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7월 월차제 신전강화

 

다섯 가지 웰빙

 

이승재(남일교회장)

 

<추천문구>

몸은 대물 차물의 리임을 잘 생각하고 마음 하나가 나의 리란 것을 자각해서, 나날이 항상 마음의 티끌을 털기에 게을리 하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도 교조님의 모본을 흠모하고 오로지 어버이신님께 의지하여 남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 길을 신앙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제가 전반 중간에 와서 함께 근행을 보았는데, 뒤에서 근행 보는 모습을 보니까 음악은 잘 모르지만,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근행을 같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부족한 사람을 불러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내용도 없는 얘기를 해야 하기에 곤혹스럽기도 하지만, 이것도 신님이 주시는 역할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시간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오늘은 약간 사회적인 입장으로 천리교 교리와 비교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들으시기에 그리 큰 부담은 없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4)

 

행복이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최고의 가치는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막상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행복하지만 자신이 없어서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행복하지 못해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을 다른 표현으로 하면, 한 때 유행했던 단어인 웰빙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잘 사는 법, 잘 존재하는 법 정도가 될까요?

요즘은 웰에이징, 웰다잉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만 큰 의미에서는 모두 웰빙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웰에이징은 잘 나이를 먹는 것, 곱게 늙어가는 것,웰다잉은 잘 죽는 것,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인생 이모작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수명이 늘어나면서 인생 삼모작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 조금 나이 든 것을 느끼면서 언제 은퇴를 할지 혹은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할지 아주 스쳐 지나가는 생각으로 한 번씩 해봅니다.

현재 제가 희망하는 저의 나이든 모습은 아침에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따뜻한 차와 함께 쟁반에 담아서 침대로 가져가서 여보 아침이야, 일어나.” 하며 아내를 깨우며 아내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여유를 누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시킨 것을 조금이나마 갚아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얼마를 살든, 사는 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봄으로서 우리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우리들이 신앙적 신념에서 추구하는 즐거운 삶과 어떤 부분이 일치하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를 비교해 그 차이를 앎으로서 우리 신앙의 가치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여론조사 연구소인 갤럽연구소에서는 웰빙에 대한 종합적인 측정을 위해 150개국 이상의 나라를 대상으로 50년에 걸쳐 웰빙 파인더라는 평가 지를 만들기 위해 나라, 언어, 각종 다양한 상황 속에서 총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수백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통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웰빙 테마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합니다.

첫 번째 테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는지, 쉽게 말하자면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관한 것으로 이것을 직업적 웰빙(Career Wellbeing) 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테마는: 강력하면서도 끈끈한 인간관계에 관한 것인데,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지와 관련된 테마로서 사회적 웰빙(Social Wellbeing)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테마는: 재정 상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관한 것으로 이를 경제적 웰빙(Financial Wellbeing)이라고 칭합니다.

네 번째 테마는: 훌륭한 건강 상태와 일상적인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해주는 충분한 에너지를 갖 고 있는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육체적 웰빙(Physical Wellbeing)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테마는: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참여 의식에 관한 것으로 커뮤니티 웰빙 (Community Wellbeing)입니다.

조사결과 66%의 사람들이 이런 영역들 중 최소 한 가지에서는 나름대로 만족해하고 있지만, 다섯 가지 모든 영역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삶,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사는 사람은 겨우 7% 정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들 다섯 가지 모든 영역에서 골고루 일정 수준의 삶을 살아야만 진정한 웰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 요소는 종교, 문화, 국적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웰빙 수준을 높이는 데 서로 다른 방식들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을 웰빙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영적인 부분으로 그들(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신앙이 행복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이런 테마들은 어느 정도 우리 통제권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들 요소를 향상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웰빙에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유일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들은 별 생각 없이 단기적인 욕구를 앞세워 장기적인 웰빙을 헤치곤 합니다.

테마를 하나씩 살펴보면

 

1. 직업적 웰빙

 

우선 직업적 웰빙은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과 비전을 가지는 것입니다. 학생이든 주부든 직장인이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어린 아이든, 매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직업적 웰빙이 높은 것이며, 전반적으로 만족감을 누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배 이상 높습니다.

