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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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26

 

정성스런 삶

박지수

 

작년에 알게 된 어떤 선생님께서 몇 번 만나지 않았는데도 내게정성과 기도로 사는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너무 좋게 봐 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그렇게 봐주니 고맙기도 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정성스러운 삶인지 궁금해졌다. 지도말씀에도 정성 하나로 자유자재한 수호를 받고 앞길이 열리고 하늘이 받아준다고 하셨다. 그리고 정성스런 사람이라면 마스이 린선생이 떠오른다. 정성스런 삶, 정성스런 행동이 과연 어떤 것일까?

지난 겨울에 가을부터 계속 해 오던 요가교실이 방학을 했다. 방학이 되면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포기하거나 미룬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 일 중에 하나는 좋은 수련프로그램에 일년에 한 번이상은 꼭 참가하여 배우려고 했던 일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하여, 항상 배우고 나아가기 위한 내 삶의 기본 원칙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또 수련에 참가하는 것을 스스로가 무척 좋아하는 일이라 일년에 한번은 어떻게 해서라도 꼭 참여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평소에 벼르고 있던 불교에서 운영하는 어떤 수련원에 갔다. 여러 번 가본 곳이라 익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선 자리와는 많이 다른 곳이므로 긴장이 되었다.

이번에 선택한 수련은 일과 수행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수련이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편견이나 선입관에서 벗어나거나 닫혀 있는 마음을 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1단계도 아니고, 오래 묵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자기 속마음을 살피는 2단계 수련회도 아니었다. 3단계쯤 되는바라지장이었다. 일과 수행의 일치! 그 목표에 무척이나 마음이 끌렸다. ‘바라지장1,2 단계 수련생들의 식사를 준비하면서 하는 수련이다. 여기서 하는 1,2단계 수련회의 매력 중 하나는 너무나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이 으뜸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런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배우고, 또 평소에 궁금해 하던 그 정성스럽다는 의미와 어떻게 하면 정성스럽게 되는 길인지를 배우고자 이번 바라지장수련에 참가하게 되었다.

일과 수행의 일치라는 것은 일상에서 하는 모든 일이나 행동에서 깨어있는 마음, 정성스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특별수련회나 다른 일반 심성수련을 하고 나면 아주 짧게 순간, 혹은 길게는 반 년 정도의 효과가 간다. 그랬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일상생활에 휩싸여 살다보면 서서히 빛을 바래고 어느 순간 약효가 다 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러는 이런 수련회를 임시 진통을 잊게 하는 아스피린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수련회를 계기로 마음을 다스리고 새롭게 나날이 나아가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보약처럼 신앙의 보약이 되기도 한다. 신앙의 보약을 먹으면 흔들리지 않은 단단하고 진실한 신앙심으로 마음을 재무장하게 된다. 어쨌든 아스피린이 아니라 보약을 만드는 것은 수련회에 임하는 태도, 각자의 신앙심이나 마음가짐, 혹은 의지력에 큰 관련이 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는 아스피린에 그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효과가 하루 이틀,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이상이나 6개월쯤 간다면 보약일 것이다. 수련회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아스피린이 아니라 보약이 되게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수행과 일의 일치로 일상생활에 이어지게 하는 일이지 않을까. 일과 수행의 일치란 천리교 식으로 말하자면 히노끼싱 정신으로 나날이 정성을 다하는 것일 게다. 다른 비유도 많겠지만 말하자면 그렇다.

