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본 사이트에는
천리교회본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다른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 교회본부



cond="$

[177년04월]수훈 - 김영진

2014.04.03 18:44

편집실 조회 수:772

3월 월차제 신전강화

수훈

김영진(진양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수훈에 관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18일에 전도청 월차제에서 고성교회장님께서도 같은 수훈에 대한 주제로 강화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교리에 관한 부분은 교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부분을 나중에 도우지에서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수훈을 전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사례를 통해 말씀드리고자 하니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수훈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저는 수훈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침 지금도 여기 배전에 앉아계신 분입니다. 15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 그때 3대회장님께서 교회장들 특별당직을 시행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1개월을 기간으로 정해서 특별당직을 했습니다. 저도 당시는 후계자 신분이었지만, 명을 받아서 이전의 신전에서 특별당직을 수행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잘 모르시는 분께서 신전에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신전에 있던 저에게 선생님, 제가 지금 몸이 좀 안 좋으니 수훈을 전해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겨울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십시오.”라고 하고, 신전 뒤편에 있던 목욕탕에 가서 찬물로 냉수목욕을 하고 다시 와서 수훈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분의 병명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힘들어보였습니다. 하루 이틀 신앙하신 것도 아니고 오래도록 신앙을 하셨던 분이라 고성교회에 참배를 하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나서 세월이 흘러서 15년여라는 세월이 흘러도 그분은 계속 참배를 오셨습니다. 월차제, 부인회 전날에도 항상 오십니다. 그분은 저를 볼 때마다 상급회장은 아니지만, 상급회장님을 대하듯 항상 정성스럽게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연세가 팔십 되시는데 그 이후로 지금껏 수훈을 청하시지 않으셨던 걸 보면 신상이 그다지 악화되지 않고 견딜만 하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오늘 월차제에 신전강화 당번이 되어서 어떤 말씀을 드릴까 고민을 하던 중에 수훈에 대한 말씀과 함께 그분의 얘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제 저녁근행 후에 저에게 수훈을 청하셔서 전해드렸습니다. 보름 전쯤부터 몸이 안 좋아지셨다고 하는데 저에게 수훈을 받으면 좋아질 것 같아서 청한다고 하셨습니다. 15년 만에 수훈을 전해드렸습니다.

수훈을 전할 때 중요한 마음가짐은 정성스런 마음입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겠지만, 터전에서 수훈의 리를 받을 때는 별석말씀을 아홉 번 듣고, 진주님 앞에 가서 수훈의 리를 받습니다. 수훈의 리를 받고 난 다음에는 또 교조전 뒤쪽의 강당에 가서 수훈 전하는 방법과 함께 하서말씀을 듣습니다. 그때 받은 하서말씀을 소중히 간직하라는 의미에서 상급회장님(고성회장님)께서 제문집처럼 생긴 보관케이스를 선물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소중히 간직한 나머지 그 이후에 다시 펼쳐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받게 되는 하서말씀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저도 이번 강화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하서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조차도 하서말씀에 대해 잘 알고 있느냐에 대해 의문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저부터 하서말씀을 자주 접하고 읽어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서말씀에는 수훈을 전할 때의 마음가짐 등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일러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하서말씀을 자주 접할 수 있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하서말씀의 일부입니다.

수훈의 리를 받은 뒤, 용재의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는 가석(假席)에서 내려주는 가르침의 말씀을 하서라 일컫는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말을 건네주었던 것이다. 이것을 정리하여 가석에서 건네주는 하서로 한 것이다.

하서에는 수훈의 리를 받고 각자 지역사회에 돌아가 포교구제할 때의 마음가짐을 일러주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상생활을 정성의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어버이신님의 자유자재한 섭리를 받는 길임을 강조하고, 나아가서는 가업(생업)을 소중히 하고, 어버이에게 효성을 다하도록 깨우치고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오까끼사게에

