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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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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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월차제 신전강화

 

수훈을 전하는 즐거움

김위태(칠암교회장)

 

상급회장님으로부터 지명을 받아서 신전강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제는 수훈을 전하는 즐거움, 수훈을 전해 받는 즐거움입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수훈이란

전진주님께서는 수훈을 전하여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길을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수훈을 통해서 이 길이 발전된다는 얘기입니다.

<이 길의 용어>에서는 수훈의 리는 어떤 난병이라도 도와주시려는 어버이신님의 깊고도 두터운 어버이마음이 담긴 것으로서 이 세상에 다시없는 소중한 것이며, 이것을 받은 사람은 앓는 사람이나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진실한 마음을 기울여 수훈을 전하면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고 나옵니다.

용재는 교조님의 도구임을 생각해서 신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길의 노자인 수훈을 전해야 합니다.

 

수훈을 전하는 요령

수훈을 전할 때는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목욕을 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수훈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몸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손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옷을 깨끗이 입어야 합니다. 본석 선생은 수훈을 전할 때마다 속옷을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수훈을 열 번을 전한다고 하면 열 번 속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몸에서 술냄새, 담배냄새 등 각종 냄새가 나지 않아야 됩니다. 본석 선생께서 본석이 드는 과정에서 밟은 과정중의 하나는 일주일 간 40도의 고열로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갈비뼈가 빠졌다 맞쳐졌다를 반복하면서 신님이 듭시기 좋게 했습니다. 신님은 몸에 냄새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술냄새 담배냄새 등 잡냄새가 나면 신님이 그 몸에 듭시지 않습니다. 체온이 40도로 올라간다는 것은 몸의 그런 잡냄새를 모두 태우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태우는데 일주일이 걸렸던 겁니다.

손윗사람에게 수훈을 전할 때도 상석에서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손윗사람이라 해도 수훈을 받을 때는 아래에 앉아야 합니다.

 

수훈을 전할 때의 마음가짐

수훈을 전할 때는 교조님이 듭셔서 꼭 도와주신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의심하거나 자신감이 없으면 절대 안 됩니다.

수훈을 전하면서 수훈을 전해 받는 신상자의 병이 더러운 질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이 길의 선배선생들은 결핵환자의 혈담을 마시며 수훈을 전해서 구제를 했습니다. 아무리 나쁜 병이라도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수훈을 전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신상자가 수호 받으면 자신의 교회신자가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신자가 되고 안 되고는 교조님께서 결정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수훈을 끈질기게 전해야 합니다. 끝까지 전해야 합니다.

수훈을 전하는 용재는 평소에도 교조님의 뜻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화를 낸다거나 욕심을 부리는 등의 팔계명의 티끌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윗사람에게 불효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상급회장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수훈을 전하면 수훈의 효과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수훈을 전할 때의 마음가짐은 아주 중요합니다.

 

교조님께서 내린 최초의 수훈

최초의 수훈은 교조전일화편 3곳간에 나와 있는 것으로, 슈우지님의 발에 숨을 불어 넣고 종이를 붙여 주셨는데 열흘 쯤 지나서 회복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교조님의 따님 오하루가 초산을 하러 집터에 돌아와 있을 때입니다. “무엇이든 안에서부터 시험해 보일거야라고 말씀하시면서 배에다 숨을 세 번 불고 또 세 번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순산수호의 시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조님께서 최초로 증거수호부를 내리신 내용입니다.

항상 붉은 옷을 입으시고 그 붉은 옷을 증거수호부로서 많은 신자들에게 내려주시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수호부를 하사받은 신자분들 중에는 그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렇게 직접 하사받은 붉은 옷을 현재까지도 신앙의 목표로 삼고 있는 교회가 더러 있다고 합니다.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훈의 종류

첫째 숨(호흡)은 나까다. 입김을 3,3,3번 불어서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 익힌 것은 마쓰오. 백미 세 홉을 주머니에 넣어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환자에게 세알 씩 주는 것입니다.

셋째 세 살 손춤은 쯔지. 오늘날 악한 것 제거의 수훈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넷째 착실히 감로대 수훈은 마스이. 신악가의 2,3절의 잠깐이야기와 온 세상 마음 맑히는 감로대를 3,3,3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진주님께서 본석으로 받들겠다는 허락이 있어서 이브리 이조 선생을 본석으로 받들게 됩니다. 이브리 이조 선생은 진주님께서 본석으로 받아들인 다음날 니시우라 야헤이씨에게 처음 수훈의 리를 전한 것을 시초로 별석을 거쳐 수훈의 리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수훈을 전하는 제도가 확립된 시초입니다.

