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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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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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 3

어떤 일에서도 신님의 뜻을

 

박지수

 

고성 교회 월차제 날 일이다. 모든 일이 끝나고 많은 용재 분들과 신자 분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간 뒤 우리도 집으로 가려고 마당으로 나서는 데 어떤 교회장님이 앞마당 주차장에서 뒤에 있는 트럭 때문에 차를 뺄 수가 없다고 들어가서 방송 좀 해달라고 하셨다. 양손에 짐을 들었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서는 전화로 연락하면 되는 데.... 좀 귀찮네싶다가도 짐든 사람에게 부탁할 때는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어서 들고 있던 남편 가방을 현관 발판 위에 놓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방송을 부탁하는 사이에 신입생 환영회에 온 대학생들이 먼저 가는 선배를 배웅한다고 나갔다 들어오는 모습이 잠시 보였다.

현관으로 다시 나왔을 때는 가방이 없었다. 먼저 나간 남편이 가져갔겠지 싶어서 예사로 여기며 무심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가방이 없었다. 현관에 분명히 두었던 가방이 없어졌지만 설마 다른 사람이 가져갔을 리가 없고, 당연히 남편이 가져다 실었겠지 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없는 게 아닌가. 교회에 전화를 해서 알아봐 달라고 했지만 소식이 없다.

그 가방에는 남편에게 소중한 보물이 여러 가지가 들어 있어서 참으로 난감했다. 전자사전과 디지털카메라와 무엇보다도 지난 10년 간 해 왔던 업무에 대한 수많은 자료와 원고, 계획들이 든 이동식디스크가 들어있었고, 1년 계획이 수록된 수첩과 지갑을 비롯한 남편에게는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는지라 정말 기가 막혔다.

화가 난 듯한 남편에게 면목도 없었지만 나도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말이 안 나왔다. ‘그러면 그 가방이 어디에 갔단 말인가? 분명히 현관에 두고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부엌에서 이 일 저 일 하고 있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남편은 방에 들어가서 잠시 기척이 없더니 교회에 다시 가봐야겠다고 나선다. 마냥 기다리지 못한 남편은 여태 소식이 없는 걸 보면 가방 행방을 사무실에서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집을 나섰다.

초조하게 기다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떻게든 찾아오겠지.’하는 까닭 모를 안도감도 있었다. 40여분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가방을 찾았다고 했다. ‘, 다행이다.’ 싶었다.

얼마 후 남편은 가방을 찾아서 되돌아왔고, 이내 저녁 근행 시간으로 이어졌다. 신자 분들과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저녁근행을 올리려 많이 왔다. 남편은 근행 후에 그 일을 끄집어냈다.

그렇게 소중한 가방을 놓고 와서 잃어버렸다 싶으니 처음에는 화가 조금 났어요. 화가 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죠. 내 마음이 이 정도 일에서 화가 나는구나하고, 내 마음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되어오는 이치가 신의 이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 일에서 신님은 저에게 어떤 이치()를 깨달으라고 하시는 걸까?’하고요. 그러다보니 조금씩 화는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서 고성교회로 돌아가서 찾아보기로 했지요. 고성으로 가는 동안 신님의 뜻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가방을 못 찾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없었지만, 반드시 신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성교회에 도착해서 이리 저리 있을 만 한 곳에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가방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전전() 학생회장 동월이가 있어서 물어 보았습니다.

가방 하나 본적이 없느냐고요.

처음에는 모른다고 하더니

혹시 갈색으로 이만한 가방 아닌가요.”

하며 손짓으로 크기를 그려 보였습니다.

그래, 그것이야.” 했죠.

창원이 배웅할 때, 창원이 가방인가 싶어서 제가 들었다가 아니라 해서 다시 그 자리에 내려놓았는데요.”

그곳이 어딘데?”

신발장 앞인데.”

그럼 있나 한번 가봐.”

돌아오더니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다면 혹시 모르니까, 학생회의실로 가 볼래?”

했습니다.

학생회의실로 갔던 동월이가 잠시 후 작은 가방 하나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제 것이었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창원이 배웅하러 나간 학생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신발장 앞에 있는 가방이 자기네 누군가의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들고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순간 아찔한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습니다. 신입생환영회와 졸업생 환송회를 끝나고 난 뒤 학생들이 회의실 문을 잠그고 돌아 가버리면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싶었어요. 만약 그때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몇 개월을 못 찾고 지나갈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찾았으니 정말 다행스러웠지요. 누가 들고 들어갔는지 따져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집에 갔다가 일부러 다시 나왔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월이와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보에 원고 좀 써주지 않을래?”

했어요. 두 말 안하고 쓰겠다고 해요. 게다가

저 혼자만 쓰면 되나요?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어봐서 쓰게 할까요?”

하는 말까지 덧붙이지 않겠습니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죠.

교회는 갓 태어난 아이부터 오늘 내일 죽을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보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해 글을 내 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는데 동월이가 선뜻 글을 쓰겠다 하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알아보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습니까.

이때 , 어버이신님은 이 선물을 주시려고 가방을 잠시 잃어버리게 하셨구나.’하는 깨달음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서 화가 어느 정도까지 나는 지 내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또 이 일을 통해 어버이신님의 이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조금 더 신님 뜻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도 했지요. 또 이렇게 저녁근행에 여러분들이 오시니까 함께 이야기할 감화거리도 생겼으니, 일석삼조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마냥 짜증내고 화만 내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화를 거두어들이고, 이 일을 통해서 신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지, 또 어떤 선물을 주시려고 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정성스럽게 잘 차려놓은 밥상을 뒤집어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 했다.

이 일에서 남편은 일석삼조의 수호를 받았다고 하는 데, 이것을 주제로 내가 원고까지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일석사조인 셈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원치 않는 일을 겪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때 대응하는 방법은 판을 뒤집어 버리거나,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로 삼는 데 있다.

천하의 영웅으로 알려진 로마에 케이사르는 어떤 위기가 생기거나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기회로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나도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었던 적이 생각이 난다. 바다에 빠지면 옷이 젖었다고 투덜거리기보다 빠진 김에 미역이나 청각을 따서 나오면 하루 저녁 반찬거리라도 생긴다. 시인 박노해는 여러 해 동안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짜증내거나 신세타령하기보다 차분히 책을 읽어서 무려 만권을 독파했다고 한다.

실수나 안 좋은 일에서 뭔가를 배우고 교훈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반드시 더 좋은 일로 보답이 돌아오는 것 같다. 위기(마디)를 기회로 바꾸어 도약하는 것, 이것이 보물을 숨겨놓고 우리를 더 크게 키워 주려고 하시는 어버이신님의 마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