매일 내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가가 나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기를 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내가 사기를 잘 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고민합니다. 여러분들 같은 용재님들은 어떻게 하면 신님의 말씀을 잘 전해서 남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합니다. 평소에 자기가 집중하고 열정을 바치는 것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몰입을 하지 못하면 엉뚱한 생각만 듭니다. 근행을 보는 데도 몰입을 하게 되면 언제 근행이 끝난 지도 모르게 근행이 끝나지만, 몰입을 하지 못하면 언제 근행이 끝나지? 지금 몇 장 하고 있지?’ 하고 근행을 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매일 하는 사람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디솔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은 면역체계를 억제하고 혈압과 혈당을 높이므로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하는 사람은 목숨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스트레스도 적고, 일도 즐겁고, 몰입도 잘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왕 하는 일, 마음을 바꿔서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내고 의미를 발견해내야 합니다.

저희 교회 신자분 중 환경미화원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추워도 더워도 일을 하셔야 합니다. 제가 더운데 얼마나 힘드세요.”, 겨울에는 추운데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그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아이고, 일을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라고 얘기합니다. 결국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남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하면 자연히 즐거움이 생기는 겁니다.

이전에 제가 약국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약국들이야 늦게 열고 일찍 닫고 하지만, 그때는 매일 아침 7시에 나가서, 11시에 돌아오는 게 제 일과였습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수입도 괜찮고 아프신 분들을 도와준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점점 하루하루의 수입에 따라 달라지는 제 기분을 확인하고 굉장히 씁쓸해진 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일 자체의 재미나 일의 의미보다는 눈앞의 이익이 목적이 되니 일이 별로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학생이면 공부, 직장인이면 자신이 하는 일, 주부면 가사일, 무엇이 되었든 그 일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의미를 찾거나 혹은 의미를 스스로 부여한다면 직업적 웰빙은 성취될 것입니다.

직업적 웰빙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잘 활용하고, 비젼을 공유하고 성장을 자극해줄 사람을 찾아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나 그룹과 되도록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용재들은 어떨까요? 매일 올리는 근행, 전하는 수훈, 전도 구제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계십니까?

솔직히, 저는 그렇게 즐겁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괴롭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데, 아주 열정적으로 못하고 있는 자신에게 답답해하고는 있습니다만 내 스타일대로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가려고 채찍질을 하고 있습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비전을 공유하고 성장을 자극해줄 사람이 없어서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의미는 찾은 것 같습니다. 용재로서의 길을 걸음으로서, 존재하고 살려지는 것에 대한 은혜갚음이 되고, 스스로를 비우고, 나쁜 인연은 덜 쌓고 조금이나마 덕을 쌓고, 교조님의 모본을 따라가는 숭고한 길이기도 하고(제대로 걷기만 한다면 성인-성스러운 사람-이 되는 길), 남을 살리거나 인생의 전환점으로 안내하기도 하는 아주 보람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만족감은 꽤 큽니다. 집사람이 약사보다는 잘 맞는 것 같다고 응원도 해줍니다. 그래서 저의 직업적 웰빙지수는 10점 만점에 7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 사회적 웰빙

 

두 번째 사회적 웰빙은 주변 사람들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음으로서 웰빙지수가 올라갑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대로 주변 사람들의 상태에 따라 좋은 영향도 안 좋은 영향도 많이 받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하고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이 무려 15%까지 증가합니다. 바꿔 말하면 웰빙지수가 높은 사람과 직접적이고 빈번한 접촉을 갖는다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 단계, 두 단계에 걸친 간접적인 연계도 내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다면 내 친구가 행복해질 확률은 15% 증가하고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은 10%까지 증가합니다. 내가 그 사람과 알지도 못하고 상호관계가 없다고 해도 말입니다. 세 단계가 떨어진 관계에서도 내가 행복해질 확률은 6%나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1년 연봉이 천만 원 증가했을 때 행복해질 가능성이 겨우 2% 증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타인의 행복이 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이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그래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자연히 내가 행복해질 가능성은 커지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아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는 겁니다.

이 길에서 남을 구제함으로서 내가 구제 받는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나쁜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흡연의 경우 흡연자와 직접적인 유대관계에 있을 경우에는 담배를 피우게 될 확률이 61% 더 높았고, 두 단계 떨어진 관계, 즉 친구의 친구가 흡연자일 경우에도 29%가 더 높습니다.

비만의 경우도 친한 친구가 비만일 경우 내가 비만이 될 확률이 57%까지 높아지며, 형제나 자매가 비만일 경우에는 그 확률이 40%까지 증가합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비만이 되었다면 내가 비만이 될 가능성은 37%까지 높아집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게 될 확률이 5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힘겨운 동안의 고통을 어느 정도 흡수해주는 완충제 역할을 하고, 이는 다시 심혈관계의 기능을 개선시켜 스트레스 수치를 낮춰준다고 합니다.

