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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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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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29

 

부부 싸움

박지수

우리가 부부싸움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그 집도 부부싸움을 하냐고 놀란다. 그런데 우리도 부부인 이상, 싸움을 안 한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가. 우리들 마음이 100% 성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대립과 갈등, 의견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일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의견 차이와 갈등을 어떻게 푸는가 하는 일이다. 부부란 성별이 전혀 다른 남과 여의 결합이 다. 어느 책의 제목처럼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인데다, 일년 이년도 아니고 평생을 사는 데 어찌 좋기만 하고 잘 맞기만 하겠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고,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계속 먹으면 질리기 마련인 것처럼 아무리 배우자가 달콤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짜증날 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때때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어느 것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다른 것은 포기하거나 놓을 줄 알아야 함에도 실제로는 놓지 못해 신상과 사정을 부르는 일도 너무나 많다. 말로는 혹은 글로는 아는 것도 실제 상황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남의 일은 객관적으로 잘 보여서 충고해 주고 적절한 조언을 해 주기 쉽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 되면 집착이나 욕심에 앞이 콱 막혀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5월은 기억해야 할 일이 많은 달이다. 온갖 날들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그렇다보니 5월은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한데 이 무슨 무슨 날이란 게 참으로 마음 편치 않다. 평소에 얼마나 효도를 안 하면 어버이날이라고 따로 정해서 그날만은 가서 뵙고 와야 된다는 불문율을 정해 놓았겠는가? 평소에 아이들이랑 얼마나 놀아주지 않기에 이날만은 같이 놀아주라고 어린이날이 있는가? 어느 분은 가족들에게 우리 집은 어버이날, 어린이날 그런 거 없다. 그런 것을 평소에 충분한 사랑을 서로 주지 못하고, 못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날이다. 우리는 평소에 충분히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이 되길 바라고, 그렇게 노력하자. 그런 날은 오히려 힘들고 외로운 이웃을 더 돌보는 날로 하자.”로 선언하고 지키고 있다 한다. 그 분들이 부모에게 하는 것을 보고 자연히 자녀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부모에게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단다. 어린이날이라고 달리 정해서 뭔가를 해 주고 할 만큼 평소에 무심하지 않고 늘 주고 받는 관심과 애정이 있으니 굳이 어린이날이라고 챙기거나 챙김 받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공감이 간다.

우리야 아이가 없으니 어린이날은 그다지 마음에 걸리는 게 없다 하지만 그래도 형편이 된다면 조카들이나 신자 아이들에게도 뭔가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런데 생각뿐이지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현실이 훨씬 더 많다.

그럭저럭 어린이날을 보내고 어버이날을 지나면서 어떤 일을 발단으로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생각하면 참 어리석고,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내가 사는 삶이 그렇고 마음 성인 단계가 그 정도인 것을 어찌하랴. 이길에서는 나쁜 씨앗은 파헤쳐야 싹이 안 튼다고 하니 나쁜 씨앗, 즉 최근에 있었던 못난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한다.

어버이날이었다. 동네 이장님은 이른 아침 새벽근행이 끝나기 전부터 몇 번이나 오전 10시부터 어버이날 잔치를 한다고 방송을 했다. 더구나 방송으로 해마다 나오시는 분들만 오시고, 많은 분들이 집에 있으면서도 무관심한데, 한 동네 살면서 나오셔서 같이 어르신들의 노고를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꼭 모두 다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반 강제성 멘트를 날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갈 수 있냐 말이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포교소로서 빈손으로는 갈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겁다. 봉투를 하나 들고 가야할 텐데, 이걸 어쩌나? 가난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포교사 입장이라 쪼들리지 않는 때가 있었던가. 하지만 지난 달에 터전귀참까지 한 터라 올해는 더 쪼들린다. 물론 빈 몸으로 가도 할 일이 있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돌이켜 보면 지난 10여년을 경제적으로는 늘 간신, 간신히 살아왔다. 해도 이렇게 줄줄이 봉투를 챙겨야 할 일이 있으면 은근히 속에서 짜증이 난다. ‘언제쯤이면 형편이 돼서 이런 일에 선뜻 기쁘게 봉투를 낼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평소에도 낭비하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으로 사는데 왜 이렇게나 쪼달리는 건지?’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마음이 축 처지고 비감하게 내려앉는다. 몸도 덩달아 누울 자리만 보일 정도로 고단하다. 어디론가 빨리 도망가서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도 어떡하든 마음을 추스린다. ‘휴우!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이런 날 동네 어르신들을 뵙지 않으면 언제 또 뵐 수 있겠나? 이런 날은 거의 다 모이기 때문에 이처럼 좋은 전도기회도 없는 셈인데.’

