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권 351호 입교187년(2024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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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5 17:49
2013 여름 신앙수련회 소감(학생부)
즐거운 삶
-2013 여름 수련회를 다녀와서-
화송희(대학부, 고성교회)
수련회 당일 나는 엄마 따라 히노끼싱을 하러 왔는데 부엌에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곧장 나는 사무실로 갔고 얼떨결에 초등부, 유치부 접수를 받게 되었다. 대학부 언니, 오빠들과 앉아서 접수를 받게 되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대학부에 이름을 기재했다. 처음에는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점이 좋았다.
첫째 날은 조금 어색했지만 친구도 사귀고 조도 배정되었다. 조 모임 시간에는 돌아가면서 조원들의 얼굴을 부분마다 그려주기도 했고 다음 날에 있을 경매 시간에 살 물품도 정했다. 저녁에 있었던 로또 게임에서는 4개를 맞춰 내가 1등을 했었다. 또, 구역을 지정받아 미션을 성공하고 빙고 칸을 채우는 게임 진행도 했다. 첫째 날은 내심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땠는지 계획했던 시간을 잘 지켰는지는 생각이 뚜렷하지 않다. 그 날은 수련회에 적응하려고만 했던 것 같다. 원래 엄마와의 계획은 오전에 교회에 와서 히노끼싱을 하고 오후에 집에 가는 것이었지만 나는 엄마에게 먼저 수련회에 남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때는 수련회가 즐겁고 진심으로 좋아서라기보다 내가 수련회에 남아 있으면 엄마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둘째 날에는 서바이벌과 래프팅을 했고, 저녁에는 레크레이션 시간도 가졌다. 이 날은 조원들이랑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에만 그쳐 아쉬웠다. 서바이벌, 래프팅은 다리에 멍도 들고 팔도 아팠지만, 지금은 가장 재밌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저녁에는 경매에서 산 음식을 유치부에게 판매해 돈을 버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판매도 했다. 이 때 같은 조 친구, 동생들과 가장 가까워진 것 같다. 이 날에 나는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그런지 밤에 잠들기조차 아쉬웠었다.
셋째 날은 아침부터 헤어질 생각에 아쉬웠다. 특히 롤링페이퍼를 쓰고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날로 다시 돌아가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고 이대로 수련회가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자꾸 감겼고 몸은 늘어졌지만 집에 가기는 너무 아쉬웠다. 수련회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과 마지막 악수를 나눌 때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수련회를 하면서 천리교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생겼던 것 같고 알아갈수록 좋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천리교를 알게 해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우리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천리교를 믿었다. 내가 울산에 살았었을 때는 부산에 있는 천리교 교회에도 엄마와 함께 갔었다. 아빠는 엄마가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도 가기 귀찮은 마음에 엄마의 종교를 싫어했다.
그러다가 엄마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교회에 가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딸로서 자연스럽게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엄마와 아빠가 교회 이야기로 다투게 되면 엄마 편을 조금씩 들어주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를 따라 교회에 몇 번 오게 되었고 내가 교회에 오면 올수록 엄마가 좋아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엄마를 따라 천리교를 접했지만, 나중에 엄마가 보고 싶어질 때가 오면 내가 내 딸을 데리고 고성교회에 오고 싶다. 또, 나중에 내가 힘든 일이 생겨서 종교에 의지하고 싶어질 때가 온다면 외할머니와 엄마가 믿은 천리교에 의지하고 싶다.
2013년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내가 얻어가는 것이 많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엄마와도 많이 친해졌다. 또, 사람을 사귀는 방법도 깨달았고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항상 엄마가 말씀하시던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