또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부부의 경우 관계가 좋은 부부에 비해 상처 회복 속도가 2배의 시간이 걸렸다는 실험결과가 있는데 이는 질병이나 상처의 회복 속도에 사회적 웰빙이 큰 영향력을 지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긴밀한 유대관계와 상대방과의 거리 이외에 사교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의 양도 중요한데 충만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하루 6시간의 사교활동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화통화, 잡담, 이메일, 문자, 카톡 등 모든 의사 소통시간이 포함됩니다.

저는 사회적 웰빙지수가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10점 만점에 거의 10점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형제들과 제수씨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통화하고, 한 달에 한 번 같이 월차제를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매일 아빠 사랑해하고 전화해주며 요즘은 조금씩 용재로서의 마음으로 아빠를 응원하고 충고하는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데, 아내와 장모님이 외국인이다 보니 인사하면서 뽀뽀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뺨에 뽀뽀하는 장모님과 아내가 있고, 가족들과도 자주 뽀뽀를 하며 스킨십을 가집니다. 아직 부모님께는 뽀뽀를 잘 못하겠는데, 요즘은 조금씩 아버님께 밤에 잘 주무시라고 이불 덮어주고 뺨에 뽀뽀해드리는데, 그러면 아버님이 잘자 라고 제 등을 탁탁 두드려 주시는데 그게 너무 좋습니다.

, 내가 전화하고자 생각을 하면 상대방이 먼저 전화를 해오는 경우도 많이 있고, “회장님 보고 싶습니다하고 전화 와서 같이 밥 먹자, 소주 한 잔 하자 하는 신자 분들과 젊은이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내 노후를 책임 줘 주겠다는 친구도 있고 차를 사주겠다는 사람도 몇 있고. 또 같은 길을 걷는 마음 맞는 교우들도 제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저는 이런 관계 속에서 어버이신님이 맺어 주신 인연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동시에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열망도 생깁니다. “교회장님 매일 힘드시겠어요. 항상 힘든 사람들 이야기 들어주고 아픈 사람들 찾아 병원 다니고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용재로서 여러 신상, 사정으로 모여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훈을 전해 주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깨우치고 같이 기원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나에게 행복을 주고 힘을 주는 이런 고마운 인연들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님이 주신 고마운 인연을 통해 내가 누리는 행복을,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신앙을 해서 고마운 인연, 좋은 인연들을 만나 누릴 수 있게 되기를 항상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도 내 자녀를 비롯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신한줄기, 구제 한줄기의 길을 걸어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는 길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사람과의 만남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특히 부부 관계. 피할 수도 달아날 수도 없어서 평생 골병이 든 사연들. 말을 들으면 어떻게 저런 지옥 같은 세월을 지나오셨을까 화도 나고 눈물도 나는 그런 사연 앞에서 그것도 당신의 인연이니 단노하세요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습니다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단노를 하는 수밖에는 길이 없음을 알기에 가슴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평소 교조 모본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납득하고 있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도 이 분은 힘들면 몇 시간이고 신님 전에서 근행을 올리고 울고 하면서 스스로의 힘든 운명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교조일화편에

188626(음력 13), 집터에 돌아와 있던 우메따니 시로베에게 집에서 앞서부터 병중이던 2녀 미찌에가 죽었다는 통지가 왔다. 교조님을 뵙고 이야기 끝에 그 일을 여쭙자, 교조님은

그것은 고마운 일이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우메따니는 교조님이 무언가 잘못 들으신 것같이 생각되어서 다시 한 번 아이를 잃었습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교조님은 다만 한마디,

큰애가 아니어서 다행이구나.”라고 하셨다. (184, 깨닫는 방법)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님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인연이 다 보이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큰 아이가 죽을 인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는 교조님과 같은 마음을 갖기란 정말로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상식적으로 정신이 나간 사람들이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교조님께서 모본의 발자취를 통해 일러주신 가르침들은 분명 온 세상 사람들이 즐거운 삶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꼭 지켜 행해야 할 가르침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마음이 어리고 신앙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럴 것이며, 신앙적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 저는 인연 모아 수호한다는 신님의 말씀을 자주 경험합니다. 남일교회에 2년 정도 있다가 나간 청년이 있는데, 어머니가 신앙을 하셔서 그 사람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가시고 사시느라 바쁘셔서 그런지 신앙에서 조금 멀어지셨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어머니가 암에 걸려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수훈을 전하러 가서 그 청년을 병원에서 처음 만났고, 그 후에 몇 번 병원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출직하시고 나서 연락이 끊겨서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너무 힘들어서 죽겠다고 하기에 일단 교회로 오라고 해서 그렇게 2년 정도 같이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자분의 아들도 저하고 어릴 적 친구인데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 해서 교회에서 같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그 청년 생일이라고 해서 교회 사무실에서 케익을 사서 축하를 하는데 그 친구 생일이 67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등록상에는 49일로 되어 있고요. 그 자리에 나를 포함한 남자 4명이 있었는데, 모두 생일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한 친구는 음력 67일이 생일이라고 신기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른 한 사람에게 당신은 생일이 언제냐고 했더니 719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 놀랐습니다. 제 생일이 49일입니다. 그런데 주민등록상의 생일은 719일 이거든요. 거기 모인 남자 네 명의 생일이 모두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아내가 하는 말이 당신이 모두 불러들인 사람들이잖아요. 당신이 책임지고 잘 키우세요.”라고 하더군요. ‘! 이 사람들이 모두 서로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구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내 주변에 나를 도와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만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도 어쨌든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 깨닫고 단노해 가는 것이 신앙하는 우리들의 자세일 것입니다.

