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47호
입교187년(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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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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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월차제 신전강화

즐거운 삶의 토대, 부부와 부모자식

 

이승재(남일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 달 어린이 터전귀참 때, 터전에서 고성교회장님이 한방에 같이 있으면서 8월 달에 신전강화를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여러분 앞에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만 평소에 고성교회에 굉장히 마음의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사람이기도합니다. 어린시절 학생회 때부터 2대회장님을 뵙고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까 밖에서 잠시 뵈었습니다만 여기 오면 그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리고 3대 회장님의 은혜도 많이 입었고, 지금 회장님뿐만 아니라 고성교회분들께 많은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매달 오는 고성교회보도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달 평화회장님 신전강화도 잘 읽었구요. 제가 생각할 때 한국에서 살아있는 교회가 아닌가 생각하고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빚 갚는다는 심정으로 덜컥 그러겠다고 해놓고는 혼자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리고 진실하게 신앙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 이곳에 별로 노력도 안하고 부족한 사람이 와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걱정도 되었고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 서고 보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고성교회분들은 모두 어른 마음이라서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라도 잘 들어주시리라 믿고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길의 신앙은 즐거운 삶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즐거운 삶의 최소 단위는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루는 가정입니다. 그 가정을 중심으로 즐거운 삶을 생각할 때 부부라는 횡적인 관계와 부모 자식이라는 종적인 관계가 큰 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부라는 관계와 부모자식이라는 관계가 두 축으로 소통이 잘 되고, 건전할 때 그 가정은 즐거운 삶의 가정이 되고 그 즐거움이 주위를 밝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부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신악가 2절에서 이 세상 땅과 하늘의 본을 받아서 부부를 점지하여 왔었으므로 이것이 이 세상의 시초이니라라고 하셨듯이 서로 몰랐던 남녀가 하나가 되어 부부가 되고, 서로 돕는 관계 속에서 즐거운 삶이 시작됩니다. 이 길의 어느 선생님이 주례사에서 말씀하시기를 부부 사이가 좋으면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것과 같다. 다른 데서 아무리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부부 사이가 나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부부는 그 자체로 소우주이다라고.

사이가 좋은 부부에게는 머리가 좋고 순직한 아이가 자라나고 밝은 가정이 만들어집니다. 부부 사이가 안 좋은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긋난 길을 걷기 쉽고 가정 분위기도 어둡습니다. ‘부부를 점지하여 왔었으므로 이것이 이 세상의 시초이니라라는 말씀은 좋든 나쁘든 부부가 가정의 근본이라는 말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즐거운 삶의 가정을 만드는 데 부부 사이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부부 원만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보통 서로 배려하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이 있는 부부는 하나가 되어 삶의 고비 고비를 잘 넘어갑니다. 반대로 서로 차가운 마음,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마음이 많은 부부는 작은 돌부리 하나에도 걸려 넘어집니다. 전석에서 상급회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마음 하나가 씨앗이라고 듣고 있듯이 우선은 자신의 마음속을 잘 살펴 반성해 봐야겠습니다.