우리가 여기 왔던 초창기 몇 년 동안은 동네 애경사가 생기면 부녀회원들이 다 모여서 음식을 같이 준비하고 나누고 했다. 그때마다 가서 히노끼싱하여 익힌 동네 분들과 친분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가 다들 바빠졌는지 최근 몇 년은 동네에 무슨 일이 있어도 부녀회원들이 음식을 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도시락 문화가 발달해서 초상집에도 다 도시락으로 하고 아니면 식당으로 가서 잔치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일 년에 한두 번, 모여서 음식을 하고 잔치를 벌이는 정도가 되었다. 이런 날은 가능하면 참가하려고 애쓰지만 이나마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안 될 때가 훨씬 더 많고, 거의 매일 밖에 나가다보니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모를 때도 많다. 그러니 일이 다 지나고 나서 듣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몇 번 동네모임 중에도 어버이날에 어르신들과 동네 분들이 제일 많이 모이시는 것 같다.

어쨌든 간신히 봉투를 마련하여 30분 전에 둘이 동네 모임을 하는 경로당으로 갔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들 아는 체 하며 인사로 반겨 주신다. 마당에서부터 계속 인사를 하면서 들어가니 방에도, 거실에도 어르신들이 그득하게 앉아 계신다. 역시나 동네 분들이 많이 모이셨다. 인사하면 또 이길의 사람들 아닌가. 앉아 계신 분들께는 엎드려 공손히 인사를 올린다. ‘이 분들은 우리 포교소가 있기까지 알게 모르게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탠 고마운 분이지. 지난번 개수역사에도 조금씩은 마음을 보탠 분들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어느새 울적하던 마음이 싹 밀려나고 고마운 마음이 차오른다. ‘그래, 어렵게 왔지만 참 잘 왔구나.’

부엌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도 여러분들이 분주하게 음식준비를 하고 계신다. 역시 공손히 절하고 바로 일을 거든다. 언제 그랬나 싶게 몸이 가볍게 움직인다. 다 잊어버린 것이지. 용재는 히노끼싱하는 본능, 구제하려는 본능이 있어야 한다던가? 이 순간에는 분명 히노끼싱 본능이 발동했다고 할 만 했다. 신나게 히노끼싱 하다보면 어느새 모든 일들이 끝나간다. 일년에 한번 이날만 뵙게 되는 어르신도 계시고, 어쩌다 남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그날의 인연이 되는 어르신도 있다. 동네 고사를 지내는 일을 돕고, 점심 차리는 일을 거들었다. 다 드신 뒤, 동네 분들은 한두 분씩 빠져 나가시고, 남은 분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계셨다. 같이 일을 한 분들과 점심을 먹고는 나왔다. 이날은 시댁도, 친정도 가 봐야 하는 날이기 때문에.

집으로 오니 다시 몸과 마음이 축 처져 버린다. 히노끼싱 본능이 사라져 버린 탓인가? , 조금이라도 쉬고 싶다했더니 남편이 그럼 좀 쉬었다가 가잔다.

 