나날이라 한다, 항상이라 한다. 나날이 항상 정성 하나라고 한다. 정성의 마음이라면 얼핏 약한 듯이 모두 생각하지만, 정성보다 굳세고 오래 가는 것은 없다. 정성 하나가 하늘의 리. 하늘의 리라면 당장 받아들이고 당장 돌려 주는 것이 하나의 리. 단단히 분간해 들어라. 또 하나,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정성 하나의 리가 있으면 집안이 십분 화목하다고 하는 하나의 리가 다스려진다고 한다. 그러면 세상 과연 그렇다 한다, 과연 그렇다 하는 자, 과연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란 것은 항상 정성 하나의 리로서 자유자재라 한다. 단단히 들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의 할머니 얘기처럼 수훈을 받는 입장에서도 수훈을 전했던 저의 마음을 크게 받아주셔서 수훈을 받고 그런 마음으로 신앙에 매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 년에 3,000회의 수훈을 전한다는 마음작정을 하고 활동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횟수에 연연하다보니 밤낮으로 분주했습니다만 그 내용에 있어서 정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도 해봅니다.

 

사실은 제가 오늘 수훈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했던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 계기가 된 것은 꿈이었습니다.

어느 주막집에서 저와 같이 있던 일행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다른 탁자에도 손님이 여럿 있었습니다. 제가 같이 있던 일행에게 수훈 전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전에 수훈 전하러 다닐 때 교회에 오시지 않는 분인데도 어느 할머니에게 수훈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수훈을 서너 번 받고 난 이후에 그분 하시는 말씀이 수훈을 받아도 아픈 데가 낫지를 않는데 수훈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린 답변은 수훈이라는 게 당장에 눈에 보이는 선명한 수호를 받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마음에 따라 선명한 수호를 보여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훈을 받게 되면 최소한 지금보다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그 이야기를 같이 탁자에 앉아 있던 일행에게 했던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탁자의 손님 몇 분도 선생님, 저도 어디가 아픈데 저에게도 그 수훈을 전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 알겠습니다.” 하고 수훈을 전해드렸습니다.

아주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신전강화에서 수훈에 대해 말씀드리자고 결심하게 되었던 겁니다.

 

수훈을 전하며 겪은 어리석은 경험

12,3년 전쯤에 남영교회 전회장님이신 김기범 선생께서 살아계실 적에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김 선생, 자네는 천리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요. 그 질문에 저는 단박에 이런 답을 드렸습니다.

저는 천리교가 비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시에 김기범 회장님께 그런 대답을 선뜻 할 수 있었던 제 주변의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교회장으로 취임하기 몇 년 전이었는데, 저희 교회가 있는 반성에 저보다 열 살 정도 어린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 사람이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공부를 제법 잘해서 앞으로 크게 될 인물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 사람이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제가 전해 듣기로 대학교 졸업을 할 무렵에 폐가 안 좋아져서 취직은 생각도 못하고 집에 드러눕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수훈을 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람을 저희 교회 소속 소장님의 소개로 알게 되어서 수훈을 전하러 다니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제가 교회장의 입장은 아니었지만, ‘교회장이 돼서 수훈을 전하러 열심히 다니면 우리 천리교가 분명 미래의 비전이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김기범 회장님의 질문에 그렇게 당돌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작년 무렵까지 그렇게 집에 들어앉은 사람에게 만10년을 거의 매일같이 수훈을 전하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저의 덕이 부족했던지 중간에 한 번씩 교회에 참배하러 온 적은 있지만, 제대로 신앙을 하거나 강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정성이 부족하다손 치더라도 만 10년을 수훈을 전하러 다녔는데 이렇게까지 따라오지 않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저도 오기가 생겨서 그럼, 이제부터 수훈 전하러 그만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끊는 마음을 쓴 겁니다. 그 이후로 수훈을 전하러 다니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10년 동안 지켜보던 저희 사모도 전에는 그 집에 수훈 전하러 가라고 독려해주곤 했는데, 사모 혼자서 가끔 수훈을 전하러 가도 제가 그렇게 마음먹은 이후로는 제게 수훈 전하러 가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1년에 한두 번은 병원에 입원하기를 연례행사처럼 합니다. 그럴 때면 저도 병원까지 쫓아가서 수훈을 전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지 않기 시작한 이후, 얼마 전에 또 그 분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매년 가는 거니까 입원했다 또 퇴원하겠지. 내가 수훈을 전하러 병원까지 간다한들 교회에 나오지도 않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병원에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수훈을 전하러 다니지 않는 사이에 그 분의 어머니도 평소에 안 좋으셨던 다리가 더 안 좋아져서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모가 그 어머니께 수훈을 전하러 다니기도 했는데, 며칠 전에 그 어머니가 처음으로 교회에 참배도 하러 오시고, 그 다음날에는 저녁근행에 참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진양교회 월차제였는데, 월차제까지 참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 어머니로부터 그 아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어머니 말씀으로 경상대학교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오전 11, 저녁 7시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쪽에서 먼저 마음을 끊었지만 그래도 응급실에 있다고 하니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냥 응급실인가 싶어서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니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저녁 면회시간에 맞춰서 면회를 가서 보니, 그분이 누워계신 침대가 공교롭게도 고성교회 산하의 어느 교회장님께서 몇 달 전에 계시던 그 자리인 겁니다. 그때의 기억만 해도 정신이 없는데 또, 같은 자리에 그분이 누워계신 걸 보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겁니다. 게다가 침대에 누워있는 그분의 모습은 제가 10년 동안 수훈을 전하러 다니며 보아왔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인,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마침, 동생분이 와계셨는데, 그 면회시간 30분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10여 년 전에 수훈만 전하면 어떠한 신상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던 그 친구가 그렇게 누워있는 모습에 저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용재로서는 용서받지 못할 끊는 마음을 써서 그분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상황까지 초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제가 읽어드렸던 하서말씀에 수훈이라는 것은 정성 하나의 리라고 했는데 그 정성 하나의 리를 정성이 부족한 탓에 10년이라는 마디에 굴복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미안한 마음에 며칠 전까지 3일 작정을 해서 병원에 찾아가서 수훈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아침에 고성교회에 오기 전에 그분 집에 들러서 어머니께 그분 상태가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오늘 내일 일반병실로 옮길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수훈은 이 길의 노자

