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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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11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살기

 

박 지 수

 

[지네는 절지동물이다. 몸은 길쭉하고 등배는 평평하며 머리에 이어 많은 마디(체절)가 있는데 한 마디에 한 쌍의 다리가 있다. 체절은 지네종류마다 다르지만 최소 15쌍에서 170쌍에 이르는 것도 있다. 머리 가까이 가장 몸의 마디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되어 독샘을 가지고 있다.] 지네에 대한 동아백과사전의 설명의 일부이다. 시골에 살다보니 지네와 인연이 많아 이 놈들이 대체 어떤 놈인가 궁금해 알아보니 그랬다.

남편이 상급교회 당직을 간 날 밤이었다. 잠자다 손가락 사이에 침을 놓는 것 같은 따끔함에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무의식적으로 지네다!’싶었다. 불을 켜고 이불 위를 살피니 어라~ 생각보다 작은 놈이네.’ 사람이라면 초등학생이나 되었을 법한 새끼손가락 길이 정도인 어린 지네였다. 독이 조금 약한 지 물린 곳 그렇게 많이 따끔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오랜 세월 유전자에 입력된 혐오 동물이라 순간적으로 파리채로 잡아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한편 배신감도 들었다.

작년에 지네와 평화롭게 함께 살기 위해서 낮 시간과 우리가 활동하는 밤 열시까지는 지네들이 다니지 말고 우리는 그 뒤에 나오는 지네들을 해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또 우리 눈에 가능하면 띄지 않도록 부탁하면서 밤에 나오더라도 물지 말기를 당부했다. 혹시나 물면 우리가 너무 무서워서 자신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으니까. 만약에 위반할 때는 안전을 책임 못 진다고. 그러니 서로 노력하자고 했다. ‘그 약속이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는데 이 쪼그만 놈이 그 약속을 위반하고 내 손가락을 물었단 말이지...! 이를 어쩔거나?’ 조금 고민하다가 몇 년째 계속 그래왔던 대로 조금은 두려워하면서도 이불 그대로 싸서 밖에 보내주었다. “넌 어린 거 같으니까 네 실수를 용서할게. 다음부터는 들어오지 마. 잘 가.”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또 어딘가 지네가 있을 거 같아 잠이 안 왔다. 그렇지만 물은 것이 화가 나고 또 두려워서 순식간에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평소에 자주 생각하고 연습해 온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살기를 실천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이 세상은 인간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잖나? 저런 혐오동물이라도 다 신님이 만드신 피조물, 뭔가 존재의 이유가 있는 거지. 우리가 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예쁜 새나 귀여운 곤충이라면 당연히 살려 준다. 그러나 이런 혐오스런 바퀴벌레나 지네, 개미나 거미같은 성가신 곤충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조건반사적으로 파리채를 들어 죽여 버린다. 그때 한번이라도 이 동물들도 고통을 느끼는 생명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쉽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지네보다 더 혐오곤충으로, 아니 가장 혐오한다고 알려진 곤충으로는 바퀴벌레가 있다. 우리 집에는 바퀴벌레가 많다. 시골이라 그렇기도 하고, 오래된 집이라 틈새가 많은 탓도 있다. 그리고 살충제를 뿌리거나 바퀴벌레 약을 놓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바퀴벌레가 많고 적음은 그 집의 청결상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바퀴벌레 역시 생명인지라 괴롭히지 않으면 아무래도 자주 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까지 평화를 느끼는 행복한 공간으로 우리 집을 가꾸고 싶다.^^

아마도 내가 바퀴벌레나 지네, 파리, 개미나 거미 그리고 집없는 달팽이와 귀뚜라미, 그 외 온갖 곤충들과 싸우려고 했다면 매일 전쟁터가 됐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죽임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을 죽이는 순간의 내 마음에는 분노와 살기가 가득 차게 된다. 그런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그리고 평생을 하다 보면 내 영혼에는 살기와 분노와 미움으로 티끌이 가득 쌓이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때는 분노와 미움이 아닌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이 더 나은 영혼으로 태어나길 기원하면서 한다면 티끌을 쌓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서적에 찾아보면 바퀴벌레는 고생대 이래로 아직까지 번성하게 살고 있는 오래된 곤충이다. 사전에서조차도 바퀴벌레가 병원균을 옮긴다고 하지만 최근에 연구결과는 그런 결과가 오해와 편견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것을 밝혀냈다. 사실 바퀴벌레는 굉장히 깨끗한 곤충이다. 낮 시간동안 어두운 틈새에 숨어서 우리는 무슨 나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고양이처럼 자신의 몸을 치장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바퀴벌레는 사막에서 북극까지 살지 않은 곳이 없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도 3개월은 살고 물이 없어도 한 달 이상 살아남는다. 그래서 인간이 바퀴벌레와 싸워서 이길 수는 절대로 없다고 한다. 물론 독물인 약을 계속 뿌리면 자기 집에는 바퀴벌레가 일시적으로는 덜 올지 몰라도 약에 대한 내성은 그 만큼 더 커져서 나중에는 그런 약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바퀴벌레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곤충이나 동물들과 화해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와 치유의 근원이며, 21세기를 가는 우리의 길라는 말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아예 싸울 생각을 버렸다. 그보다는 평화롭게 함께 사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바퀴벌레 역시 어버이신님이 만들어서 이 세상에 보낸 곤충이 아니겠나? 설마 악마가 있어서 우릴 괴롭히려고 바퀴벌레를 만들어 보냈겠나?’싶었다. 더군다나 이길에는 악마라는 말 자체가 아예 없는 평화의 종교이지 않는가.

