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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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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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탄생의 달 월차제 신전강화

 

즐겁게 사는 방법

이상봉(고성교회장)

 

 

오늘, 교조탄생의 달 월차제에 참배해주시고 즐겁게 근행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4)

 

이 달은 교조님이 탄생하신 달입니다. 1798년 음력 418, 양력으로는 62일에 탄생하셨습니다. 터전에서는 지난 418일에 교조탄생제의 제전을 올렸습니다. 426일에는 별도의 월차제를 올립니다. 교조탄생제의 제전은 1934년부터 올렸습니다. 예전에는 418일부터 426일까지 교조탄생경축주간이라고 해서 8일간 매일 본근행(본근행은 신악탈을 쓰고 보는 신악근행을 말합니다.)을 올렸다고 합니다만, 요즘은 418일 하루만 근행을 올립니다. 근행이 끝나면 진주님께서 교조전에 가서 교조탄생제의 축하말씀을 아뢰고, 그 후에는 중정에서 교조님 탄생의 노래 3가지를 부르고 교조님의 일대기를 그린 노래인 월일의 현신 모본의 어버이를 다 같이 합창하고 마치게 됩니다.

이 길은 교조님으로부터 모든 가르침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교조님의 탄생은 즐거운 일입니다.

 

이 길의 목적은 즐거운 놀이

이 길을 가는 우리의 목적은 즐겁게 사는 데 있다고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친필에도

月日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즐거운 놀이를 보고 싶은 까닭에 14-25

라고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고 우리를 창조해주신 어버이신님도 즐거움을 같이 누리겠다는 목적에서 우리 인간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개인으로서도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신악가에

오래오래 신앙을 하였더라도

즐거움만으로서 가득해야지 (5-5)

라는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는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항상 좋은 일만 나타난다면 계속 즐거울 수 있지만, 즐거워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기 때문에 즐거울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좋고 나의 형편대로 잘 풀리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괴롭고 힘들고 참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더 많은 게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버이신님께서는 위와 같이 오래오래 신앙을 하였더라도 즐거움만으로서 가득해야지라고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떠한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는 어버이신님으로부터 육체를 빌려서 살리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납득을 하는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친필에

인간은 모두 신의 대물이야

무엇으로 알고 쓰고 있는가 3-41

각자의 몸은 차물임을

모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3-137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물차물을 진심으로 납득하는 것이, 어떤 일이 있어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빌리고 있는 육체는 약한 듯 생각될 수 있지만, 우리의 육체만큼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몇 십 년 살아오면서 고장은 몇 번 났을지라도 다시 나아서 계속 쓰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엔 의학이 발달해서 부품 교체하듯이 갈아 끼울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치아의 경우 자기 치아를 오래도록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문 일이 됐습니다. 무릎이나 관절이 안 좋을 경우에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육체만큼의 기능이나 내구성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3년 전에 신문기사에 걸어서 세계 일주를 한 남성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다음은 그 개략적인 내용입니다.

캐나다의 쟝 벨리보라는 50대의 남성이 11년간 걸어서 세계 일주를 했다. 그는 11년간 64개국 75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여행했다고 한다. 중국과 한국에 서는 뱀과 개고기를 먹어보기도 하고, 필리핀에서는 무장군인의 호위를 받기도 하고, 알제리에서는 크게 앓아눕기도 하고, 에티오피아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며칠 동안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고, 이를 통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때로는 다리 밑에서 잠을 자는 등 노숙을 하곤 했지만 대부분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잘 수 있었고, 식사도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제공해 주었다. 11년간 그가 쓴 돈은 5천만 원 정도였다. 그는 가진 것은 없지만 많은 경험을 얻었다. 앞으로 세계 일주를 한 경험을 토대로 책을 낼 계획이며 강연을 통해서 사람들과의 조화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1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며 걸은 거리가 75천 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사람이 평생 걷는 거리는 평균 8만 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많이 걷는 경우는 그 두 배 정도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뛰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돈다면 어느 정도 걸릴까요? 실제로 뛰어서 세계 일주를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프랑스인이었는데 260일 동안 뛰어서 프랑스에서 일본까지 갔다고 합니다. 뛰어서 가는 동안 27켤레의 신발이 닳아 없어졌다고 합니다. 신발이 27켤레가 없어졌지만 그 사람의 발은 닳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인 겁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의 육체가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자동차나 물건이라고 해도 그 내구성은 사람의 육체보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얼마나 튼튼합니까? 여기 계신 성원회장님 같은 경우도 서울까지 도보를 그렇게 많이 하셔도 발은 닳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어버이신님께서 만드신 우리 몸 중에 발바닥 하나만 봐도 신발보다 아주 약해보이지만 몇 만 킬로미터를 걷고 뛰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발바닥 하나만 봐도 이런데, 이렇게 튼튼한 몸을 어버이신님께서 우리에게 빌려주고 계신 겁니다. 이 밖에도 우리는 어버이신님에게서 빌려 받은 몸으로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겁니다.

