 겪더라도 모든 되어져오는 일들은 신님의 뜻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고생스런 길을 걷더라도 그건 고생이 아니고, 어버이신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고 있는 것이고, 수호를 해주시고 있는 것이다. 라고 믿지 않습니까? 아주 힘든 고생도 우리는 마디라고 생각을 하고, 그런 마디를 통해서 더 크게 자라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따라가는 것이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신앙의 힘이 생기는 것은 연한이 지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마음이 약한 사람들인 겁니다.

교조전일화편에서

교조님께서는 어느 때, 야마나카 고이소에게

눈에 보이는 덕을 바라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바라는가. 어느 쪽인가?”

라고 말씀하셨다.

그에 대해 고이소는 형태가 있는 물건은 잃기도 하고 도둑맞기도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63, 눈에 보이지 않는 덕)

 

이 이야기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눈에 보이는 덕은 우리가 신앙을 통해서 얻게 되는 물질적인 풍족함이나 눈에 보이는 혜택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덕은 우리가 어버이신님의 세계에서 살리어져 나가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는, 신앙을 이어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마음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셔도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매달 월차제 전날(19) 저녁 근행 후 교회장님께서는 잠깐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데 이번 719일 저녁 분을 정리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