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명경지수 28

 

교조님 앞에, 직접, 혼자라도!

 

박지수

 

천리교부인회 창립 백주년을 기념하여 교회본부에서 열리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417일에서 21일까지 터전귀참을 하였다. 고성교회는 대규모인 143명이 단체로 참가하였다. 단체로 참가하는 것은 여간한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당일로 어디를 다녀오는 일도 단체로 가면 준비물이며 신경쓸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말도 통하지 않은 타국에서야. 그래서 고성교회에서는 많은 분들이 미리 사전교육을 하고, 온갖 준비물을 챙기고, 조를 짜고 조장 교육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덕분에 커다란 사고없이 한 사람도 잃어버린 사람없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터전귀참을 하며 느끼는 것 몇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터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교조님이 떠오른다. ‘! 교조님!’하고 불러보면 부모의 슬하로 돌아가는 자녀같은 마음이 된다. 문득 그리워지고 달려가고픈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 신전에 가면 물론 여기저기서 청아한 목소리로 근행을 올리는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교조전은 조금 다른 기운이다. 한없이 청량하게 정신을 맑게 만드는 기운과 따스하고 편안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터전귀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신전과 교조전, 조령전을 조용히 혼자서 참배하는 일이다. 모처럼 터전귀참하는 때는 거개가 단체로 많은 사람들과 움직이기 때이므로 조용히 혼자 참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따로 시간을 내어 참배를 간다. 신전에서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감사를 드리며 하고 싶은 기원들을 정성껏 올리고, 교조전에서는 육친의 부모에게 하듯이 하소연을 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교조전일화편> ‘104. 신앙은 말이지에서

[교조님께서는 신님에 대한 신앙은 말이지, 신님을 육친의 부모처럼 여겨야 해요. 그렇게 하면 진짜 신앙이 되는 거예요.”라고 가르쳐 주셨다]

고 되어 있다. 일화편을 읽으면 교조님을 직접 뵙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다가오고, 직접 교조님을 뵈올 수 있었던 선배선생님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그래도 자주 읽고 새기다 보면 어느 순간 선인들에게 해 주시는 말씀이 꼭 내게 직접 들려주시는 것만 같을 때가 많다. 이 부분도 그렇다. 교조님이 내게 속삭이시는 것 같아서 그래, 그렇게 신앙해야지하며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교조전의 교조님 앞에 가면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듯이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쏟아낸다. 아이가 엄마!”하고는 울음부터 터트리듯 눈물이 펑 터진다. 그리고 울먹이며 마음속에 온갖 서러움이나 괴로움을 거리낌없이 눈물, 콧물 범벅으로 다 털어놓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편안해지고, 맑아진다. 그런 뒤 가만히 엎드려 있으면 어느새 따스한 교조님의 손길이 어깨에 와 닿고 그리운 음성이 들리는 듯 위로를 받는다. “그래, 그래. 고생이 많았구나. 괜찮을 거야,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하시며 토닥토닥 다독여 주시는 것 같다. 이렇게 교조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위로로 신앙을 재충전하고 어려움을 이겨나갈 힘을 얻게 된다.

그런데 단체로 갔다가 참배를 하고 나오면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인솔자를 따라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은 관광이나 나들이가 되기 십상이지 신앙적이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았다. 바른 신앙이란 어버이신님, 교조님과 조용히 만나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이 있어야 길러지는 것 아닐까. 전도청장님도 어느 강화에서 교조전 앞에 수시로 엎드려 온갖 하소연이며 부탁을 드린다하고 하지 않았던가. 터전에 오는 목적은 그 때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형태일 뿐 결국 어버이신님과 교조님을 더 깊이 만나기 위해서 아닌가?

이번에 터전귀참은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조장 역할이 맡겨졌다. 그래서 조원들이 아무런 사고없이 어려움없이 터전귀참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일이 많을 게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 조별로, 혹은 단체로 우르르 다녀야 한다. 그러니 조용히 어버이신님, 교조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해서 터전귀참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남편에게 이번에는 많은 사람이 단체로 터전귀참하는 거라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거기다가 조장이니 언제나 조별로 몰려 다녀야 하는데. 그래도 누군가는 조장을 해야 되니 안 갈 수도 없고.” 하면서 난처해했더니, “주객이 전도됐네. 모처럼 하는 터전귀참을 그렇게 생각하다니! 사람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은 겉모양일 뿐이야. 어떻든 교조님을 뵈러 가야지한다. ‘아차,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 교조님을 뵈러 가는 거야. 특히 이번에는 부인회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가는 것이니까 더욱 더 어버이마음을 느끼고, 이길의 토대가 되는 마음을 배워오도록 하자.’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어 기꺼이 터전 참배를 하게 되었다.

조장이라 여러 사람을 인솔하는 것이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일이고, 인간 입장에서 일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단체로 터전귀참을 하는 것 역시, 결국 교조님이 계시기 때문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터전 와서 교조님을 제대로 뵙지 못하고 사람 속에 휩쓸려 있기만 해서는 정말 억울하고,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기어이 틈을 내어 혼자 조용히 어버이신님, 교조님, 조령님을 만나러 나섰다.

 

<교조전일화편> ‘116 혼자라도에서는

[교조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한 번 들으러 가지 않겠냐고 두세 사람을 권해서 데리고 가면, 교조님께서는 결코 달갑게 말씀해 주시지 않는 것이 예사였다. 그때는

진실로 듣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남을 의식하지 말고 혼자라도 들으러 오너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혼자 와서 여쭈면 차근차근 말씀을 일러주실 뿐만 아니라, 더욱이

무엇이든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라.”