여기 결혼해서 부부로 계신 분들은 우선 상대방에 대해 생각을 해 보십시오. 상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집사람, 우리 남편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다, 뭔가 맛있는 거 해주고 싶다, 또 좋은 거 있으면 얻어 와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반대로 좀 더 출장을 오래 갔으면 좋겠다, 월급 꼬박꼬박 갖다 줄때만 예쁘지 별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상대의 좋은 점이 많이 떠오르는 사람은 마음이 맑고 본인이 좋은 점이 많으신 분입니다. 한편, 상대방의 부정적인 게 많이 떠오르고, 부족이 많이 보이는 사람은 안됐지만 자신 역시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더러워져 있으면 상대의 티끌이 눈에 잘 띕니다. 자신의 눈에 상대가 어떻게 비치는가를 가지고 지금 자신의 마음을 체크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내 마음이 밝아지면 신기하게도 주위가 밝아져 보입니다. 그리고 환한 얼굴과 밝은 마음은 상대의 마음도 밝게 해 줍니다. 그런 가운데 즐거운 부부 관계가 생겨나겠죠. ‘인연 모아서 수호한다는 말씀처럼 부부는 서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어쨌든 문제는 자기 자신입니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싶으면 눈앞에 있는 우유를 데워야 합니다. 결코 찬 우유가 저절로 따뜻해지지는 않습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죠. 우선은 상대를 데우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부부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부부가 됩니다. 교조님께서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지배했던 봉건사회 속에서 남송여송 차별없다는 신님의 뜻을 펴셨습니다. 요즘 세상을 살펴보면 점점 남녀 동등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환영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것은 어버이신님은 남녀 차별이 없다고 하셨지 남녀 구별이 없다고는 하시지 않았는데 구별이 없어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남자는 남성다움을, 여자는 여성스러움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녀의 좋은 점, 특성, 천성을 잃어버려서 생기는 혼란이 가정의 혼란, 이혼률의 상승 등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길에서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남자가 높고, 여자가 낮다는 뜻이 아닙니다. 역할의 차이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남자는 하늘처럼 넓고 큰 마음을 가지고, 대범하게 꿈을 가지고, 사물을 폭넓게 보면서 가족 전원을 무사히 행복으로 이끌고 가는 배의 선장과 같은 역할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모든 것을 흔들림 없이 받쳐주는 대지와 같은 역할이겠죠. 대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거름을 만들어서 모든 생명을 키우는 것이 대지의 역할입니다.

실제로 여자들은 안 좋은 역할을 맡고 손해 보는 역할이 많습니다. 우리 집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데 어쨌든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는 가족 모두가 밝게 생활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를 하고, 살림도 살고 취사, 세탁, 뒷정리 등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구도 하지 않는 잡다한 일들은 결국 주부에게 모두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기쁘게 하는 가운데 남편의 하는 일이 잘되어 가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여성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은 여성들도 사회에 진출해 직업도 가짐에 따라 가사도 분담을 하고 육아도 분담을 합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여성들의 희생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 팀으로서 서로 도우려는 마음으로 서로 맞추어 살아가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그래서 아들을 키울 때 가사를 많이 가르쳐야 됩니다. 설거지하는 법, 빨래하는 법등을 가르쳐야 아들 잘 키웠다는 얘기를 며느리에게 듣습니다. 하지만 시대에 따른 여러 모습의 변화 속에서도 신님이 주신 남자로서의 특성, 여자로서의 특성을 지키고 잘 살려나가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근본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신님의 가르침은 남자는 물, 여자는 불이라고도 하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불은 아래에서 위로 타오릅니다. 남편은 부인을 아껴주고 부인은 남편을 세워줍니다. 그러한 것이 부부 원만의 참모습이 있지 않을까요. 가끔은 남편도 부인에게 기대고 싶을 때도 있지만. 부인을 아껴주는 남편은 하는 일이 잘 되어갑니다. 그것은 내조를 잘 해줘서 그럴 수도 있고 조금 부족한 부인이라도 남편이 단노하여 잘 보고 지난다면 남자들의 삶의 보람이라 할 수 있는 일에서 어버이신님이 고마운 수호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남편을 세워주고 받드는 아내는 순직하고 머리가 좋은 아이를 수호 받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클 때는 어머니의 영향이 큽니다. 남편을 세우는 낮은 마음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설사 무책임하고 부족한 남편이라도 단노하여 세우면서 지나면 그만큼 여성들의 삶의 보람이라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서 고마운 수호를 받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서로의 특질을 잘 살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면서 서로 도와가는 가운데 부부가 원만한 즐거운 삶의 가정이 이루져 가겠지요.

이 길의 어떤 선배가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부부 사이가 원만한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가 자란다. 그리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자녀는 결혼하면 부부사이가 좋다. 그리고 그 사이좋은 부부 사이에서는 또 효도하는 자녀가 자란다

참으로 좋은 인연이란 그렇게 그렇게 해서 흘러가는구나 하고 새삼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한쪽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바꾸려고 노력도 하고 열심히 하는데 상대가 몰라준다, 응답을 안 해주고, 엇박자를 놓고, 애를 먹이고 속을 썩인다, 그래서 괴롭고 힘들어하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젊은 사람들 중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지난 날 부모가 걸어온 길을 조용히 돌이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달 평화회장님 감화에서도 있었습니다만 신앙으로 어버이신님을 의지해서 자기 인연으로 받아들여 단노하면서 지나다 보면 어느새 인연이 끊기고 상대가 변화했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지도말씀에서

어떠한 일도 되지 않는 것이 인연, 생각대로 안 되는 것이 인연이라 한다.’

