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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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입신동기

 

최진만(부평포교소장)

 

나는 고성 대가면 척정리에서 출생했는데 1961년 초등학교 2학년 봄에 어머니를 따라 천리교 고성교회에 첫발을 디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를 입신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고성 옥골 텃밭에 있었던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그 때의 제 기억으로는 제재소에서 소나무를 얇게 캔 송판을 고기비늘처럼 잇대고 검은 콜타르를 발라 외벽처리를 하였던 것 같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월차제 때 초대 고 이영수회장님의 어머니이신 왕할머니를 곧잘 감화 시간에 모시고 나와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다며 많은 신자들 앞에 윗저고리를 들춰 아직도 젓이 나올 것 같다며 배전에 신자 분들을 웃기셨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저의 집안은 증조님이 서당 훈장을 지내셨지만, 가난하였고 할아버지는 6남매를 두셨는데 딸이 5명이고 그 중 맏이로서 아버지가 2대 독자지요. 아버지는 가세(家勢)가 없어서인지 장가를 늦게 들었는데, 어머니는 시집오신지 3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자 저의 할머니한테 눈칫밥을 깨나 먹었나 봐요.

그런 중에도 아버지는 길, 흉사에라도 다녀오시면 곧잘 편찮으셔서 1년에 몇 번 씩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면 좋아졌대요. 그러던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탁발을 오셨답니다. 보리쌀 반 되박을 시주하는 새댁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함을 보고 스님께서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답니다. 어머니가 사정을 이야기하였더니 스님께서 눈을 한참 감았다가 말씀하시기를 혈손이 귀한 집안입니다. 많은 공덕을 쌓으셔야 자손을 보겠는데 가정형편상 어려움을 미뤄 봐서인지 스님이 어머니께 이르기를 3년간 빠짐없이 목욕재계하고 칠성님께 정화수를 떠받쳐 기원하면 자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시 어머니로서는 어떤 선택의 여지가 아니라 한 가닥 빛이었을 거예요. 그로부터 정말 스님이 시킨 대로 3년 천일 정화수를 떠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원한 덕분인지 우리 형제 32, 5남매가 태어났습니다.

저 외가는 고성 마암면 장산인데 어머니는 외할머니로부터 전도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희 집에는 큰 역사를 계획하고 있었어요. 오래 된 헌집을 헐어내고 3칸짜리 목재 집을 새로 지을 계획을 세우고 목재를 착착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준비하고 있었대요. 어머니는 환란이 많은 집안에 걱정이 앞서 다니시던 절에 스님을 찾아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더니 금년에 집을 짓게 되면 대주(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고 하더래요. 어머니는 스님의 말씀을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곧이 알아듣지 않으셨죠! 어머니는 혼자서 애를 태우다가 외할아버지 기일 날 친정에 갔다가 외할머니께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 때 외할머니가 천리교 신앙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가 얘야! 천리교를 믿으면 어떤 짓을 해도 괜찮타 카더라’, ‘니도 천리교를 믿어봐라.’ 라고 하신 것이 천리교를 믿게 된 동기입니다.

어머니는 고성 5일장을 기다렸다가 장날인 내일 고성교회(그 때는 포교소)를 찾을 작정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을 꾸게 됩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어머니가 대낮 시골집 마루 끝에 앉아 있는데 소죽을 쑤어 퍼주는 나무로 만든 큰 바가지가 있었어요. 그 바가지 크기만 한 거미가 우리 삽작(대문)안으로 동아줄 같은 거미줄을 뽑으며 기어 들어오고 있고 동시에 하늘에서 그 공줄을 잡아라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놀라 버선발로 뛰어 내려가 그 동아줄 같은 거미줄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있는데 갑자기 거미가 우리 초가집 가운데 큰 기둥을 타고 올라 가고 있었어요. 보니까 어마어마한 큰 왕매미가 기둥 꼭대기 처마 밑에 붙어 있었는데 거미가 그 왕매미를 집게 이빨로 질겅질겅 씹었어요. 매미는 꼼작도 못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져 죽었대요. 그리고는 거미가 다시 기둥을 타고 내려오는데 마루 끝에 앞발을 들고 요물스럽게 앉아 있던 고양이가 보였어요. 그 고양이한테도 거미가 달려들어 고양이 목을 매미처럼 집게 이빨로 씹는데 그냥 고양이가 죽더래요. 신기한 꿈을 꾼 것 같죠!