신악가 제11,2호는 수훈은 진기한 것이고 즐겁고 든든하다는 내용입니다.

하나에 정월이라 거름의 수훈은 참말 진기하도다 (1-1)

둘에 흔감하게 수훈을 받으며는 참말 든든하리라 (1-2)

이 부분에 대해 나가오 전청장님의 신악가에 담긴 마음에 기록되어 있는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훈을 전할 때는 흔감하게 웃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한다는 것, 또 수훈을 받는 사람도 즐겁고 감사하게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훈을 받아서 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수훈을 받고 그 수훈을 전하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이 노래입니다.

위 해설은 수훈을 전하는 사람도 즐겁고 수훈을 전해 받는 사람도 즐겁다는 뜻입니다.

 

행려환자 병동에서 수훈을 전한 이야기

저는 직장에 있을 때 간혹, 행려환자 사망자 명단이 기록된 공문을 받아 보았습니다. 노숙자들이 병이 나서 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출직을 하게 되면 그 명단을 각 동사무소에 보냅니다. 그럼, 동사무소에서는 그것을 공고해서 연고자가 있는지 없는지 찾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공문을 볼 때마다 퇴직하면 시립병원에 있는 행려환자 병동에 가서 수훈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내 뼈를 거기에 묻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퇴직 후에 수훈의 리를 받고 나서 동부시립병원 행려병동에 찾아가 책임자인 수간호사에게 나는 천리교 용재로서 환자들에게 수훈을 전하고 싶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기독교)에서 온 분들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시끄럽게 하니까 힘들다.”라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몇 달 전 중구청 소공동에서 퇴직한 시청 공무원이고 절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지 않고 아주 조용히 합니다.” 하니까 마지못해 승낙해 주었습니다.

병실에 가서 환자들에게 나는 천리교 용재로서 수훈을 전하면 병이 나을 수 있으니까 받아보시겠습니까?” 하니까 처음 몇 번은 거절하였습니다. 다섯 번째쯤 가니까 한 분이 천리교는 처음 듣지만 수훈을 받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침대에 올라가서 꿇어 앉아 수훈을 전하고 간단한 지압까지 겸해서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주변의 환자분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만 받던 사람들이 어떤 신사가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 앞에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지압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제가 수훈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환자들도 수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행려병실 환자는 1,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훈을 받았습니다. 동부시립병원과 보라매복지병원 두 곳을 다녔는데 수훈을 제일 많이 전한 날은 54명까지 전했으며 3년 동안 14,000회 전했습니다.

19981023일 뇌경색(중풍)이 발생한 후에는 중단하였습니다.

14,000번 수훈을 전하면서 경험했던 기적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척추수술이 잘못돼서 신경이 손상되면 배꼽 밑에 하반신은 마비가 됩니다. 배꼽 밑으로는 전혀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환자에게 수훈을 계속 전하고 지압을 성실히 한 결과 몇 달이 지나서 허벅지 중간까지 신경이 살아났으며 대소변의 감각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다리 위에서 두 손을 움직이면 양 다리가 따라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양손을 위로 올리면 다리도 따라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교조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1년만 더 계속 다니면서 수훈을 전했으면 상당히 좋아졌을 것인데 제 사정으로 못 가게 되었습니다.

또 한 분은 양 다리가 동상으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노숙자들이 술 먹고 밖에서 잠자고 하면서 동상이 계속 악화되면서 다리가 썩어가는 것입니다. 수훈을 몇 개월 전하니까 새살이 돋아났습니다. 주변의 환자들이 새살을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또 한 분은 한쪽 다리를 펴지 못하고 V자형으로 완전히 구부러져 있었는데 수훈을 전한 후 힘으로 조금씩 조금씩 펴 주었는데 결국에는 완전히 1자로 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수훈은 출직하기 직전에 수훈을 전한 기억이 있습니다. 수훈을 전한 직후 출직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 있어서 행려병동에 수훈을 전하고 다닌 3년 동안이 가장 보람 있는 실천이었으며 최고로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난 소임을 어느 정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전혀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다음의 바램은 내생에 용재로 다시 태어나서 수훈을 한없이 전해보는 것입니다.