(1890.12.19.)

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생각대로 되면 좋죠. 하지만 그 뭔가 뜻대로 안되고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데 왜 이런 사람을 만나서 고생하고, 상대방은 안 바뀌고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 생각은 나지도 않지만 인연을 깨달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야말로 인연을 끊을 수 있는 이 길의 신앙이 중요하고 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인연을 깨닫고 고통스럽지만 내 자녀에게는 좋은 인연만을 물려주어야겠다는 각오로 단노해서 지나게 됩니다.

전생 인연 모아서 수호한다

이것으로 영원히 확실하게 다스려진다 (1-74)

고 친필에서 일러주셨듯이 어떠한 사람과 부부가 되는 것도 모두 전생의 인연입니다.

저는 제 전생에 대해 기억하는 게 없습니다만 가끔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 지구반대쪽에 사람을 만나서 살게 되었을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지구상에, 우리나라에도 정말 좋은 사람도 많은 데 말이죠. 하지만 어버이신님께서 하신 말씀이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고맙게 받아들여집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같이 있는 사람이 다행히 잘 맞아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아내나 남편이 맞지 않아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어떤 때는 새벽에 불려가서 부부싸움하는 사이에서 잠을 자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해줄 수 있는 말은 어떻게든 그것을 자기 인연으로 받아들여서 누군가 신님과 가까운 사람이 단노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길 바라지만 편을 들어줘서는 인연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사람이 먼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평생 내가 함께 가야할 인연의 사람이라는 철저한 인연자각이 되면 단노하면서 지내게 되고 인연을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가야하는 길입니다.

 

부부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가정의 또 다른 한 축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먼저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자녀는 참으로 신님이 주신 고마운 선물입니다. 자녀의 기쁨은 부모의 기쁨이며, 자녀가 아프면 부모가 대신 아파주고 싶습니다. 자녀가 밝게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피로도 풀리고 저절로 힘이 나고 일할 의욕도 생깁니다. 부모는 자녀의 행복을 바라며 열심히 일을 하고 그런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쑥쑥 잘 자랍니다. 효도하는 자녀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는 행복한 노년은 모두의 바램이겠지요.

요즘은 이런 부모자식 관계도 많이 약해지고 흔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단절되고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다 큰 자녀가 독립을 못하고 부모에게 용돈을 안 준다고 부모를 폭행하는 기사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겨날까? 요즘 부모들이 자식에게 더 못해주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더 잘해주고 더 많이 해주려고 하는 거 같은데 왜 자식들은 고마움을 모를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 은혜를 갚아가는 사이이라고 했죠. 부모가 자녀에게 잘해 주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그러나 자녀가 그 은혜를 아느냐, 모르느냐 그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두 가지 경우인 것 같아요. 하나는 애정결핍으로 사랑과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입니다. 마땅히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또 하나는 너무 지나친 애정을 많이 받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애정을 지나치게 쏟는 사람은 대개 어머니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정에서 시부모나 남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지나치게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녀 교육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지대한데 부모나 남편보다 자식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는 자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지 못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부모를 세울 줄 모르는 채 받을 줄만 알고 자랍니다. 세우면 선다(1892.2.20)라는 지도말씀이 있습니다. 남을 세우지 않고 특히 부모를 세울 줄 모르는 채 원하는 대로 달콤하게 받기만한 자녀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기만을 생각해서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부모를 괴롭히는 사람이 됩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더욱 자신을 가지고 당당해야 합니다. 요즘 부모들은 다른 부모처럼 해주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미안해하고 주눅이 들고 자신이 없어합니다. 다른 부모는 이런 것도 해주고, 저런 것도 해주는 데 나는 못해 주고, 그런 내가 무슨 부모 자격이 있어서 아이를 나무랄 수 있나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뭐든지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다 똑 같을 것이나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잘 생각해서 소신을 가지고 키워야합니다. 어느 부모나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낳아주고 키워주었으면 자식에게 큰 소리를 쳐도 됩니다. 돈으로 자식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자식을 올바르게 크게 합니다. 요즘은 애들 하나 키우는 데 얼마가 들기 때문에 더 못 낳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부부관계와 마찬가지로 부모자식 관계도 어버이신님이 맺어주십니다.