2시에 포교소를 나섰다. 이이는 오늘 어버이날이고 토요일이라 차가 많이 막힐 건데라며 혼잣말처럼 했다. “그래도 우리가 가는 길은 조금 덜 막히는 쪽이니까 안 괜찮을까?” 무심히 받았다. 가다보니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많이 막히고 있었다. 이를 어쩌나? 시댁에는 모이자는 말씀이 없는 걸 보니 개인적으로 뵈러 가시는 모양이고, 친정은 장남이 결혼한 뒤 집들이를 안 해서 어버이날에 맞춰 가족모임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오지랖이 넓은 내가 일찍 가서 음식 준비하는 데 도와주겠다고 미리 약속을 했다. 홀몸도 아니고, 요리에 익숙치도 않은 새댁이 처음으로 시댁식구를 다 초청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겠나 싶었다. 내 생각으로는 시댁에는 3시쯤에 도착해서 2시간 정도 어머님 뵙고 동생네로 가서 거들면 될 것 같았다. 동생 집에는 저녁에 식사한다고 했으니 7시쯤일 거고, 올케가 대충 해놨다니까 5시쯤 가도 되겠지하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차가 막혔다.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가는 도중에 동생이 전화를 했다. 서울 막내누나 식구가 벌써 도착해서 늦은 점심밥 먹으려는 데 언제 오냐고 다그친다. 빨리 와서 음식 도와주기로 하지 않으냐면서. ‘벌써? ! 빨리도 왔구만! 우리는 그래도 시댁에 들렀다 가야 되는데생각하면서 글쎄 가는 중이긴 한데 길도 막히고.” 하며 머뭇거렸더니 옆에서 ‘30분 후에 도착한다고 해라 한다. “매형이 30분 후에 도착한다네.” 하고는 끊었다. 머릿속에서 그럼 어머니는 뵈러 가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쩌려고 그러지? 내가 음식준비를 하고 있을 때 자기 혼자라도 다녀오려고 그러나? 자기는 거기서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 그래도 될 거 같기도 하다.’며 혼자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머님한테는 혼자 다녀오실래요?”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벌컥 화를 낸다. “혼자가라고? 어제, 어머니와 같이 점심먹고 나서 처남집에 가자 해도 자기 생각에 빠져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혼자가라고? 당신이 시댁 일을 제대로 한 거 뭐가 있어?”라고 몰아 부친다. 순간 정말 놀랬다.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내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는, 화가 치밀었다. “그럼, 내가 한번도 시댁 일에 제대로 한 게 없다는 거예요?” 덩달아 내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일년에 몇 번이나 가냐고? 명절, 제사 때 외는!!”이란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이게 무슨 일이지? 기가 차는군!’싶어서 입을 닫았다. 무슨 날벼락인지 말문이 막힌 것이다. 가만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한번도 제대로 한 게 없다는 말에 정말로 분하고 화가 난다.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십년 살면서 내가 그랬다고? 이런 억울할 데가. 아니지, 조용히 다시 생각해 보자, 그러니까 이이가 왜 화를 내는 거지? 가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걸 내가 무시했다고 화가 난 거야? 아님 혼자 시댁에 가라고 했다고 화를 내는 거야? 아니면 뭐지? 나는 지금 시간이 없는 상황이고, 자기는 시간이 있으니까. 또 바로 가까이 시댁이 있으니 다녀오면 시간도 절약되고 좋잖아? 아니면 시간도 기름값도 없는 처지에 또 다른 날을 언제 내어서 오지? 가만, 근데 이이가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지? 자기 말을 무시했다고 그러는 건가? 그래, 어제 그 말을 들긴 들었다. 그렇지만 무시는 아니었다.’

그 이야기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어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머님이랑 점심을 같이 먹고 오자고? 그럼 점심을 여기서 준비해 가자는 말인가? 요가수업 끝나고 집에 오면 밤 9시 반인데 그때 장 봐 와서 언제 음식하지? 다음날은 또 동네 나가서 히노끼싱해야 되는 데. 그건 시간이 없어 안 되겠다. 그러면 가서 점심밥을 해 드려야 되나? 그것도 그렇지. 어머님이 혼자 사시는 것도 아니고 큰형 내외분과 사시는 데. 형님이 안 계시더라도 내가 냉장고를 뒤져서 점심밥을 준비할 수 있을까? 그것도 좀 그렇네. 아니면 나가서 사드려야 되나? 나가서 사 드리려면 돈이 있어야 되는 데 돈이 없잖아? 어쩌지? 셋 다 불가능인데. 그냥 점심 지나서 오후에 가서 잠시 뵙고 오면 안 될까?’ 혼자 생각했던 게 떠오른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대꾸도 없이 지나쳐 버렸고, 오후에 들러서 뵙고 가면 되겠다고 혼자 결정했던 것이다. 생각하니 내가 잘못 한 것도 있다. 하지만 좀 속상하고 억울하다. ‘나도 남들처럼 당당하게 용돈도 두둑하게 넣어드리고, 맛있는 음식점에 모시고 가서 사드리고 싶다. 그래서 어머님께 인정받는 며느리고 싶다. 한데 아니지 않은가? 봉투는 커녕, 뭐라도 사들고 갈 돈이라도 있느냐 말이다. 기가 막히는 일이군. 점심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가면 되는 거야? 거 참, 단순하시네. 자기 입장만 이야기 하는 군. 가면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나? 도대체 어쩔 건데!’에 생각이 미치다 보니 속상해서 눈물까지 났다.