바라지장수련에서는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명심문을 두 손 모아 세 번 외운다.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음식)입니다.” 마치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준비하듯이 온몸과 마음을 바쳐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의 무장인 셈이다. 그 다음 식사 메뉴를 이야기하고 어떻게 요리하면 가장 좋을까를 의논한다. 매끼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먼저 꼭 의논을 한다. 이렇게 의논하는 것을일 나누기라고 하는데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은 이런 절차를 꼭 거친다. 구성원 모두가 모여서 먼저 의논부터 한 후 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 나누기어떤 방식으로 요리하면 가장 보기 좋고 맛있는 음식이 될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시켜서 하거나 강권하지 않는데 있다. 자신 있거나 해 보고 싶은 사람이 자청을 해서 한다. ‘일 나누기를 통해서 일의 내용을 공유하고 일하는 방법과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빠르게 일이 진행된다. 아무도 우왕좌왕하거나 망설이며 다른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 없이 각자 맡은 바 소임을 최선을 다해 하게 된다. 자기가 맡은 일을 정성들여 하다보면 어느새 모든 일이 끝나 있다. 그리고 놀거나 딴 짓하는 사람도 없고, 누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잘 알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불평불만이 생길 여지가 없다.

그렇게 모든 음식준비가 끝나고 나면 음식을 아름답게 담아 마무리 한다. 호텔뷔페에 가면 볼 수 있듯이 꽃과 풀이나 채소로 온갖 장식을 하여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장엄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장엄까지 끝나면 만든 사람들은 우렁색시처럼 흔적없이 조용히 사라진다. 이렇게 하는 것은 수련생들이 묵언상태로 자기 내면에 집중해서 에고를 부수기 위해 고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므로 이를 돕기 위해서인 것 같다. 만든 사람은 사라지고,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만이 남겨진 채 김이 모락모락난다.

이것을 보는 순간 수련생들의 마음에는 신비감과 감동이 생긴다. 이토록 정성스런 음식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인지, 이 음식들을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감사함과 궁금함이 동시에 일어나곤 한다. 그러면서 음식에 선뜻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전율이 이는 감동을 느끼며 마음의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신비함과 감동을 그대로 다른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새겨진다. 그래서 수련회를 뒷바라지 하는 3단계인 바라지장에 참가하려는 마음을 작정하게 된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 그리고 뒷정리까지 끝나고 나면 마음나누기를 한다. ‘마음나누기란 일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깨닫는 것이 있기도 하고, ‘이런 방법보다도 저런 방법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하면서 온갖 마음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일하기 싫은 마음도 일어나고, 하기 싫었는데 해 보니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일하는 동안 일어나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다 보면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가볍고 기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무겁고 챙피하기도 하다. 이런 모든 마음을 솔직하게, 가볍게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나누기이다. 이렇게 일 나누기마음나누기를 하다보면 서로 마음에 걸림이 없이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일과 수행의 일치라는 목적도 이루어가게 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이길에서 말하는 히노끼싱을 다시 생각 해 본다. 히노끼싱의 근본정신은 나날이 수호해 주시는 어버이신님에게 올리는 감사와 보은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정신은 사라지고 부족이나 불만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이 생겨나는 것을 보게 된다. 왜 그랬을까? 히노끼싱 정신을 살려서 온전하게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런 문제로 그 동안 많이 고민도 해 보고 궁금했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기분좋게 마음을 내어 히노끼싱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뭘 하는 지 모를 때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때는 그 사람에게 부족을 갖기 쉽다. 예를 들면 부엌에서 히노끼싱하는 사람에게는 신전 청소나 화장실 청소, 혹은 사무실에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놀고 있거나 게으름피우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전 청소하는 분들은 다른 곳에서 하는 히노끼싱은 생각지도 않고, ‘다들 어디서 노는 지 이렇게 중요한 신전청소를 하러 오지 않는다고 부족을 품기도 한다. 그래서 떠도는 우스개 소리가 자기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노는 것!’혹은 내가 하고 있는 일만 히노끼싱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중심으로 남을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부족을 일 나누기를 하면 아예 없앨 수가 있다.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다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도 훨씬 절약이 되고 마음도 더 한층 즐겁다. 개다가 마음나누기까지 하게 되면 내가 하는 히노끼싱이 중요하듯이 저들이 하는 일 역시 중요한 히노끼싱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히노끼싱하는 사람들이 왜 종종 불평 불만을 가지는 지, 더 즐겁게 히노끼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지 궁금해 하던 답을 일 나누기마음나누기에서 찾았다고 할까.