인간의 눈으로 좋은 곤충이니 나쁜 벌레이니 하며 이름 붙였지만 이러한 구별 없이 어떠한 곤충과도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이들 곤충을 우리에게 보내신 어버이신님을 만나게 되는 또 다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곤충과도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차별하는 경계심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 살아야 하는 존재이유가 반드시 있으며, 나와 만나게 되는 순간 어버이신님께서 보내주시는 메시지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단지 내 마음으로 좋다 싫다할 뿐이며, 존재이유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며, 어버이신님의 메시지를 거절하고 있을 뿐 아닌가.

나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새로운 이해가 생겨나고, 마음 그릇이 더 커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바탕과 상대를 포용하는 큰마음이야말로 막히거나 끊겨있는 인간관계를 막힘없이 뚫고 이어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지 않을까.

 

어느 저녁에 모처럼 편안한 자세로 뒹굴며 책을 보고 있는데 뭔가가 큰 놈이 따닥따닥하며 서둘러 걸어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중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보니 엄청 큰 지네였다. 여기 와서 본 것 중에 제일 큰 놈이다. 20센치는 될 듯한 대장 지네랄 만큼 크고 시커먼 놈이었다. 다리도 아주 여러 개라서 그런지 기어가는 속도가 뛰는 것 같고 소리도 엄청났다. 너무나 놀라서 심장이 쿵닥 쿵닥거리고 열이 확 나고, 허둥 허둥대었다.

남편이 그거 갖고 와하는 데 뭘 갖고 오라는 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파리채를 가져오면서 죽이면 안 되는데... 살려줘야 돼요!”했다. 예전엔 파리채로 혐오스런 곤충들을 악의를 갖고 많이 때려잡곤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다시 그것 말고 빗자루 가져오라고!”하며 상기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갖다 주면서 남편 얼굴을 보니 놀래서 얼굴이 하얗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지네를 쓰레받기에 쓸어 담았다.

처음에 우리가 허둥댈 때는 지네도 막 도망간다고 같이 정신이 없더니 빗자루로 쓸어서 쓰레받기에 담으니 안심이 되는지 가만히 있다. 자기를 죽이지 말라는 소릴 들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서 살기가 아니라 평화로운 기운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여러 번 살려 보내준 놈들 중에 한 놈이라 경험이 있는 건 아닐까.

그래. 착하지. 근데 네가 어쩌다가 지금처럼 지네가 다닐 시간도 아닌 시간에 이 곳에 나온 거야? 규칙 위반인데!! 한여름 습기가 많은 철도 아닌 9월인데 나오다니. 그래도 우리가 잘 때 나와서 놀라게 하거나 물지 않아서 고마워!”하고는 멀리 풀숲에 놓아주었다.

둘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주보고 웃는다. 이렇게 평화롭게 함께 살기를 배우고 연습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자신의 모습이 기뻐서. 그래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이놈들이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놀라거나 겁먹거나 허둥대며 긴장을 하니까 말이다.

우리가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에게 평화롭게 혹은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쉽다. 그렇지 않고 강자에게 덤비면 한 대 맞아 다칠 수도 있고, 불이익을 당하니 약자인 내가 화가 나더라도 강자에게 대항하지를 못한다. 마음으로 분노를 삼켜서 원망을 키운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약한 존재, 작고 연약하고 게다가 성가시고 귀찮게 하거나 혐오스런 존재에게는 화를 내거나 때려죽이기란 또 얼마나 쉬운가? 마치 시부모님께 화가 나거나 남편에게 화가 날 때 애궂은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듯이.

이글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 지네가 3번 더 나타났고, 그때마다 다 살려서 내 보냈다. 한번은 잠자는 남편 팔뚝을 물기도 했다. 어느 때 보다 더 심하게 물렸다. 옥염과 옥수를 바르고 수훈을 전해 주었다. 조금 심하게 부어올랐지만 다행이 통증은 없다고 했다. 악의로 갚지 않았다는 게 다행스럽다. 지네가 물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만약에 악의를 품고 때려잡았다면 필시 지네는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내 불편함과 성가심 때문에 약한 존재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면 내 영혼엔 얼마나 많은 어두운 그림자가 끼일까.

물론 여름날엔 파리를 많이 잡아 죽였다. 이들이 많을 때는 정신이 산만하고 주위가 더러워지고, 먹는 음식에 병원균을 옮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서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도 바로 파리채를 들고 보복 행위를 시작하지 않고, 파리에게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제발 귀찮게 하지 말고 놀아달라고. 아니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를 요청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기회를 더 준다. 그러고도 자기마음대로 한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파리채를 휘두른다. 더 나은 혼으로 태어나기를 축원하면서. 그리고 내 마음 속엔 악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약간 두렵고 때론 혐오스럽기까지 한 바퀴벌레나 지네 같은 나보다 훨씬 작은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연습을 하고 있다. 물론 내일도 연습을 해 나갈 터이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것으로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뭇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 더 나아가 그 존재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어버이신님을 더 가까이 느끼고, 진실로 섬기기 위하여. 그러나 아직은 많이 서툴고 너무나 부족한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