수훈을 전하러 다니면서 잘못 생각한 것은 수훈을 전하는 즐거움으로만 만족해야 되는데 5만 번 쯤 전하고 나면 내 몸에 자유자재의 리가 붙어 많은 사람을 구제하게 될 테고 그러면 큰 교회를 운영할 수 있겠다는 욕심의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필에

이제부터는 아픔도 괴로움도 부스럼도

숨과 손춤으로 모두 구제할 테야 6-106

라고 하셨습니다.

위 친필 말씀의 뜻은 아무리 의사가 손 뗀 난병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마음에 따라 숨과 손춤에 의해 깨끗이 수호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깝고 먼 곳으로 수훈 전하러 다닌 이야기

이웃에 사는 서상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는 저와 동갑이고 신상은 벙어리에다 방광암 환자였습니다. 3대 전회장님께서는 월차제에 순교 오셔서 여러 차례 보셨을 것입니다. 생계비는 동사무소에서 지원받고 사는 극빈자로서 비용이 드는 고급치료는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이래야 소화제와 진통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서상규씨에게 19951129일부터 2002526일까지 7년 동안 수훈을 1,681회 전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수훈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끈질기게 전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수호가 납니다.

당시 방광암 환자는 의사가 관리를 잘해주어야 16개월 정도 사는데 저희 교회에 와서 계속 수훈을 받은 덕택에 7년 정도 살았습니다. 무슨 암이든지 의사가 암 발견 후 5년 이상 살면 치료가 잘 되었다는 것이 의학계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6년을 더 산 것입니다. 당시, 담당 의사는 서씨 형수에게 서씨가 오래 살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말을 저에게 자주 해 주었습니다.

만약에 구청에서 배정받은 임대아파트에 이사 가지 않고 계속 수훈을 받았으면 더 오래 살았을 것입니다. 지금 후회되는 것은 서씨에게 전도지를 주어서 전도를 하게 하였으면 운명이 달라졌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후회가 막급합니다. 그때는 이웃들에게서 벙어리에게 전도를 시키고 혹사시킨다는 항의가 들어오고 말썽이 생길까봐 안 시킨 것이었습니다. 저녁으로 집사람이 밥을 해주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또 한 분은 집안 조카인데 희귀한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세브란스병원에 치료 받으러 왔을 때 저희 교회로 오라고 해서 수훈을 딱 한 번 전했는데 병색이던 얼굴이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본 얼굴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엊그제 만났는데 그 얼굴 그대로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신상을 겪으면서도 수훈을 전하러 멀리도 많이 다녔습니다. 수훈을 전해달라고 요청하기만 하면 어디든지 다녔습니다.

손윗동서가 아산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50여회 수훈을 전하러 다녔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아산병원까지 서울 끝에서 끝입니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곳입니다. 그 형님이 다른 사람들 오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제가 가면 참 좋아했습니다.

, 소공동에 계시는 전직 구의원과 옆집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124회 수훈을 전하러 다녔습니다. 왕복 2시간 반이 소요되는 거리였습니다.

그 외에도 왕복 5시간 걸리는 곳도 수훈을 전하러 다녔습니다. 집안의 형님이 강릉에 입원했을 때입니다.

 

결론

전진주님께서는 수훈을 전하여 신상자가 도와짐으로써 신자가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길은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의 발전은 신상자가 수훈을 받고 도움 받은 사람이 이 길의 신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수훈을 정성스럽게 전해서 불치의 암 환자가 완치가 되었다고 하면 이 세상이 그 모습을 보고 교조님께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이 고도로 발달해 있지만 암 환자의 완치는 힘듭니다. 그런 어려운 병을 이 길의 용재가 완치를 시킬 적에 세상의 사람들이 그 용재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수훈을 전해 받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중풍질병으로 15년째 고생하고 있으며 풍을 두 번 맞았습니다. 조석근행 후 집사람으로부터 수훈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저녁근행 후 수훈을 받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살았구나하고 생각하고, 아침근행 후 수훈을 받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견딜 수 있겠구나하는 감사한 마음과 즐거운 마음이 자연히 생기게 됩니다.

수훈을 전하는 즐거움이나 수훈을 전해 받는 즐거움이나 모두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