자녀가 한 살이 되면 부모도 부모로서 한 살이 됩니다. 자녀가 열 살이 되면 부모도 부모로서 열 살이 됩니다. 자녀가 사춘기를 맞아서 성장통을 겪으면 부모도 그렇게 성장통을 겪게 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아 반항을 하고, 비딱하게 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당하면 굉장히 충격을 받습니다. 저도 죄송스럽게도 고등학교 때 어머니에게 평소와는 달리 말대꾸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어머니가 아주 조심하시더라구요.

부모가 키우면 자녀는 자랍니다.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부모가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면 자녀들도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자라고, 부모의 자제심이 자녀의 자제심을 키우며 부모의 효도하는 모습이 자녀의 효심을 키웁니다.

부모와 자녀의 신뢰는 그렇게 여러 가지 성장통을 함께 겪으며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가운데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요?

지도말씀에

부모 자식의 리, 인연의 리 분간하라. 좋은 자식 갖는 것도 나쁜 자식 갖는 것도 인연. 이것 분간하지 않으면 안 돼.’ (1901.3.11.)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깊은 인연이 있어서 된 것이며 이 부모자식 관계 역시 우연이 아니라 어버이신님께서 맺어주신 마음성인을 위한 필연적 관계입니다.

 

, 이제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자녀의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자식 갖는 것도 나쁜 자식 갖는 것도 인연이라는 것은 부모에게 일러주신 말씀입니다만 말을 바꾸어서 좋은 부모 갖는 것도 인연, 나쁜 부모 갖는 것도 인연이라는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떠한 부모를 만나는 것도 자신의 덕대로입니다.

동중앙대교회의 초대로서 당대 대교회를 만들고 본부원이 되신 카시와기구라지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모자라는 부모는 자식에 대한 어버이마음이라고. 어버이신님께서는 이 사람을 조금 부족한 부모를 만나게 해서 어려운 가운데서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당대 대교회를 만드신 분답게 카시와기 선생다운 발상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이런 발상을 한다면 부모 자식 간의 문제 같은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카시와기 선생은 머리는 아주 좋았는데 집이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졸업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효심이 지극해서 일을 해서 번 돈 대부분을 부모에게 송금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22만원을 벌었으면 5천원만 남기고 215천원을 송금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너무 가난해서 어릴 때부터 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부모에게 송금을 하면서 인간적으로도 성장해 갔습니다. 돈 한푼 없이 시작하여 젊은 나이에 목재상의 주인이 되어 큰 돈을 벌고 그 후 단독포교를 시작해서 당대에 대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카시와기 선생의 부모가 모자랐다는 말은 아니지만 부모의 부족한 부분은 자식에 대한 어버이마음이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 선생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을 통해 느낀 생생한 깨달음이 아닐까요.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면, 자녀도 걱정을 끼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녀도 효도를 합니다. 만약 조금 부족한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면 자신의 자녀들 모두가 아주 큰 효도를 하겠지요.

