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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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37

 

세상 한 귀퉁이 밝히기

 

박지수

 

잘 아는 어떤 분은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기 위해 자기 동네 입구 길에 나무를 심고 주변에 꽃들을 심는다고 하셨다. 그 분 댁은 오래된 옛집이지만 예쁜 꽃들과 나무가 많다. 그리고 자신이 늘 산책 다니는 산길에도 꽃과 나무를 심어 가꾼다고 하셨다. 그러기를 10년 넘게 해 오고 계신다. 그 분을 만나면 나 자신이 종교인이라는 게 새삼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렇게 신의 몸 한 귀퉁이를 맑히고 밝히는 일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평화와 여유, 그리고 행복을 느끼도록 돕는 게 일상이니. 나로서는 그분을 만나는 날이면 신님께 더 부끄럽고,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포교소 리모델링 역사를 한 지 3년이 지났다. 역사 전에는 키를 넘는 담으로 둘러처져 있어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를 하면서 담을 터 버려 큰 길과 동네길에 완전히 노출되었다. 조그마한 화단이지만 노출돼 있다 보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특히나 이곳은 풍광이 뛰어난 바닷가라서 여름 휴가철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인다. 내 사는 주변이라도 밝고 아름답게 가꾸지 못한다면 어찌 주변에 향기를 풍길 수 있을 것인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아름다운 곳이 천리교인가!’ 한다면 정말 교조님도 기뻐하시는 멋진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한편, 상급교회의 활동방침인 교회 주변 환경정비에 발맞춘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원이 잘 가꿔진 집이나 꽃들이 많은 집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보게 된다. 저렇게 꽃을 잘 가꾸는 사람은 왠지 아름다운 사람일 것 같고, 저런 집에 사는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일 거 같아 차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특히 터전에 가면 그 주변을 오고 가다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곤 했다.

 

우리 포교소를 개축하면서 만들었던 화단도 처음엔 볼품없었지만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 처음 꿈꾸던 화단 모양만큼 멋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공간도 더 많이 생겨서 가꿔볼 만하였다. 게으름이 많은 나지만 꽃을 열심히 구해다 심는다. 가는 곳마다 예쁘거나 귀한 꽃이 있으면 꽃씨를 받아오거나 포기째 얻어 심었다. 이제 화단에 서면 내가 그동안 어딜 다녔는지가 드러나는 것 같다. 저 꽃은 대구에서, 저 꽃은 대전에서, 저 꽃은 도보하다 씨를 받은 것이고, 보성, 해남, 진주, 부산, 고성, 통영 꽃자리에서, 그리고 큰 맘 먹고 장에서 산 금목서나 천리향, 치자꽃 같은 꽃나무도 있다. 그렇게 꽃마다 사연이 있다. 그러다 보니 꽃을 보면 그 때 만난 정겨운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마음이 훈훈해 진다.

부산에서 3년 전에 얻어온 초롱꽃이 처치 곤란할 정도로 번져나갔다. 뽑아서 버리기도 아깝고 그냥 두면 화단이 초롱꽃 독차지가 될 처지라서 어쩌나 고민했다. 어느 날 찾아온 손님에게 그런 넋두리를 하니 그럼 저 밭가에 심지?” 했다. ‘남의 밭가라서 싫어하면 어쩌나?’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풀이 무성히 나 있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 싶어서 풀을 깨끗이 매고 비오는 날에 틈틈이 심었다. ‘밭주인을 만나면 양해를 구해야지.’ 하고서 여러 날이 지났다. 장마철이 되고 작년 가을에 작은 동산을 이루었던 기세 좋은 코스모스 싹이 너무 많이 나서 그 밭가에다 또 심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에게도 물을 주고 풀을 매어준다. ‘설마 이렇게 관리하는데 뭐라고 화를 내시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

어느 날 그 밭에 주인이 뭔가를 심고 있는 걸 보고는 나가서 인사를 했다.

아주머니, 여기에 코스모스를 좀 심었는데 괜찮을까요?”