 

3. 경제적 웰빙

 

세 번째 경제적 웰빙인데, 일반 신 자분들에게는 상관이 있어도 이 길을 걷는 용재들에게는 별로 연관이 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잘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의외로 이 길의 용재들이 경제적 웰빙 수준이 높을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웰빙의 경우 일반적으로 부자 나라의 국민들이 경제적 웰빙지수가 높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경제적 웰빙지수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돈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단일 요인보다 재정적 안정감 즉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언제든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액수 이상의 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과 돈에 대해 걱정이 없는 상태가 더 웰빙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돈이 많다고 무조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용재들은 의외로 바라는 것이 많이 없기 때문에 많은 돈도 필요 없고 그래서 재정적 만족감이 높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드는 보험도 별로 없고, 노후에 받을 연금도 없지만 오직 신님을 믿고 의지해가는 이 길이 진정한 마음 부자의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조 일화편 중 제가 좋아하는 일화편을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교조님께서는 마스이 기쿠에게

이 집터는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낼 수 없는 곳이야.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만 생각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부자유하지 않는 집터야. 이것이 세상의 부자 집터인 거야

라고 들려주셨다.(78, 부자 집터)

이 교조님 말씀이 우리들이 경제적 웰빙을 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도 경제적 웰빙에 영향을 끼치는 데, 자신을 위해 돈을 쓸 때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쓸 때가 웰빙 수준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또 물건을 구매하는 데 돈을 쓰는 것보다는 가족들과 외식을 하거나 좋은 사람들과 휴가를 떠나는 등의 좋은 기억과 경험을 위해 돈을 쓰면 그 행복했던 기억과 경험들이 오랫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경제적 웰빙에 중요한 것은 타인과 비교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 고등학교 동창생 중에 인제대학 의대교수를 하는 의사가 있는데 몇 십 년 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 수입에 대해 불만이 많은 거예요. “네 월급이 얼만데?” 하고 물어보니 그 때 당시에 900만원이라고 하더군요. 그 때 제 한 달 용돈이 30만원 정도였는데 저는 별 불만이 없었거든요. 그 친구는 다른 잘 나가는 의사들과 비교를 하다 보니 스스로 경제적 웰빙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경제적 웰빙지수는 10점 만점에 9점정도 될까요.

돈의 액수가 경제적인 웰빙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4. 육체적 웰빙

 

네 번째로 육체적 웰빙입니다. 육체적 웰빙은 절제와 자기관리 그리고 운동이 필요합니다.

입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 몸에 좋은 음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알고는 있지만 선택의 순간이 오면 입에 지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날 많은 병들의 출발은 우리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에서 온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랫동안의 나쁜 식습관과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게으름이 많은 성인병들과 현대병들의 큰 원인중 하나입니다.

신앙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몸은 신의 대물 차물이다. 마음 하나가 나의 리. (1889. 6. 1)

인간이란, 몸은 차물, 마음 하나가 제 것이다. 오직 마음 하나에서 어떠한 리도 나날이 나타난다. 어떠한 리도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유자재라는 리를 분간해 들어라. (1889. 2. 14)

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즉 몸을 자유로이 놀릴 수 있는 것도, 부자유로 고생하는 것도 각자 마음 쓰기 하나에 달려 있다는 말로 이를 마음 하나가 나의 리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나날이 쌓인 티끌이 신상과 사정의 원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이야기인데, 우리가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술이나 담배를 포함해서 입이 좋아하는 음식을 과하게 섭취하는 것은, 내 마음이 선택하는 것이므로 어쩌면 탐이나 욕심의 티끌을 쌓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또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나만 좋으면 하는 편애의 티끌을 쌓고 있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신상과 사정의 원인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님이 주신 몸을 내가 챙기고 소중히 해야 합니다.

