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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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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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대제 신전강화

 

연제활동에서 이바지

이상봉(고성교회장)

 

    오늘 고성교회 춘계대제에 원근을 불문하고 참석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잠시 한 말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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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대제의 의미

교조님께서 정명을 25년 줄이시고 자녀의 성인을 재촉하기 위해 은신하셨습니다. 그것을 기리는 근행이 춘계대제입니다.

터전에서 이달 26일에 춘계대제를 봅니다. 이 날은 다른 달과 다르게, 1130분 정도해서 근행을 늦게 시작합니다. 근행을 모두 마치고 진주님께서 신전강화를 하시게 되는데 거의 마칠 즈음인 오후 2시에 신호가 울리면 강화를 중지하고 모두 참배를 합니다. 교조님께서 은신하신 시간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교조님께서 은신하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교조님께서는 근행을 재촉하셨습니다. 가르쳐준 대로 근행을 올리기를 바라셨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당시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근행을 올리면 경찰이 쫓아와서 교조님을 연행해서 감옥에 구류를 살려서 옥고를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근행 올리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교조님께서는 내가 있음으로서 근행을 못 올리는 사정이면 내가 없어져야 마음작정을 해서 근행을 올릴 수 있겠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있기까지 교조님의 신상을 통해서 마음을 작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월 26일 전에는 몰래 숨어서 악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근행을 올렸지만, 그날은 낮에 당당하게 근행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정월에 올리는 춘계대제 근행은 마음을 작정하는 근행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천리교는 교조님 한 분에서 시작된 길입니다. 18381026, 교조님이 월일의 현신이 되셨습니다. 그때부터 어버이신님이 교조님 몸 안에 들어가서 인간인 교조님 몸을 빌려서 마음은 어버이신님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천리 이치를 전해주셨습니다. 교조님은 어버이신님의 대리로써 50년 동안 몸소 행동으로, 붓으로, 입으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것이 이 길입니다.

 

내 마음을 먼저 닦아야 상대가 달라진다

그때까지는 몰랐던 진리, ‘이 세계와 만물은 어버이신님께서 창조해 주신 것이다. 인간은 몸은 빌리고 있고 마음만 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몸을 빌려준 주인의 뜻에 맞도록 마음을 쓰는 것이 은혜보답이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이다.’ 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 몸을 빌려주신 주인인 어버이신님의 섭리를 우리에게 전해주신 분이 교조님입니다. 교조님께서는 으뜸인 인연에 대해서 일러 주셨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우리 각자 인간들에게 전부 으뜸인 인연을 심어놨습니다.

그 으뜸인 인연이 무엇입니까?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으뜸인 인연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인간이 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사는 것을 보고 신님도 함께 즐기시기 위해서 인간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길을 신앙하던 다른 신앙을 하던 다들 즐겁게 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입니다.

문제는 각자의 생각대로 즐겁게 살려고 애를 쓴다는데 있습니다. ‘건강하면 행복하다. 건강이 제일이다.’ ‘돈이나 물질이 많으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 위에 지위와 명예를 누리면 더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생각들의 공통적인 것은 나를 먼저 세우면 그게 행복한 것이다. 라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이든 지위든 명예든 건강이든 자기를 세우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를 세운다는 것은 자기를 높이고 남이 자기를 높게 봐주게 만들면서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에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해준다는 이유로 불미스런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비행기에서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 일등석의 가격차이가 많게는 5~6배 정도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접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렇게 자기가 남들과 다른 좋은 대접을 받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 이와 비슷하게 유명 호텔 주차장에서 자기를 몰라본다는 이유로 주차관리인의 뺨을 지갑으로 때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자기 만족감을 얻어서 행복감을 느끼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신앙하는 사람 가운데도 나를 세워서 그 만족감으로 행복감을 느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조님께서는 내가 서려면 남을 세워줘라. 남을 세워주면 내 몸이 일어선다. 남을 도와줘야 내 몸이 도와진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게 천리이치인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통 중에 하나는, 자기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진 사람과 함께 있으면 원망을 하고 분노하고 시기 질투도 생기곤 합니다.