 

그리고 바라지장 경험 몇 가지를 통해서 정성스런 것이 뭔지 생각해 보았다.

무 생채를 준비하는 채썰기를 하게 되었다. 이른바 채썰기는 요리 실력의 바로미터라는 데. 같이 수련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20, 30대 초반이었고 미혼인 사람이 많았다. 주부라곤 열 명 중에 나와 50대인 여성 두 명이었다. 나머지는 손에 물도 별로 묻혀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자신만만하게 무채를 썰었다. 처음에 일 나누기를 할 때 안내자는 7센티 정도로 무를 토막내서 일정한 크기로 써는 것을 견본으로 보여 주었다. 무채는 나와 아직 대학생인 아가씨가 같이 마주보고 썰었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빤히 상대가 하는 게 다 보였다. 상대는 아주 천천히 자로 재듯이 썰고 있었다. 상대방이 한심해 보였다. ‘아이고, 저러다 점심때가 되어도 다 못 썰겠다. 백 명 분 식사를 어떻게 다 준비 하노. 빨리 해치워야지!’하는 조바심이 생겨나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요리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주부경력이 20년 가까이 되니 빠르게 칼질을 했다. 상대방은 이런 나의 칼질 소리를 들으며 질린 듯이 더 천천히 했고, 그 손놀림에서 긴장이 묻어났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여기저기서 ! 지수님. 칼질소리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요리의 달인?!!”하며 감탄해댄다. 그 소리를 즐기며 채를 썰어 같은 통에 담았다. 담으면서 상대방을 얼핏 다시 보니 상대방이 썰어놓은 채는 양이 적었지만 가지런하고 같은 길이와 굵기였는데 내가 썬 채는 수북했지만 길이가 들쭉 날쭉에다 견본보다 더 가늘게 채 썰어 졌다. 그것을 보고, 그때서야 ! 이게 아니구나싶었다. 그래서 정해진 길이대로 잘라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내가 악의없이 한 행동으로 상대가 불편해 한다는 것에 마음이 갔다. 해서 나도 천천히 제대로 무를 토막내서 채를 썰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처음해보는 일도 아닌데 무 토막을 자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잘라보면 사다리꼴로 한쪽은 짧고 한쪽은 길어져 버렸다. ‘이거야 원, 무 토막하나 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구나!’ 속으로 한탄하며 교만을 반성했다. 그리고 조바심 나는 마음, 잘 해야겠다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상대방도 편안해 하는 것 같고, 내 마음도 편하고 가뿐해졌다. 썰어진 채도 일정한 굵기와 길이가 되어 한결 보기에도 좋았다.