한편으로는 제가 잘못 쓴 마음으로 이런 상황을 초래했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걸로 봐서는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10년간 수훈을 전했던 것은 모두 잊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수훈을 전하러 다녀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신악가에 얽힌 이야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조님 말씀에 긴 나그네 길 거름을 사지 못하고서는 지날 수 없겠지. 노자로서 거름을 주도록 하마.

긴 나그네 길 노자가 없어서는 올 수 없겠지. 노자로서 거름을 주도록 하마.”

수훈은 이 길의 노자란 말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용재에게는 이 길의 노자로서 수훈을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수훈의 리를 받으신 분들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수훈이라는 것이 그냥 묻혀있다든지 썩혀져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훈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절실히 하고, 하서말씀을 나날이 읽어서 거기에 적힌 말씀을 자꾸 다짐하고 다짐해서 주변에 있는 신상·사정자들을 찾아서 수훈을 내리는 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책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인연납소에는 정성을 다하고 몸을 부지런히 나르며 수훈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훈은 악인연을 납소하는 구제 한줄기의 수단인 것이다.

이 길의 구제는 인연납소의 구제이다. 한 번의 수훈은 그 만큼의 인연이 납소되는 것이라 확신하고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며, 또 받아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도말씀 한 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수훈을 받고서도 전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자도 있다. 받기 전에도 마음이 리에 맞는 사람이 있다. 이것을 평생의 낙으로 받는 사람도 있다. 세상을 구제하는 마음으로 리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저 수훈을 받기만 하고 그것으로 됐다고 하는 자도 있다. 수훈을 모르는 자라도 세상을 진실하게 사는 마음에 의해서, 하룻밤 사이에 리를 받는 자도 있다. 받으려고 35년 신앙하는 자도 있다. 침울하고 까다로운 자도 있다. 마음의 보배를 구하면서 세상의 길을 걷는다. 이것이 안타깝다. (1890. 1. 13)

우리는 누구나 마음의 성인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성인을 원하면서도 세상의 길을 걷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지금까지는 어떠하셨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만이라도 수훈의 리를 받고서도 전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자에 해당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훈을 전할 때 어버이신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그것을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섭리해주시기 때문에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수훈을 받으면 반드시 수호를 받게 됩니다.”라는 말씀만 전해도 충분합니다. 이 한 마디만이라도 전해서 수훈을 좀 더 적극적으로 주변의 신상·사정자들에게 전해서 저와 같은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