그런데, 천리교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잘 되기를 빌어주는 게 내 마음의 인연을 끊어주는 수호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렇게 내가 미워하고 안 맞고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잘 되기를 빌어줘야 됩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핍박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각자가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에 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부 간, 부모자식 간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각자가 나고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겪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지는 서로 잘 모르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단지 일부분인 겁니다. 그 일부분을 보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고, 내 방식대로 살기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그런 것이 극단으로 치닿는 것이 테러입니다. 아랍계의 사람들 중에 자기와 종교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대로 따르라는 식으로 강요해서 무기를 사용한다든지 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겁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 내 생각대로 안 해. 틀려먹었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세상에는 억지로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나 가정도 불화가 있는 경우도 자기가 마음 써온 대로 신님이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다고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위해서 기원하고 빌어주고 정성을 기울여줘야 서로 좋지 않은 인연이 끊어져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터전에서 감로대근행을 올리면 서로 마주 보고 올립니다. 배전에서도 동서남북으로 서로 마주보고 올립니다. 감로대를 에워싸고도 근행인원이 서로 마주 보고 올립니다. 그 의미는 서로 도와가며 잘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밉다는 이유만으로 잘 못되라.” “가다가 자빠지삐라.” “어데 병에 걸리삐라.” 이런 식의 마음을 속에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신앙을 하더라도 수호가 나는 마음이 아닙니다. 한 터럭이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든 자기와 맞지 않는 것이 많고, 못마땅한 것이 많으면 사람이 즐겁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주위도 잘 못 됐고, 뭐든 다 못마땅하면 얼굴에 다 나타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참 어려운 얼굴을 하고 살아갑니다. 마음에 비치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디는 이 길의 식량

이 길은 상대를 억지로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우려는 마음과 정성으로 상대를 대하는 길입니다. 상대가 안 바뀌더라도 내가 고맙고 즐거워지는 수호를 받도록 내 마음을 맑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잘못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침, 저녁으로 스물한 번씩이나 악한 것을 제거하고...” 하며 손춤을 추지 않습니까? 제가 가만히 올해 들어서 원단제부터 오늘 대제 근행까지 순교 가서 본 근행까지 해서 월차제근행을 스물한 번 봤습니다. 앞으로도 이 달에 네 번을 더 봐야 됩니다. 한 달 동안 스물다섯 번을 봐야 하는 겁니다. 이게 다 남 마음을 맑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맑히려고 보는 겁니다. 사욕과 집착을 버리고 티끌을 털어서 상대가 나와 다르더라도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에 좋은 것을 살려서 서로 도와가는 것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근행을 보는 것입니다.

교조님께서는 17,8번에 이르는 옥고를 치르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디를 만났을 때는 즐겁게 용솟음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조님께서는 칼날 같은 험한 길을 걸으셨습니다. 실제로 교조님께 칼을 들고 달려든 사람도 있지 않았습니까? 수도하는 신직자들이.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안 오고 교조님에게 다 가니까, 시샘이 나서 칼을 들고 달려와서 북과 다다미를 찢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당시 천리교 믿는 사람들은 많은 조롱을 당했습니다. ‘악한 것을 제거하고 ... ’ 하는 부분을 일본말로 집 팔고 망해버려라. 뒤뜰의 감나무에 목매달아라.’라고 바꿔 불러서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 험한 길 속을 교조님은 걸으셨습니다. 게다가 감옥에 18번이나 가셨습니다. 그때마다 교조님은 경찰이 잡으러 오는 것은 신님이 부르러 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즈음 아비꼬사건이라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느 촌에서 병자에게 수훈을 받도록 하는데 그 환자의 몸속에 혹이 돌아다니는 겁니다. 수훈을 전하는 사람이 그 혹을 꺼낼 거라고 몸을 쨌습니다. 그런데 그 병자가 죽어버렸습니다. 경찰에 입건이 돼서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그 사건이 일본 전국의 신문에 대서특필 됐습니다. 사이비종교 천리교에서 사람을 죽이게 했다고 말입니다. 당시 신앙하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때 교조님께서는 산 넘고 바다 건너 천리왕님의 이름이 널리 울려퍼지는 거야.”라고 하시며 아주 기뻐하셨답니다. 정말 그때부터 해외포교가 시작돼서 해외전도가 시작됩니다. 마디를 만날 때 더욱 마음을 세워서 용솟음치면 이 길이 더 뻗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내에서도 교조님 재세시의 그런 일과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천리교에 대한 탄압이 있었습니다. 오래 신앙하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기독교 한 단체의 임원을 맡은 사람이 내무부차관을 지낸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이 천리교는 왜색종교이므로 완전히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해서 전국의 경찰서에 지령을 넣어서 탄압을 조직적으로 했습니다. 천리교에 근행을 보러 오면 어떤 명목으로라도 죄목을 걸어서 못 오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천리교에 와서 참배를 하면 소란죄를 적용해서 경범죄로 처벌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단지 좌측통행을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통행위반으로 구류를 살렸습니다. ,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집안에 천리교 신앙하는 사람들 손들어봐라.” 해서 손드는 아이들은 복도에 세워서 벌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탄압의 과정에서 이 길을 이어온 것입니다.