자기는 자기대로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나는 나대로 더 억울했다. ‘한번 슬쩍 이야기하고선 자기도 넘어가 놓고 지금 와서 저렇게 화를 낸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저 정도 강도로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억울하고 분하네. 혹시 이이가 뭔가 다른 게 쌓인 게 있어서 저러는 거 아닐까? 그게 뭘까?’ 계속 혼자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아무 말 없이 동생네에 도착했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키겠다고 명세한 원칙이 3개 있다. 첫째, 혼자일 때보다 더 성장, 발전하고 행복해야 한다. 둘째, 시댁이나 친정일이나 제3자 일로 싸우지 않는다. 단 둘이 해결해야할 문제라면 피터지게라도 싸운다. 셋째, 싸우더라도 잠들기 전에 다 푼다는 것이었다. 그랬던 원칙을 잘 지키며 살아왔기에 그 동안 행복하고 후회없이 살았다고 생각한다. 3번째 원칙인 하루가 가기 전에 냉전을 풀기로 했는데 지금은 거의 5분 이내, 아니면 뒤돌아 서기 전에 푸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데 이날은 풀기 싫었다. 납득하려 해도 납득되지 않았고, 도가 지나친 억울함이 많았고, 쌓인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를 생각한단 말이지. 시댁에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사람으로!’ 온갖 생각들이 다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물론 이 많은 생각들이 모두 다 나 혼자 한 생각들이었다. 이번 일도 3번째 원칙에 따라 풀어야 하는데 이건 좀 더 생각해보고 따져야 할 내용인 것 같았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다 기회가 없어서 화해를 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묻어둔 채 며칠이 지났다.

며칠 뒤에 틈을 내어 있는 돈 다 털어서 두유를 사 들고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여기 저기 몸이 편찮으셔서 누워계시던 어머니는 어둔 얼굴로 일어나셨다. 인사를 올리고 간단한 안부를 여쭙고는 옆으로 다가가서 특히 아프다고 하시는 어깨와 팔, 여기 저기를 안마해 드렸다. “야가 우찌 이리 손아귀 힘이 쎄노?”하시니 그 사람이 저를 많이 안마해주다 보니 그렇습니다. 손아귀 힘이 세지요?”하고 남편이 거든다. “, 니보다 더 세다.” “그래 힘이 세서 아픕니까?” “아니, 야가 힘이 들어서 그렇지 나는 썬~ 하다.”하셨다. 아픈 팔은 물론 항상 무겁다하시던 머리도 지압해 드리고, 귀도 만져드렸다. 안마가 끝나니 남편이 수훈을 전하고 어버이신님의 말씀도 전했다. 그렇게 아들과 며느리의 손길을 받으시고 수훈까지 받으신 어머니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지신다. 그 모습에 우리 마음도 덩달아 밝아지는 것 같다. 어머님은 다 나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시더니 이것저것 챙기시며 항상 바쁜 우리를 염려하신다. 그 모습에 둘이 마주보고 싱긋 웃었다. 아마도 둘 다 순간적으로 교조님 말씀이 떠올린 때문일 것이다.

<교조전 일화편> ‘157 좋은 손이야

[교조님께서 고단해 보일 때, 가지모토 히사가 안마해 드릴까요?”라고 여쭙자,

주물러 다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안마를 해 드리니, 나중에 히사의 손을 잡으시고 이 손은 참 좋은 손이야.”

하며 히사의 손을 쓰다듬어 주셨다.

또 교조님께서는 종종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는 돈이 필요 없어. 안마로도 충분해.”

라고 노래하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지, 교조님께서는 오늘 이런 일을 두고 하신 말씀일거야.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효도하는 방법 중 하나겠지만 지금 어머님께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식의 관심과 애정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안마로도 충분하게 만족하시는 것 같다. 교조님 말씀처럼 안마로도 충분한 것을 괜히 마음 고생했구나 싶다.

집으로 돌아온 후 모처럼 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다. 지난번에 말다툼한 일이 당연히 화제에 올랐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또 쏟아지니 미리 수건도, 휴지도 갖다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눈물, 콧물 흘리며 격렬하게 말들이 오고 갔다. 그래도 너무 감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막말이 나오지 않도록,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건 제3자의 일이 아니고 자신들의 일인 만큼 피터지게 싸워서라도 해결해야 할 사안이었다. 위에서 썼던 내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남편도 내게 미처 이야기 하지 않았던 속마음과 생각들을 털어 놓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이렇게 속깊은 이야기를 안했구나 싶었다. 우리는 서로 속마음과 생각을 모른 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내 생각에 빠져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지레짐작해 버린 게 여러 가지라서 사과했다. 남편도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내뱉은 말투에서 그렇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20년이나 같이 살고 평소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같은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별로 걸림이 없었는데도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몰랐구나 싶었다.