다음날 고성장날 시장을 보시고 정성껏 준비한 쌀되박과 초 한 봉을 대나무꽃소쿠리에 담아 이고, 천리교가 어디쯤 있을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새댁 천리교 한 번 안가 볼란교하시더래요. 어머니는 너무 기쁘고 놀란 마음으로 그 할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할머니 안내를 받아, 쉽게 고성 옥골에 있는 조그마한 당시 고성교회(포교소)에 첫 참배를 하게 됩니다. 추론하면 그때가 1957년 가을 쯤 되지 않았나 봅니다. 참배를 마치고 안내를 받아 초대 회장을 뵙고 집안 내력과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초대 회장님께서 꿈 이야기를 듣고 하신 말씀이 앞으로 천리교를 믿으면 하늘의 액운과 땅의 액운이 다 없어져 무당을 불러 굿, 푸닥거리 할 일이 없고 새로 집을 지어도 아무 탈이 없다는 것을 나무천리왕님께서 꿈으로 미리 알려 주셨다고 하시며 열심히 신앙을 하라고 하였답니다.

어머니가 천리교 입신 이후 우리 집 역사는 정말 순조롭게 끝이 났고 길, 흉사를 다녀와도 아버지는 아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이유 없이 하루, 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마을마다 마마병이 돌아 집집마다 어린 형제 중 한 둘은 죽어 나갔지만 우리들 5남매는 마마도 가볍게 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대요. 지금 생각하면 신님의 수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입신한지 만 1년이 될 무렵 어머니는 또 다시 신기한 꿈을 꾸게 됩니다. 꿈에 때는 저녁 무렵이고 우연히 하늘을 올려 다 보는데 하늘에서 대문짝만한, 사진이 찍히는데 불빛이 번쩍하더니만 사진틀 속에 우람한 왕관을 쓰고 백발의 수염이 곱게 자란 덕망 있는 임금 같은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근엄한 모습을 보셨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로 그 자리에 또 다시 서광의 불빛이 번쩍하고 새로운 사진이 찍히는데 이번에는 곱상한 안노인이 곱게 빗질한 머리와 단정한 한복차림으로 앉아 얼굴에는 만면의 미소를 지으시며 당신을 향해 웃으시는 것을 보셨답니다. 역시 월차제를 마치고 초대 회장님께 꿈 이야기를 하였던바 회장님께서는 여러 사람 앞에 이 사람은 어버이신님을 보았고 교조님을 보았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는 어머니께 당신은 신님 일을 봐야 될 인연이 있는 사람이니 당장 포교를 나갈 것을 명령하셨대요.

그런데 어머니는 연만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허락할 리 만무하고 어린 자녀와 집안 사정에 당신이 빠져 나가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 안타깝게도 그만 회장님의 깊으신 뜻을 따르지 못했대요. 그러나 아침 새벽 저녁 시간을 정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냉수욕을 하고 집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신악가를 펼쳐 읽으며 몇 십 년 근행을 올리신 기억이 선합니다. 그 당시 수년간 고성교회서 신상으로 수양한 (대가면 댁) 지금의 서울 봉천동 감로대쪽  (삼명교회) 교회장을 전도하여 천리교 고성교회에 입신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나날이 즐거움이 넘쳐나고 월차제에 참석해 신악가 노래 소리와 큰북소리를 들르면 맺힌 가슴이 뚫린 듯한 후련함은 어디 비길 데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고 입신한지 만 3년이 되던 날 저녁, 어머니는 또 다시 꿈으로 선몽을 받습니다. 그날 밤 꿈에 새로 지은 집 마루에 어머니가 앉아 있는데 갑자기 빛의 동굴이 동네 앞산을 일직선으로 관통하여 정확히 고성교회 신전에 가 닿으며 빛의 동굴 속에서 남자 셋, 여자 셋 지금의 교복을 착용하고 신무하는 모습을 미리 보게 됩니다. 실제 당시는 정부의 천리교 탄압으로 인하여 지금의 교복을 착용치 못하고 검은 두루마기를 입을 때입니다. 지금 입는 교복은 몇 년 후에 입을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어머니는 오늘날의 교복을 미리 꿈을 통해 보셨던 것입니다. 후일 정부의 규제가 풀리고 지금의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 어느 달 월차제에 저와 함께 고성교회에 참배하게 되었는데 그 때 어머니는 저에게 귓속말로 내가 전에 꿈에서 본 옷이 바로 저 옷이었다고 하였거든요.

아무튼 그 꿈 이야기를 초대 회장님께 하게 되었고 초대회장님께서 다시 한 번 포교를 종용하시고 포교를 나가면 다 해결 될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나가라고 하셨으나 어머니는 집안 사정에 사로 잡혀 끝내 마음 작정을 못하고 크나큰 시순을 놓쳤습니다. 그 시순을 놓치고 부터는 그렇게 즐겁던 마음이 일시에 당신도 모르게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 사정이 이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저희들처럼 이러한 시순을 놓치시지 않기를 빕니다. (서기19954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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