 

이 길에서의 마디라고 하는 것은 더 커가기 위한 식량이 됩니다. 교조일화편에도 나옵니다만, 자식이 출직을 해서 교조님께 하소연을 하러 갔더니, 교조님께서 , 다행이구나.” 하셨답니다. 말씀을 잘못 들었나 해서 제 아이가 출직을 했는데, 어째서 다행이라고 하십니까?” 하고 되물으니 다행이구나. 첫째 아이가 아니라서.”라고 하셨답니다.

신님이 바라시는 의도는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장래의 앞날을 내다보고 즐겁게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마디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1887년 정월 26, 마지막 근행을 올릴 때 과연 교조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근행을 올렸는가 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모든 근행인원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낮에 당당하게 근행을 올렸다고 하지만 얼마나 마음을 졸이면서 봤던지 좌근에서 12장까지 40분 만에 끝냈다고 합니다. 신악근행을 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도 해야 하고 좌근만 해도 천천히 보면 20분 정도 걸리는데 12장까지 40분도 안 걸리는 시간에 봤다는 것은 평상시의 2,3배 정도의 속도로 엄청 빠르게 본 겁니다. 그래도 마지막 근행을 올리는 것을 보고 교조님께서는 만족스럽게 생각을 하시며 은신을 하셨습니다. 그거에 비하면 지금 우리들은 얼마나 고마운 수호를 받고 있습니까?

 

절기에 맞는 씨앗 뿌리기

2년만 더 지나면 교조님 은신하신 지 130년째가 됩니다. 교조130년제의 삼년천일의 활동을 하며 두 번째 해를 맞이하는 시순입니다.

시순이라는 것은 절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계절이 바뀌는 절기가 되면 신세를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절기가 돼서 시순이 되면 돈을 갚아야 할 데는 갚아야 하고, 절기에 맞는 씨앗을 뿌리면 거기에 맞는 열매가 열리게 돼서 수확을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절기에 맞지 않는 씨앗을 뿌려봐야 열매가 안 열립니다. 1년 열두 달 절기마다 그에 걸맞는 뿌리는 씨앗이 정해져 있는 겁니다.

이 길은 이바지한 리가 있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바지를 보여주신 것은 본석 선생입니다. 본선 선생님은 그 당시 여러 가지 사정이나 마디가 나와서 아무도 터전에 오지 않을 때도 자기 사정을 돌보지 않고 집터에 와서 집터의 일을 봤습니다. ‘이바지라고 하는 것은 자기 사정을 돌보지 않고 아무리 하찮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신님의 일에, 교회의 일에 몸과 마음을 바쳐서 노력하는 것이 이바지입니다. 이렇게 이바지한 리가 있어야 효능을 발휘하는 겁니다. 교회에 와서 즐거운 수호를 받으려면 교회에 와서 즐거운 씨앗을 뿌리는 이바지를 해야 합니다. 신님 일에 즐거운 이바지를 해야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에서는 교회목표로 구제에 최선을 다하자.’라고 정하고 활동방침으로는

하루에 한 번 전도를 하자.

하루에 한 번의 수훈을 전하자.

한 사람의 초석자를 수호받자.

라고 정했습니다.

여기에 몇 배의 노력을 할 수 있는 분도 계실 거고, 못 미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런 시순에 이바지하는 씨앗을 뿌려서 좋은 결실을 맺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으로 오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잘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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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신전강화의 동영상은 고성교회보 홈페이지(tenrikyo.kr)를 통해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