꽃씨가 떨어지면 밭에 나는 데.”

그럼 꽃이 지기 전에 제가 뽑을 게요.” 하는 내 목소리엔 약간 애원조가 되었다.

아니, 뭐 바랭이보다는 낫지 뭐. 바랭이든 뭐든 잡초 씨들이 날아와 싹트는데... 바랭이 뽑는 거 보단 코스모스를 뽑는 게 더 낫지!”

하신다.

그 말에 순간 마음이 따스해지는 걸 느끼며

고맙습니다.”

하였다.

됐다. 이젠 허락도 얻었으니 밭가 초롱꽃 옆에 코스모스를 마음 놓고 심었다. 올 가을을 기대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코스모스길이 될까?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어느 지역에선 가로수 밑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고 한다. 가로수 밑에 쓰레기를 버리니 그곳이 쓰레기장처럼 되어버려 여간 지저분한 게 아니었다. CCTV를 설치하기도 하고,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문을 붙여도 소용이 없었단다. 그러다 어느 분이 그 아래다 꽃을 심었다. 예쁜 꽃을 심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1969년 스텐포드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교수에 의해 매우 흥미있는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치안이 비교적 허술한 골목을 고릅니다. 거기에 보존상태가 동일한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열어놓은 채로 1주일간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 중 한 대는 보닛만 열어놓고, 다른 한 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조금 깬 상태로 놓고 두 자동차를 관찰하기로 한 것입니다. 1주일 후, 두 자동차는 확연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1주일간 특별히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닛을 열어놓고 차의 유리창을 깬 상태로 놓아둔 자동차는 그 상태로 방치한 지 겨우 10분 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연이어 타이어도 전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계속 해서 낙서나 투기, 파괴가 일어났고, 1주일 후에는 완전히 고철 상태가 될 정도로 파손되고 말았습니다.

단지 유리창을 조금 파손시켜 놓은 것뿐인데도 그것이 없던 상태와 비교해서 약탈이 생기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입니다. 게다가 투기나 약탈, 파괴활동은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깨진 유리창이라는 단어로 인해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이라는 새로운 법칙이 만들어졌습니다. 차의 창문이 깨져 있는 상태가 마이너스 자장(磁場)을 만들어내서 동질의 것을 끌어당기고, 그것을 점점 상승시켜 간다는 무척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청소력29p-31p, 마쓰다 미쓰히로 지음, 나무 한그루출판사, 2007

우리 집 앞 밭가에도 동네사람들이 쓰레기를 갖다 내 놓는다. 원래 정해진 장소가 아닌데도 거기에 자꾸 내놓다보니 쓰레기를 놓는 곳이 돼 버렸다. 그래도 쓰레기를 가져가는 날에만 내다 놓으면 좋으련만 평소에도 그곳에는 쓰레기 봉지들이 흩어져있다. 그곳이 우리 집 담벼락이 아니고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눈앞에 바로 보인다. 쓰레기 봉지들과 매번 흐트러진 쓰레기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항상 치우고 치워도 쓰레기가 금방 모여 든다. 역시 쓰레기는 같은 기운(氣運)의 쓰레기를 불러들이게 되나 보다.

밭가에 코스모스를 옮겨 심다가 마침 위 두 가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쓰레기를 놓아두는 그곳을 청소하고 정리해서 코스모스를 심어놓았다. 그 뒤 어느 날 동네분이 쓰레기를 들고 나오시더니 그 앞에서 잠시 서서 , 여기에다 코스모스를 심어놨네.’ 하고 작게 혼잣말을 하셨다. 숨어서 어떻게 하시나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더 위쪽에 보이지 않은 곳에 세 개의 쓰레기 봉지를 놓고 가신다. 웃음이 났다. ‘큭큭! 일단 성공이다!!!’ 쾌재를 부른다.

