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0호
입교187년(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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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년08월]숟가락 - 김혜원

2013.08.07 18:31

편집실 조회 수: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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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김혜원(도성포교소, 진주삼현여중 2)

 

잘 먹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고 더 큰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놓았다. 물론, 이 숟가락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짜증이 솟구친다. 이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곁눈질을 하셨고 아버지는 조용히 된장국을 드셨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싫어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한 공장의 사장이셨다. 그 회사(공장)는 숟가락을 만드는 회사로 유명했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 공장에서는 왜 숟가락만 만들어요? 젓가락도 있잖아요.”

숟가락은 마치 너의 어머니를 닮지 않았니? 젓가락은 위, 아래 모두 얍쌉하게 생겼지만 숟가락은 아니란다. 숟가락은 너의 어머니의 고운 얼굴빛을 닮았고 손잡이 부분은 너의 어머니의 고운 손과 닮았단다. 나는 이 숟가락 덕에 너의 어머니와 결혼을 할 수 있었지. 그땐 정말 아름다웠었는데...”

그럼 젓가락이랑 어머니랑 안 닮았어요?”

, 너의 어머니를 보거라.”

아버지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엌에서 수박을 썰고 계신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버지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통통한 팔과 다리는 젓가락을 닮았다고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머니의 저 튼튼한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은 숟가락에 더 가까웠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여보, 무슨 얘길 하길래 얼굴에 웃음이 번졌어요? 딸 배꼽 뽑겠네.”

숟가락과 당신이 닮았다는 얘길 하고 있었지.”

어머니 입가에도 웃음이 가득하셨다. 하지만 이 웃음이 어디까지 갈까?

 

숟가락 회사는 불량품을 만들어 판 한 사람의 실수로 큰 손해를 내었다. 나는 머리가 멍해져서 탁자 위에 숟가락을 보았다. 어머니는 아무 잘못없는 숟가락을 던지셨고, 아버지는 집에 오시지 않았다. 하루 만에 텔레비전에서는 숟가락 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어머니는 회사에서 만들었던 숟가락 몇 개를 가져와서 현관 앞에 놓으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으셨다.

어두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나섰다. 뉴스가 퍼졌는지 날 아는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자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눈치 보는 것도 힘든데 왜 그렇게 소곤거리는지 모르겠다. 학교에 도착하니 남자 아이들은 나를 놀리기 바빳다.

, 너네 회사 펑크 났다며? 이제 어떻게 해먹고 사냐? 우리 집에 와서 어정쩡 거리지나 말아라. 밥 좀 달라고 우리 집에 오면 궁둥이 차서 날려 버릴 테다.”

나는 얼굴이 딸기보다 더 상기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덕순이가 날 보고 있는데 철희 저 녀석은 눈치도 없나.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참았다.

하굣길, 내가 좋아하는 덕순이가 분홍색 치마를 입고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간다. 나는 덕순이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 덕순아. ...우리집 말이야. , 그러니깐...”

덕순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힘이 든다.

숟가락 회사, 펑크 났다는 거

? , ...”

괜찮아. 너희 집에는 숟가락 많으니깐 그걸 팔면 밥 먹을 정돈 될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 계속 나한테 질척거려? 펑크 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어휴, 답답해. 나 학원 가야 하니깐 따라 오지마.”

이제 나와 결혼하겠다던 덕순이는 온데간데없다. 그 잘난 숟가락 회사가 망했으니 정말 뭘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내 행동과 말은 정말 바보 같았다. 철희한테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가만히 있고, 덕순이에게 말을 하려해도 안 된다. 벙어리 같았다.

집에 가보니 며칠 동안 오시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그러니깐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묵묵한 이 분위기가 우리 가족의 말문을 막았다. 나는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게 이 숟가락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먹다만 밥을 남겼다. “잘 먹었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어머니께서는 도시락을 싸주신 뒤, 나에게 수저를 주셨다. 수저는 도시락 위에 보자기로 싸여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학교에서 보이기 싫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는 어쩔 수 없다.

회사는 망했는데 숟가락은 들고 왔냐?”

난 철희를 모른 채 하고 계속 연필을 깍았다. 철희는 계속 나에게 말을 거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덕순이를 바라보며 연필을 깍았다. 그리고 점심시간, 나는 보자기를 풀었다. 그런데 세상에, 수저가 아니라 숟가락만 두 개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잘못 싸셨나보다. 그때 덕순이가 숟가락이 없어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덕순이에게 재빨리 다가가 숟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덕순이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그리고 내가 내민 숟가락을 받았다.

어젠... 내가 미안했어. 말이 좀 심했지? 미안해.”

그때 이후로 덕순이가 나에게 말을 건건 처음이었다.

, 괜찮아. 난 지난 일은 신경 안 써.”

덕순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도 미소지었다.

나무그늘 아래서 덕순이와 처음으로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이 숟가락이 아빠회사를 망쳤지만 지금은 이 숟가락 덕에 미소를 지을 수 있어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만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 (6회 이형기문학제 전국백일장 중등 산문부 수상작)