다음날은 채식 육개장을 만들기 위해 토란대를 다듬는 일을 했다. 먼저일 나누기를 할 때 줄 세워 가지런하게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말린 토란대를 푹 불려서 물컹한 상태를 줄 세워 가지런히 정리해 놓으려니 시간과 노력이 엄청 들었다. 여러 명이 붙어서 줄을 세웠다. 마음속에서 이렇게까지 한 줄기씩 줄 세울 필요가 뭐 있나? 정말 이건 시간 낭비야.’싶어 불만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도 내 마음 내려놓고 하라는 대로, 기준대로 하자. 여긴 내 집이 아니고, 난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잖아.’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묵묵히 일을 했다. 더러 결국 나중에 다 섞을 거 아닌가요? 왜 이렇게 해야 하죠?”하는 불만을 서로 소곤거리기도 했다. 줄 세운 뒤 자로 잰 듯 같은 크기로 썰었다. 그리고 다른 줄 세워 썰은 재료들과 확 뒤섞어서 무쳤다. 애써서 줄 세운 사람들은 말없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줄 세운 그 노력과 정성이 한순간에 허탈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정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역시 요리를 해놓으니 어제 무채처럼 확실히 더 정성스러워보였다. ‘아하! 이런 것이구나. 여기서 우리에게 깨우치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정성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정성인지, 무엇이 대충하는 일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재료를 다듬는 일, 준비하는 일, 뒷정리는 같이 했지만 주로 내가 맡은 일은 김치썰기였다. ‘일 나누기때 김치를 어떤 식으로 썰어서 목기(木器)에 담는 지 알려주었다. 그곳에서는 김치를 고등어 한 마리라고 한다. 그릇 바닥에다 보통의 경우 버리는 배추 밑둥 뿌리 부분을 잘게 다져서 깔고 김치를 길이대로 잘라서 담는다. 그 위에 푸른 배추겉잎으로 덮은 모양이 고등어를 닮았다고 해서 우스개소리로 고등어 한 마리라고 한다. 김치를 담은 뒤에는 목기 양 쪽에 동치미 무를 수련생 숫자에 맞게 잘라 붙여둔다. 밥을 먹은 후에 그릇을 닦을 수세미인 셈이다. 가르쳐 준대로 김치를 썰고 담으면서 거기다가 조금이라도 더 정갈하게 담기 위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정성을 다했다. 수세미용 동치미무 모양도 네모, 세모, 왕관모양, 사다리꼴, 마름모꼴, 혹은 하트모양까지 여러 모양으로 장식하며 스스로 감동하고 기뻐했다. 다른 모든 음식들도 각자의 정성에 따라 그렇게 만들어 졌다.

바라지장수련으로 깨달은 정성스런 행동이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마음대로 제멋대로 하지 않는 것, 자기가 아는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가질 것, 정해진 기준에 맞추어 제대로 하는 것, 남보다 잘 해야겠다는 경쟁하는 마음을 없앨 것, 의무로 빨리빨리 서둘러 해치우지 않고 천천히 집중해서 할 것, 내가 내가 하는 마음을 없앨 것, 깨어 있는 마음 상태로 축원(祝願)을 하면서 만들 것!]

지도말씀에서는 정성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 지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어디에 있더라도 월일의 몸뚱이야. 어디에 있더라도 마찬가지, 정성스런 마음 하나야. 정성이 하늘의 리야. 하늘의 리에만 맞는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길이 열리는 거야. 진실과 정성이 없으면 어디에 가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길은 좁아질 뿐이야. (1887. 7)

마음에 정성 하나만 있으면 아무것도 위태한 것은 없다. 즐겁게만 하는 길이 있다. (1888. 1. 31)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정성. 정성이 하늘의 리 (1888. 2. 5)

정성처럼 강한 것은 없다. 정성은 하늘의 리이다. 정성만 있으면 세상에서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한다. (1888.6.2)

자유자재는 어디 있다고 생각 말라. 각자의 마음에 항상 정성 있는 것이 자유자재라 한다. (1888.12.7)

천리왕님이란 정성스런 마음없이는 안된다. (1888. 7. 4)

무엇보다 단노 하나의 리를 다스려라. 단노는 정성에서 나온다. 단노는 정성스런 마음이야. 정성이면 곧 받아들인다. 듣고 과연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새겨지면 신상도 곧 좋을 것이니. (1888. 10. 28)

마음의 길은 정성, 정성은 천리, 하늘의 리로 혜택이라 한다. (1890. 4. 6)

정성은 하늘의 리, 하늘의 리이므로 곧 받아들이고 곧 돌려준다. 이것이 하나의 리. (1890. 4.7)

각자의 마음 가운데에 어버이신이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성 하나다. 정성스러운 마음은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 진실로 마음이 정해졌다면 남이 무어라고 하든 변치 않는 것이 정성이다. (1890. 4. 16)

참된 정성은 단노, 단노는 곧 받아들인다. (1891. 12. 30)

정성 하나를 잃으면, 다른 길도 동시에 없어진다. (1893. 5. 12)

안 되는 가운데 단노하는 것은 정성, 정성은 받아들인다. (1897.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