카시와기 선생도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했죠. 학교도 제대로 못 보내고 어릴 때부터 돈을 벌었으니까요. 선생은 21녀를 두었는데 이 중에서 두 아들이 동경대학을 졸업하고 교회장이 되었고, 딸도 교회장이 되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책을 낼 정도로 큰 활약을 했고 교회장이 되어 효도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흔히 부모는 뿌리, 나는 둥치, 자녀는 잔가지와 잎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 자녀, 손자는 따로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한 나무인 것입니다. 뿌리가 상처를 입고 뿌리가 말라버리면 자연히 둥치나 가지와 잎은 말라버립니다. 그래서 뿌리가 나쁘다, 뿌리의 책임이다하고 뿌리를 더 파헤치고 상처를 입히면 둥치와 가지, 잎은 더욱 더 마르고 생기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부족하고 부모 자격이 없는 부모라도 그 부모를 못살게 굴고 구박하면 그 대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천리입니다. 반대로 뿌리가 상처를 입고 말라간다면 뿌리에 거름을 하고 잘 보살핍니다. 그러면 뿌리가 생기를 되찾고 굵어지고 거기에 이어지는 둥치와 가지 잎에도 생기가 되돌아 와 푸르게 잘 자랄 것입니다. 이런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자신의 경우가 되면 잊어버리고, 잘 모르게 되는 것이 참 무섭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보면 알면서도 안 좋은 인연을 범하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어리석음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말을 안 듣고 말썽만 피우는 자식을 부모가 끝까지 안고 간다.

제대로 자식을 돌보지도 못한 부족한 부모도 잘 보살핀다.

말은 쉽지만 당사자들의 고생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만 신님께 의지해서 진실을 다해서 정성을 다 쏟으며 단노를 하며 걸어갈 때 마침내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받아 좋은 인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족한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부모도 기뻐합니다. 기뻐하는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는 그 자녀도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부모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번성해지는 길이며 자신의 자녀들이 행복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부모 자식이 되는 것은 깊고도 신기한 인연에 의한 것입니다. 자신이 선택해서 부모자식이 된 것이 아니라 어버이신님께서 정해 주신 고귀한 인연입니다. 이 인연을 소중히 하는 것은 어버이신님이 정해주신 의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됩니다.

신악가에도 잘도 잘도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진실한 도움이란 이제부터야 라고 하듯이 정말 진실한 도움이 있을 여기까지 어버이신님을 믿고 의지하여 따라가야겠습니다. 진실한 도움을 받게 되는 여기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기해버린다면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인연이 이자가 붙어서 더 큰 인연으로 돌아오므로 되풀이해서 걸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 즐거운 삶의 근본이 되는 부부와 부모자식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결론은 어버이신님이 맺어주신 소중한 관계임을 잊지 말고 서로 간의 믿음과 신뢰를 만들어가야 하며 상대의 부족함을 탓하지 말고 거기에 담긴 어버이신님의 의도를 깨달아 단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즐거운 삶의 출발점인 가정에서 부부관계, 부모자식의 관계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지만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성교회 교회목표가 교회 내용충실, 활동방침이 온가족이 함께 교회에 참배하기, 근행과 수훈에 정성을 다하기, 전도구제에 최선을 다하기라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터전의 목소리에 아주 잘 부응하는 교회목표이고, 활동방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내용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서 전도포교도 열심히 해야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노력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저희 교회도 수련회가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만 애들을 키운다거나, 제대로 성장하고 설수 있도록 하기까지는 몇 십 년, 혹은 몇 대나 걸릴지도 모릅니다. 신앙하는 용재입장에서 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당장 애들이 뭔가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 노력을 소홀히 하고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예를 들어 나는 전도포교에만 열심히 하겠다든가, 나는 애들만 키우겠다고 하면 이것은 교회내용충실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치우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남일교회도 양쪽 다 소홀히 하지 않고 내용이 충실한 교회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한테 좋은 모델이 고성교회이고, 조금이라도 고성교회를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송구스럽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끝까지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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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74년08월]나쁜 인연을 좋은 인연으로-전인수 2012.06.11
34 [174년08월]나날이 마음을 바꿔 즐거운 삶으로-유병희 2012.06.11
33 [174년07월]좋은 인연을 만들어 갑시다. - 최영철 2012.05.27
32 [174년06월]근본을 지켜나가는 길-배재기 2012.06.11
31 [174년06월][부인회총회신전강화]내실이 있는 용재가 되자-이상봉 2012.06.13
30 [174년05월]부부합심이 행복의 근본 - 김기범 2012.05.27
29 [174년03월]정월 초하루가 어디 있나-최금용 2012.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