라며 매우 자상하게 깨우쳐 주셨다.]

는 이야기 나온다. , 교조님께서는 남과 어울려 한 번 말씀이나 들으러 가 볼까하는 태도는 달가워하지 않으셨다는 게다. 남과 우르르 몰려오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고 혼자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교조전일화편> ‘167 남 구제하면에는 다음과 같은 교조님 말씀이 전해지고 있다.

[남의 전갈은 남의 전갈. 남의 부탁은 남의 부탁. 남의 입을 한 사람 거치면 한 사람, 두 사람 거치면 두 사람. 남의 입을 거치는 만큼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야기가 달라지면 세상에 과오가 생기는 거야. 과오가 생기면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러니 본인이 직접 와야 해. 그러면 단단히 깨우쳐 줄 테야.]

이 말씀은 가미 효시로가 188591, 당시 13세의 장녀 기미가 갑자기 두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고, 107일부터는 효시로 자신도 눈에 가르침을 받아 보이지 않게 되자, 부인 쓰네를 시켜 터전에 대신 참배케 했을 때 하신 교조님 말씀이었다. 그래서 쓰네가 집으로 돌아가 그 이야기를 전하자, 효시로는 옳은 말씀이라고 여겨 뒷날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부인의 부축을 받아 가며 40리 길을 걸어 집터로 돌아와 교조님을 찾아뵈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여러 사람을 거치는 만큼 말이 변질이 된다는 게다. 필요 없는 말이 덧붙여지거나, 중요한 말이 빠져버리기도 하고, 자기 식대로 잘못 해석해서 전하기도 하게 된다. 그래서 교조님은 누구라도 언제나 직접 대면하기를 좋아하신 듯하다.

이번 터전 귀참에서도 교조님이 조용히 혼자 오라고 부르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 일과가 끝난 조용한 밤 시간이면 수많은 참배객들이 100년 넘도록 다녔을 이 길을 혼자 가 본다.

그리고 천천히 회랑을 걸으면 터전의 분위기,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다. 신전의 수많은 나무 기둥 하나하나, 문살 하나하나에 담긴 선인들의 손길이 전해진다. 수많은 손때에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나무결에 내 손길 하나를 더 보태면서 교조님을 생각하며, 혼자 감격해 하고, 희열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낮엔 보이지 않던 많은 것과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눈 들어보면 회랑 기둥 위에 수없이 장식된 하트 모양이 눈길을 끈다. 여기, 저기 숨겨놓은 많은 사랑표를 혼자서 열심히 찾아본다. 그 사랑의 증표를 많이 찾을수록 어버이신님, 교조님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하시기라도 한 듯이. 수많은 작은 하트들은 어버이신님, 교조님께서 수없이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그 하트모양의 개수를 세다가 너무 많아 지칠 즈음, 눈길을 돌리면 회랑의 점점이 박힌 나무의 옹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잘 닦여서 반짝이는 나무결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기원이 담긴 절절한 신앙심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다 아는 것이지만 신전에서 교조전까지, 조령전에서 신전까지 회랑이 오르막 내리막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삶이란 이렇게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거야. 그걸 되새기라고 하는 거지라고 나름대로 의미를 붙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 오르막은 힘들지만 내리막은 수월하지? 그렇지만 힘들어야, 어려움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는 거야.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야. 내리막도 있지. 하지만 내리막만 좋아하고 수월한 것만 좋아하면 삶도, 신앙도 내리막이야.’ 라고 하시는 걸까? 어버이신님께 이르는 길, 신앙에는 이렇게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길이 있게 마련이야. 그런 길을 지나서 결국 어버이신님께서 바라시는 마음성인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일까? 회랑을 닦을 때보면 오르막일 때는 몸을 더 낮추어 숙여야 한다. 결국 오르막의 입장, 잘 될 때는 마음도 몸도 더 낮추는 겸손을 배우라는 걸까? 그런데 내리막에서는 몸을 조금 더 일으키게 된다. 내리막이라고 몸을 더 움츠리지 말고 당당하라는 건지, 아니면 몸을 일으키는 교만한 모습이 결국 내리막이 된다는 건지? 수수께끼를 풀듯이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다가 나름대로 반짝이는 해답을 얻고 커다란 기쁨이 일렁이곤 한다.

비록 밤늦어 교조전 문이 닫혀 복도에 엎드리더라도 어서 오너라. 밤 늦었는데 그래도 왔구나. 기특하구나.”하시며 반겨주시는 교조님의 손길을 느낀다.

[자아자아 용솟음치자 용솟음치자 용솟음치자, 한 사람의 사정도 정해지고, 밤에는 등 하나 켠 곳에 두 개를 켜라. 마음이 있는 사람은 이야기라도 하며 지내고 싶구나] (1892.2.18.)

하셨지. 마음이 있어 온 내게 교조님은 무슨 말씀을 들려주실까? 생각하며 존명의 교조님 앞에 엎드린다.

 

혼자라도 들으러 오라하신 교조님의 말씀, 그리고 직접 와서 들어라하신 교조님의 말씀을 명심하여 언제나 터전귀참 때는 일과가 끝난 후 혼자서 조용히 신님과 교조님을 만나러 간다. 이것이 내 터전귀참의 가장 소중한 일정이며,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