 

이십여 년 전에 스위스의 한 의사가 사람의 몸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소리를 듣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데 이러한 기능들을 가격으로 하면 얼마나 될까 하고 환산을 해봤습니다. 남자 몸의 경우는 200억 정도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십여 년 전이니까 지금은 그 가치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몸의 경우는 그 가치가 1,000억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남자보다 5배 정도 더 비싼 수치입니다. 그 이유는 자녀를 낳고 기르는 데 필요한 모유를 수유하는 등의 기능을 위해서는 아주 복잡한 호르몬의 작용이 일어나야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걸 보면 집에서 남자들이 자기의 부인을 생각할 때 나보다 훨씬 비싼 육체를 가진 분이구나, 나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분이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육체를 빌려서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짜로 빌려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금전적 가치의 혜택을 대가를 지불하면서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게 얼마나 큰 혜택을 입고 사는 것입니까? 이렇게 엄청난 혜택의 육체를 빌려서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라고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즐겁게 마음을 가지려고 해도 신상이나 사정이 나오면 마음이 즐겁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조님께서는

언제나 도움을 서두르시니

조속히 즐거웁게 되어오너라 (신악가:4-5)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도와주면 즐거운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먼저 즐거운 마음이 되면 도와주신다. 라는 말씀입니다. 밝고 즐거운 마음이 되는 게 우선이지 도와주면 내가 즐겁게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순서가 틀린 것입니다. 교조님은 하루라도 빨리 돕고 싶지만 즐거운 마음이 안 되면 도와줄 수가 없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단노는 정성

지도말씀에도

신상에 부족이 있어서는 단노는 좀처럼 안되겠지. 그러나 세상의 사정을 보고 진실로 단노한다면 그 리를 받아들인다. 1890.12.27.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 부자유가 있고 부족이 있으면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없겠죠. 그럴 때 즐거움을 가진다는 것은 되어져오는 리를 흔쾌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단노는 쉽게 할 수 없지만 세상 속의 사정을 보고 흔쾌하게 받아들이면 그 마음을 받아들인다. 세상 속의 사정이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있고 나보다 더 힘들고 괴로운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이 어디가 나쁘다 아프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세상의 사정을 보고 내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이번 같은 큰 사고가 나고 하는 걸 보면 보통의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살고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에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지 이번에 공부 몇 등밖에 못했느냐.”라고 하고 있지만 별 탈 없이 살고 있는 것만 해도 엄청난 혜택인데 공부 못하는 것 가지고 마음을 졸이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 힘들게 살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다 욕심입니다. ‘세상의 사정을 보고 단노하면 그 리를 받아들인다.’ 라고 하셨습니다. 만족스런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지만 살면서 부족스런 마음을 가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부족의 마음을 갖는 것은 전생인연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전생인연을 모르기 때문에 부족을 갖게 되는 겁니다. 부족이라는 게 어버이신님이 우리가 그 동안 써온 마음에 따라서 적절하게 그런 부족의 마음이 생길 수 있는 자리에 배치해 놓은 겁니다. 그래서 그런 자기가 써온 마음씀의 부족을 보고 단노를 할 때 인연을 끊어주십니다.

오래오래 신앙을 하였더라도

즐거움 만으로서 가득해야지 (신악가:5-5)

언제나 도움을 서두르시니

조속히 즐거웁게 되어오너라 (신악가:4-5)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게 단노를 하고 즐거운 마음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한 사람의 마음을 보면 전부 밝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 살다가 미국에 이민을 가서 노동자로서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돈을 모아서 철강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카네기 철강회사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미국 철강재의 68%를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철강왕 카네기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엄청나게 큰 회사가 된 겁니다. , 그는 문화·복지사업에도 많은 돈을 베풀어서 카네기홀이라는 유명한 공연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부자이어서만이 아니라, 그의 삶의 철학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카네기가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을 써냈는데 거기서 자기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성공을 하게 됐는지, 사람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적었습니다.