 

한 달 전에는 우리 화단에 백합이 굉장한 기세로 피어났다. 이 녀석들이 마치 길가는 사람들을 향해 하얀 나팔을 불어 대듯이, 혹은 인사하듯이 일제히 길 쪽으로 피어났다. 길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꽃과 향기를 즐기고, 기뻐하는 걸 보았다. “어머, 저 백합들 좀 봐~ 예쁘다~!!!” 감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동네 분들도 지나가다 향기에 취해 잠시 멈춰서 있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 특히나 평소에 정신없이 바쁘게 일에만 매달려 사시는 분들이 백합향기에 취한 모습으로 잠시 서 있다 가기도 했다. 그 풍경은 꽃만큼 아름다웠다.

이장님께서도 이 백합들 때문에 온 동네가 향기롭다며 기뻐하셨다. 그리고 좀 나눠달라고 하셨다. 앞 길가 밭의 주인 아주머니는 , 여기 교회 앞에만 오면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져서 행복하다!”고 하신다. 그렇게 지나는 분들이 인사를 하고 행복해하시며 말을 걸거나 머물다 가셨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아름다운 정원이 한 부분에서나마 이루어진 것이다. ‘신의 몸뚱이인 이 세상 한 귀퉁이를 밝혔구나!’싶어 마음이 즐겁고 흐뭇하였다. ‘이렇게 화단을 꾸며서 세상을 밝히는 방법도 있네. 이것 역시 좋은 일이구나.’ 싶어지니 더 열심히 화단을 꾸미려는 동기유발이 되었다.

 

그 뒤로는 아침 일찍 외출하는 날 외는 언제나 새벽근행 후에 화단에 나간다. 모든 꽃들과 풀들, 나무의 이름을 부르며 아침 인사를 한다. 그리고 밤새 새로 피어난 이쁜 녀석들에겐 감탄과 축복을, 지는 꽃들에겐 감사로 작별인사를 한다. 그리고 밤새 자라난 풀도 매어준다. 또 한 종류가 너무 많아지면 화단이 단조로워질까봐 적절히 꽃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돌본다. 그렇게 화단에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엊그제는 풀을 뽑고 있자니 어느새 날아와 앉았는지 잠자리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는지 모르지만 잠자리도 평화로운 기운을 느끼며 그렇게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환해졌다. 그렇게 30-1시간 정도 화단 돌보기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동네 분들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화단에는 이른 봄부터 여러 꽃들이 번갈아서 계속 피어난다. 초봄에 광대풀이나 봄까치풀, 영춘화, 천리향같은 꽃들! 이어서 민들레, 돌나물, 기린초, 자주달개비, 아네모네, 엉겅퀴, 인동초, 구름국화, 접시꽃, 채송화, 마가렛, 백합, 도라지, 백일홍, 봉선화가 피어났다. 이어질 한여름과 가을꽃들을 기다리며 내가 이 세상에서 꽃필 차례는 또 언제일까 생각해본다.

이 어여쁜 녀석들이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혼신을 다했을까? 한 송이 꽃이 피어나면 이 세상 한 귀퉁이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꽃이 시들어지면 한 세계가 문을 닫는 것일까. 꽃이 질 때도 모습이 다 다르다. 꽃잎을 모으고 꽃송이채로 단아하게 떨어지는 꽃이 있는가 하면, 하나씩 꽃잎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퇴색해 버려 흉해지면 잘라내야 하는 꽃도 있다. 원추리같은 꽃은 하루만 딱 피었다가 진다. 지는 꽃들에겐 꽃 피우느라 수고 많았어. 이쁜 모습 보여줘서 고마워. 내년에도 잘 부탁해.’ 하며 감사를 전한다.

다들 자신이 꽃필 차례를 알아서 피고, 질 때를 알아 사라져간다. 하나의 꽃은 피고 지지만, 번갈아가며 끊임없이 꽃을 피워내는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있어 화단이 더 아름답다.

우리들이 올리는 근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역할은 다르지만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멋진 하모니,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세상도 역시 마찬가지 일거다. 다양한 개성과 인격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더 아름다운 세상,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