우리 용재들은 모두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정직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생활습관 면에서는 아주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식생활 면에서도 모든 것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먹으니까 건강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가 타고난 유전자는 바꿀 수가 없지만 내가 갖고 태어난 나쁜 유전자를 나타나지 않게 잠재울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건강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으로 가능합니다. 후성유전학(epigenetic inheritance)’이라고 하여 나에게 일생동안 일어나는 건강상의 문제가 자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들에게도 전달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루 최소 20분간은 운동을 해야합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니까 운동 많이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큰 운동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운동이 신앙하는 용재들에게는 사치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운동도 많이 있습니다. 운동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 보시면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티벳의 달라이 라마도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러닝머신 위를 뛰는 것을 어느 다큐 영화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점점 귀찮아서 안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유익하게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허비하는 시간들만 늘어납니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해서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육체적 웰빙에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잠을 잘 자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간은 7-8시간정도 자는 것이 적당하고 9시간 이상 자면 그 때부터 오히려 피로가 쌓인다고 합니다. 낮잠은 30분에서 1시간정도가 적당하고 잠의 질도 중요합니다.

저는 밤에 잘 때 양압기라는 기계를 사용하는데 이것이 제 잠의 질을 높여줍니다. 저는 수면무호흡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젖이 기도를 막아 자면서 무호흡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산소가 뇌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다보니 수면 시간과 상관없이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것이 되어 낮에도 항상 피곤하고 졸리고 했었습니다. 수면무호흡증은 돌연사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수명도 15년에서 20년 정도 짧아진다고 하는데, 저는 다행히 기계에 의탁해서 수명이 조금 길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기계 덕택에 잘 자고 낮에도 피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면서 숨을 쉰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마운 어버이신님의 수호라는 것을 잘 때마다 느낍니다.

우리의 건강은 나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행복에도 큰 영향을 끼치므로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위한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제 육체적 웰빙지수는 10점 만점에 7점정도 주고 싶습니다.

 

5. 커뮤니티 웰빙

 

마지막으로 커뮤니티 웰빙인데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사회에 환원하는 데서 느끼는 행복감입니다. 그리고 종교단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커뮤니티 웰빙 수준을 높인다고 합니다.

요즘 서울에서는 자치단체에서 이런 지역사회 참여 활동을 지원하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마을 공동체 활동들을 하고 있고 그것이 마을 기업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주민의 욕구와 지역문제를 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모여 해결하는 마을 단위의 활동들입니다. 제 막내 동생이 서울에 사는데 이런 데 관심이 많아서 강서구에서 이번에 하루 문화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공동체 사업을 신청해서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 시작을 했는데 공동 육아와 주변의 재능을 기부 받아서 하는 문화교실 등으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길의 이야기도 전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도 이 길의 교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전도가 안 될지는 몰라도 천리교 교회를 알리기 위해서는 바깥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공간을 빌려주는 것도 괜찮고 아니면 교회가 주도하여 뭔가를 지역사회를 위해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일교회가 하단으로 이전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뭔가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층 사무실을 도서관이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해서 주변의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이용을 하게끔 하거나, 다문화 가정들의 모임도 만들고 일본어나 스페인어 교실도 열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 아무 것도 시작을 못 했습니다.

단지 한 달에 한 번 지역의 여러 단체에서 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급식 때 교회 식당을 빌려주고 있는데 한 번에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은 오시니 천리교를 알리는 데 일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커뮤니티 웰빙 점수는 7점 정도나 될까요? 교회 활동을 통한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 정도는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사회적 관점에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신앙적 차원에서 이해를(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길을 신앙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행복에 대한 결론은 신앙적 결론을 내려야겠죠.

천리교 교전7장 대물차물의 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소개하면서 저의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사람의 행복은 그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인생의 고락은 외양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결정된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나날이 즐겁게 용솟음치며 사는 것이 신앙의 길이다. 즉 몸은 대물 차물의 리임을 잘 생각하고 마음 하나가 나의 리란 것을 자각해서, 나날이 항상 마음의 티끌을 털기에 게을리 하지 말고, 어떠한 경우에도 교조님의 모본을 흠모하고 오로지 어버이신님께 의지하여 남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 길을 신앙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거기에는 자타의 마음을 흐리게 할 그 무엇도 없고, 오직 어버이신님의 의도대로 살고 따라가는 기쁨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행복에 대한 우리의 결론입니다.

 

오랫동안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