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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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박 종 원(유심포교소장)

 

태초에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뿐...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후 어느 때인가 좋고 나쁨, 행과 불행, 이로움과 해로움, 길고 짧음, 많고 적음처럼 서로 다른 착함과 악함이 사람의 마음에 상()을 만들며 선과 악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마음에 선()의 씨앗을 심어 선의 꽃을 피우고, 선의 열매를 맺게 되고, ()의 씨앗을 심어 악의 꽃을 피운 나머지 악의 열매를 거두게 되니, 한마디로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입니다.

, 종두득두요 종과득과이니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법, 선악은 결국 인간마음의 씀씀이로 생겨난 산물이요, 인간심이 그 출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내면세계에는 상반된 두 개의 다른 모습이 언제나 공존하는데 마치 다른 존재가 한 몸에 있는 것처럼 양의 탈을 쓴 늑대혹은 두 얼굴의 사람처럼 이중성을 지닌 야누스의 두 얼굴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자기중심적 결정에 의해 어떤 욕망으로 변화하고 그 결정의 향방에 따라 선함, 악함도 결국은 이성과 감성에 의해 야기된 결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라고 하였습니다.

두 마리 말 중 하나는 혈통이 좋고 행동도 바르지만, 다른 말은 혈통이 좋지 않고 마부의 지시를 잘 듣지 않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마차를 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면, 마부 즉 이성(理性)이 고삐를 쥐고 두 마리의 말을 잘 통제해야 하지요.

이때 다루기 어려운 말은 욕망을 추구하는 충동적 감정을 상징합니다.

만약 마부가 이 말에게 지면, 마차는 오직 쾌락을 향해서만 질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능숙한 마부가 서로 다른 두 마리의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우리도 이성과 감성의 갈등 속에서 합리적 판단을 내리고자 노력해야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중성과 양면성을 인정해야 하고 지나치게 어느 한 쪽 면만을 강요하거나 억압하면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에 의해 잘 통제 될 때, 인간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 마리의 말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마리의 말을 잘 끌고 가야한다는 뜻이지요.

우리 천리교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신앙의 목표로 하는 즐거운 삶과 감로대세계의 구현도 선의 지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종국에는 도달해야 할 이상향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선과 악처럼 상반된 이중성과 양면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걸어야 할 길이 아닐까요?

만약 어느 한 쪽을 외면한다면 즐거운 삶은 신기루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허상이 되거나 꿈에나 있을 무릉도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나날의 생활 속에서 올바른 이성의 마부가 되어 한 마리의 말이 끄는 선()의 고삐를 한 손에 잡고 덕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손에 잡힌 한 마리 악()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고, 무엇보다 욕망과 충동의 티끌을 쌓지 않는 것이 행복의 문을 여는 수호의 열쇠를 거머쥘 수 있는 마중물이 된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