부부 사이에 호된 태풍이 지나가며 그 마음의 빈틈에 끼여 있던 비늘을 제거한 것 같다. 어버이신님께서 처음 부부의 본으로 사용하신 인어와 흰뱀은 비늘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 비늘이란 부부 사이에 비밀이나 딴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고 읽은 적이 있다. 꼭 비밀까지는 아니라도 서로 말하지 않은 내면의 생각들이나 자기 입장에서 지레짐작하는 것들이 우리사이에 비늘처럼 끼여 있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고나 할까? 자연현상으로도 여름에 태풍이 오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바다에서는 적조가 일어나 먹이가 부족해지고, 해양생태계가 다양해지질 않는다. 그리고 대기를 청명하게 정화할 기회가 없어지기도 한다. 자연의 태풍처럼 우리 부부사이에도 십여 년 만에 몰아친 호된 태풍으로 관계가 말끔하게 다시 맑아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부러워한다. 보기에 일정한 시간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여유 때문일까. 주변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하면 웃으면서 그럼 포교를 하세요. 그럼 우리처럼 살게 되요!”한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누구나 뒤로 내뺀다. 그렇지, 우리가 가진 여유로움만 보이고 편리한 생활이나 경제적 부유함을 포기한 것은 보지 못한다. 그리고 물질적 어려움으로 겪는 힘겨운 다른 부분은 생각지 못하는 거지. 누구나 자기가 가지지 못한 상대의 부러운 점만 우선 눈에 보이는 것이다. 불편하거나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만 가진 것처럼 느끼고 남이 가진 이면의 고통을 모르는 것이다.

이길을 걷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물론 걷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인연으로 어버이신님, 교조님께 선택당한 것이기도 하다. 보통 사회 사람들은 일주일에 5일 이상 시간에 매이는 생업에 종사하고 돈을 벌어서 사는 방식을 선택한다. 우리는 이길을 가기 전부터 돈에 매이지 않고, 시간에 매이지 않은 조금 더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 우리가 선택한 삶이 경제적 여유와 물질적인 부유함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 영적인 성장과 세상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하는 삶이기 때문에 남들처럼 생업에 매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편 자유로워 보이는 것이겠지. 이런 선택에 대해 우리 둘 다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삶을 선택한 이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기를 바랐다면 시간에는 매이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길에 대한 유혹도 한때 많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우리는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물론 부모를 잘 만났거나 복과 덕이 많아서 둘 다 누리고 사는 사람도 가끔은 있지만 보통 경우는 둘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정신적인 삶에 가치를 둔 길을 택하면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너무나 어리석다. 그것은 자기가 선택한 길에 대한 당연한 결과를 부정하는 꼴이다. 이것은 모두를 가지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걸 깨닫는 순간 욕심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참으로 가소로워 보였다. 이것보다 더 큰 욕심이 어디 있겠는가? 경제적 여유와 시간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게다가 영적인 성장까지도 갖고 싶다면 얼마나 큰 욕망인가. 그렇게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스트레스를 받는 꼴이니 정말이지 바보 같다. 지금까지 스스로 만족하며 잘 살아왔듯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만족하며 살아갈 일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또 어버이신님께서 불러주신 이길을 앞으로도 계속 고수하며 거기에 충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 때문에 치루어야 할 어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다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으며 마음성인을 이룰 수 있을까.

극단적인 이야기로 하자면 어버이신님이 전화요금 안주시면 전화 끊으면 되고, 전기세 안 주시면 전기 끊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밀린 일은 있어도 어버이신님께서는 한번도 전화나 전기가 끊기지 않도록 알뜰하게 잘 챙겨주셨다.

 

<교조전 일화편> ‘78 부자 집터

[교조님께서는 마스이 기쿠에게

이 집터는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지낼 수 없는 곳이야. 좋은 것 먹고 싶다, 좋은 것 입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고만 생각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부자유하지 않는 집터야. 이것이 세상의 부자 집터인 거야.” 라고 들려주셨다.]

이렇게 들려주시는 교조님이 계시니 참으로 마음 든든하다. 지금까지도 걱정 없었듯이 앞으로 삶도 걱정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결국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뿐이지 않는가! 사실 처음 포교를 나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궁궐같은 집이요,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풍족하지 않은가.

이렇게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니 편안해졌다. 며칠 동안 우울하게 지냈던 것은 결국 내가 스스로 택한 삶의 방식을 자기도 모르게 부정하고, 두 개의 떡을 쥐고 싶은 욕심 가득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으로 부자유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호된 태풍으로 신앙도, 부부관계도, 내 삶의 방식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