그 중에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장사를 해서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웃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웃음은 근심 없는 영혼의 자연스런 표현이다.’라고 했습니다. 걱정이 없어야 웃음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가 과연 걱정이 없었느냐? 그 사람은 사업을 하면서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밝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자기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침침하고 어두운 곳에 계속 있게 되면 마음도 어두워지는데 마음도 한 번씩 볕에 꺼내서 일광욕을 시켜줘야 한다는 식의 말도 합니다. 좋은 쪽으로 생각을 가지게 되면 긍정적으로 길이 열리는데 이게 왜 이렇노?’ 하고 어두운 생각만 가지고 있게 되면 좋은 길이 안 열린다는 겁니다.

마음을 쓸 때는 배려하는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적용되는 겁니다. 천리교에서도 말 한 마디로 좋은 인연을 만들 수도 있고 나쁜 인연을 만들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무언가 잘못했을 때 당신, 틀렸소. 잘못됐소.”라고 이야기해 버리면 그렇게 말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겁니다. 반대로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면 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는답니다. 앞에처럼 당신, 틀렸소. 잘못됐소.” 하면 상대방이 그걸 나중에 갚아줄려고 속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나중에 맛 좀 봐라.’하면서 마음에 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 한 마디로 인간관계가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고 그 책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쓰는 것에 대해서 카네기처럼 마음의 일광욕을 해서 어떤 일도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성공을 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신앙하는 우리의 입장으로 바꿔서 말해도 비슷한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내 마음이 즐거워질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 이유는 덕이 없어서 그렇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덕이 생기면 힘들고 어려운 일도 웃을 수 있고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덕을 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행과 수훈을 통해서 덕을 쌓아야

덕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도 보이지 않고, 잡을 수도 없지만, 공기와 같은 존재인 겁니다. 공기와 전기 같은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덕이 꼭 필요한 겁니다. 나날이 덕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조님의 50년 모본의 길도 우리에게 덕을 쌓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길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근행을 올리고 수훈을 전하는 것으로 남을 구제할 수 있는 큰 덕을 쌓을 수 있는 겁니다.

이 길은 근행과 수훈을 통해서 세상 사람을 구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교조님 집안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르쳐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 자신만 잘 되기를 바라는 신앙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으로서 이 길이 시작됐다는 걸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근행을 올릴 때는 내 자신의 사정을 기원하기 보다는 먼저 남을 위해서,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 기원을 올리고 난 후에 자신의 일을 기원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괴로워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세상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 이 길의 근행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버이신님께서는 그 마음을 받아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올리는 근행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근행이라고 생각을 하면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어떤 사고나 재난으로 힘든 일을 당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호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하면 참으로 큰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이 도움 받게 하기 위해서 올리는 근행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근행을 통해서 우리는 덕을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근행과 수훈은 두 가지로써 하나의 역할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버이신님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근행과 수훈입니다. 그래서 남을 구제하면 내 몸이 구제받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남을 행복하게 하는 근행의 리로써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구제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훌륭하고 튼튼한 육체를 어버이신님께서 만들어서 우리에게 빌려주고 계십니다만 그렇게 몸을 빌려주신 이유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남을 위해서 쓰라고 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 육체를 남을 위해서 쓰지 못한다면 덕이 차츰차츰 없어지게 됩니다.

아주 유명한 미용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커트를 하는 비용만 해도 몇 십만 원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비싸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 미용사에게 머리를 하려고 한답니다. 그 미용사에게 당신은 어디에서 머리를 깎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나는 2만 원 정도 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이 미용사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머리를 깎아주는 편리함을 제공해 주지만, 자신의 머리는 자신이 깎지 못하는 겁니다.

남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재능을 어버이신님에게서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위해서 몸을 쓰는 것이 자신의 행복과 즐거운 삶으로서 우리에게 혜택을 보여주시는 어버이신님에 대한 보답을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덕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인연은 우리가 즐겁게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됩니다.

지도말씀에

하려고해도 되어지지 않는다. 또 안할려고 해도 되어져오는 것이 인연 (1899.9.3)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쁜 인연을 끊어서, 생각하는 일이 생각하는 대로 되어져 오는 수호를 받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짜로 빌려 쓰고 있는 이 훌륭한 육체를 남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전도·구제·히노끼싱을 통해서 이 길의 일에 노력하는 것이 세상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이고, 남을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런 것들이 자신의 행복에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하는 일이나 입장은 틀리지만 나날이 마음을 즐겁게 가지고 교조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전도·구제·히노끼싱에 노력해서 이 길이 점점 더 뻗어나갈 수 있기를 기원 드리며 오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

 

* 본 신전강화는 인터넷 고성교회보 홈페이지, 유투브를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이호열 선생께서 번역해주시는 하늘의 리에 따르다는 이호열 선생 개인의 사정으로 이달은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